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산 시로
“자, 다들 숙지하고 있겠지만 다시 한번 설명할께요.”
저 멀리서 로쏘네리들이 우렁차게 부르는 응원가가 두터운 벽을 뚫고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번리의 선수들은 라커룸에 둘러앉아서 작전판 앞에 선 감독에게 시선을 모두 집중했다.
감독의 마지막 작전 시간에는 고요함이 감도는게 번리 라커룸의 특징.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선수들을 둘러본 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AC밀란의 위험한 점은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전술이 유연하게 변형한다는거에요.”
작전판 위에 놓여진 AC밀란의 마커들이 4-2-3-1 포메이션에서 변형하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랑 비슷하게 양쪽 측면 수비수들이 앞으로 전진하는 경향이 강하고.”
왼쪽 수비수 위치에 테오 에르난데즈와 오른쪽 수비수 위치의 다비데 칼라브리아의 마커가 앞으로 전진했다.
“반대로 중앙은 중앙 수비수 2명과 미드필더 2명이 단단한 정사각형을 형성하거나, 측면으로 빠져나가면서 수비를 지원해요.”
중앙 수비수 피카요 토모리와 피에르 칼룰루,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 이스마엘 베나세르와 산드로 토날리.
형민은 그 중에 산드로 토날리의 마커를 두드렸다.
“모든 선수들이 평균 이상의 패스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주의해야 할건 산드로 토날리에요. 넥스트 피를로라고 부르는건 다들 들어봤겠지만, 코치진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피를로의 패스 능력에 가투소의 수비력이 결합되어 있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아요.”
패스 마스터라는 별칭과 함께 우아하면서도 치명적인 패스로 AC밀란과 유벤투스의 전설이었던 안드레아 피를로.
황소라는 별칭과 함께 전투적인 수비력으로 AC밀란의 전설이었던 젠나로 가투소.
결국 산드로 토날리는 수비도 잘 하고 활동량도 좋고 패스까지 환상적인 전천후 미드필더라는 얘기다.
다시 한번 듣는 감독의 주의사항에 번리의 선수들이 나직하게 침음을 삼키는 가운데, 형민이 공격진으로 옮겨갔다.
“다음. 공격형 미드필더는 다니엘레 말디니. 이 친구는 순간순간에 비어있는 공간을 포착하고 찔러주는 패스가 매서우니까 틈을 많이 보여주면 안 돼요. 그렇다면 몸싸움에 확 약한 것도 아니니까 섣불리 도전하지 말 것.”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탁월한 시야와 경기감각으로 전설적인 수비수가 되었다면, 아들은 똑같은 시야와 경기감각으로 공격을 주도한다.
“음··· 나라도 어렸을 때에 집에서 공을 찰 때에 파올로 말디니가 나를 막고 있으면 공격력이 엄청 좋아지기는 했을 것 같은데···.”
옆에서 태진이 웃으면서 살짝 무거워지려는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선수들의 대부분은 웃는 가운데, 미카 마르몰만 부럽다는듯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왼쪽에 하파엘 레앙과 오른쪽에 알렉시스 살레마커스”
형민이 마커를 두들기면서 설명했다.
“얘는 겁나 빠르고 결정력도 좋고, 얘는 기술이 엄청 좋은데 발도 빨라요.”
현재 세리에A의 부동의 득점왕 후보, 하파엘 레앙.
현재 세리에A에서 어시스트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알렉시스 살레마커스.
아차하면 치고 들어와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날카로운 날개들이다.
“그리고 공격 방식에 따라서 중앙 공격수가 바뀌는데, 단단하게 지키면서 역습을 할 때에는 디복 오리기가 나오고 상대편을 때려부숴야 하면 올리비에 지루가 나와요.”
리버풀의 레전드, 디복 오리기.
기복이 엄청나게 심하다는 악명과 함께 중요한 경기에서 결정적인 골을 성공시키면서 팬들의 짜증과 사랑을 동시에 받았던 선수는 AC밀란으로 건너와서 온전히 안착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와 결정력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189센티의 장신에 제공권도 상당히 훌륭한 수준.
반대로 올리비에 지루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것에 비해서 다양한 팀을 전전했다.
런던 라이벌인 첼시와 아스널에서 모두 뛰었다는 소수의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마침내 은퇴한 즐라탄 이브라모비치의 후임으로 AC밀란에서 와서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올리비에 지루는 격렬한 90분을 소화하기 쉽지 않으니까, 디복 오리기가 오늘 선발로 나오고 필요하면 후반전에 교체 투입될거에요. 어쨌든···.”
오늘 예상되는 선발진에 대한 설명을 마친 형민이 포메이션을 움직이면서 전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격 상황에서는 중앙 수비수들과 중앙 미드필더들이 가운데에서 단단하게 정사각형을 형성하고, 측면 수비수들이 치고 올라가요. 후방에서 빌드업이 시작한다면 확률적으로 산드로 토날리를 거쳐서 다니엘레 말디니에게 연결되는게 가장 빈도가 높지만, 그것만 믿고 있기에는 저쪽 수비진은 다 롱패스도 가능해요.”
후방 빌드업을 할 때에 언제 어디서든 롱패스 한방으로 역습을 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니엘레 말디니는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공격이 막히는걸 다시 연결하거나 전환을 하고, 왼쪽의 하파엘 레앙과 오른쪽의 알렉시스 살레마커스가 중앙으로 파고들거나 뒤에서 올라오는 측면 수비수들과 연계하게 됩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있는 마커가 좌우로 움직이면서 측면 공격수와 측면 수비수들과 함께 삼각형을 형성했다.
“다만 하파엘 레앙은 조금 더 중앙으로 침투하는 경향이 강하고, 알렉시스 살레마커스는 수비수들을 자신에게 끌어당긴 다음에 패스나 크로스로 전환하거나 직접 돌파하는 경향이 더 강해요.”
오늘 번리의 측면 수비를 담당할 오스카 밍게자와 아마르 데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좌우 측면 공격수들의 움직임에 맞춰서 중앙 공격수는 상황에 맞춰서 뒤로 내려오면서 중앙 수비수를 끌어당기거나, 아니면 밀고 들어가서 아예 골키퍼까지 압박할 수도 있어요.”
강렬한 압박으로 명성을 떨친 리버풀 출신답게 디복 오리기도 수준급 압박 능력과 활동량을 보유하고 있다.
올리비에 지루는 원래부터 발이 빠르지 않았고, 나이가 들면서 활동량이 줄어들었지만 대신 탁월한 제공권과 경험에서 나오는 위치선정 때문에 어려운 상대이다.
“결국 AC밀란은 수비 상황에서 측면 공격수들까지 뒤로 물러서서 수비에 가담하고, 공을 탈취하면 바로 양쪽 측면으로 통해서 역습을 가합니다.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부담이 가중되겠네요.”
오늘 경기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선발로 예정된 파트릭 데 파울라가 말했다.
“맞아요. 중앙 공격수는 최전방에서 자리를 지키고, 양쪽 측면 공격수와 수비수는 번갈아가면서 공격해서 체력을 관리할 수 있지만 공격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줘야 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해요.”
한방에 역습이 이어지면 좋겠지만, 상대팀 수비도 놀고 있는건 아니다.
역습에는 추가로 지원이 붙어야 하고, 위치상 공격형 미드필더가 가장 빨리 가담을 해줄 수 있다.
결국 팀의 구조상 공격형 미드필더는 헌신적인데 창의적이어야 하고, 공격도 잘 해야 하는데데 수비도 적극적으로 가담해줘야 한다.
현대 축구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이 사양세에 접어들은 것은 이런 장점들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 선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3대째 AC밀란의 퍼스트팀 선수로 뛰고 있는 축구 명문 말디니 가문의 다니엘레 말디니에게는 딱 걸맞는 포지션이다.
일반적으로 젊고 창의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가지는 자존심이나 이기심 같은건 찾아보려고 해해도 찾아볼 수가 없다.
철저한 팀에 대한 헌신, 그리고 승리에 대한 집착.
아마 경기에서 지고 나면 다음번 가족 식사에서 모든 식구들로부터 온갖 눈총을 다 받는 와중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번갈아가면서 말하는 “나 때는 말이야···”를 몇 시간 동안 들어야 할거라는 부담감도 있겠지.
“여기를 잘 끊어놓을 수 있다면 AC밀란의 역습을 걱정하지 않은채 계속 압박을 가하면서 공격할 수 있어요.”
적진에서 공세적으로 나오겠다는 과감한 작전.
감독의 의도를 이해한 선수들이 고개를 일제히 끄덕였다.
선수들의 얼굴을 둘러본 형민이 오늘 벤치에서 시작하는 니콜라스 세이왈드 대신에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토마소 포베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어색한 표정으로 일어선 토마소 포베가는 곧 엄숙한 표정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For ever and ever! (영원히 영원히!) 우리가 누구지?”
“We are Burnley! (우리는 번리!)”
***
“여어, 토마소!”
밖에서는 홈팬들의 함성과 응원가가 맹렬하게 울려퍼지고 있었지만, 아직 터널 안은 조금 조용했다.
터널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토마소 포베가가 뒤를 돌아보았다.
“다니엘레!”
토마소 포베가는 AC밀란의 전설의 손자이자 전설의 아들이 옛 동료를 향해서 반갑게 내민 손을 굳게 마주 잡았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있지?”
“나야 뭐. 너는 이제 완전히 퍼스트팀에 자리를 잡은 것 같던데? 축하해!”
그와 함께 유소년팀과 19세 미만 팀 시절을 보냈던 동료.
그리고 나서 두터운 퍼스트팀의 선수층 덕분에 각자 임대 생활을 전전하면서 연락이 뜸해지기는 했지만, AC밀란 유소년 출신인 토마소 포베가가 지금 AC밀란의 퍼스트팀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나니까 반가운걸?”
다니엘레 말디니의 말에 토마소 포베가가 고개를 저으면서 웃었다.
“그러게. 이렇게 마주 보고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언제나 저 붉은색과 검정색 줄무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홈팀쪽에 서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암적색 유니폼을 입고 원정팀쪽에 서서 경기의 시작을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다니엘레 말디니는 그렇게 잠깐 생각에 잠긴 토마소 포베가의 팔에 채워진 완장을 툭 쳤다.
“너도 번리에서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뻐!”
“아, 고마워.”
뭔가 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 눈치였지만, 심판들이 다가오는 모습에 다니엘레 말디니는 아쉽다는듯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오늘 경기는··· 음··· 너무 잘 뛰지는 말아줘! 하하하.”
“그래,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경기가 끝나고 얘기하자고.”
다니엘레 말디니가 다시 붉은색과 검정색 줄무늬가 새겨진 유니폼들의 줄 사이로 끼어드는 가운데, 토마소 포베가는 팔에 채워진 완장을 어색한듯 만져보았다.
그도 이제 25살.
AC밀란의 유스팀 출신이었지만 결국 퍼스트팀의 두터운 선수층을 뚫지 못하면서 임대를 전전하다가 그의 재능을 눈치챈 번리에서 낚아챘다.
지난 시즌에 임대로 합류한 번리에서 주축으로 활약하면서 유로파 리그와 카라바오컵을 들어올리고 완전 이적을 확정.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새롭게 합류한 파트릭 데 파울라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이다가, 결국 밀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주장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그를 갑자기 불러냈다.
“야, 오늘 경기에서 네가 이걸 차라.”
“…내가?”
그에게 건내진 것은 밝은 노란색의 주장 완장.
어렸을 때에 유소년 팀에서는 몇번 차봤지만, 그 다음부터는 임대를 전전하면서 자신과는 상관이 없어진 물건.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지금은 더더욱 자신과 상관이 없어졌어야 하는 물건이 지금 자신의 손에 쥐어지고 있었다.
“내가? 왜 내가?”
“애들이 네 말을 잘 듣잖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토마소 포베가가 니콜라스 세이왈드를 바라보았다.
“감독님이랑 얘기를 안 하고 네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거야?”
“당연히 감독님이랑 얘기를 했지. 사실은 말이야···.”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비밀을 얘기하듯 속삭였다.
“…너 없는 사이에 애들이 투표를 했거든.”
“…투표?”
“당연하지. 주장단을 선임하는데 선수단의 투표가 없을 수 없잖아.”
주장단은 선수들끼리 알아서 선임하라는 형민의 자유방임형 정책.
거기에 맞춰서 선수단 투표까지 진행했다는 소식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토마소 포베가에게 오스트리아 출신의 바른 생활 사나이가 씩 웃었다.
“축하해, 부주장. 이제 나 좀 도와줘라. 제임스가 떠난 다음부터 나 혼자 주장직을 하느라고 죽는줄 알았다고···.”
옆에서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계속 뭐라고 주절거렸지만, 토마소 포베가는 손 안에 쥐어진 완장을 내려다보았다.
그 감촉이 부드럽고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