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반지원정대
“…래서 빌리 빈 단장이랑 파올로 말디니 디렉터도 다음 경기에 번리를 방문하기로 했어요.”
“아, 그렇군요.”
헬레나의 설명에 형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두 사람은 오랜만의 휴일을 맞아서 번리 북서부에 위치한 펜들힐에 선행을 나와 있었다.
AC밀란 원정경기 후, 다음날 오전에 회복 훈련을 진행한 형민은 3일 후로 예정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을 앞두고 선수단과 코치진에게 휴식일을 부여했다.
4월 정도 되면 개별 훈련이나 팀 훈련은 큰 의미가 없다.
시즌의 끝이 한달 반 정도 밖에 안 남았는데, 체력을 끌어올리거나 조직력을 더 단단하게 하고 전술적인 지시를 내리기보다 한 시즌을 함께 달려온 선수단을 믿고 체력을 안배하자는게 형민의 생각.
코치진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는데, 덕분에 형민은 휴식일을 맞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면서 펜들힐을 오를 수 있었다.
물론 ‘오른다’라는 말을 쓰기에는 겨우 해상 557미터에 낮은 언덕에 불과했지만.
스코틀랜드와의 접경으로 근접할수록 점점 더 거칠어지는 언덕과, 그 주변에 잘 다듬어진 농장들의 대비와 함께 적극적인 문명화가 진행되지 않은 펜들힐과 그 주변의 뭔가 야생의 자연을 상상하게 하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직은 조금 추울 수 있는 4월이라는 애매한 날씨 덕분에 청바지와 재킷, 그리고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쓴 차림의 젊은 동양인 남자와 서양인 여자 커플은 그다지 눈에 띄는 조합은 아니었다.
물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게 도움이 많이 되기도 했지만.
함께 손을 잡고 펜들힐을 오르던 헬레나가 생각난듯 형민에게 물었다.
“미카는 선물을 좋아하던가요?”
“푸하하하!!”
헬레나의 질문에 형민이 드물게 큰 웃음을 터뜨렸다.
산 시로의 이사석에서 열띈 목소리로 AC밀란 서포터들에게 지방자치단체와 시장에게 협박 편지를 쓰는 것을 지휘하던 AC밀란의 테크니컬 디렉터 파올로 말디니에게 이미 영구결번된 그의 유니폼 사인을 받아서 전달해준 것은 헬레나였다.
미카 마르몰이 파올로 말디니를 거의 종교 수준으로 추앙하고 있다, 라는 말을 듣고는 생각나서 전달한건데, 남자친구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걸 말이라고···. 숙소를 함께 쓰고 있는 아마르의 말로는 액자에 넣어서 벽에 걸어둔 다음에 작은 커튼으로 가려두었다고 해요.”
의외의 말에 헬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려두었다고요? 왜요? 마음에 들어할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햇빛을 너무 받으면 변색될 수도 있다고···.”
말을 이어가던 형민은 그에게 공포와 충격이 뒤섞인 말로 상황을 설명하던 아마르 데디치의 표정이 떠올라서 다시 웃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매일 밤에 자기 전에 한번 커튼을 걷고 경건하게 유니폼을 바라본 다음에 다시 커튼을 친다고 해요. 아마 조금 있으면 앞에서 봉헌 양초를 켜거나 향초를 태우면서 모든 수비수들을 수호하는 성 말디니에게 기도할 것 같다고···.”
“프하하하핫!!”
상황을 이해한 헬레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적극적으로 추앙한다고 하더니, 뭔가 숭배와 유사한 느낌으로 변질된 모양이었다.
“그럼 다음 AC밀란 전은 뛸 수 있는건가요?”
“본인이 정말 적극적이던데요? 선발 출전하고 싶다고까지 주장하지는 않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AC밀란 공격을 완전히 봉쇄하겠다고··· 2실점이나 한걸 아쉬워하더라고요.”
형민의 말에 헬레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AC밀란 원정경기에서 1골 차이로 패배한건 그렇게 나쁜 결과가 아니지 않나요? 이제 챔피언스 리그는 원정 다득점 제도도 폐지됐잖아요.”
스포츠의 다른건 몰라도 승패를 결정하는 제도나 규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공부한 헬레나의 말에 형민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민?”
아직도 자지러질듯이 패배를 싫어하는 남자친구가 혹시나 마음이 상했을까봐 헬레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살폈지만, 형민은 고개를 숙인채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형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재차 이어진 헬레나의 질문에 형민이 퍼뜩 정신을 차린듯 고개를 들어서 그녀의 파란 눈을 바라보았다.
“아, 미안해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우리, 돌아갈까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도 준비해야 하고 AC밀란 전도 준비해야 하는데 내가 괜히 끌고 나왔나 싶어서요.”
“어, 아니. 아니에요.”
형민은 헬레나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기분 전환도 되고 좋네요.”
“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헬레나는 형민과 함께 한동안 걷다가, 계속 그녀를 궁금하게 하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왜 자꾸 제 손을 계속 주물럭거려요?”
“….”
***
반필드 트레이닝 센터.
퍼스트팀 전용 회의실.
평소에 번리 퍼스트팀의 감독과 코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작전을 논의하는 회의실은 평소의 4명의 멤버가 모두 출석해 있었다.
감독 형민 김.
수석코치 카롤리나 슈테판.
코치 태진 정.
피트니스 코치 파울루 모라오.
이 회의실에서 나온 전술들은 수많은 강팀들을 격파하고 잉글랜드 북서부의 작은 시골 구단을 유로파 리그와 FA컵, 그리고 카라바오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난 2시즌간 프리미어 리그 순위는 각각 6위와 4위.
이번 시즌의 현재 순위는 1위에서 승점 5점이 뒤쳐진 2위.
강등 1순위로 손꼽히던 시절에서 이제 우승 경쟁을 하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이제 내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하지만, 회의실은 그런 사소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를 벌이고 있었다.
“…래서 사이즈는 확인을 못 했다고?”
태진의 진지한 질문에 침울하게 테이블에 고개를 쳐박고 있던 형민이 고개를 들어서 좌우로 흔든 다음에 다시 테이블 위에 고개를 쳐박았다.
“야, 사이즈를 모르면 도대체 약혼 반지를 어떻게 사겠다는거야?”
“나도 몰라···.”
테이블에 짓눌린 뺨 옆으로 입술을 움직여서 형민이 웅얼거렸다.
“대충 이 정도 사이즈인 것 같기는 한데···.”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대충 벌려서 사이즈를 보여준 형민에게 두 명의 유부남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걸로 어떻게 반지 사이즈를 측정하냐고!”
이건 장신의 공격수 출신 코치의 일갈.
“자네, 정말 이런거에 대해서 모르는구만.”
이건 팔짱을 낀채 한심스럽다는듯 한숨을 내쉬는 포르투갈 국적의 열정적인 피트니스 코치의 한탄.
암울한듯 한숨을 내쉬는 세 사람은 한참이나 묵묵하게 앉아 있다가 동시에 자리에 위치한 유일한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한테 알아보라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보냐고?!”
카롤리나의 일갈에 형민은 움찔했지만, 태진은 애써 물고 늘어졌다.
“그래도 여자끼리 뭔가 사적인 얘기를 할 때에···.”
“…사적인 얘기를 할 때에 ‘야, 너 손가락 예쁘다. 반지 사이즈 얼마냐?’ 이런걸 물어보라고? 나한테서 질문이 나오면 그 이유는 너무 뻔하다고 생각할 것 같지 않아?”
“음···.”
이 모든건 결국 반지를 받는 당사자에게 비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프로포즈는 있지만, 무릎 꿇고 깜짝스럽게 약혼 반지를 바치는 전통은 없는 한국 출신의 유부남이 고개를 저었다.
“야, 그냥 솔직하게 헬레나한테 얘기하고 같이 반지를 보러 가. 넌 디자인도 못 고르잖아.”
“그건 아니지!!”
옆에서 중년의 포르투갈 유부남이 씩씩 거리면서 끼어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은 생각을 할 수 있나, 태진? 그건 로맨스에 대한 모욕이야, 응?! 멋진 카페에 가서 바다 위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와인 한 잔을 마시는 아름다운 그녀에게 미리 섭외한 밴드가 와서 연주하는 순간! 그때 무릎을 꿇고 작은 상자를 꺼내서 열면···!”
“파울루. 이번까지 들으면 30번째 듣는거니까 제발 그만 얘기해요.”
모든 유부남은 자신이 한 프로포즈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유부녀가 자신의 남편이 한 프로포즈가 최고라고 생각하는지는 정말 모르는거다.
더욱이 번리에서 바다는 안 보이고, 형민은 멋진 카페 같은건 고를줄 모르며 도대체 밴드는 어디서 섭외해야 하는거야?
고민하던 태진은 당면한 과제부터 풀기로 결심했다.
“근데 우리 내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준비를 해야되는거 아니었어?”
태진의 질문에 카롤리나와 파울루 모라오가 동시에 그를 돌아보았다.
“아, 그딴 것보다 이게 훨씬 더 중요해!”
이건 카롤리나의 일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정도는 애들이 알아서 할걸세!”
이건 파울루 모라오의 일갈.
“음···.”
태진은 침음을 삼켰다.
간신히 감독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나름 명장 소리를 듣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모네 인자기 감독이 들으면 섭섭해 할 것 같은데···.
***
“우우우우!!!”
관중석에서 홈팬들의 야유가 울려퍼졌지만, 짧고 빠르게 골 세레모니를 마무리한 번리 선수들은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0대 3. 점수는 0대 3입니다. 이번 득점자는 번리의 킨 루이스-포터. 킨 루이스-포터입니다.”
올드 트래포드의 장내 아나운서의 메마른 목소리가 울려퍼졌지만, 각의 포지션으로 향하던 번리의 선수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근소근 대화를 주고 받았다.
“아직도 그러고 계셔?”
“응. 경기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그러신다니까?”
“왜 그러지. 설마 AC밀란한테 져서 그런가?”
불안해하는 선수들이 힐끗힐끗 원정팀 벤치를 향해서 시선을 돌렸다.
평소에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나와서 경기를 지켜보거나 지시를 내리던 감독이 오늘은 벤치에 틀어박힌채 팔짱을 끼고 묵묵하게 앉아 있다.
수석코치 카롤리나가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나와서 지시를 내리거나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녀도 전반 26분 만에 번리 선수들이 2번째 득점에 성공하자 벤치로 내려가버렸다.
감독과 코치들까지 4명이 모두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팔짱을 낀채 암울한 분위기.
“야야, 너는 뭐 아는거 없어?”
“나? 내가 아는게 뭐 있는데? 나도 몰라.”
선수들의 질문에 주장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옛날에 그 왜··· 감독님이 물병을 걷어차신 적이 있었잖아.”
번리의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이제 전설로 내려오고 있는 물병킥 사건.
그 사건을 직접 본 당사자의 숫자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새로 번리에 합류한 선수마다 먼저 있었던 선수들에게 전해 듣는 일화.
우리 감독님이 평소에 온화하고 젠틀하지만 절대로 무시하거나 얕보면 안 돼!
괜히 미꾸라지 하나가 사고쳐서 선수단 전체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나가는 경고.
“…그건 그런데, 그때는 우리가 전반전에 완전히 삽질했었고. 이번에는 전반전을 2대 0으로 끝냈잖아!”
니콜라스 세이왈드의 항변에 오늘 선발 출전한 킨 루이스-포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정도는 더 확실하게 짓밟을거라고 생각하신걸까? 그래서 우리 전반전의 퍼포먼스가 마음에 안 드시는거?”
“음···.”
설마, 싶지만 감독이 저렇게 벤치에 앉아서 먹구름을 피워올리고 있는 것도 오랜만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겠으니까, 일단 한 골을 더 넣어보자.”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야!”
주변의 동료들이 일제히 맞장구를 쳤다.
홈팀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모네 인자기 감독이 듣는다면 기절할 것 같은 말이었지만, 번리의 젊은 선수들은 진지했다.
또 한번 물병을 걷어차는 사태가 발생하면 안 된다.
그러면 감독이 분노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상대팀을 짓밟는게 제일 정확하다.
“자, 그럼 가자고! For ever and ever! (영원히 영원히!) 우리가 누구지?”
“We are Burnley(우리는 번리)!”
***
저 위에 위치한 이사석에 앉아서 기세를 다시 피워올리고 있는 번리의 선수들을 내려다보면서 자리에 참석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이사들이 창백해지고 있는 가운데, 그 사이에 앉아 있던 헬레나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말씀하셨나요, 미스 카트라이트?”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옆에서 건내진 질문에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한 헬레나는 다시 텅 비어 있는 원정팀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시선을 내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이즈 7이에요,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