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44)
44화: 로즈 더비가 여기서 왜 나와
“니키가 후반전에 뛰지 못할 것 같아.”
팀닥터인 사이먼 모리스의 나지막한 말에 형민은 얼굴을 찡그렸다.
“부상인가요?”
“부상은 아닌데, 근육 경련이 일어나고 있어. 잘 알겠지만 경기 간격이 너무 촘촘했고, 우리 구조상 수비형 미드필더한테는 가중이 많이 가지. 위험 수준까지 올라왔어. 조금만 더 뛰어도 퍼질거야.”
수비 상황에서 상대편을 압박해서 공을 탈취하고, 탈취한 공을 지키고, 다시 공격까지 연결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빠진다는건 뼈아픈 타격.
하지만 아직 전체 시즌의 절반도 끝나지 않은 지금 시점에, 대체불가능한 선수인 세이왈드가 장기 부상이라도 당하면 가뜩이나 선수단이 얇은 번리 입장에서는 치명타였다.
형민은 한숨을 내쉬면서 팀닥터가 제시한 무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알겠어요. 부상을 당할 수는 없으니까, 니키한테는 바로 교체될거라고 전해주세요.”
팀닥터와 대화를 끝낸 형민은 라커룸 한쪽에 앉아있는 잭 코크에게 향했다.
이미 이적이 확정된 부주장을 굳이 벤치에 앉힌 것은 경기 끝자락에 교체 투입하면서 홈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가용할 수 있는 카드는 쓸 수 밖에 없었다.
“잭. 오늘이 마지막 경기인데···미안하게 되었어요.”
“아니야. 방금 사이먼한테서 얘기를 들었어. 니콜라스가 후반전까지 소화하기 힘들거라고. 제이콥이 그 자리에 들어가기에는 수비가 불안하겠지.”
보호대를 다시 고정하고 양말 위에 테이프를 감는 베테랑을 바라보면서 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팀한테 간단하게 지시를 할거니까, 그것까지만 듣고 나가서 몸을 풀어주세요.”
“알겠어.”
“미안해요, 잭.”
번리의 베테랑 미드필더 잭 코크는 미안한 기색이 가득한 번리의 젊은 감독을 올려다보면서 웃었다.
“걱정하지 마. 2022년 1월 1일이 되기 전까지 잭 코크는 번리 풋볼 클럽의 선수니까. 그리고 나도 마지막 홈경기에서 승리하고 가는게 기분이 더 좋을 것 같아.”
“하아···. 고마워요.”
선수들이 자리를 잡자, 형민은 작전판 앞으로 가서 빠르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 후반전에는 조금 다르게 갈거에요. 우선 상대편 미드필더인 칼빈 필립스한테 걸었던 집중 압박은 멈출께요. 빌드업을 차단하는게 목표였는데, 오히려 상대편 수비수들이 필립스를 건너뛰고 빌드업을 진행하니까 우리쪽에서 공백만 더 커지네요. 미안해요, 제 실수였어요.”
감독의 솔직한 사과에 선수들이 더 집중하는 가운데, 형민이 작전판에 놓인 선수들의 위치를 움직여서 간격을 더 좁혔다.
“대신 후반전에는 패스를 더 빨리 주고 받아야 해요. 리즈 애들이랑 달리기 시합으로 끌려들어가면 안 되요. 걔네들은 벌써 몇 시즌째 체력을 키워왔고, 우리는 체력 훈련에 집중한지 3개월 밖에 안 됐으니까요.”
형민은 작전판에서 공을 표시한 자석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선수들이 고정된 가운데 공이 오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사람보다 빠른건 공이니까, 사람이 아니라 공이 움직여야 해요. 최대한 빠른 속도로 공을 돌리면서 걔네들은 더 뛰고 하고, 우리는 덜 뛰는게 핵심이에요. 이렇게 체력을 최대한 소진시키면서 갉아내려야 해요. 간격을 더 좁게 서서, 패스를 받아줄 수 있는 포지션으로 계속 움직여주세요. 스프린트가 아니라 포지셔닝을 위해서 우리 체력을 사용하는거에요.”
감독의 지시는 이해했지만, 번리의 선수단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그들의 젊은 감독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티키타카를 하는건 좀 무리가 아닐까?”
베테랑 공격수 크리스 우드가 선수단을 대신해서 지적했지만, 형민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맨시티처럼 패스 게임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저 친구들이랑 수백번씩 달리기 시합을 반복해서 이길 확률보다는 패스 게임으로 저쪽 체력을 소진시킬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해요.”
“그렇긴 하네.”
감독의 설명에 납득한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형민이 말을 이었다.
“기억하세요. 시간은 우리 편이에요. 지금 한 골 뒤쳐져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쟤네들은 더 지칠테니까 만회골을 넣을 기회가 나올거에요.”
형민의 전술 변화가 마무리되자, 지시를 경청하고 있던 주장 벤 미가 일어나면서 외쳤다.
“좋아. 우리는 감독을 믿고 지시한걸 잘 따르면 되는거야. 후반전에는 우리가 본 때를 보여주자고!”
선수들이 함께 일어나서 외쳤다.
“For ever and ever(영원히 영원히)! 우리가 누구지?”
“We are Burnley(우리는 번리)!”
***
헬레나는 마지막 이메일을 보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연말인데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인 만큼 일이 줄어들었다면 좋으련만.
유럽의 축구 구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오히려 1월 1일에 열리는 겨울 이적시장을 준비하기 위해서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거기에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경기를 멈추지 않는 영국의 특성상, 오히려 일이 늘어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는 사람들이 연휴를 즐기는 동안 경기를 벌이는게 훨씬 좋았지만, 구단의 직원들이나 선수들도 사람인지라 남들이 모두 즐기는 연휴 기간에 가족들과 같이 시간을 지내지 못하는 것은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타향만리에서 가족과 떨어져서 일에 집중하고 있는 헬레나는 그런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지만.
대표이사의 관점에서 마이크 갈릭과 존 바나스키위츠가 작성한 구단의 일반 업무 및 마케팅에 대한 현황을 검토하고.
재무이사의 관점에서 마케팅과 구단 용품 판매, 그리고 경기 수익에서 나오는 숫자들에 매월 지출되고 있는 선수들과 임직원들의 급여 및 성과급에 반영해서 예측을 세워보고.
이 내용들을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서 대주주인 카트라이트 펀드에 공식 보고서로 보내는 것으로 오늘 하루 일과는 간신히 마무리됐다.
노트북을 힘차게 닫으면서 업무와 작별인사를 고하던 헬레나의 귀에 옆에 켜져 있던 티비에서 갑자기 익숙한 단어가 들려왔다.
[…리의 전술은 거의 다 노출이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감독 교체에 따른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끝나면서 번리는 다시 평범한 팀으로 돌아갔어요.]결국 번리는 12월 26일 박싱데이에 열린 리즈 전에서 패하고, 하루 쉬고 열린 28일의 사우스햄튼 전에서는 무승부를 거두면서 두 경기 중 하나는 가져가겠다는 기존의 전략을 이행하지 못했다.
특히 사우스햄튼 전 무승부가 뼈아팠는데, 전반기에 5대 2로 물리치면서 형민의 정글 축구가 언론에 각인되는 좋은 기억이 있었던 상대였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컸다.
물론 언론은 이를 좋은 기회로 보고 그들이 찬양하던 젊은 감독을 이제 물어뜯기 바빴지만.
[확실히 지난 10경기 동안의 성적은 3승 2무 5패. 카라바오컵도 8강에서 한 수 아래인 노리치한테 밀려서 탈락했어요. 확실히 초반의 기세가 많이 꺾였습니다.] [아무래도 프리미어 리그 수준에서 김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봐야겠네요.]헬레나의 집무실 티비에서는 늦은밤에 진행되는 스포츠 축구 토크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직 선수들과 감독들이 나와서 여러가지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프로그램이다.
일하는데 심심하기도 하고 적막이 싫어서 켜놓은 건데, 업무에 집중하느라 무시하는 가운데 오늘 물어뜯길 주제로 선택된 것은 아무래도 그녀의 번리인 모양이었다.
아무 것도 모른채 멍멍 짖어대는 강아지들 같다고 속으로 빈정거리면서 티비를 끄려던 헬레나의 귀에 관심이 가는 말이 들려왔다.
[…상식적이지가 않아요.] [뭐가 상식적이지 않나요?]진행자의 질문에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전적 선수이자 감독 출신의 노년의 패널이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감독에 대한 비판이 상식적이지 않다고요.]노장의 지적에 다른 패널들과 진행자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번리는 시즌 시작 전에 강등 1순위로 꼽히던 팀입니다. 기존 오너가 파산하면서 반강제적으로 소유주가 교체됐고, 8시즌이나 팀을 이끌어오던 션 다이쉬 감독이 스태프를 모두 데리고 사임했어요.] [그런데요?]진행자의 재촉에 노장이 설명을 계속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선수 보강도 없이 10월에는 2위까지 치고 올라갔어요. 카림 아데예미? 한니발 메이브리? 니콜라스 세이왈드? 뛰어난 선수들이지만, 모두 임대생들이에요. 그것도 테크니컬 디렉터나 스키우트팀도 없는 가운데 데려온 20살도 안 된 젊은 선수들.]화면 속의 노장은 배경 스크린에 떠오른 프리미어 리그 순위표에 번리를 가르켰다.
[번리의 지금 성적이 모두 김의 성과인지 선수들이 분발했지는 중요한게 아니에요. 중요한건 시즌 전에 강등 1순위였던 약소팀이 20경기를 치루고 나서 이제 6위를 지키고 있다는겁니다. 번리 밑에 있는 팀들을 보세요. 레스터, 울버햄튼, 첼시, 웨스트햄, 에버튼. 번리는 이들 모두 보다도 훨씬 더 작은 구단입니다. 기본적으로 톱 4를 해야할 팀이 6위로 떨어진게 아니라, 20위를 해야할 팀이 6위로 선전하고 있는거에요.]노장은 패널들을 둘러보면서 자신의 지적을 마무리했다.
[아마 번리의 이사진은 이번 시즌의 목표를 강등을 피하는걸로 잡았을거에요. 지금까지 획득한 승점은 36점에 순위는 6위. 리그에서 18경기나 남았는데,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번리는 무사히 강등을 피할거고, 이제 그들에게 남은건 얼마나 높은 순위로 시즌을 끝낼 수 있냐, 정도에요.]번리를 신나게 비판하던 다른 패널들이 노장의 핀잔에 어색해하는 가운데, 피식 웃은 헬레나는 훨씬 좋아진 기분으로 티비를 껐다.
선수단과 스태프 대부분에게 늦게나마 짧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부여해서 한산한 번리의 반필드 트레이닝 센터.
자신의 집무실 불을 끄고 어두워진 구단 사무실을 나서려던 헬레나의 눈에 아직 불이 켜져있는 다른 집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구단 직원들 중 가장 일찍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한다는 워커홀릭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던 헬레나는 자신보다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져서 그 방으로 다가갔다.
문이 살짝 열려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곳은 바로 방금 전까지 티비에서 대차게 까이고 있던 번리의 젊은 감독의 집무실이었다.
“…김?”
“앗, 헬레나? 아직 퇴근하지 않았군요.”
헬레나는 살짝 어색해하는 형민의 웃음과, 소파 앞 테이블에 놓여진 막 뜯어진 위스키 병을 보고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김.”
“아, 진짜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잠이 잘 안 와서···.”
아니, 잠이 안 오는 것도 문제지만.
헬레나는 그 사실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먼저 지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