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마지막 휴식
“어제 티비를 봤는데 말이에요.”
바르셀로나 전이 끝난 다음날 오후.
선수단에게는 회복훈련 이후 내일까지 휴식일이 부여되었다.
마침 아스톤 빌라를 상대하는 프리미어 리그 36라운드가 바르셀로나 전과 딱 1주일 간격으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사실상 이번 시즌의 마지막 휴식일.
이제 남은 경기는 최소 4경기, 최대 5경기.
프리미어 리그 순위는 1위와 3점 차이가 나는 2위.
유럽 챔피언스 리그는 4강전 2차전을 남겨둔 가운데 1대 3으로 열세.
뭔가를 더 해볼 수도 있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가운데, 휴식일을 부여받은 선수들은 좋아하면서도 마구 기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물론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면 바로 목이랑 몸통을 분리시켜주겠다는 표정으로 선수단을 노려보는 주장 니콜라스 세이왈드와 부주장 토마소 포베가의 모습이 휴식일에 대한 기쁨을 좀 반감시켰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잉글랜드 북서부의 4월 치고는 화창한 날씨를 맞아서 형민은 헬레나에게 이끌려서 번리 외곽의 숲에 산책을 나와 있었다.
“흠···?”
계속하라는 형민의 표정에 헬레나가 피식 웃었다.
“저는 막 사람들 많은데서 프로포즈를 하는 그런 남자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아··· 사람들 많은거요?”
어리둥절한 형민의 표정에 헬레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설명을 계속했다.
“그러니까 막 경기장에서 하프타임을 이용해서 프로포즈를 한다거나, 사람들 잔뜩 있는 타임스퀘어 한복판에서 프로포즈를 하거나··· 뭐랄까, 너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잖아요.”
프로포즈 같은건 소중한 사람들에게만 공유해야 하는 소중한 순간인데.
“저는 그런 프로포즈를 받으면 참 싫을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던 형민이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형민?”
“아, 아니에요. 갑자기 급하게 보내야 하는 문자가 생각나서.”
갑자기 온 몸을 뒤져서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찾은 형민이 급하게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휴우···.”
문자를 다 보낸 형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다른건 없나요?”
“다른거요?”
“아, 그러니까···.”
형민은 필사적으로 생각을 굴리다가 탈출구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어제 본 그 티비 프로그램이요! 거기서 나온 프로포즈 중에서 마음에 안 든게 있는지 궁금해서요!”
“아하. 그러니까, 티비 프로그램에서 나온 것 중에 제 마음에 안 든거요?”
금색빛의 눈썹을 하나만 치켜올리면서 묻는 헬레나의 질문에 형민은 어색하게 웃었다.
“어, 뭐 마음에 든걸 얘기해도···.”
“뭐, 그렇다면···.”
다시 형민의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기 시작한 헬레나가 말하기 시작했다.
“음악이 나오는건 좋지만, 너무 요란한건 싫지 않아요?”
“…밴드는 좋고, 요란한 음악은 싫다···.”
형민이 중얼거리면서 문자를 다시 보내기 시작했다.
“장소는 뭔가 의미가 있는 곳이면 좋을 것 같아요.”
“…장소는 의미가 있는 곳···.”
“그렇다고 해서 막 뭐 이상한데를 가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냥, 좋은 곳.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곳.”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곳. 이상할 필요 없음···.”
형민이 중얼거리면서 계속 문자를 보냈다.
“형민?”
“네?”
헬레나가 형민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지금 전화가 오고 있는데, 안 받아도 되냐요?”
“아, 태진이네요. 별로 중요한거 아닐겁니다.”
가볍게 통화 거절을 누른 형민이 헬레나를 향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면 헬레나는 반지도 특별히 취양이 있나요?”
형민의 질문에 헬레나가 급정지하는 동시에 급속도로 차가워진 헬레나의 시선이 형민의 얼굴에 와서 꽂혔다.
“반지요? 반지는 남자가 알아서 구해와야 하는거 아닌가요?”
갑자기 주변 온도를 3-4도 정도는 끌어어내리는 냉기에 형민은 당황했다.
“어··· 어···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1.3캐럿짜리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이랑 1.5캐럿짜리 쿠션 컷 사이에서 어떤게 더 마음에 들 것 같냐는거지요!”
“흠···.”
헬레나는 갸웃거리면서 형민의 얼굴에 박힌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질문이 정말 구체적이네요. 형민이 반지 같은거에도 관심이 있는지 몰랐네요.”
“아··· 어··· 그러니까, 선수들이 물어봐서요.”
“선수들이요? 선수들 중에 누가 프로포즈를 하나요?”
다급해진 형민이 머릿속에서 선수단의 목록을 한바퀴 돌렸다.
포지션별로 공격수부터··· 여기는 다 나가리다.
미드필더는 싱글 아니면 아예 기혼자.
수비수 중에는···.
“아, 오스카! 오스카가 여자친구한테 프로포즈 한다고!”
“오스카요? 오스카는 여자친구랑 헤어진거 아닌가요?”
헬레나의 질문에 형민이 식은땀을 흘렸다.
“어··· 재결합··· 할거라고?”
“흠···.”
헬레나가 천천히 턱을 쓰다듬었다.
고양이 앞에서 처분을 기다리는 생쥐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 형민을 바라보던 헬레나는 마침내 마음을 결정한듯, 다시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반지 크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굳이 고르라고 하면 브릴리언트 컷이 더 예쁘지 않나요?”
“…브릴리언트 컷···.”
형민이 중얼거리면서 휴대폰을 두드렸다.
“형민? 괜찮아요? 계속 전화가 오는 것 같은데?”
“아, 쓸데 없는 사람한테서 오는 전화입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래서, 반지 재질은 플라티넘이 좋나요, 아니면···.”
“저는 백금이 제일 예쁜 것 같아요.”
“…반지는 백금···.”
열심히 중얼거리면서 문자를 보내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헬레나는 피식 웃었다.
“형민, 계속 휴대폰이 울리는데요?”
“그냥 무시하세요. 저도 무시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다음은?”
***
형민 김의 휴대폰 문자 이력:
형민: […사람 많은 곳 싫음.]
형민: […장소는 의미가 있는 곳.]
그자식: […야, 이게 뭔소리야?]
형민: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곳. 이상할 필요 없음]
그자식: […뭔소리냐고?]
그자식: 부재중 전화 1통.
그자식: […야, 안 받냐?! 뭔 짓 하고 있는거야?!]
그자식: 부재중 전화 2통.
그자식: 부재중 전화 3통.
형민: […브릴리언트 컷]
그자식: 부재중 전화 4통.
그자식: […이 자식이 휴일에 미쳤나?! 너 내일 두고 보자!]
형민: […반지는 백금.]
그자식: 부재중 전화 5통.
형민: […반지는 얇은 테. 다이아는 너무 드러나지 않게.]
그자식: […그만 보내!!!]
***
“그래서?! 엉?! 여자친구님이 반지 디자인부터 프로포즈 내용까지 다 조건을 짜주셨다는 말이지? 근데 그걸 왜 휴일에 나한테 문자로 보내고 X랄이야?!”
“적을 곳이··· 켁··· 마땅치··· 켁··· 이것 좀··· 숨이···.”
퍼스트팀 회의실.
열심히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있지만 절대로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는 코치의 두터운 팔뚝에 목이 졸려지고 있는 감독의 모습을 팔짱을 낀 중년의 포르투갈 유부남이 한심스럽다는듯이 바라보았다.
“에잉, 쯧쯧. 준비하던거 다 들통나고. 자네는 정말 로맨틱이라는건 1도 없구만!”
“아니··· 정보 수집··· 켁··· 야, 이 팔 좀···.”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에 경기장만 벗어나면 하등 쓸모없어지는 감독과, 젊은 나이에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번리 구단의 임직원들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 축구 구단들의 재무 담당자들로부터 여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대표이사 사이에서 누가 더 노련하다고 물으면 당연히 대표이사를 선택하겠지만.
“뭐, 잘 된거지요. 어차피 헬레나도 취향이 뚜렷하니까.”
옆에서 세 남자의 실없는 짓거리를 바라보던 카롤리나가 말했다.
“물론 남자 취향은 잘 납득이 안 되기는 하지만.”
남자 셋 중 유부남인 두 명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는 가운데, 간신히 교살의 위기에서 벗어난 젊은 감독에 테이블 위에 엎드린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그래서 아스톤 빌라는···.”
“아, 아스톤 빌라 같은건 몰라.”
카롤리나가 하찮다는듯 한 손을 저어서 아스톤 빌라에 대한 우려를 날려버렸다.
그딴건 애들이 알아서 씹어먹겠지.
“지금 중요한건 캄프 누에서 벌어진 2차전이야.”
“캄프 누라···.”
태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때? 너는 스페인에서 뛸 때에 몇번 가봤을거 아니야?”
“흠···.”
카롤리나의 질문에 태진이 기억을 떠오리려는듯 잠시 침묵했다.
“뭐··· 더럽지.”
“…응?”
예상하지 못한 말에 형민이 눈을 깜빡이는 가운데, 태진이 부연설명했다.
“원정팀에게는 한없이 거칠고 비난하는데, 맹목적으로 자신의 팀을 추종하는 인간들 수만 명이 9만석짜리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90분 동안 편파적으로 선수들의 모든 행동과 심판의 모든 판정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지.”
물론 홈팀도 크게 삽질하면 비난당하기는 한다.
하지만 원정팀은 그냥 무조건 비난당한다.
원정팀 입장에서는 정말 짜증나는 경기장.
태진의 말을 이해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이번 시즌 프리메라 리가 부동의 1위 팀을 상대해야 하는거네.”
이미 바르셀로나의 저력은 1차전에서 충분히 확인했다.
전술적인 완성도도 현재로서는 번리보다 높고, 선수들의 실력도 더 높은만큼 다양한 전술적인 시도가 가능하다.
“그건 조금 부럽기는 하네.”
지난번에 바르셀로나의 사비 에르난데스 감독이 들고 나오는 쌍수레바퀴 전술을 분석하던 형민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기본적으로 사전에 연습하지 못한 새로운 전술을 선수들이 바로 구현할 수 있다는건 대단한거다.
더욱이 2개의 지역으로 나눠서 펼친 전술이 서로 큰 문제 없이 맞붙어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뭐, 우리도 나쁘지는 않았어.”
대거 교체투입과 함께 전술 변화가 일어났던 후반전 막판을 분석하던 카롤리나가 말했다.
“로렌조랑 벤야민이 기회를 잘 포착했고, 토마소가 애들을 잘 조율해서 만회골을 넣은건 좋았지만, 사실 그런 기회가 2차전에도 나올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는건 무리가 아닐까?”
형민의 지적에 카롤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건 애들이 기회를 포착하고,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움직임을 알아서 가져갈 수 있었다는거지. 그 다음부터는 뭐···.”
90분 동안 쉬지 않고 움직이는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경기가 시작된 다음에 감독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다.
물론 교체 투입이나 전술 변화를 가져갈 수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경기가 시작된 다음에는 누적된 훈련과 선수 개개인의 판단이 결합되면서 가변적으로 진행되는게 축구 경기.
“자, 그러면 이제 우리한테 주어진 2주 간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문제가 남은거네.”
태진의 말에, 나머지 코치들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형민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어?”
“뭐, 기발한 생각이라도 있는거야?”
코치들의 희망 섞인 표정에 형민이 씁쓸하면서도 자신 있게 미소를 지었다.
“그냥 우리가 제일 잘하는걸 연습하면 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