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6)
6화: 끝과 시작
애써 구토감을 참는 필드 플레이어들이 체력훈련에서 열외된 자신들을 뚫어져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게 피부로 와닿았지만, 번리의 골키퍼들도 새로운 훈련이 당혹스러운건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인 영국식 축구에서 골키퍼 훈련이란 슈팅을 방어하기 위한 다이빙이나 높이 날아오는 크로스를 걷어내기 위한 펀칭 중심으로 진행되고, 굳이 필요하다면 다리를 쓰는건 골킥을 차기 위한 롱킥 훈련이 전부였다.
그런 영국식 축구에서 태어나서 자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소속이자 번리의 주전 골키퍼 닉 포프, 웨일즈 국가대표팀 소속이자 번리의 세컨드 골키퍼 웨인 헤네시, 그리고 번리의 세번째 골키퍼인 윌 노리스는 새로운 훈련 속에서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면서 패스와 드리블을 제대로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야, 니네들 정말 기본적인 것도 못 하는구나. 어디가서 축구 선수라고 하지 마라?”
‘아니, 저희는 다 골키퍼라고요! 축구에서 유일하게 손을 쓰는걸 허락받은 포지션!’
마음의 목소리가 서글프게 외쳤지만, 세 골키퍼 모두 묵묵히 입을 닫은채 공을 몰고 잔디 위에 간격을 두고 놓여진 콘과 콘 사이를 통과하기 위한 훈련에 집중했다.
물론 수석코치(임시) 아서 브림로우의 빈정거림에 세 명 모두 속에서 열불이 치솟지 않는건 아니었지만, 첫 날부터 주장단이 임시 감독의 말은 건성으로 들어도 아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하얗게 질린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저항에 대한 생각을 거의 접은 상태였다.
사실 훈련 첫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소속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믿은 닉 포프가 가볍게 아서에게 훈련량에 대해서 말을 걸어보았었다.
“저, 코치님. 사실 저희는 골키퍼니까, 이런 발 밑 훈련보다는 좀 더···.”
“좀 더 뭐?”
말을 이어가려던 닉 포프는 늙은 할아범이 보내는 째릿한 눈빛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 이상한 기분은 그 눈빛보다, 늙은 코치의 어깨 너머로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팔을 X자로 들어올리는 부주장 잭 코크와 엄지손가락을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베테랑 제이 로드리게즈의 표정에서 오는 불안감이었다.
뭔가 심히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닉 포프는 서둘러서 말을 주워담기로 결심했다.
“좀 더···그러니까요, 좀 더 하고 싶습니다!”
지나가면서 닉 포프의 말을 들은 형민이 박수를 치면서 격려했다.
“그럼요! 요즘은 골키퍼가 손 만 잘 쓰는건 의미가 없어요. 발 밑도 잘 써야 한다고요! 그래도 명색이 축구 선수인데, 농구선수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아니, 그런 재미는 없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닉 포프는 임시 감독의 말에 대한 반발을 조용히 접어둔채, 옆에서 눈을 부라린채 골키퍼 훈련을 지도하는 아서를 흘깃 바라보고는 조용히 훈련에 집중하기를 선택했다.
‘그래, 어차피 한 경기인데 뭐.’
***
하지만 선수들의 원망과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훈련의 성과는 명확했다.
지난 5일간의 쉬지 않고 진행된 훈련 중 어느 순간부터, 형민의 의도대로 번리의 퍼스트팀은 이제 별다른 지시가 없어도 공을 잡으면 일단 자동으로 짧게 패스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반 65분, 아직 점수는 0대 0이었지만 번리가 무려 15개의 슈팅을 난사하는 동안 겨우 6개의 슈팅으로 밖에 반박하지 못한 에버튼이 움추려들었다.
사기가 오른 번리 선수들이 점점 더 경합에서 우위를 보이면서 경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브라우니!”
번리의 수비형 미드필더 잭 코크는 에버튼의 중앙 수비수 예리 미나가 미드필드로 어설프게 올려보낸 패스를 낚아채면서 중앙에서 공격 전개를 담당하는 동료를 불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별명에 번리의 중앙 미드필더 조시 브라운힐은 온갖 인상을 쓰면서도 달려와서 짧은 패스로 공을 넘겨받았다.
“원투!”
브라운힐은 자신을 지나치면서 상대편 진영으로 전진하는 잭 코크에게 다시 공을 돌려줄 것처럼 외쳤다.
그러고는 그의 외침에 패스를 차단하기 위해서 자신과 잭 코크에게 선제적으로 덤벼드는 에버튼 선수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브라운힐은 우측의 빈 공간으로 파고드는 측면 공격수 제이 로드리게즈에게 길게 패스를 날렸다.
크로스 상황을 제외하면 중앙 수비수인 제임스 타코우스키와 함께 유이하게 롱패스를 허락받은 번리 미드필더의 기습적인 장거리 패스.
잭 코크와 브라운힐을 압박하기 위해서 거리를 좁히던 에버튼 미드필더들은 일제히 역동작에 걸려서 멈칫했다.
미드필드에서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에버튼의 수비진은 자신들의 진형 우측에서 파고들던 윙어 드와이트 맥닐과 풀백 찰리 테일러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는 미드필더들이 붙들린 가운데, 소리소문 없이 자신들의 왼쪽에서 파고드는 상대팀의 측면 공격수와 그에게 전달된 패스에 순식간에 수비진은 난장판이 되었다.
“지원! 빨리!”
갑자기 1대1 장면을 맞이한 에버튼의 좌측 수비수 루카 디뉴가 제이 로드리게즈에게 달라붙으면서 애타게 지원을 불렀다.
그 와중에 에버튼의 중앙 수비수인 벤 고드프리는 번리의 중앙 공격수 크리스 우드를 마킹해서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왼쪽에서 전개되는 공격에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자, 제이 로드리게즈가 쇄도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미끼의 역할을 수행하던 크리스 우드에 의해서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에버튼 골대에서 끌려나온 상태였다.
자신의 포지션 이탈로 동료가 고립된 것을 깨닫고, 벤 고드프리는 크리스 우드를 버린채 불안해진 좌측을 지원하기 위해 허겁지겁 뛰어들어갔다.
반면에 에버튼의 우측 수비수인 시머스 콜먼과 중앙 수비수 예리 미나는 호시탐탐 왼쪽에서 파고드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번리의 드와이트 맥닐과 찰리 테일러 콤보를 견제하느라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에버튼의 미드필더들과 수비수들이 모두 묶여버리거나 개입할 수 없는 가운데, 좌우로 넓게 찢어진 에버튼 수비진의 정중앙을 벤 고드프리로부터 자유로워진 크리스 우드가 여유롭게 파고들었다.
번리의 우측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제이 로드리게즈는 공을 발 밑에 둔채 자신을 방어하려는 루카 디뉴의 어깨 넘어서 페널티 박스 중앙으로 자유롭게 침투하는 크리스 우드를 흘깃 보았다.
축구에서 공이 없는 수비수는 공을 가진채 다음 동작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공격수보다 거의 모든 경우에서 열위에 놓일 수 밖에 없다.
긴장한채 그를 마주하는 루카 디뉴를 향해서 제이 로드리게즈는 씩 웃으면서 왼쪽 어깨를 살짝 내리면서 왼쪽으로 빠져나가려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가벼운 속임수였고, 루카 디뉴가 상대편의 움직임에 따라서 흔들린 몸의 무게중심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한두 호흡 정도면 충분했다.
뒤에서 지원을 위해서 달려오는 에버튼의 중앙 수비수 벤 고드프리가 도달하는 것도 한두 호흡 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짧은 크로스를 올릴 수 없다면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선수로 뛸 자격이 없었고, 누가 뭐래도 제이 로드리게즈는 자격이 충분한 베테랑이었다.
제이 로드리게즈가 부드럽게 골에어리어와 페널티마크 사이로 띄워올린 공을 향해서 번리의 장신 공격수 크리스 우드가 자신의 거구를 허공에 띄워 올렸다.
완전히 따돌려진 에버튼의 수비진이 움직임을 멈추고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에버튼의 마지막 보루인 골키퍼 조던 픽포드가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쾅!
그러나 공을 때리는 소리가 아니라 대포소리에 가까운 광음과 함께 크리스 우드는 골문의 왼쪽 하단 구석으로 공을 머리로 무자비하게 찍어내렸다.
“골! 골입니다! 후반 66분, 클라렛의 9번, 바로 크리스 우드~!!!”
에버튼 선수들의 허탈한 표정을 뒤로 하고 달려와서 크리스 우드를 덮치는 번리 선수들과, 경기장 안에서 신난 아나운서의 환성이 홈팬들의 환호와 뒤섞이는 가운데 번리 벤치에서 형민과 아서가 서로 얼싸안고 있었다.
“됐어요! 됐다고요! 성공했어!”
“아하하! 성공했어! 이런 바보 같은 전술이 먹히다니! 으하하하!!!”
기쁨에 아서를 껴안던 형민이 갑자기 정색하면서 자신을 부둥켜 안는 늙은 수석코치(임시)의 팔을 떼어냈다.
“뭐라고요? 바보 같은?!”
“으하하!!! 바보 같지, 그럼! 라파 베니테즈의 에버튼을 이런 단순한 전면 압박과 좌우 전술로 흔들겠다니, 그게 바보 같은거지! 으하하하하! 근데 먹혔어! 먹혔다고!!!”
“우씨! 영감탱이랑 말 안 해!”
“우하하!!! 단순한게 최고라더니! 선제골이다!”
형민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이던 아서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던 번리의 선수들에게 외쳤다.
“야, 이넘들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리드를 지켜!”
“아, 영감탱이는 좀 자리에 들어가요!”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벌어지는 실랑이에 번리 선수들은 피식 웃었지만, 서로 주고받는 눈빛은 진지했다.
‘이 경기, 가능성이 있다!’
경기가 재개되고 나서, 한참이나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서 원정팀의 벤치를 지켜보는 형민의 표정에 아서가 다가오면서 물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
“뭔가 이상해서요.”
“뭐가 이상한데?”
상대팀 벤치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이상함을 발견하지 못한 아서가 되물었다.
“너무 조용해요. 실점을 내줬는데도 감독이나 스태프들도 너무 조용해요.”
“원정경기에 와서 한수 아래인 팀을 상대로 골을 먹어서 놀라서 그런거 아닐까?”
아서의 말에 형민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아닐걸요. 라파 베니테즈 감독은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랑 챔피언스 리그도 우승했던 명장이에요. 발렌시아, 리버풀,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 첼시···대형 구단들을 지휘했던 경험이 많은 베테랑 감독인데, 약팀한테 당한 일격에 당황했다? 오히려 더 강하게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거나 교체를 준비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선수들을 믿고 있을 수도 있겠지. 자기가 뭐라고 안 해도 경기를 뒤집을거라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설득되지 않은 목소리로 형민이 대답했다.
그리고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서 진행된 경기는 원정팀 벤치가 끝까지 이상한 침묵을 지킨 가운데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