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그녀의 손가락 위에 별
64년 만에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면 팬은 어떻게 할까?
아마 광란의 축제를 벌이겠지.
그런데 그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서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까지 진출했다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광란의 축제를 계속 이어가지 않을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확정한 시점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사이에 남은 2주간.
시체 빼면 번리 팬 밖에 없다는 번리의 상황이 딱 그랬다.
우승 축하 퍼레이드를 열자는 요청은 눈 앞에 있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이후로 미루고 싶다는 번리 풋볼 클럽의 정중한 사양 덕분에 열리지 않았지만, 번리 읍내에 있는 모든 가게는 문 앞에 우승 축하 기념 배너를 걸었다.
그리고 번리 읍내에 있는 모든 술집은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매일 밤마다 기쁨이 넘쳐흐르는 취객들을 모셨다.
“마셔라!!”
“우오오오!!!”
“우리는~!!”
“챔피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더 라이블 볼런티어 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번리 공식 서포터들의 비공석적인 본부 역할을 수행하는 펍은 매일 밤마다 열렬한 응원가와 함께 차가운 금빛 액체로 기쁨을 자축하는 인파로 북적였다.
“자, 한 잔 더 비워!!”
“우오오오!!!”
외치는 사람도, 화답하는 사람들도 다 자기 돈을 내고 술을 먹는거지만 어쨌든 기쁘다.
64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 우승컵이 번리로 돌아왔으니.
아니, 심지어 그 시절에는 프리미어 리그라고 불리지도 않았다.
기쁨을 자축하는 헨리 스마이스와 밋치 타일러, 그리고 헨리 타일러는 서로 잔을 높이 들어올린 다음에 힘차게 부딪쳤다.
각각 번리 공식 서포터의 회장, 부회장, 그리고 부회장 겸 서기 겸 회계 겸 기수 겸 고수.
그러니까, 북 치고 장구 치고 깃발까지 혼자서 휘두르는 거구의 청년이 잔을 비우는 회장을 말렸다.
“대부님, 이제 그만 마셔야 테레사 숙모한테 안 혼나요!”
“아, 내가 알바 아니야!!”
헨리 타일러의 제지를 뿌리친 헨미 스마이스가 외쳤다.
“어떻게 이런 날에 술을 안 마시고 배기겠어!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오오오!!!”
사실은 술집의 북적거림 속에서 회장이 뭐라고 외치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고, 들렸다고 해도 취해서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었겠지만, ‘더 라이블 볼런티어 인’에 모인 인파는 일제히 잔을 들어올리면서 화답했다.
“음···.”
다시 한번 비워지는 대부의 잔을 보고, 옆에서 같이 비워지는 아버지의 잔을 보면서 헨리 타일러는 자신의 거대한 손에 쥐어진 맥주잔을 내려다보았다.
나야 괜찮지만 두 분은 각자의 집에서 쫓겨날 것 같은데?
차라리 여기에서 재울까?
주변을 둘러보면서 적당한 벤치나 구석을 확인하는 헨리 타일러의 시선도 모른채, 두 중년 남자는 또 채워진 잔을 힘차게 맞부딪쳤다.
“가자, 웸블리로!!”
“웸블리!!!”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우승!!!”
***
벌써 며칠째 왁자지껄한 번리 읍내와는 달리, 번리 제너럴 병원의 병실에서는 상대적으로 고요함이 감돌고 있었다.
“…래서 내가 말했지. 저 상황에서는 로렌조 루카를 투입하는게··· 이봐 형민, 자네 듣고 있나?”
“네, 아서. 잘 듣고 있어요.”
이 병실, 와본 적이 있다.
아마 아서가 처음 쓰러졌을 때에 내어줬던 것 같은 병실.
아니면 병실의 구조와 인테리어가 다 똑같아서 그런 느낌이 드는걸지도 모른다.
2년 전과 거의 유사한 상황 속에서 병실에 마련된 의자에 앉은 형민은 팔에 링겔을 꽂은채 의기양양하게 얘기하는 노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니, 아서. 도대체 술을 얼마나 먹은거에요?! 또 병원에 실려오고! 클라리사도 깜짝 놀랐잖아요!”
형민 옆에 앉은 헬레나의 핀잔에 병실 침대 반대편에 앉은 클라리사 브롬로우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눈을 천장으로 들어서 성호를 긋는 시늉을 했다.
“아니, 난 정말 몇 잔 안 했다고! 그냥 그 뭐냐··· 기뻐서, 그러니까 흥분되어서 좀 몸이 놀란 것 뿐이야.”
헬레나의 매서운 눈빛에 찔끔한 아서가 애써 변명했다.
번리 풋볼 클럽에서 유일하게 아서 브림로우가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세상 예쁘게 생긴 번리의 젊은 대표이사 헬레나 카트라이트였다.
딸뻘의 대표이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를 표하던 클라리사 브림로우가 마침내 입을 열어서 남편을 본격적으로 고발했다.
“내가 말이야, 이 인간이 숨겨놓은 술병을 몇개나 발견했는지···!”
클라리사 브림로우의 말에 형민과 헬레나가 동시에 눈썹을 찌푸렸다.
“술병을···?!”
이건 형민이고.
“…숨겨요?!!”
이건 헬레나.
왠지 저 말 뒤에 ‘감히’라는 말이 추가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번리 풋볼 클럽의 전직 수석코치 아서 브림로우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정말 약주용··· 아니 선물용이라고!”
“아서가 다른 사람한테 술을 준다고요?”
다른 사람한테서 술을 뺏는게 아니라?
변명이 하찮다는 표정을 짓는 헬레나 카트라이트의 냉랭한 표정에 아서가 급속도로 메마르는 목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게···.”
“뭐, 어쩔 수 없네요.”
한참이나 더 노려볼줄 알았더니 의외로 빨리 저 냉기 광선을 꺼주는 대표이사의 모습에 아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싶었다.
아니, 이어지는 말만 없었어도 정말 대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텐데···.
“…입원했으니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티켓은 이제 필요 없겠지요? 특별히 이사 박스석으로 구했는데.”
“…?!!”
몇 초 후.
번리 제네럴 병원을 꿰뚫는 노인의 비명소리와 애원에 의료진이 달려왔다.
***
피도 눈물도 없는 대표이사의 협박에 노인은 눈물의 고해성사와 함께 숨겨진 술병의 위치를 더 실토했고, 분노한 클라리사 브림로우가 맨손으로 남편의 목을 조르는 사태를 인질범과 마주한 협상전문가의 심정으로 막아낸 형민과 헬레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마침내 병실을 나설 수 있었다.
작은 병원의 문을 나서자 이미 어둠이 조금씩 깔리기 시작한 번리의 시내와 그 저편으로 웅장한 앤드릴스 무어의 모습이 보였다.
“음··· 그래도 아서가···.”
“…활기가 넘쳐서 좋다고 말하려고 했지요?”
자신의 말을 가로채는 헬레나의 말에 형민이 피식 웃었다.
“그래요. 활기가 넘치니까 좋네요.”
아서가 수석코치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종종 찾아갔지만, 매일 같이 함께 일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적은 시간이기는 하다.
물론 아서와 너무 오래 같이 있으면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건 다들 똑같기는 하지만.
“그런데 박스석이라면 괜찮아요? 이안도 온다고 했잖아요?”
“아버지가 오니까 박스석에 앉히는거에요.”
헬레나가 씩 미소를 지었다.
“한쪽에 이안 카트라이트 2세. 다른쪽에 레알 마드리드의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이 앉아 있는데 아서가 어떻게 할지 너무 궁금해요.”
교활한 장난을 친 악동 같은 미소를 짓는 헬레나의 모습에 형민이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도 그런 짓을 할건가요?”
“그런 짓? 무슨 짓이요?”
딴청을 피우면서 전혀 모른척하는 헬레나의 모습에 형민이 손을 뻗어서 뺨을 살짝 꼬집었다.
“이렇게 뒤에서 농간을 피우는 짓!”
“음··· 당쉰이 하뉜걸 봐숴요···.”
입가로 새어나오는 바람소리에 두 사람은 잠시 킬킬대다가, 손을 마주 잡고 병원을 나섰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두 사람을 발견하자 친절하게 인사를 건내고, 두 사람은 미소와 함께 그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번리 읍내에서 생긴 암묵적인 합의.
형민 김 감독이 헬레나 카트라이트 대표와 데이트를 할 때에는 건드리지 않는다!
아이들이나 팬들이 다가와서 악수를 청하거나 인사를 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길이 봉쇄될 만큼 인파가 몰리지는 않았다.
물론 인사를 하는 팬들도 너무 말이 길어진다 싶으면 옆에서 쏘아지는 차갑고 살떨리는 누군가의 시퍼런 시선에 왠지 빠르게 용건을 마무리하고 가게 된다는 부분도 작용하기는 했지만.
정처없이 걷던 가운데 형민이 갑자기 헬레나의 손을 잡아 끌었다.
“우리, 저쪽으로 가볼까요?”
“아, 저기? 좋아요.”
번리 읍내에서 빠져나가는 샛길을 지나자 번리 뒤에 위치한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는 산책로가 나타났다.
서로를 마주 보면서 미소를 지은 두 사람은 천천히 그 산책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벌써 1년 가까이 지난 옛날.
한창 건설 중이던 앤드릴스 무어를 내려다보던 곳.
한참 걷던 형민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신기하네요.”
형민의 말에 헬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요?”
“그때는 그렇게 5연패의 좌절과 무게에 짓눌려 있었는데.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근데 지금은요?”
형민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잘 가꾸어진 나무들과 오솔길, 그리고 조금씩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앤드릴스 무어의 아름다운 모습.
“그때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니, 선명하게 기억이 나기는 하는데··· 그 당시의 감정들은 마치 꿈에서 꾼 것처럼 희미하네요.”
헬레나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두 사람이 언덕 꼭대기까지 오르면서 눈 앞에 펼쳐지는 번리 읍내와 앤드릴스 무어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커다란 파도에 휘감기는듯한 완만한 곡선의 외부와, 지금은 불빛이 꺼져있지만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환하게 켜지는 경기장을 덮고 있는 반개방식 지붕.
광산업과 함께 번리를 상징했던 면직물을 상징하는 새하얀 지붕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여기에 올라오면 좋네요.”
“그러게요.”
형민이 헬레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여기가 번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인데, 형민은 어때요?”
헬레나의 질문에 형민은 저 멀리 앤드릴스 무어를 바라보았다.
“저는 가끔씩 이게 꿈일까봐 무서워요.”
의외의 말에 헬레나는 옆에 선 조용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앤드릴스 무어를 바라보던 형민이 중얼거렸다.
“꿈에서 깨면 아직 대학병원에서 재활 중일지도. 아니면 영국 시골의 좁은 자취방에서 내일 수업을 준비하다가 잠이 든걸지도. 그것도 아니면 잘츠부르크에서 유소년들의 성장 계획을 짜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지난 3년 동안 너무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명의 젊은 동양인 청년이 축구계에서 명성을 떨치는 명장으로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
펩 과르디올라나 위르겐 클록 같은 명장들이 칭찬하고, 언론에서 그의 이름을 주문처럼 외우며 평론가들이 형민 김은 감히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그는 수줍고 조용하고 온화한 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게 꿈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건 다 하는게 맞을 것 같아요.”
기대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헬레나가 한 손으로 떨리는 가슴을 누르고 있는 가운데, 그녀 앞에서 남자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는 주머니 속에서 작은 검정색 상자를 꺼내서 열었다.
“번리에 와서 일어난 모든 일이 멋지고 아름다웠지만, 가장 멋지고 아름다웠던 것은 당신을 만날 수 있었던거에요.”
상자 안에는 1년 전 그날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밤하늘에서 본 별처럼 반짝이는 보석이 그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해고 당할거라고 생각하고 불려간 신임 대표이사와의 면담자리에서 제안받은 임시 감독직.
한 경기만, 이라는 조건을 달고 시작됐던 두 사람의 여정이 새로운 분기점에 도착했다.
“나랑 결혼해줄래요?”
숨을 죽은채 형민의 말을 듣고 있던 헬레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면서도 차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후아···.”
짤막한 안도의 한숨을 내쉰 형민이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반지를 상자에서 꺼내서 헬레나의 손가락이 끼워주었다.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지는 정확한 크기의 반지를 확인한 헬레나는 다시 한번 환하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형민을 힘껏 껴안았다.
“고마워요. 모든게 다···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