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45)
45화: 다시 도약할 준비
헬레나는 팔짱을 끼고 형민을 노려보았다.
“이딴 싸구려 위스키는 대체 어디서 가져온거에요?! 맙소사, 이딴거 줏어먹으면 눈 멀어요!”
“…?”
‘약주’용으로 몰래 숨겨둔 자신의 애장품 위스키가 대차게 까이고 있는지 아서는 상상도 못하는 가운데, 벙찐 형민을 집무실에 남겨둔채 사라진 헬레나가 어디선가 잔 하나와 위스키 한 병을 가져와서 뜯었다.
일단 상자부터가 온통 금박으로 도배.
모양이나 붙여진 라벨도 자신은 위대한 특상품이라고 온갖 품위를 뽐내는 병.
헬레나는 뭔가 복잡해보이는 병 뚜껑을 손쉽게 열고, 그 속에 담겨 있던 진한 금빛 액체로 두 개의 잔을 채웠다.
“치어스!”
어리둥절한 형민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어느새 형민의 맞은편 소파에 자리잡은 헬레나가 자신의 잔을 들고 외쳤다.
“어···. 다 좋은데, 이건 어디서 가져온건가요?”
형민이 자신의 잔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이거요? 마이크가 나중에 특별히 축하할 일이 있을때 마시겠다고 자기 집무실 캐비넷 깊숙한 곳에 숨겨둔거에요.”
“네?!”
전전직 구단주의 비장품을 턴 헬레나가 키득거렸다.
“그때 보고 엄청 탐났는데, 덕분에 이렇게 마시게 되네요. 이거 1년에 몇 병 나오지도 않는 엄청난 한정품이에요. 돈만 있다고 구할 수 없다구요.”
“아니 이게 왜 제 덕분인가요?!”
“우리 퍼스트팀 감독이 혼자서 훌쩍이면서 술을 먹는데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었다, 라고 말하면 마이크도 뭐라고 할 수 없을테니까요.”
헬레나가 형민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덕분에 고마워요, 김.”
“아니, 훌쩍이고 있지는 않았는데···. 하아···.”
자신을 끌고 들어갈 생각에 의기양양한 구단의 대표이사이자 상사를 보면서 한숨을 내쉰 형민은 손에 쥐고 있던 잔을 입술로 가져갔다.
“…!”
술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그였지만, 확실히 방금 전에 맛본 물건보다는 급이 달랐다.
“흐흐흐. 그치요? 저딴 의료용 알콜 따위는 갖다버려요.”
또다시 의문의 1패를 당하는 아서였다.
형민은 위스키를 음미하는지 아니면 독약을 삼키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채 천천히, 살짝 입술을 축이면서 자신의 잔을 비웠다.
훨씬 더 빨리 자신의 잔을 비운 헬레나가 새로 잔을 채우면서 물었다.
“김, 정말 술을 못 마시는군요?”
“아···원래 술을 잘 못 마셔요. 거의 마셔본 적도 없어요.”
“젊을 때에는요?”
자신보다 몇 살 차이 나지도 않지만, 그게 마치 엄청난 옛날이었을 것처럼 얘기하는 구단의 대표이사.
나 아직도 젊은데, 라는 말을 목구멍 밖으로 내뱉지는 않은채 그녀를 살짝 노려본 형민은 대답하지 않고 손 안에 쥐어진 황금색 액체를 한 모금 삼켰다.
그의 시선을 이해했다는듯, 헬레나가 키득키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가요?”
“당신이 웃겨서 그래요.”
“…?”
형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면서 헬레나는 다시 웃었다.
“그거요! 방금 그거!”
“뭐가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내가 착해서 참는다. 딱 그런 말을 하고 싶은 표정이에요.”
형민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런게 있나요?”
“음···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김한테는 있어요. 분명히.”
다시 한잔을 따르는 헬레나를 보면서 형민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자, 헬레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그러지 마요. 저 술 잘 먹어요. 저희 가족 모두 엄청난 주당들이어서, 매년 크리스마스 파티 때에는 잔뜩 술을 마시고 다음날 일어나지도 못 했어요.”
상대적으로 ‘더’ 젊은 구단 대표이사가 평소와는 달리 부드러운 표정을 짓자 형민이 물었다.
“가족들을 보고 싶지 않나요?”
“보고 싶기도 하고, 딱히 보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 엄청나게 보고 싶은데, 막상 만나면 1주일도 안 되서 서로 질릴걸 아니까? 약간 거리가 있는 것도 좋은 것 같고.”
“그렇군요.”
흥미롭다는 형민의 말투에 헬레나가 큭큭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지 말고, 김 얘기 좀 해봐요.”
“제 얘기요?”
“제 얘기는 많이 했잖아요. 김 얘기 좀 해봐요. 축구는 어떻게 시작한거에요?”
“아, 축구요···.”
헬레나의 질문에 묘한 정적이 집무실을 휘감았다.
전혀 복잡하지 않은 주제를 꺼냈다고 생각했던 헬레나가 당혹스러워 하기도 전에, 손에 든 위스키 잔을 이리저리 기울이던 형민이 살짝 취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아직도 처음 축구공을 만져본 날이 기억나요. 8살이었는데, 서울은 온통 콘크리트로 덮여 있거든요. 단단한 콘크리트 위에서 공이 몇번씩이나 튕기는데, 그게 그렇게 멋졌죠.”
순간 온화한 젊은 동양인 감독의 얼굴에 드러난 환한 표정에 헬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없이 그의 맞은편에 앉아서 자신의 잔 안에 채워진 위스키를 한 모금 삼켰다.
“그래서 축구를 했죠. 매일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뛰어나가서 공을 차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땡땡이 치고 애들을 불러모아서 공터나 주차장에서 공을 차고.”
형민은 마치 애들을 다시 불러모으려는듯, 작은 손짓을 했다.
“결국 보다 못한 부모님이 허락해주셔서, 중학교는 축구부가 있는 곳으로 갔어요. 한국은 원하는 학교를 골라서 가는 것도 까다로워서, 결국 온 가족이 그 중학교 옆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래서 축구를 잘 했나요?”
헬레나의 질문에 형민은 고개를 저었다.
“형편 없었어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닌가? 간신히 수비수로 주전을, 그것도 왼발잡이가 없었기 때문에 억지로 왼발을 연습해서 왼쪽 수비수로 출전기회를 잡는 정도였어요. 한국의 유스 코치들은 애가 축구를 잘 하면 공격수를, 축구를 못 하면 수비수를 시키거든요.”
형민은 쓰게 웃으면서 위스키를 살짝 맛보았다.
“그러면서 왼발잡이 수비수가 오면 어쩌지···맨날 걱정하면서. 그래도 매일 축구를 할 때는, 경기에서 뛸 수 있을 때는 날아갈 것처럼 기뻤어요.”
취기인지 추억인지, 형민이 침묵에 잠기자 헬레나가 나직하게 물었다.
“그럼 어쩌다가 코치가 된 건가요?”
“음···불행인지 다행인지 왼발잡이 수비수라는건 한국에서 아~주 희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적당히 왼발을 쓸 줄 아는 수비수라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를 갈 수 있었어요.”
이어지는 작은 한숨과 동경.
“거기서 저랑 동갑내기인 공격수가 있었는데, 연령별 국가대표팀을 모두 섭렵하고 벌써 성인 국가대표팀에서도 소집할거라는 소문이 돌던 친구였죠.”
“좋은 친구였나요?”
헬레나가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질문에 형민은 눈을 내리깔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혹시 잠이 들었나, 싶어진 헬레나가 다시 말을 꺼내려던 순간, 형민이 굳게 잠겨 있었던 입술을 열었다.
“…죽여버리고 싶을만큼 질투했어요.”
“…!”
형민이 씹어내듯이 내뱉은 말에 헬레나는 충격을 애써 숨겼다.
그런 헬레나의 얼굴을 일부러 보지 않으려는듯, 자신의 잔 속에서 출렁이는 금색 액체에 형민은 시선을 고정했다.
“그 친구 덕분에 경기에서 승리를 하면 그렇게 기뻐하면서도, 연습할 때마다 저를 장난처럼 몇번씩이나 돌파해서 제 한계를 인식하게 할 때마다 증오했죠. 근데 그때는 그게 질투인지도, 증오인지도 몰랐어요. 마음이 힘들 때마다 그냥 상대팀이 아닌게 다행이다, 그 정도로 위안을 했지요.”
한숨을 내쉰 형민은 헬레나의 얼굴을 여전히 바라보지 않은채, 또다시 비가 내리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 친구 덕분에 전국 대회에서 좋은 성적도 거두고, 그냥 거기에 편승해서 괜찮은 축구부가 있는 대학까지 특기생으로 어찌어찌 해서 진학했지요. 특별하지도, 특출나지도 않지만 채우기 어려운 포지션을 하나 메워줄 수 있는 백업 자원으로.”
형민이 진한 황금빛 위스키를 한 모금 삼켰다.
“그런데 아직 정식으로 입학하기도 전에, 축구부의 동계 훈련에 소집되서 갔는데···. 첫 연습경기에서 다른 선수와 충돌하면서 무릎이 박살났어요.”
형민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그냥 누워 있었다면 무릎은 건질 수도 있었을지 몰랐는데, 감독이 엄살을 피우지 말라고 하면서 억지로 일으켜 세워서 다시 뛰게 만들었거든요.”
“…맙소사.”
충격받은 헬레나가 중얼거렸다.
“그 다음에 다시 두 발로 걷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어요. 다행히 저를 처음 수술하신 분이 실력이 꽤 훌륭해서, 신경이나 근육을 최대한 보존하셨거든요. 한국 남자들은 다 2년 정도 군대를 가는데, 저는 재활 시간과 군대를 바꿨지요. 물론 나중에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군대나 재활이나 고통스러운건 똑같은 것 같지만.”
형민은 자조적인 웃음을 애써 지어보았다.
“그리고 나서 원래 입학하기로 했던 대학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했어요. 그런데 평생 축구만 했는데, 공부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거기다 학교에 갈 때마다 축구부가 연습하는 모습이 눈에 박혔어요. 내가 원래 있어야 하는 자리는 저곳인데. 저 푸른 잔디 위인데···.”
형민은 창문 밖의 연습장을 향해서 손짓했다.
“강의실이, 그 학교가 너무 답답해서, 그런데 축구를 버릴 수는 없어서, 무작정 유럽에 있는 학교들에 편입 신청을 넣기 시작했지요. 스포츠 과학이나, 스포츠 경영이나, 스포츠 코칭이나, 여튼 스포츠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전공들 중 아무거나 걸리라는 마음에.”
형민은 손 안에 쥐고 있는 잔에서 진한 액체를 한 모금 더 삼켰다.
“그러다가 영국에 있는 스포츠 코칭 전공으로 편입신청이 덜컥 받아졌어요. 처음 들어보는 학교였는데, 잉글랜드 축구협회와 연계해서 대학 수업과 UEFA 라이선스를 동시에 진행하는 신기한 과정이었어요. 구구절절 사연을 써보내니까, 장학금도 조금 주더라고요. 그래서 당장 영국으로 날아왔지요.”
이게 전부다, 라고 어깨를 으쓱하는 형민에게 헬레나가 의아한듯이 질문했다.
“그럼 독일 축구협회인 DFB가 운영하는 코칭 코스에서 1등을 했다는건 뭔가요?”
형민은 깜짝 놀라서 얼굴을 들어서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걸 헬레나가 어떻게 알아요?”
“훗, 조사를 하는게 제 전문이에요.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기 전에 형민의 백그라운드를 탈탈 털어보는건 기본이라고요.”
헬레나의 말에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듯, 형민은 훨씬 더 밝아진 얼굴로 대답했다.
“영국에 있을 때에 평일에는 학교에 다니면서 UEFA 라이선스를 공부하고, 밤이랑 주말에는 동네 클럽들을 돌아다니면서 코치나 감독 역할을 해드렸어요.”
형민의 얼굴에 존경심이라고도 부를 만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클럽이라고 해도 다들 직장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나 세미프로들이었지만, 그분들이 열정적으로 축구를 하는 모습에 뭔가 나 같은 초짜도 도와드릴 수 있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형민은 키득키득 웃었다.
“그렇게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공부한 내용을 그분들을 통해서 구현해보고···말도 안 되는 짓거리도 많이 했지요. 그 수준에서 뭐가 먹히고 뭐가 먹히지 않는지조차 판단할 실력이 없었으니까.”
거기서 쌓은 시행착오와 경험으로 선수의 수준에 칼 같이 맞춰진 지시를 내리고 팀 단위의 작전을 짜줄 수 있었구나, 하고 헬레나는 깨달았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인지하지 못하는듯, 형민은 즐거운듯 추억에 잠겨서 얘기를 계속했다.
“UEFA C와 B 라이선스까지 차례대로 획득했는데, 그러다가 독일 축구협회가 운영하는 엔느-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에 대해서 듣게 됐어요. 정말 끝장나게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얘기만 듣고, 사실 나 같은 사람은 자격이 안 된다는 것도 모르고 신청서를 넣어서 시험을 봤어요.”
“근데 그 시험을 통과했잖아요?”
헬레나의 질문이 형민이 그녀에게 검지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훗. 시험을 잘 보는건 한국인의 종특이라고요.”
“종···특···?”
“종족 특성이요. 한국인은 시험을 잘 봐요. 종류와 무관하게, 시험은 잘 봅니다. 여튼 시험만 잘 봐요.”
그런게 가능한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헬레나는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러면 어떻게 된건가요?”
“DFB에서 난리가 났지요. 사실 원래라면 UEFA A 라이선스가 없어서 서류 전형에서 탈락해야 하는데, 행정 착오가 생겨서 실수로 본 시험까지 올라간거에요. 근데 시험 성적은 상위권이고.”
형민은 반쯤은 취기에, 반쯤은 진짜 웃겼다는듯 키득거렸다.
“결국 제가 주말에 지휘했던 동네 클럽들도 아마추어 리그나 세미프로 리그에 등록된 곳들이기 때문에, 그 경험을 모두 포함하면 UEFA A 라이선스를 획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말도 안 되는 판결을 DFB에서 어거지로 내렸어요.”
형민은 한 손으로 머리를 가르키면서 정신이 나갔다는 듯한 시늉을 했다.
“그래서 반강제적으로 UEFA A 라이선스를 수여받고 아카데미에 최종 합격했지요. 아마 DFB는 자기네들이 실수한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나는 사실 그게 90일짜리 심화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고 지원한건데.”
“그래서요?”
흥이 난 형민이 손을 흔들면서 설명했다.
“뭐, 신나서 독일로 가서 프로그램을 이수했지요. 학교에는 휴학을 하려고 했는데, 어차피 UEFA 라이선스와 연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엔느-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에서 공부한건 인정해준다고 해서 장학금도 그대로 나오고. 하여튼 하루에 세끼를 먹을 정도의 돈은 나왔어요. 잠은 여기저기에 좀 빌붙어서 자고. 날씨가 괜찮은 몇 주는 캠핑장에서 지내기도 하고.”
형민은 꿈을 꾸는듯한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멋졌어요. 밥 먹고 잠 자는 것 빼고, 아니 밥 먹는 동안에도 축구 얘기만 하는 광적인 열기를 가진 사람들이 20-30명씩 모여서 하루 종일 축구에 대해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또 공부하고, 또 토론하고, 그러다가 또 공부하고, 또 토론하고···.”
반대로 약간 질린듯한 표정을 지은 헬레나가 서둘러서 다음 이야기로 형민을 넘겼다.
“…그래서 거기서 1등을 한거군요.”
“음, 저는 공부 밖에 할게 없었거든요. 심지어 그 친구들은 주말에 모여서 같이 공도 차고 그랬는데, 저는 무릎이 이 꼴이어서 경기에 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모이면 감독을 했지요.”
기억이 났다는듯이, 흥이 오른 형민이 잔을 비우면서 나직하게 외쳤다.
“아, 근데 그 자식들 정말 말을 안 들었어요! 다들 지 전술이 맞다고, 경기 중에서도 서로 욕하고 저랑도 싸우고!”
헬레나도 피식 웃었다.
“후훗. 원래 전문가들이 남의 말을 잘 안 듣지요.”
“그건 정말 그래요! 하여튼, 프로그램을 수료해서 프로 라이선스를 땄는데, 거기서 사귄 친구 중 하나가 레드불 풋볼 그룹에서 일하던 친구였어요. 그래서 그 친구의 추천을 받아서 RB 잘츠부르크의 유스팀 코치로 갔어요.”
그래서 잘츠부르크로 간거다, 라는 표정으로 형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원래 고등학교 때에 같이 있었던, 공격수였던 친구와는 화해했나요?”
헬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해하고 자시고도 없었지요. 그 친구는 제 마음을 잘 몰랐으니까. 참 이상하지요, 원래 그렇게 많은 것이 갖춰진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을 무시할 수도 있는데, 그 친구는 참 착했어요. 부상을 당해서 재활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불쑥 찾아왔더라고요.”
형민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얘기를 들었다고.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와봤다고. 그러고는 그날 하루종일 재활하는 제 옆에 있어주더군요. 그때는 그 친구도 대학교 1학년이어서, 학창 시절을 즐기든, 팀에서 자기 입지를 굳히든 바빴을텐데. 그때 포기했어요. 아, 원래 이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랑 비교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그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금방 국가대표팀에도 소집되고···곧 프로팀에서 스카우트되서 한국에서 잘 나가는 프로 선수가 되었지요···. 나중에 일본이랑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도 뛰었는데···. 성적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하지만···나이가 들면서 점점 힘들어지는게 선수 생활이니까···. 얼마 전에 한국으로 다시 복귀했어요.”
헬레나가 작게 미소를 짓는 가운데, 형민은 마침내 취기가 완연히 올라온듯 붉어진 얼굴로 점점 말을 흐리면서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어쨌든···. 그 다음은 뭐···레드불에 있다가···번리에 왔다가···. 헬레나도 다 아는 얘기···.”
점점 말이 어눌해지던 형민은 마침내 이미 절반쯤 눕듯이 기대어 있던 소파에 고개를 파묻었다.
현재의 무게와 과거의 기억 속에서 취해 잠든 구단의 젊은 감독을 바라보면서 헬레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자신의 잔을 비웠다.
마침내 그녀는 형민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잔을 집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병마개를 다시 닫았다.
다행히 이미 잔을 다 비워져서, 카페트 위에는 얼음 조각만이 떨어져있었다.
“잘 자요, 형민.”
소파 위에서 잠든 감독을 내려다 보면서, 헬레나는 불을 끄고는 조심스럽게 감독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숙취에 시달리는듯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형민을 헬레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기세 좋게 몰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