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34)
34화: 고통과 인내의 시간
왜 즐거운 시간에 대한 기억은 짧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대한 기억들만 생생하게 남을까?
스스로에게 자문하던 형민은 질문을 바꿔보았다.
강팀에게 우위를 점하고도 어처구니 없이 지는게 더 고통스러운가, 아니면 약팀에게 질질 끌려가는 무승부가 더 고통스러울까?
“으아아아!”
후반 82분, 눈 앞에서 동점골을 내어준 자신의 팀을 바라보면서 형민이 머리를 감싸쥐면서 고통에 가득찬 비명을 질렀다.
바로 옆에서 수석코치 아서와 벤치에 앉은 모든 선수들이 비슷한 좌절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행운의 여신이 따귀를 갈긴 것 같은 얼얼함을 선사한 아스널전 이후.
프리미어 리그 13라운드에서 기세좋게 크리스털 팰리스의 홈구장으로 쳐들어가서 3대 1 승리를 거둔 기쁨도 잠시.
바로 이어진 14라운드에서는 홈으로 불러들인 레스터에서 1대 0으로 패하지 않나.
이제 15라운드에서는 3승 4무 7패를 기록하면서 예상보다는 높은 14위를 기록하고 있는 강등 후보 2순위 노리치 시티 풋볼 클럽을 상대로 번리는 2대 2로 무승부를 눈 앞에 바라보고 있었다.
***
대략 100분 전.
노리치의 홈구장 캐로우 로드에는 약하게 부슬비가 내린다.
보통 눈, 비, 바람이 모두 조합되는 12월의 영국 날씨치고는 온화한 편.
지난 몇 시즌 동안 연달아서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쉽을 오가면서 속칭 ‘요요 클럽’의 반열에 합류했었던 노리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스톤 빌라의 감독이었던 딘 스미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딘 스미스 감독은 이번 시즌에 영국 축구계를 당황시킨 ‘감독 핀볼’의 주인공.
지난 11월 7일, 5연패를 기록하면서 성적 부진에 진노한 아스톤 빌라의 공동 구단주 나세프 사비리스와 웨스 에덴스가 결국 감독을 해임했다.
그랬더니 바로 전날, 역시 성적 부진으로 기존 감독인 다니엘 파크를 해임한 노리치가 올타커니 하고 실직자가 된 딘 스미스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한 것이었다.
딘 스미스 감독은 해임당하면서 위약금을 다 받고.
노리치는 보상금을 1푼도 지급하지 않고 탐내던 다른 팀의 감독을 데려오고.
거기에 더해서 딘 스미스 감독은 불과 1주일 만에 재취업에 성공했다.
전임 노리치 감독인 다니엘 파크만 슬픈 1패를 기록한 가운데, 딘 스미스 감독이 노리치의 지휘를 맡은지 대략 한 달.
노련한 감독의 지휘와 감독 경질이라는 충격요법이 맞물리면서 강등권에 쳐박혀 있던 노리치는 14위까지 올라서면서 대폭 성적이 개선되었다.
반면에 새로 아스톤 빌라의 감독으로 부임한 리버풀의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 감독은 막상 딘 스미스 감독과 큰 성적의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해서, 섣불리 감독을 해임한 아스톤 빌라 구단주들의 판단력에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미 아스톤 빌라 시절에 형민의 번리를 홈으로 불러들여서 3대 0으로 맹폭을 당했던 딘 스미스 감독은 최근 몇 경기 동안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리그에서 6위를 기록하면서 강력함을 뽐내고 있는 번리를 상대로 4-3-3 포메이션으로 맞섰다.
하지만 좌우측 공격수로 출전한 조시 사전트와 키에란 도웰이 모두 미드필드까지 내려앉아서, 최전방 공격수인 아담 이다를 제외한 나머지 9명의 선수들이 수비에 전념하는 4-1-4-1 포메이션에 더 가까웠다.
언론이나 평론가들의 예상은 형민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가 분석한 바로도 노리치는 수비적으로 나오고, 번리는 높은 라인에서 압박하면서 넓은 공간을 활용할 것을 선수단에게 주문했다.
킥오프와 함께 홈구장에서 수비적인 자세를 굳힌 노리치 선수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페널티 박스 안에 결집했다.
공격수인 아담 이다 정도가 페널티 박스 밖에서 번리의 공격 전개를 방해하기 위한 움직임을 가져갈 뿐.
번리의 수비진과 미드필더들은 지난 몇 시즌 동안 하부 리그팀들을 컵대회에서 상대할 때를 제외하면 맛보지 못한 자유와 공간을 만끽하면서 공을 돌리고 있었다.
반면에 번리의 공격수들은 두세 명씩 달라붙는 노리치의 찰거머리 같은 수비에 골치를 썩히고 있었다.
“아오! 좀 떨어져봐!”
대형이나 포지션 같은건 깔끔히 무시하고 자신에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노리치의 좌측 수비수 브랜든 윌리엄스에게 번리의 오른쪽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카림 아데예미가 신경질을 냈다.
“한니발이 얘기 안 해줬어?”
진지한 얼굴의 금발 수비수는 자신보다 키가 10센티는 더 클 카림 아데예미에서 찰싹 달라붙으면서 물었다.
“한니발이 뭐? 그리고 넌 한니발을 어떻게 아는데?”
“나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임대 왔거든. 하여튼, 이게 중요한건 아니고···.”
카림 아데예미는 계속 발걸음을 옮기면서 오른쪽 공간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지만, 같이 데이트라도 하듯이 아예 한 손을 그의 유니폼에 올려놓고 간격을 유지하던 젊은 수비수가 말했다.
“한니발이 내 별명이 뭔지 얘기 안 했어?”
“하아··· 니 별명이 뭔데?”
카림 아데예미는 전혀 알고 싶지 않다는 말투로 물었다.
“흡혈거머리.”
“…너, 겉보기보다 말이 많구나?”
카림 아데예미가 빈정거렸지만, 브랜든 윌리엄스는 그냥 씩 웃으면서 그를 쫓아다닐 뿐이었다.
흔들림 없는 상대 선수의 멘탈에 카림 아데예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자식··· 비디오 분석을 보니 발도 빠르던데···.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는 것을 직감한 카림 아데예미는 살짝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에게 달라붙은 상대편 수비수를 내려다보았다.
카림 아데예미, 드와이트 맥닐, 그리고 크리스 우드까지 상대편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에게 붙들려 있는 가운데.
자유를 만끽하던 번리의 미드필더 세 명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페널티 박스 안으로 어떻게든 진입하려고 해봤자 상대편의 거센 수비에 튕겨나갈건 불 보듯 뻔하다.
애시당초 번리가 철벽 같은 수비로 지난 몇 시즌 동안 프리미어 리그에서 입지를 단단하게 굳힌 팀이니 상대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차라리 외각에서 중거리슛을 날리면서, 운이 좋다면 슛이 들어가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대편에게 페널티 박스만 지키는게 능사가 아니라는걸 깨닫게 해줘야 한다.
실제로 감독도 상대편이 수비에 올인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 상세하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나.
전반 5분.
서로 눈빛을 다시 한번 교환한 번리의 미드필더 세 명은 급격한 움직임을 가져갔다.
공을 받아든 한니발이 페널티 박스 한복판에 갇혀있는 중앙 공격수 크리스 우드와 오른쪽 사이드라인을 타고 서있는 오른쪽 공격수 카림 아데예미의 중간 지점으로 드리블 돌파를 시작했다.
“자기 담당에 집중해!”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번리 미드필더에게 수비수들이 죄다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노리치의 골키퍼 앵거스 건이 주의를 줬다.
스위퍼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던 노리치의 중앙 수비수 그란트 한리가 번리의 중앙 공격수 크리스 우드를 2대 1로 수비하기 위해서 다가서고.
크리스 우드를 다른 중앙 수비수인 안드류 오모바미델레와 함께 견제하던 노리치의 중앙 미드필더 제이콥 소렌슨이 페널티 박스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번리의 한니발 메이브리에게 달라붙는다.
그 순간, 평소에 페널티 박스 안까지 진입하는 일이 거의 없는 번리의 수비형 미드필더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갑자기 왼쪽에서 침투를 시작했다.
“왼쪽! 왼쪽!”
번리의 왼쪽 공격수 드와이트 맥닐을 견제하던 노리치의 오른쪽 수비수 막스 아론스가 기존에 붙어있던 드와이트 맥닐과 새롭게 침투하는 니콜라스 세이왈드 사이에서 갈등하고.
노리치의 여타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의 시선이 일시적으로 니콜라스 세이왈드에게 향한 순간.
한니발 메이브리가 오른쪽 발목을 120도 꺽어서 갑자기 공을 뒤로 보낸다.
페널티 아크 중심으로 향한 공을 받은 것은 노리치의 중앙 미드필더 케니 맥린을 교묘하게 따돌리고 달려온 번리의 중앙 미드필더 조시 브라운힐.
노리치의 선수들이 움찔하는 순간, 매끄러운 패스를 받은 조시 브라운힐은 그대로 자신이 자랑하는 오른발로 슈팅을 날렸다.
노리치의 골키퍼 앵거스 건이 꼼짝도 못 하는 강력한 슛이 골문 오른쪽 상단 코너를 꿰뚫었다.
“으아이아!!!”
번리 선수들과 원정팬들이 격렬하게 환호하는 가운데, 스타디움 아나운서가 덤덤하게 홈팀의 실점을 알렸다.
“골. 번리의 8번 조시 브라운힐이 골을 넣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은 조시 브라운힐이 기뻐하는 것도 잠시.
이번에는 전반 35분에 노리치의 아담 이다에게 동점골을 얻어맞았다.
노리치의 골키퍼 앵거스 건이 전방으로 길게 차올린 공.
계속되는 경기에 지친 주장 벤 미에게 휴식을 주느라 선발 출전한 네이선 콜린스가 노리치의 최전방 공격수 아담 이다와의 단거리 경주에서 밀리면서 번리의 골키퍼 닉 포프와 1대 1 상황을 내어주었고.
노리치가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유소년 출신의 유망주는 망설이지 않고 닉 포프의 오른쪽으로 슛을 날려서 골네트를 출렁였다.
예상하지 못한 동점골에 번리 선수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후반전으로 경기가 넘어가면서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었다.
삑!
“이 자식이!”
조시 브라운힐이 백태클에 고통스러워하면서 뒹구는 가운데, 분노한 번리 선수들이 달려와서 가해자를 에워쌓다.
“일부러 한거지!”
“무슨 소리야! 그냥 부딪친거라고!”
“웃기지 마! 스터드를 세우고 들어왔잖아!”
분노에 가득찬 제임스 타코우스키가 악의가 없었다고 양 손을 벌리는 노리치의 수비형 미드필더 제이콥 소렌슨의 멱살을 붙잡았다.
“워! 워! 그만 해!”
놀라서 달려온 양 팀 선수들과 주심이 개입해서 두 선수를 떼어놓았지만, 이미 분노한 제임스 타코우스키 귀에는 잘 들려오지 않았다.
크리스 우드와 맷 로튼, 찰리 테일러 등 번리의 베테랑들이 일제히 제임스 타코우스키를 뒤로 끌고 가는 가운데, VAR과 짧게 교신한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노리치의 제이콥 소렌슨은 곧바로 레드 카드.
문제는 바로 이어서 옐로우 카드를 꺼낸 주심이 제임스 타코우스키에게 경고를 날린 것이었다.
“나는 왜?!”
달려와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제임스 타코우스키에게 주심이 멱살을 잡는 시늉을 했다.
“말이 돼? 경기장에서 다른 선수의 멱살을 잡다니. 경고로 끝나는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관중들의 야유 속에서 제이콥 소렌슨이 터덜터덜 걸어나가고, 주심에게 다시 항의하려는 제임스 타코우스키를 이번에는 니콜라스 세이왈드와 네이선 콜린스가 강제로 끌고 갔다.
“어, 제임스?”
중앙 수비수 파트너인 네이선 콜린스의 조심스러운 부름에 제임스 타코우스키가 짜증을 냈다.
“아, 또 왜?!”
“저기 좀···.”
네이선 콜린스의 손짓에 제임스 타코우스키가 고개를 돌리자, 감독과 수석코치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란히 팔짱까지 낀채 불필요한 경고를 받은 팀의 주전 중앙 수비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X됐다···.”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온 제임스 타코우스키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