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3)
3화: 끝과 시작
한참이나 침울해진 형민을 어르고 달랜 아서는, 간신히 이성을 회복한 젊은 초짜 감독(임시)을 다독거리면서 개막전 준비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해야 하는건 라커룸을 설득하는거야.”
“그건 그렇지요.”
“어차피 임시 감독이니까, 일단 리더들부터 설득해서 몇 경기만 지휘에 응해달라고 하면 그 친구들이 알아서 라커룸을 정리해줄꺼야.”
“지금 퍼스트팀 라커룸의 리더라면 누굴까요?”
“흠···지금 퍼스트팀이라면 벤 미, 잭 코크, 그리고 제이 로드리게즈 정도가 입김이 좀 먹힐거야.”
각각 퍼스트팀의 주전 수비수이자 주장과, 주전 미드필더이자 부주장, 그리고 번리 유스팀 출신으로 몇년 전에 복귀해서 공격진을 이끌고 있는 베테랑 공격수를 떠올린 형민은 다시 암울해졌다.
“그 친구들이 제가 부른다고 올까요?”
“자네는 모르겠고. 내가 부른다면 올거야. 아마도?”
“….”
선이 굵고 직선적인 축구를 구사하던 션 다이쉬가 지휘하던 번리의 핵심 멤버들답게, 감독실에 모인 세 선수 모두 키 180센티가 넘는 단단한 체구의 소유자들이었다.
넓직넓직한 어깨들이 세 명이나 나란히 앉자 감독실 소파가 터져나갈 것처럼 가득 채워지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형민은 아서와 함께 반대편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불러서 왔지만 대체 왜 불렀는지 잘 모르겠다, 라고 공통의 표정을 떠올린채 그를 바라보는 세 선수를 마주보면서 형민이 어렵게 입술을 떼었다.
“어, 저는 지난달에 새로 유스팀 감독으로 부임한 김입니다. 아니, 제가 누군지는 그렇게까지 중요한건 아니고요. 새로 감독이 부임할 때까지 제가 임시로 퍼스트팀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서요. 그래서 여러분의 도움을 좀 요청드려고요.”
다행히 프로의식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해서 엄격하게 선수들을 선별한 이전 감독 덕분에 형민 앞에 앉은 세 명 모두 비웃거나 폭소를 터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셋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짓는건 대동소이했다.
“당신이 퍼스트팀을 지휘한다고?”
주장인 벤 미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말하자, 형민은 애써 움추려드려는 어깨를 다잡으면서 대답했다.
“지금 션도 사임했고, 리저브팀 감독인 마이크도 션을 따라갔으니까요. 구단에서도 임시방편으로 저한테 맡긴 것 같아요. 지금 구단에서 UEFA 프로 라이선스를 가진게 저 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아마 조만간? 곧? 정식 감독이 부임할테니, 그때까지만 제 지휘를 받아주시면 되지···않을까요?”
말 끝을 흐리는 형민을 바라보는 세 선수의 표정이 안 좋아지려는 순간,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서가 난입했다.
“이넘들아! 김이 임시로 니네들을 몇 경기 지휘하겠다는게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아?! 너네들 중에 UEFA 프로 라이선스 가지고 있는 넘이 있어? 아니면 니네가 지휘해볼래?!”
번리로 이적한지 10년이 넘어서, 선수 생활 초창기에 리저브팀에서 아서 밑에서 굴렀던 주장 벤 미.
역시 선수 생활 초기에 번리에서 임대 생활을 하면서 리저브팀에서 아서의 지휘를 받았던 부주장 잭 코크.
그리고 아예 번리 유스팀 출신으로 코흘리개 유소년 시절부터 아서한테 지도를 받았던 제이 로드리게즈.
번리 풋볼 클럽과 인연이 깊은 세 선수 모두 꼬장꼬장한 영국 시골 할아범 앞에서 서둘러서 표정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이야, 어! 니네들이 똥오줌을 가리지도 못한 시절부터···.”
“아니, 그건 아니지요. 아서도···.”
“아서? 아서?! 내가 니놈들 친구냐?!”
“아니 그게 아니라···아서 코치님, 아니 브림로우 감독님!”
“그래, 션이 그동안 오냐오냐 해주니까 니네가 위아래도 없다 이거지? 잘 됐다, 내가 니넘들 오늘 제대로 교육시켜주마!!”
자신보다 덩치는 두배나 더 클 것 같은 세 명의 프로 축구선수를 화려한 언변과 꼬장으로 갈구기 시작하는 할아범을 보면서, 형민은 영국 꼰대도 한국 꼰대랑 별로 다를바가 없다는 인류 꼰대 공통론의 진실을 새삼 다시 깨닫기 시작했다.
아서의 사자후를 30분 넘게 듣고 나서, 정신이 탈탈 털린 세 선수와 형민(왠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수들과 함께 정신교육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은 애써 정신을 추스리면서 드디어 본 목적인 다음 경기 준비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개막전은 에버튼인데요. 저는 4-3-3 포메이션으로 접근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형민의 말에 부주장인 잭 코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질문했다.
“굳이 지금 포메이션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우리 모두 4-4-2에 익숙하고···어 음···감독이 새로 부임하면 다시 전술이 변화할 수도 있을텐데 더 혼란스럽지 않을까?”
슬쩍 눈치를 살폈지만, 형민을 대체할 감독이 부임한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에 딱히 반응하지 않는 아서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잭 코크는 이어지는 형민의 설명에 딱딱하게 굳었다.
“이미 션의 4-4-2 방식은 프리미어 리그의 모든 상대팀들에게 너무 간파되어 있어요. 그렇게 밀고 나가는건 한계에 다다랐다고 봐야 해요.”
“우리는 그동안 그 방식으로 4시즌이나 프리미어 리그에서 살아남았다고.”
주장인 벤 미의 반론에 형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렇지만, 프리미어 리그 자체도 변화하고 있어요. 우리가 옛날 방식을 고집해도 우리 상대팀들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를 아예 쫓아가지 않을 수는 없어요. 자, 여기 보세요. 이건 지난 4시즌 동안 프리미어 리그 팀들의 공격에 대해서 정리한 자료에요.”
어디선가 자료를 꺼낸 형민은, 아서와 나머지 세 선수에게 그 자료를 나눠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이 차트를 보시면 전반적으로 경기당 패스의 숫자가 올라갈 뿐만 아니라, 공을 뺐기지 않고 이어지는 패스의 시퀀스 숫자들도 올라가고 있어요. 점점 더 팀들이 공을 내주지 않은채 짧게 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경기를 풀어가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얘기죠.”
리포트 앞장에는 오른쪽 위를 향해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올라가는 차트가 그려져 있었다.
“이건 저희처럼 후방에 깊게 내려앉은 팀들을 상대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이 개선되고 있다는 얘기에요.”
“그건 단단하게 수비를 하면 해결될 수 있는거 아니야?”
벤 미의 지적에 형민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전에는 단단히 지키고 있으면 섣불리 공격을 시도하다가 차단되고, 그걸 저희가 공격수인 크리스 우드나 애슐리 반즈한테 길게 보내면서 마무리하는 방식이 먹혔어요. 하지만 보세요. 바로 이전 시즌만 해도,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코너에 몰려서 우리가 두들겨 맞았어요.”
형민이 자료를 한장 넘기자, 홀린듯이 듣고 있던 나머지 네 사람도 따라서 한장 넘겼다.
“여기 보면 상대팀의 점유율, 절대적인 패스의 숫자, 패스의 시퀀스, 그리고 슈팅수까지 압도적인 차이가 발생하고 더 벌어지고 있어요. 상대편이 공을 점점 더 오래 소유하고 있고, 그걸 슈팅까지로 이어간다는 말이에요. 거기서 슈팅이 막히더라도 상대는 다시 정비할 시간을 벌기 때문에, 역습의 기회도 적어져요. 그리고 다시 공을 상대가 가져가서 슈팅을 날리면 이건 확률 싸움이 되어버린다고요. 이 정도로 슈팅을 두들겨 맞으면 아무리 단단히 수비해도 뚫릴 수 밖에 없어요. 자, 여기 다음 차트를 참고하시면···.”
멍하게 형민의 설명을 듣고 있던 세 명의 선수들은 형민을 한번 바라보고, 옆에서 같이 멍하게 설명을 경청하는 아서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 마침내 깨달았다.
아, 저 꼬장꼬장한 할아범 뿐만 아니라 이 젊은 친구도 입을 열기 시작하면 끝나지 않는 헬게이트가 열리는구나.
살짝 몽롱해진 표정으로, 하지만 뭔가 납득한듯 세 선수들이 라커룸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도망치듯이 떠난 후 번리 풋볼 클럽 퍼스트팀의 감독(임시)과 유일한 스태프(임시, 곧 정년퇴직 예정)는 상대팀 분석을 위한 전술 회의를 시작했다.
“도니 반 더 비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인 도니 반 더 비크가 왜 에버튼에서 나와요?!”
“나도 모르지. 아마 솔샤르 감독이 임대를 허락한 모양이야.”
“어, 어쩌지? 도니 반 더 비크는 경우의 수에 없었는데?!”
션 다이쉬의 감독실(아직도 형민의 머릿속에는 션 다이쉬의 감독실이었다)을 차마 쓸 수 없어서 퍼스트팀 스태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던 회의실에서 단 둘이 개막전 전술을 짜던 와중에 에버턴의 퍼스트팀 소속 선수 명단을 확인한 형민이 탄식하고 있었다.
“으아! 공격수로 도미닉 칼버트-르윈이 있는데 그 밑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도니 반 더 비크가 붙는다고? 이걸 어떻게 막지?”
“어떻게 막긴. 그냥 잘 막는거지.”
아서가 능청스럽게 옆에서 말하자, 형민이 그를 노려보았다.
“라파 베니테즈가 공격형 미드필더를 어떻게 쓰는지는 리버풀에서 제-토 라인으로 실컷 봤잖아요!”
“…제-토 라인?”
“아 왜···그, 제라드랑 토레스요! 하여튼, 칼버트-르윈이 공격수로 앞에 서고, 그가 만들어주는 틈새를 윙어들이랑 공격형 미드필더가 공략하겠지요. 반 더 비크라면 패스도 훌륭한데, 수비를 끌어내서 공을 배급할 수도 있을거고 아니면 치고 들어가서 직접 마무리도 가능할거고···.”
형민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노트북에서 자료를 뒤졌다.
곧 회의실의 대형 스크린이 켜지고, 아약스 시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의 자료는 의미가 없다고 형민이 가차없이 제꼈다)에 축구 강국 네덜란드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로 손꼽히던 도니 반 더 비크의 모습이 스크린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4-3-3 포메이션의 전방 압박을 우리가 수행할 수 있을까? 지난 8년 동안 션 밑에서 롱볼 중심의 수비축구를 해온 애들이라고.”
아서의 걱정스러운 중얼거림에, 도니 반 더 비크의 비디오를 천천히 재생하면서 분석하던 형민이 자료에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계속 훈련을 통해서 바꿔봐야지요. 일단은 움직임들을 최대한 단순화해서 훈련을 시키고, 천천히 복잡도를 올려가야 해요.”
“그게 가능할까? 5일 밖에 없는데?”
“뭐···해봐야지요. 어차피 이번 개막전만 치루면 새로 감독이 올 테니까, 그 이후는 제가 알 바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네.”
***
“잠은 잤어?”
개막전 날, 아침에 출근한 형민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서가 물었다.
형민은 힘 없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잘못 먹었나봐요. 잠도 하나도 못 자고, 밤새도록 토했어요.”
“잘못 먹기는. 나랑 같이 저녁 먹었는데 나는 멀쩡했다고.”
“그럼 대체 뭘 잘못 먹은걸까요?”
“뭐긴 뭐야. 긴장한거지.”
의아해하는 형민의 표정에, 아서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말했다.
“자네, 아마추어나 세미프로 정도는 몰라도 프로 레벨에서는 퍼스트팀은 커녕 리저브팀도 온전히 지휘를 해본 적이 없지? 기껏해야 잘츠부르크에서 유스팀 감독 대행으로 몇 경기 지휘를 해봤을거잖아?”
“어, 그건 그런데요···.”
“그런데 꼬맹이들도 아니고 성인 프로 선수들을 데리고 갑자기 세계 최상위 리그인 프리미어 리그에서 경기를 지휘하라고 하는데 제정신인게 이상한거야. 경험이 많은 노장들도 압박감이 큰 경기 전날에는 잠을 잘 못 자는데, 자네 같은 풋내기야 그게 당연한거지.”
“그런건가요?”
“그런거야! 그러니까 어깨 펴고, 어차피 질거 가서 시원하게 져버리라고!”
호탕하게 웃는 아서에게 형민이 신경질을 냈다.
“아, 안 진다니까요!”
“난 몰라. 모른다니까.”
변기통을 붙잡고 밤을 꼴딱 새지만 않았어도 도망치는 저 영감탱이를 쫓아갈 수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형민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서 회의실로 향했다.
오후 경기를 위해서 선수들이 도착하기 전.
마지막으로 전술을 검토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