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레드버드 캐피탈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서도 승리에 환호하는 홈팬들의 환호성과 응원가가 아직도 희미하게 들려오는 가운데, 앤드릴스 무어의 박스석에서는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AC밀란의 의장 빌리 빈은 담담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옆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았던 테크니컬 디렉터 파올로 말디니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듯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아쉽네요.”
“아···?”
갑자기 나온 파올로 말디니의 말에 헬레나가 그를 돌아보았다.
“제가 현역이었다면··· 저 마지막 공격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닌가? 계속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녀의 의아해하는 표정에 멋쩍은듯이 미소를 짓는 파올로 말디니 옆에서 빌리 빈 의장이 나직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오클랜드 시절에 그랬지. 경기를 보고 있으면 왜 저걸 못 하는지 화가 났거든. 물론 실제로도 못 했으니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별로 없지만 감정이 올라오는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
촉망받는 유망주였지만 결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실패한 선수로 프로 생활을 끝낸 빌리 빈 의장의 담담한 말에 파올로 말디니가 자신의 상사를 돌아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나요?”
“…아니.”
잠시 침묵하던 빌리 빈 의장이 이내 눈빛을 형형히 빛내면서 대답했다.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지면 안 되지. 이건 개선을 향한 원동력이니까.”
“그렇군요.”
온갖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하나의 구단을 이끌어왔던 노년의 의장 말에 파올로 말디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빌리 빈 의장이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헬레나를 향해 돌아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파올로는 젊어서 경기를 보면 피가 끓는 모양이네요.”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면 안 된다고 하신건 의장님이 아니신가요?”
헬레나의 지적에 빌리 빈 의장이 피식 웃었다.
“그러네요. 그렇군요.”
빌리 빈 의장이 다시 고개를 돌려서 경기의 열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은 앤드릴스 무어의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멋진 경기장이고, 멋진 팬들이고, 무엇보다 멋진 팀이네요.”
“감사합니다.”
빌리 빈 의장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확실히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후반전부터는···. 확실히 현재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장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군요. 선수 교체도 아니라 임무 변화 만으로 그런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니.”
자신이 이끄는 팀의 감독이자 남자친구를 칭찬하는 말에 헬레나는 미소를 지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던듯, 빌리 빈 의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구단의 인수와 거래 같은 복잡한 절차는 뱅커들과 변호사들이 뉴욕에서 해결할 문제니까 저는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오늘 번리에 직접 와보니, 영국 북서부의 보석이라는 말을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직접 가지고 싶으실 만큼이요?”
헬레나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빌리 빈 의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그리고 카트라이트 펀드에서도 단순히 인수 가격이 아니라 앞으로 번리를 어떻게 끌고 가려고 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레드불 친구들도 만나고 계시겠지요.”
헬레나는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답이 된다는듯 노련한 의장은 말을 이어갔다.
“저는 AC밀란도 그렇고 번리도 그렇고, 종착점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종착점이요?”
빌리 빈 의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마음을 추스린듯 파올로 말디니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최전성기에 있는 선수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 누구든지 그 유니폼을 입었을 때에 자랑스러워 하고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곳.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아···.”
생각하지 못한 얘기에 헬레나가 침묵을 지켰다.
“물론 구단의 재정이라는 것도 있고, 좋은 선수를 발굴해서 키워내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지요. 하지만 구단의 역사와 전통을 알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그런 핵심 선수층을 보유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3대를 이어서 AC밀란에서 활약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주장을 역임하면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던 파올로 말디니의 말이다.
그냥 상투적인 인사치레가 아니라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의 말에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저희는 레드불과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유망주들을 잘 발굴한 다음에 전성기에 도달하는 시점에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성기에 도달하는 선수들이 오고 싶어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음···.”
순간 많은 생각이 헬레나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복잡한 그녀의 표정을 본 빌리 빈 의장이 옆에서 나직하게 웃었다.
“오늘 하루 만에 끝날 얘기는 아니니까,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하시지요. 하지만 오늘, 이렇게 멋진 경기를 본 다음에 여운이 가시기 전에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런 밤들을 수없이 많이 번리에서 만들어내는게 레드버드의 생각이라는 것을.”
“….”
***
AC밀란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와 함께 챔피언스 리그 4강 진출권을 예약했지만, 번리의 감독과 코치진에게는 쉴 시간 같은건 주어지지 않았다.
화요일에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을 치르고 토요일에 다시 토트넘을 상대로 프리미어 리그 34라운드 경기를 치뤄야 한다.
리버풀과 번리 모두 2024년 2월에 들어선 다음부터 프리미어 리그에서 연승 행진을 이어오면서 팽팽한 승점 차이를 유지하고 있다.
번리는 32경기 이후 27승 5패로 승점 81점.
리버풀은 32경기 이후 28승 2무 2패로 승점 86점.
여전히 승점 차이는 5점.
그러나 번리는 토트넘전을 시작으로 맨체스터 시티, 아스톤 빌라, 노리치, 그리고 리버풀까지 앞으로 5경기에서 만만치 않은 상대를 4팀이나 만난다.
소위 빅6를 형성하면서 오랜 기간 동안 프리미어 리그를 주도했던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 그리고 토트넘.
중위권 구단 중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엎고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아스톤 빌라.
만년 강등후보이자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쉽을 오가면서 요요 클럽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노리치 전이 그나마 해볼만 하지만, 그래봤자 5경기 중 1번 정도 쉬어간다는 수준이다.
반면에 리버풀은 상대적으로 프리미어 리그 일정은 상대적으로 만만하다.
차례대로 크리스털 팰리스, 에버튼,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번리.
머지사이드 더비 라이벌인 에버튼과 노스웨스트 더비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까다로울 수 있지만, 양 팀 모두 예전의 영광을 잃고 빛바랜지 오래.
최종전 상대 번리가 가장 까다롭지만, 그때쯤에는 이미 우승을 확정했을거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었다.
결국 첼시를 상대로 예약된 FA컵 결승전과 챔피언스 리그에 온 힘을 투사할 수 있는 상황.
“야야. 복잡한 생각하지 말고. 바로 다음 경기만 생각하기로 했잖아!”
일정표를 보면서 생각에 잠기는 형민에게 태진이 말했다.
“아? 아, 그렇지···.”
정신을 차린듯, 대진표를 내려놓은 형민이 회의실 테이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아니야. 그럴 수 있지.”
파울루 모라오가 자상하게 말했다.
AC밀란과의 2차전 전후로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한채 고민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피곤한듯 눈을 비비면서 형민이 물었다.
“어디까지 진행하고 있었지요?”
“토트넘의 예상 선발 명단이야.”
카롤리나가 옆에서 설명해주었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도 어지간히 머리가 아플 것 같은데?”
토트넘은 부상자 명단이 길다.
일단 공격진에서는 3톱의 핵심인 손흥민과 히샬리송, 그리고 백업 자원으로 쏠쏠히 활약하던 데얀 클루셉스키까지 동시에 부상으로 이탈.
해리 케인이 혼자서 공격진을 이끌어야 하는 가운데, 미드필드와 수비에서도 누수가 꽤 있다.
일단 수비진에서는 핵심 중앙 수비수인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종아리 부상으로 이탈.
미드필드에서는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가 무릎 부상으로 이탈.
그나마 미드필드에는 이브스 비수마와 로드리고 베탄쿠르가 있으니까 어느 정도 버틸만 한데, 공격진은 눈물겹다.
해리 케인을 중심으로 오른쪽 측면에는 루카스 모우라, 왼쪽 측면에는 브리안 힐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
그동안 쏠쏠히 활약을 해주었지만 이번 시즌부터 확연한 노쇠화와 함께 주전 경쟁에서 이탈한 노장 브라질 국적의 공격수가 한쪽.
반대쪽에는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에이바르에서 보여줬던 잠재력을 여전히 터뜨리지 못한채 만년 유망주 신세로 벤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새파란 스페인 국적의 공격수.
“뭐, 해리 케인도 힘들겠지만, 감독은 좀 좌절스럽겠는걸?”
태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옆에서 선수 현황을 듣고 있던 형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상대팀 전력이 약해지는건 좋지만, 부상이 많은건 같은 감독으로던 전직 선수로던 기쁜 일은 아니다.
“뭐, 상대팀 선발 라인업 예측이 쉬워졌다는건 긍정적으로 보자.”
다운된 형민의 분위기를 감지한 카롤리나가 말했다.
“알겠어. 그럼 수비진은?”
“뭐, 대안이 별로 없지. 에릭 다이어, 다빈손 산체스, 벤 데이비스, 자펫 탕강가 중에 3명.”
평소에 3백으로 경기에 나서는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특성도 있고, 어차피 토트넘은 중앙 수비수가 5명 밖에 없다.
“측면은 그나마 골치가 덜 아프겠네.”
형민의 중얼거림에 카롤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번 시즌에 라이언 세세뇽이랑 제드 스펜스 모두 기량이 일취월장했어. 아마 선발로 나오는게 거의 확실할거야.”
안토니오가 포메이션을 갑자기 회까닥 바꿔버리는 미친 짓을 하지 않는다면, 이라고 카롤리나가 뒤에 덧붙였다.
풀럼에서 불과 19살의 나이에 영입된 이후 임대와 벤치를 전전하면서 토트넘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라이언 세세뇽은 드디어 그 잠재력을 폭발하면서 천천히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던 이반 페리시치를 완전히 벤치로 몰아내고 왼쪽 윙백 자리를 굳혔다.
반대편에서는 첫 시즌에 감독의 외면과 함께 온갖 고생을 다 했던 제드 스펜스가 두번째 시즌부터는 노팅엄 포러스트 임대 시절에 보여주었던 안정적인 수비와 파괴적인 공격력을 선보이면서 드디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발탁이 거론되던 시절의 폼을 되찾았다.
갑자기 포메이션을 변형하지 않는 이상, 토트넘 입장에서 최상의 라인업이다.
“그러네. 뭐, 그럼···.”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이끄는 팀과의 주도권 다툼은 언제나 미드필드 싸움에서 결판난다.
그리고 번리는 미드필드 싸움에서 무조건 먹히는 조커 한 장을 들고 시작한다.
“…중앙에서 잘 막고, 양쪽 측면을 몰아치면 될거야.”
형민의 말에 작전판을 내려다보던 태진이 물었다.
“이번에 벤야민이 선발로 출전하는거지? 팀 셰슈코 애들이 아주 이를 갈고 있더라고.”
형민의 로테이션 정책에서 이상하게 팀 셰슈코에 속한 선수들은 로렌조 루카의 선발 경기에 많이 출전하고, 반대로 팀 로렌조에 속한 선수들은 벤야민 셰슈코의 선발 경기에 많이 출전한다.
덕분인지는 몰라도 4월의 절반을 넘어간 현재 시점에 둘 다 현재 29골로 동률이다.
한 시즌에 모든 대회를 통틀어서 각각 30여골을 넣어줄 수 있는 공격수를 둘이나 보유하고 있는건 감독으로서 아찔할 정도로 기분이 좋은 일이다.
약간 득점이 중앙 공격수에게 쏠리고 있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정작 그 중앙 공격수를 막아버리면 양쪽 측면에서 신나게 올라와서 골을 넣어버리니까 번리를 상대하는 팀들이 다 골치가 아프다.
“뭐, 선의의 경쟁은 나쁜게 아니니까. 애들도 잘 하고 있고.”
결국 보다 못한 형민이 새롭게 걸 수 있는 판돈에 제한을 걸었지만, 이미 이게 하나의 낙이 된 선수들은 금액이 아니라 재미의 문제로 돌입해서 큰 의미는 없었다.
이렇게 되면 경기에서 태업이 살짝 나올 법도 한데, 이상하게 경쟁이 번져서 오히려 상대쪽 공격수가 출전했을 때에 어시스트를 못 만들어주면 실력이 부족하다고 매도당하는 정신 패배를 경험하는 분위기.
거기에 사실 이기는 쪽이 거하게 식사를 쏜 다음에, 남은 금액은 기부하자고 말하겠다고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살짝 귀뜸을 해주기도 했고.
물론 니콜라스 세이왈드는 그런 발언 덕분에 감독의 눈에서 자신이 비열한 박쥐에서 다시 선량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바른 생활 사나이로 바뀌었다는건 모르겠지만.
“자, 그럼 계획을 한번 짜볼까?”
호기롭게 외친 형민은 나중에 이 날을 돌아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계획은 개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