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77)
77화: 광란의 5월
그렇게 호기롭게 생각하던 시기가 저한테도 있었습니다.
좌절하는 형민이 생각했다.
절망하는 번리 선수들과 희희낙락해서 3번째 득점을 홈팬들과 자축하는 브라이튼 선수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동양에 이런 상황을 표현하는 좋은 말이 있지요. 세상에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열 중 여덟아홉이다, 라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인데, 시즌 내내 3번 밖에 경험하지 않았던 3실점을 오늘 다시 기록했습니다. 하하하.
“이 친구, 정신이 나갔구만.”
살짝 정신줄을 놓은 형민을 바라보면서 아서가 혀를 찼다.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휘청거리던 형민은 정신이 반쯤 나간채 벤치로 돌아가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번리 선수들이 서로를 다잡으면서 경기 재시작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벌써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큰일이군. 다들 벌써 지쳤어.”
“아무래도 레이스가 많이 길었지요.”
아서의 평가에 형민이 침울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우리는 맨체스터 시티의 천적이잖아! 막판에 맨체스터 시티를 잡으면 된다고!”
“아니 맨체스터 시티를 잡는게 쉬운줄 아세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를 박박 갈고 나올텐데?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를 잡는다고 해도 아스톤 빌라랑 2연전에서 모두 승리해야 컵도 우승하고 유럽 대항전도 나가요!”
욕심을 포기할 생각 같은건 1도 하지 않은채 형민이 한탄만 계속했다.
“···가능하겠지요?”
형민이 멍하게 묻자, 아서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몰라. 난 번리의 젊은 천재 감독님만 믿고 여기까지 온거여서.”
아서의 태연한 답변에 형민은 발칵 신경질을 냈다.
“아, 좀 그 어깨 으쓱하는 것 좀 그만하세요!”
“나한테 왜 그래?!”
***
하지만 비참한 브라이튼과의 경기가 끝난 후.
반필드 트레이닝 센터로 돌아와서 코치진과 함께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첼시와 왓포드 간의 경기 결과를 지켜본 형민은 아서를 붙잡고 춤을 췄다.
“으아아아! 왓포드가 해냈어요! 역시 왓포드! 고춧가루 킹~!”
“아니, 굳이 그러지 않고 그냥 우리가 지난달에 왓포드한테만 이겼어도 이 고민은 상당히 덜했을텐데?”
아서가 어처구니 없다는듯이 물었지만, 형민은 그런 말이 귀에도 안 들어오는듯 집무실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어깨춤을 췄다.
젊은 감독이 늙은 수석코치를 붙잡고 쇼를 벌이는게 하루이틀이 아닌만큼, 파울루 모라오 코치는 지친 몸과 기쁜 마음을 소파에 파묻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으하하!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중요한건 왓포드가 첼시의 발목을 잡아주었다는거에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강등이 확정된 왓포드가 첼시를 0대 0으로 붙들고 늘어진 덕분에 첼시는 승점 1점을 추가하는데에 그쳤다.
이제 승점 60점으로 2경기가 남은 첼시와, 승점 60점으로 3경기가 남은 번리의 대결이 됐다.
“제가 왓포드의 키케 세티엔 감독한테 전화해서 고맙다고 하면 안 되겠지요?”
“자기를 놀리냐고 화를 내지 않을까? 오늘 강등이 확정됐는데?”
“아하, 그렇군요!”
“야, 전화하지 마! 전화하면 안 돼!”
아서의 다급한 당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형민은 즉석에서 작사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춤을 추면서 자신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복도에서 멀어져가는 형민의 뒷모습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노래가 막춤과 함께 흘러나왔다.
“왓포드님! 왓포드님! 왓포드 킹! 킹 왓포드! 왓포드 킹왕짱!”
집무실 문까지 따라나와서 젊은 감독의 뒷모습을 어처구니 없이 바라보는 아서의 옆으로 복도에서 울리는 소음에 자신의 집무실에서 나온 헬레나가 다가왔다.
“아서? 도대체 이 끔찍한 노랫소리는 뭐죠? 설마 저거, 형민인가요?!”
“다음 시즌에는 새로운 감독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아니, 왜요?!”
짧게 비명을 지른 헬레나에게 아서가 말했다.
“정신적인 부담을 견디지 못한 감독이 미쳐버렸거든.”
“김이 미쳤다고? 이거 큰일이군!”
역시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역시 집무실에서 나온 마이크 갈릭이 그들에게 다가오다가 대화의 뒷부분만 듣고는 우려가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
첼시는 이제 프리미어 리그에서 2경기, 번리는 3경기가 남았다.
양 팀 모두 승점은 60점인데, 첼시가 월등한 골득실 차이로 6위를 차지하고 있다.
형민이 제멋대로 상상한 것처럼 첼시가 맨체스터 시티한테는 지고 리즈를 상대로는 이겨서 도합 승점 3점을 거둘거라고 생각하면, 아스톤 빌라를 잡고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어떻게든 승점 1점만 따내면 된다.
물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시작의 막바지까지 격렬하게 프리미어 리그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두 팀을 상대로 무승부를 한번은 거둘 수 있을거라는게 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부정적으로 생각이 흘러가면 과도한 스트레스에 화장실에서 새하얀 변기를 붙잡은채 위액까지 토해내는 감독의 갸날픈 신경회로 덕분에 번리 내부에서 그런 지적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말이 씨가 된다고, 그들 스스로도 희망에 희망을 거듭하면서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코 앞으로 다가온 FA컵 결승전에 대비해서 형민은 리버풀을 상대로 실질적으로 1.5군의 선발 라인업을 짜서 출전시켰다.
홈구장인 터프 무어에서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엎고 단단하게 지키면서 무승부를 통한 승점 1점을 획득하는게 오늘 경기의 목표.
거의 1시즌째 프리미어 리그에서 감독 생활을 하면서 조금은 사고가 유연해진 젊은 감독.
반대로 이번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승점 3점을 획득해서 맨체스터 시티와의 우승경쟁에서 1점의 우위를 지키고 1위 자리를 유지하는 리버풀은 최상의 멤버들을 총출동시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반 내내 리버풀의 강력한 압박으로 유효 슈팅을 단 하나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형민은 황당해했다.
“우와, 이런 상황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걸?”
옆에서 자료를 같이 확인한 아서가 초를 쳤다.
분석팀이 건내준 자료가 정리된 태블릿를 바라보던 형민은 느긋한 아서를 보면서 살짝 이를 갈았다.
“아씨··· 아서, 저리로 좀 가면 안 되요?”
“가긴 어딜가? 내가 수석코치인데.”
“으으···.”
분노하면서 태블릿과 벤치, 그리고 경기장을 번갈아가면서 살피는 형민을 아서가 제지했다.
“안 돼. 우리 분명히 약속했잖아. FA컵을 위해서 이번 경기만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지만···.”
“안 돼. 드와이티는 막판 10분만. 그것도 투입을 할 필요가 없으면 투입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조시나 니키도 마찬가지야.”
아서의 거부에 형민이 애원했다.
“으으··· 제발···.”
“안 돼.”
“이번 한번만!”
“이번 한번이 어딨어! 조금 있으면 시즌이 끝이라고!”
“아오!”
이사석에서 바라보면 감독과 수석코치가 진지한 얼굴로 경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지난 1년 가까이 그들 옆에서 생활한 헬레나에게는 뭔가 마음에 안 든 형민이 아서에게 떼를 쓰고 있는게 눈에 훤히 보였다.
대화의 수준은 사탕을 사달라는 어린아이와 안 된다는 엄마 정도겠지.
저 사람들을 믿고 여기까지 구단을 이끌고 온 내가 다 장하다.
옆자리에 앉은 리버풀 이사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작게 한숨을 내쉰 헬레나는 경기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솔직히 아직도 전술적인건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확연히 밀리고 있는 팀의 경기가 마음에 안 드는건 그녀도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수석코치에게 칭얼대고 있는 감독이랑 똑같았다.
“응?! 설마!”
그렇게 꾸역꾸역 수비만 하면서 지키던 경기의 후반 80분이 넘어가는 시점.
리버풀이 슈팅을 날리면 번리가 막는다는, 일방적인 구타로 변한 경기 속에서 이제 슬슬 때리는 사람의 손이 아프기 시작한 상황.
교체투입된 리버풀 선수들까지 열리지 않는 번리의 골문에 질려가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자신을 애써 타이르면서 무승부로도 만족하기로 결심했던 형민이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전에 시도한 리버풀의 슈팅이 밖으로 빠지면서 골킥을 얻은 번리의 골키퍼 닉 포프가 하프라인을 향해서 길게 공을 차올렸다.
어찌어찌 번리의 선수들이 받아낸다고 해도 주위를 에워싸는 리버풀의 맹렬한 압박에 공을 빼앗기고 다시 공격이 전개되는게 그동안 경기의 패턴이었다.
따라서 번리의 선수들 대부분이 아예 수비 진영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교체가 진행되면서 중앙 공격수로 자리를 옮긴 번리의 제이 로드리게즈와 리버풀의 왼쪽 수비수 앤드류 로버트슨이 공의 낙하지점을 향해서 달려갔는데.
“으앗!”
관중석과 양 팀 벤치, 그리고 선수 본인의 당혹스러운 외침과 함께 앤드류 로버트슨이 미끄러졌다.
80분 내내 전진한 상태에서 번리의 페널티 박스 속으로 크로스를 날려보내던 가운데 다리의 힘이 빠진건지.
아니면 시즌 막바지에 다달아서 체력이 소진된건지.
그것도 아니면 터프 무어의 잔디 관리인이 하필 그 구간만 관리를 실패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같이 공을 향해서 달려가던 제이 로드리게즈는 전체 경기를 통틀어서 처음으로 방해를 받지 않고 공을 받아냈다.
기본적으로 리버풀은 수비 라인을 높게 유지하면서 전방 압박으로 상대팀을 상대편 진영에 가두는데에 특화되어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건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의 헌신적인 수비와 버질 반 다이크라는 월드클래스 수비수의 엄청난 신체적인 능력과 경기를 읽는 센스.
그러나 수비의 한 축이 무너진 가운데, 번리의 오른쪽 공격수 제이 로드리게즈가 공을 길게 앞으로 밀어넣으면서 돌파를 시도하자 허무하게 수비진이 꿰뚫렸다.
공격 일변도의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역습에 평소보다 리버풀 선수들의 반응이 한 박자 늦은 가운데.
현재 번리의 왼쪽 공격수와 오른쪽 공격수는 FA컵 결승전을 대비해서 아껴두었다가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방금 전에 교체 투입된 드와이트 맥닐과 카림 아데예미.
이제 막 경기에 투입되서 체력이 완전히 펄펄한데, 번리에서 가장 발이 빠른 두 사람이다.
두 젊은 공격수들이 전방으로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가운데 리버풀 선수들이 일제히 자신들의 진영으로 전력질주를 시작했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버질!”
리버풀의 골키퍼 알리손이 중앙 수비수 버질 반 다이크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동시에 페널티 박스를 비운채 리버풀 진영을 오른쪽에서 대각선으로 돌파하는 번리의 중앙 공격수 제이 로드리게즈를 향해서 달려나왔다.
전방 압박과 높은 라인에 익숙한 팀 답게 리버풀은 골키퍼도 기본 이상의 패스 능력에 왠만한 수비수 수준으로 발 밑 수비도 할 수 있다.
골키퍼가 수비수처럼 페널티 박스 밖에서 제이 로드리게즈에게 달라붙어서 시간을 끄는 가운데 중앙 수비수 버질 반 다이크가 골문을 지키고 나머지 선수들이 들어올 시간을 버는 계획.
“카림!”
그러나 번리의 베테랑 공격수는 리버풀의 골키퍼 알리손이 페널티 박스에서 빠져나오는걸 확인하자마자 번리의 젊은 공격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페널티 박스 중앙으로 낮은 크로스를 보냈다.
다시 말하지만, 제이 로드리게즈는 크로스 능력이 별로 신통치 않다.
하지만 번리의 모든 세트피스에서 공을 차는게 금지당한 카림 아데예미 수준인 것도 아니다.
자신보다 2미터 정도 앞을 지나갈 공의 궤적을 확인한 카림 아데예미는 어느새 등 뒤에 달라붙어서 자신을 추월하려는 리버풀의 중앙 수비수 버질 반 다이크를 흘낏 확인한 다음에 오히려 속도를 살짝 줄였다.
“어어!”
진로방해라고 말하기에는 참 애매한, 그냥 앞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속도가 살짝 느려진 정도.
솔직히 뒤에서 전속력으로 쫓아가고 있었으니까 갑자기 간격이 줄어들어서 속도가 느려졌다는걸 알지, 옆에서 보면 스피드건으로 측정하지 않는 이상 확인이 불가능할거다.
갑자기 앞이 가로막히면서 발이 꼬인 버질 반 다이크가 당황하는 사이.
페널티 박스 안으로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번리의 왼쪽 공격수 드와이트 맥닐은 골문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공을 향해서 필사적으로 왼발을 뻗으면서 온 몸을 날렸다.
“오오오!!!”
이미 자리에서 일어난 관중들이 탄성과 탄식을 내뱉는 가운데.
간신히 드와이트 맥닐의 발 끝에 걸린 공이 살짝 궤도를 바꾸면서 골문 안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으아아아!!!”
“으아! 골이야! 골이라고!”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뛰쳐나와서 형민을 붙들고 환호하는 아서의 너머로, 80여분간 맹공을 퍼부었지만 득점하는 데에 실패했던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이 온 몸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즌 내내 이어지던 치열한 우승 레이스에서 간신히 1위로 치고 올라온 리버풀이 우승을 확정짓기 위해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기로 평가받았던 번리전에서 일격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으아아아!!!”
무승부를 목표했던 경기에서 갑자기 승기를 붙잡은 형민은 양 손에 주먹을 쥐고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