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역전
하프타임 때에 번리의 라커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선발 중 두 명이나 부상으로 실려나가서 완전히 희희낙락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에 넣은 멋진 프리킥 골 덕분에 선수들의 기세가 올라있었다.
“정밀 검사를 해보겠지만 드와이티는 발목을 살짝 삐끗한 정도인 것 같아.”
“휴우, 다행이네요.”
라커룸 밖의 복도에서 형민을 따라잡은 팀닥터 사이먼 모리스의 말에 형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드레는?”
“안드레는 사타구니 근육에 문제가 생겼어. 그 친구도 정밀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사이먼 모리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드와이티의 부상이 심각하지 않다는 것에 안도해야 할지, 아니면 또 한 명의 선수를 번리를 덮친 부상 악령에 잃은 것에 괴로워해야 할지 고민하던 형민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적시장이 마무리되기 전에 로렌조 루카와 에마뉴엘 비냐토가 영입되었으니, 번리의 퍼스트팀은 형민이 팀을 맡은 이후 처음으로 24명까지 확대된 상황이다.
“알겠어요. 안드레의 상황에 대해서는 확정되면 다시 알려주세요. 그럼 저는···.”
슈퍼컵을 목전에서 놓치게 될 위험에 빠진 리버풀은 후반전에 격렬하고 저돌적으로 나올거라는건 안 봐도 뻔하다.
위르겐 클롭 감독이 아니라면 주장 조던 헨더슨이나 부주장 버질 반 다이크가 지금쯤 리버풀 선수단에게 투지를 불어넣고 있겠지.
또다시 수세적으로 45분을 견뎌야 승리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에 형민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면서 라커룸의 문을 열었다.
“감독님이 오셨다!”
“오오오!!”
라커룸 안의 열기 찬 분위기에 형민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고!”
“…네?”
감독의 갑작스러운 중얼거림에 문 옆에 앉아 있던 토마소 포베가가 의아한듯이 되물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자신의 등 뒤로 라커룸 문을 닫으면서 형민은 다시 전의를 되새겼다.
이제 45분만 견디면 된다.
***
삐익!
“아니, 그게 왜 파울이에요!”
주심의 휘슬이 울리는 동시에 주장 완장을 팔에 두른 번리의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항의했다.
잔디 위에 널부러져 있는 리버풀 선수와 반칙을 선언한 주심 모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어떻게 파울이 아니냐고!”
얼굴에 묻은 잔디를 털어내면서 리버풀이 자랑하는 젊은 미드필더 하비 엘리엇이 반박했다.
“아닐 수도 있지!”
혹시나 모를 리버풀의 급작스러운 역습에 대비하면서 조금 더 주심과 실랑이를 벌이던 니콜라스 세이왈드는 번리 선수들이 다 수비 위치를 잡은 것을 어깨 너머로 확인하자 곧바로 양 손을 들어올리면서 물러섰다.
“아, 생각해보니 파울이 맞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 이만!”
“아오!”
마침내 프리킥을 찰 수 있도록 공을 넘겨받은 하비 엘리엇이 짜증을 표출하는 가운데, 번리의 페널티 박스 외곽으로 이동하는 니콜라스 세이왈드를 지켜보면서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형민과 카롤리나가 머리를 맞대고 빠르게 의견을 교환했다.
“이제 토마소도 슬슬 지쳐보이지?”
“루카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둘 중 하나만 교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세바스챤 셰만스키의 부상으로 대신 선발 출전의 기회를 잡은 루카 수키치나 함께 선발 출전한 토마소 포베가 모두 맹활약을 해주었지만, 후반 70분이 넘어가는 가운데 둘 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중앙 공격수 로렌조 루카까지 하프라인 밑으로 내려와서 수비에 가담해야 할 정도로 리버풀이 맹공을 퍼붓고 있는데, 선발 출전한 미드필더들이 멀쩡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뛰어도 뛰어도 지치지 않는 니콜라스 세이왈드는 제외.
지금도 소리소리 지르면서 수비 라인을 정비하고 선수들을 독려하면서 필요하면 육탄 수비로 리버풀의 공격 흐름을 끊어내는 주장의 모습에 형민이 피식 웃었다.
“쟤, 주장 완장 안 채워줬으면 어쩌려고 했을까?”
“그런거 없어도 경기장 위에서는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을 것 같은데?”
“하긴···.”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반대로 성향이 위치로 사람을 이끌기도 한다.
니콜라스 세이왈드의 경우에는 전적으로 후자에 가까웠다.
완장 같은거 없어도 주장의 역할을 하니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베테랑들을 제치고 부주장으로 임명됐고, 이제 기존 주장인 제임스 타코우스키가 이적하면서 남겨진 공백을 잘 채우고 있었다.
“어쨌든, 루카 아니면 토마소?”
“…토마소로 하자. 아직은 루카가 필요할 수 있으니까.”
사이드라인에서 몸을 풀면서 감독과 수석코치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파트릭 데 파울라나 크리스티안 메디나와 같은 미드필더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번리의 벤치에서 경기에 투입되었을 때에 전력이 강화된다고 판단되는 미드필더는 하나 밖에 없었다.
아직 유망주 딱지를 벗지 못한 크리스티안 메디나는 지난 1시즌 동안 프리미어 리그와 유럽 축구를 경험하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했지만, 이렇게 전투적인 경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 파트릭으로 교체하도록 할께.”
“그래, 고마워.”
카롤리나가 다가가자 크리스티안 메디나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 가운데 희색이 만면한 파트릭 데 파울라가 입고 있던 조끼를 벗어던지고 카롤리나와 함께 대기심에게 다가섰다.
마지막으로 몸을 풀면서 수석코치에게서 전술적인 지시사항을 전달받는 브라질 국적의 미드필더를 바라보던 형민은 고개를 돌려서 팔짱을 낀채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상대팀 감독의 거구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어떻게 하실건가요?”
형민이 나직하게 내뱉은 질문이 당연히 들리지 않는듯,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사임과 함께 단연코 프리미어 리그에서 최고이자 최장 기간 동안 재직한 감독이 된 독일인 감독은 미동 없이 경기를 지켜볼 뿐이었다.
***
[골! 골입니다! 리버풀의 8번, 쥬드 벨링엄! 후반 88분에 동점골을 넣습니다!]장내 아나운서의 외침이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리버풀 팬들의 함성을 뚫고 울려퍼졌다.
“으아아아!!!”
경기장 위에서 번리 선수들이 아쉬움에 잔디를 걷어차는 가운데, 코너 플래그로 몰려간 리버풀 선수들이 오늘 공식 데뷔전을 치른 젊은 에이스를 에워싸고 골을 자축했다.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 있던 형민은 축 늘어지는 번리 선수들을 향해서 박수를 치면서 격려했다.
“괜찮아! 늘어지지 마!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7분만 더 버티면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지만, 동점골을 내주었다.
하지만 형민도 솔직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방금 골은 너무 잘 들어갔다.
후반전 내내 리버풀의 중앙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다르윈 누네즈를 중심으로 오른쪽의 모하메드 살라와 왼쪽의 루이스 디아즈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골문을 위협했다.
3명의 공격수들이 번리의 수비진의 시선과 경계심을 완벽히 끌어당긴 가운데, 아차 하는 순간에 하비 엘리엇이 개인 기량으로 공을 몰고 번리의 페널티 박스 정중앙까지 돌파하는 데에 성공했다.
당황한 번리 수비진이 일제히 하비 엘리엇의 앞을 가로막고, 달려온 미드필더들은 리버풀의 공격수들을 견제하는 가운데 하비 엘리엇은 살짝 공을 뒤로 흘려주었다.
그리고 페널티 박스 경계선에서 흘러나오는 공이 향한건 리버풀이 8,000만 파운드의 거금을 지급하고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 도르트문트에서 영입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 쥬드 벨링엄.
아직 20살 밖에 되지 않았다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원숙한 기량을 선보이던 젊은 미드필더는 단숨에 매서운 오른발을 휘둘러서 중거리 슈팅을 성공시켰다.
88분 동안 온 몸을 날리면서 선방쇼를 보여줬던 번리의 신입 골키퍼 마르코 카르네세치가 또 한번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보았지만 절대로 골키퍼가 막아낼 수 없는 절묘한 각도의 슈팅.
프랑크푸르트의 왈드스타디온이 함성으로 폭발하면서 기세가 리버풀쪽으로 넘어갔다.
***
“으아아아!!!”
방금 전, 리버풀의 주장 조던 헨더슨이 페널티 박스 외곽에서 기회를 잡았다.
후반전 끝무리에 쥬드 벨링엄이 성공한 동점골과 거의 동일한 위치와 상황.
하지만 리버풀의 공격수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 당하던 번리의 수비진에게는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리버풀의 주장답게 기회를 놓치지 않은 베테랑 미드필더는 중거리슈팅을 놓치지 않고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후··· 하···.”
코너 플래그로 달려가는 리버풀 선수들을 보면서 로렌조 루카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2주 전까지 세리에B의 피사에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던 그가 UEFA 슈퍼컵에 선발 출전해서 연장전까지 포함한 115분을 소화하고 있다.
물론 부상 악령이 몰아닥친 번리의 공격진이 초토화되면서 어부지리로 얻어낸 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로렌조 루카는 남들의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13살의 나이에 방출되면서 그 후 9년 동안 무려 7팀을 전전했던 저니맨.
팔레르모에서 좋은 감독과 코치들을 만나서 자신의 신체적인 우위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피사에서도 감독과 코치들의 전적인 믿음 하에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했지만 그 뒤에는 간단한 동작도 자신의 신체 조건에 맞추기 위해 수천번 이상 연습해야 했던 자신의 피땀어린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번리에 온 첫날.
그와의 첫 만남에서 온 유럽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젊은 동양인 명장이 그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너가 걸어온 여정을 존경한다고.
혹시나 그가 못 알아들었을까봐, 어설픈 이탈리아어로 rispetto와 stima를 번갈아가면서 말해준 감독이었지만 그의 큰 키와 이걸 어떻게 경기에서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보다 그가 사람으로서 걸어온 길을 더 존중해주는 감독의 말에 감동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대부분 주변의 인정을 한 몸에 받았던 유망주들과 젊은 에이스들이 밀집해 있는 번리였지만,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프리마돈나 같은 선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는 팀의 분위기도 마음에 쏙 들었다.
킥오프를 위해서 센터서클로 걸어가면서 이를 악물은 로렌조 루카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말 루이스에게 손짓했다.
“자말!”
“어.”
그에게 다가온 왼쪽 공격수에게 로렌조 루카가 말했다.
“나를 믿어?”
“뭐래는거야?”
어처구니 없다는듯이 반박하면서도 자말 루이스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둘이서 뭔가 낮고 빠르게 의견을 교환하는걸 본 오른쪽 공격수 에마뉴엘 비냐토가, 그리고 3명이 모여 있는걸 본 미드필더 루카 수키치와 주장 니콜라스 세이왈드, 그리고 파트릭 데 파울라까지 센터서클 밖에서 머리를 맞대었다.
“…럼 이렇게···.”
“아니야. 그건 내가 할테니까, 너희는···.”
“좋아. 그럼 나랑 파트릭이 뒤는 책임질께.”
“좋았어!”
낮고 빠르게 의견을 교환한 번리의 공격진과 미드필더들에게 골문에서 달려온 중앙 수비수 안셀모 가르시아 맥널티가 로렌조 루카에게 골문 속에서 꺼내온 공을 건내주면서 말했다.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방 먹여줘. 그리고 수비는 우리가 책임질께.”
뒤를 돌아보니 수비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일제히 그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로렌조 루카가 공을 받아들면서 말했다.
“꼭 한방 먹여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