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36)
36화: 물러설 곳은 없다
“포기할 경기를 정해야 되요.”
아서가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형민은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어요. 저희 선수단 규모로 7경기를 모두 욕심낼 수는 없어요.”
아서가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형민이 우선 12월 14일로 예정된 카라바오컵 8강전 경기를 클릭했다.
공교롭게도 어제 무승부를 거둔 노리치를 상대로 또 원정경기.
“딘 스미스 감독도 고민을 하겠지만, 그쪽이 어떻게 나오든 저희 입장에서 리그랑 컵대회를 둘 다 쫓는건 불가능해요. 카라바오컵은 후보와 비주전 선수들 중심으로 출전시키고, 필요하면 리저브팀에서도 선수를 올릴께요. 당연히 골키퍼는 웨인이 나가고요.”
못 마땅한듯,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듯 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리즈와 사우스햄튼, 2경기 모두 가져가기는 힘들어요. 차라리 하나에 올인하는게 맞을 것 같아요.”
프리미어 리그 19라운드 리즈 전은 12월 26일 박싱데이.
프리미어 리그 20라운드 사우스햄튼 전은 12월 28일.
프리미어 리그 팀을 지휘하는 외국인 감독들이 하나 같이 증오하는, 박싱데이에 경기를 치루는 영국의 전통 덕분에 하루만 쉬고 다음 경기를 치뤄야 했다.
똑같이 15라운드를 치른 지금, 리즈는 9위이고 사우스햄튼은 16위.
더욱이 사우스햄튼은 10월에 홈경기를 치루면서 5대 2로 분쇄한 기분 좋은 기억이 있었다.
승점만 생각한다면 사우스햄튼에 올인하는게 맞는데, 리즈는 홈경기이고 사우스햄튼은 원정경기라는 점이 또 마음에 걸린다.
한동안 고민하던 아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말이야. 12월 22일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을 치른 다음에 결정하는게 좋을 것 같아. 그 시점에 선수단의 피로도나 부상도 확인을 해보는게 좋을 것 같고. 어쨌든 두 경기 중 하나에만 올인하자는건 지금 결정한거니까, 뭐가 더 좋을지는 그때 가서 보자고.”
아서의 의견을 경청하던 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 첼시 풋볼 클럽.
이름만 듣는다면 당연히 런던에서 가장 번화하고 화려한 자치구 중 하나인 첼시, 정확히는 ‘켄싱턴 및 첼시 왕립 자치구’에 위치했을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작 첼시 풋볼 클럽은 런던의 다른 자치구 중 하나인 풀럼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좀 엉뚱한 사연이 있다.
1904년에 풀럼 자치구에 위치한 스탬포드 브릿지 스타디움을 매입한 거스 미어스는 이를 자치구를 대표하는 축구팀인 풀럼 풋볼 클럽에게 임대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빈 스타디움을 놀려둘 수가 없어서 본인이 직접 팀을 창단했는데, 이미 풀럼 자치구의 이름을 쓰는 팀이 존재했기 때문에 옆 자치구의 이름을 빌려서 첼시 풋볼 클럽이라고 명명.
이렇게 런던에 존재하는 수많은 축구팀 중 하나였던 첼시가 역사의 전면으로 도약하는 것은 프리미어 리그 중위권을 오가던 2003년에 러시아의 거부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구단이 인수된 다음이었다.
자신의 막대한 부를 그대로 팀에 쏟아부은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포르투를 이끌고 포르투갈 1부 리그 2연패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차지한 명장 주제 무리뉴 감독을 2004년 여름에 감독으로 임명.
주제 무리뉴 감독은 바로 부임한 첫 시즌에 그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이 1번만 제외하고 독점했던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
그 다음 시즌에는 2연패를 달성하면서 첼시를 본격적인 부흥기로 이끌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하고 나서 18시즌 동안 첼시 풋볼 클럽은 프리미어 리그 우승 5회, FA컵 우승 5회, 카라바오컵 우승 3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유로파 리그 우승 2회를 기록했다.
도합 17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린 첼시는 구단의 역사상 최전성기를 맞이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및 리버풀과 함께 명실상부한 프리미어 리그의 빅4로 입지를 굳혔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아부다비의 오일머니를 등에 엎고 단숨에 상위권으로 뛰어오른 맨체스터 시티와 현명한 투자와 경영으로 상위권에 발돋움한 토트넘까지 합류하면서 이제 소위 빅6의 일원.
한편 첼시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하에 18시즌 동안 감독을 무려 15번이나 교체하면서 조금이라도 성적이 부진하면 가차없이 감독을 경질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바로 지난 시즌에 첼시에게 대망의 2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었던 독일 출신의 명장 토마스 투헬 감독도 부진한 리그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부임한지 1년도 되지 않은 지난 11월말에 경질.
신임 감독 후보군에 대해서 온갖 루머만 무성한 가운데, 구단의 육성 총책임자인 닐 바스가 임시 감독을 수행하고 있는 첼시가 터프 무어를 방문했다.
“기회, 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솔직히 기회인건 맞아요.”
경기 전날 오후.
감독의 이실직고에 선수단 사이에서 자조적인 웃음소리가 흘렀다.
전략실에 선수단이 모인 가운데 형민이 다음날 전술을 브리핑했다.
“토마스 투헬 감독은 경질됐고, 신임 감독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어요. 닐 바스 임시 감독은 큰 변화를 주기보다는 선수들이 익숙해서 편안한 스타일을 사용하고 있어요.”
작전판 위에 표시된 첼시의 포메이션은 4-2-3-1.
“다행인건 중앙 공격수 로멜루 루카쿠는 부상이 확실해서 내일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할거에요. 왼쪽 수비수인 벤 칠웰도 부상. 그렇다고 대신 나오는 선수들 중에 만만한 상대는 하나도 없습니다만.”
먼저 대형 스크린에 작지만 단단한 얼굴의 선수가 떠올랐다.
“중앙에서는 은골로 캉테가 선발로 출전해서 휘어잡을거에요. 니키의 역할이 중요해요.”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베테랑을 상대해야 하는 오스트리아의 젊은 유망주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은 아마도 카이 하베르츠, 크리스챤 풀리시치, 그리고 메이슨 마운트가 나올거에요. 하킴 지예흐는 경고 누적이니까 출전할 수 없고, 대신 티모 베르너가 원탑으로 설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되요.”
첼시 유소년 출신인 메이슨 마운트를 제외해도 무려 1.8억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출하고 조합된 공격진.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9,800만 파운드로 영입한 로멜루 루카쿠가 제외되고도 그 금액이다.
부러움과 두려움과 어쩌라고, 라는 패기가 뒤섞인채 자신을 바라보는 선수들을 마주보면서 형민은 자신의 내면이 어떻든 자신 있게 미소를 지어보았다.
“뭐, 어때요. 우리가 상대한 팀 중에서 우리보다 몸값이 낮은 팀은 한 곳도 없었다고요.”
아까보다 더 진짜 같은 웃음이 흐르는 가운데, 번리의 선수단은 다음날 승리를 거두기 위한 감독의 지시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감독,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작전 미팅이 끝나고 나서 번리의 부주장인 잭 코크의 갑작스러운 요청.
형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베테랑 미드필더와 함께 집무실로 향했다.
이제는 형민의 집무실이 된 장소.
션 다이쉬 시절의 모습과 차이를 살피려는듯 잠깐 둘러본 잭 코크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젊은 감독을 바라보았다.
겨우 2살 차이지만, 살아온 궤적은 축구라는 공통된 틀을 제외하면 극단적인 차이가 난다.
자신은 그래도 나름 화려한 선수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고, 반면에 형민은 부상으로 조기에 선수 생활을 접고 코치로 전환했다고 알고 있다.
이제 형민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이름을 날리는 감독이 되었고, 반대로 자신은 선수 생활을 끝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
만약에 감독의 길을 선택한다면 미래의 자신이 이 정도 위치까지 자리잡을 수 있을까, 자문하면서 잭 코크가 말문을 열었다.
“에이전트랑 얘기했는데, 이번에 구단에서 계약이 종료되는 베테랑들이랑 재계약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더군.”
“아···그거요. 그건···.”
“아, 아니. 괜찮아, 그건.”
당황하면서 해명하려는 감독을 잭 코크가 막았다.
“이해해. 구단 입장에서는 리빌딩을 해야되고, 나이가 많아지는 베테랑들을 계속 데리고 가기에는 기량이 하락하는데 주급이 높으니까 부담이 많이 되겠지.”
“…미안해요, 잭.”
“이건 감독이 미안할 일이 아니라니까? 너무 자연스러운거지.”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감독을 바라보면서 잭 코크는 미소를 지었다.
“난 번리에서 이제 5번째 시즌이야. 첼시 리저브팀에 있을 때에 번리로 임대를 왔던 것까지 치면 7시즌이지. 그동안 션 다이쉬 감독 밑에서 경기도 많이 뛰고 팬들한테 과분한 사랑도 많이 받았어.”
번리에서만 176경기를 소화한 베테랑 미드필더가 편안하게 웃음지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부터 점점 힘들어지더라고. 경기 속도는 계속 빠른데 몸은 따라가지 못하니까. 아직은 젊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잭···.”
“그런데 이번에 새로 임대 온 친구들을 보면서 깨달았어. 아,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예전이라면 호승심이 생겼겠지. 니키처럼 활동량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니발처럼 창의성과 기술을 연마할 수 있지 않을까. 제이콥처럼 탄탄하게 기본기를 쌓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형민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잭 코크는 오히려 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제는 깨달았어. 나한테는 그들이 가진 재능이 없고, 또 재능이 있다고 해도 이제는 주어진 시간이 없다는걸. 선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 남은 기간 동안 최대한 경기를 많이 뛰고 싶어.”
베테랑 미드필더의 진지한 말에 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의 흐름을 이길 수는 없고, 커리어 통산 474경기를 뛴 베테랑도 이제 시작보다 끝이 가깝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대신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내가 빠지면 빈 주급만큼 좋은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나랑 비슷한 생각하는 친구들이 좀 더 있어. 물론 이번 시즌의 끝까지 번리와 함께 가보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고.”
그러니까 떠날 생각을 하는 친구들은 자기가 잘 얘기해서 미리 전달하도록 하겠다, 라고 잭 코크가 말했다.
마음 속으로 감동을 삼킨 형민이 물었다.
“어디로 갈 계획이 있나요?”
“아직 정해진 곳은 없어. 하지만 에이전트한테 영국 말고 해외를 알아봐달라고 했어. 은퇴하기 전에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기존에 익숙해진 것과는 다른 축구를 한번 경험해보고 싶어.”
“고마워요, 잭.”
“아니야. 내가 고마워. 션 다이쉬 감독과 프리미어 리그에 있었던 것도 즐거웠지만, 지난 몇개월간 감독이랑 같이 경험한 것도 너무 좋았어. 이제 갈 때가 되었지.”
말을 마무리한 잭 코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베테랑의 단단한 손을 마주잡는 형민에게 잭 코크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감사했어,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