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안녕, 아서
험난했던 지난 8월에 처음 번리에 도착한 후, 마침내 처음으로 경기가 치뤄지는 경기장 잔디까지 내려온 헬레나가 샴페인과 땀으로 흠뻑 젖은 형민과 선수단에게 다가갔다.
“으아아! 축하해요, 형민!”
“헬레나!”
선수들과 함께 열광하던 형민이 헬레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외쳤다.
반갑게 손을 흔들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젊은 동양인 감독을 본 헬레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가서 살짝 포옹해주었다.
어색하게 한 팔로 헬레나를 살짝 안아준 형민이 머뭇거리다가 다시 팔을 풀자, 뒤로 물러난 헬레나가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형민.”
“아니, 고마운건 내가 더 고마운 것 같은데···.”
“형민이 아니었다면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없을거에요.”
형민이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고민하는 가운데 옆에서 진행자의 외침이 들렸다.
“김 감독님! 이제 트로피 수여식이 시작됩니다! 이쪽으로 선수들을 데리고 와주세요!”
“빨리 가봐요! 설마 이제 와서 늦는다고 트로피를 안 주지는 않겠지만!”
밝게 미소를 지은 헬레나가 빨리 가라고 손짓하자, 형민은 어색하지만 밝은 웃음을 지어보인 다음에 사방에 흩어져서 자축하는 선수들을 한 곳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아! 빨리 가서 트로피 받자!”
“우아아아!!!”
경기장 위에 빠르게 세워진 가무대 위에서 침울한 준우승팀이 먼저 메달을 수여받은 다음에, 우승팀이 차례대로 무대 위에 올랐다.
코치진과 선수들, 그리고 감독까지 차례대로 메달을 수여받자, 마침내 주장 벤 미가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포효하면서 어깨동무하고 있는 선수들과 코치진이 뭉쳐 있는 무대 중앙으로 나섰다.
자신을 바라보는 웃고 고함을 지르고 포효하는 선수들에게 번리의 주장이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For ever and ever (영원히 영원히)! 우리가 누구지?”
“We Are Burnley (우리는 번리)!!!”
그렇게 경기와 수상식까지 끝났지만,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아스톤 빌라 팬들이 이탈한 자리에서는 번리 읍에서 거동이 가능한 거의 모든 사람이 나왔을게 분명한 45,000여명의 번리 팬들이 광란의 축제를 벌였다.
“헨리! 헨리!”
우승 기념 티셔츠에 우승 기념 모자를 쓰고 미친듯이 샴페인을 사방에 뿌리면서 뛰어다니던 카림 아데예미가 관중석에 열광하고 있는 팬들 중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이쪽이야! 이쪽!”
관중들의 경기장 난입을 가로막던 경비들도 선수가 일행이라고 직접 지목하자 헨리 타일러와 그 일행을 통과시켜주었다.
“으아아! 우승이라고! 우승이야!”
카림 아데예미를 번쩍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은 거구의 헨리 타일러는 정신을 차린듯 옆에서 똑같이 흥분한 두 중년 남자를 소개했다.
“카림! 우리 아버지야. 밋치 타일러! 그리고 아버지 친구, 헨리 스마이스!”
“안녕하세요!”
“으아아! 우승이라고!”
60년만에 팀이 FA컵을 들어올린 것도 모자라서 모든 잉글랜드 남자들의 성지인 웸블리 스타디움의 경기장까지 들어선 두 중년 남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환호를 질렀다.
이 광경을 목격한 임대생 숙소 (임시)의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헨리!”
한니발 메이브리와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합류해서 헨리 타일러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우승을 마음껏 기뻐하기에는 하필이면 원 소속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기분이 오묘한 아스톤 빌라 출신의 임대생 제이콥 램지가 니코 곤잘레스와 오스카 밍게자를 이끌고 다가왔다.
“으하하! 최고야! 최고라고!”
“이건 앞으로 우리 집안 가보로 간직할께!”
선수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고, 기념 셔츠와 모자까지 나누어 받은 타일러 일가의 두 남자와 스마이스 일가의 한 남자가 기쁨을 감추지 못한채 외쳤다.
***
번리 풋볼 클럽은 1962년 이후 60년 만에 FA컵 결승전에 진출.
1914년 이후 무려 108년 만에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108년 간의 기다림’이라고 영국의 모든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가운데, 형민과 번리의 코치진은 애써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노력했다.
아직 프리미어 리그에서 2경기가 남았기 때문에 격렬하게 기뻐하는 번리 읍장과는 시즌이 끝난 다음에 우승 퍼레이드를 하기로 약속했고, 선수들에게도 전날의 축제 분위기에 너무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물론 실제로 선수들이 흥분을 하루 만에 가라앉힐 수 있을거라고는 형민을 포함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우승의 기쁨을 즐기느라 널브러진 선수들을 반강제적으로 끌어내서 늦은 오전의 회복훈련을 마치고, 다음 경기에 대해서 간단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 형민과 코치진이 회의실에 모였다.
자리에 앉아서 희색이 역력한 코치진을 둘러보던 형민은 갑자기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라? FA컵을 우승하면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자동으로 획득하는거잖아요?”
“어… 그렇지?”
뭔가를 깨달은듯, 벌떡 일어나서 외치는 형민에게 아서가 고개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그러면 우리는 6위를 하던 말던 유로파 리그에 출전하는거잖아요?”
“어… 그런거겠지···?”
형민의 얼굴에 따라서 역시 깨달음의 빛이 떠오르는 아서의 얼굴.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채 두 사람을 번갈아보는 파울루 모라오을 무시하고 형민이 아서에게 다시 물었다.
“그리고 이제 2경기가 남았는데, 전승을 해서 승점 6점을 획득해도 69점이니까, 유럽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이 부여되는 4위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미 확보한 72점을 상회할 수 없네요? 그럼 챔피언스 리그는 어떻게 해도 못 나가네요?”
“…그, 그렇네···.”
“아서···.”
형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수석코치에게 몸을 기울여서 속삭였다.
“…저희는 대체 무슨 삽질을 한거죠?!”
하지만 그날 오후, 형민의 말을 전해들은 헬레나는 분노했다.
“지금 장난해요? 프리미어 리그에서 최종 순위가 1자리 바뀔 때마다 늘어나는 포상금이 얼마인지 알아요? 200만 파운드에요! 닥치고 가서 최대한 순위를 높여놓고 와요!”
***
분노한 헬레나의 닥달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FA컵에서 패배한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것일까.
아직 양 팀 모두 FA컵 결승전의 여파에서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가운데 프리미어 리그 37라운드를 위해서 번리를 방문한 아스톤 빌라는 무려 3대 0으로 대패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시즌 막바지를 제대로 망친 아스톤 빌라의 스티븐 제라드 감독이 애써 분노를 참으면서 자신에게 다가온 홈팀 감독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섰다.
“스티븐 제라드 감독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저희한테 5월에만 2연패를 당했으니까. 다음 시즌에는 더 이를 갈고 덤벼오겠지요?”
악수를 나누고 나서 자신의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돌아가면서 형민은 옆에 서 있을 아서에게 말했다.
갑자기 관중석에서 놀라움이 뒤섞인 외침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형민은 홈팀의 벤치에서 선수들과 코치진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자신을 바라보고 손짓하면서 뭔가 외치는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쟤네들은 뭘 저렇게 손가락질을··· 이게 뭘까요, 아서? 아서?! 아서!”
홈팀 벤치로 걸어가다가 빈 옆자리를 돌아본 형민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자신이 토해낸 피로 암적색 트레이닝복 상의를 붉게 물들인채 바닥에 주저앉아서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늙은 수석코치의 모습이었다.
“아서!!!”
번리의 팀닥터 사이먼 모리스가 의료진을 이끌고 달려오고, 아서는 곧이어서 경기장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충격에 휩싸였지만 어쩔 수 없이 경기 후 인터뷰까지 정신없이 마무리한 형민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헬레나였다.
“일단 아서는 번리 제너럴 병원 응급실로 갔어요. 거기서 긴급 조치를 취한 다음에 필요하면 더 큰 병원으로 옮길거에요.”
어느새 능숙하게 영국에서 차를 몰기 시작한 헬레나가 운전하는 옆에 앉은 형민은 충격을 추스리지 못했다.
“…무슨···?”
“저도 몰라요. 일단 병원에 가서 의사를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사이먼도 병원에 있다니까 같이 설명을 들을 수 있을거에요.”
터프 무어에서 몇분 걸리지도 않지만, 체감상 1시간도 더 걸린 것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도착한 두 사람은 번리 제너럴 병원의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사이먼!”
“김! 헬레나!”
번리의 주치의인 사이먼 모리스가 두 사람을 응급실 입구에서 맞이했다.
“아서는요? 괜찮나요?”
“지금은 안정됐어.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서 일단 병원에 입원해 있기로 했어.”
“뭐가 어떻게 된거에요?!”
다급한 감독에게 사이먼 모리스가 양 손을 들어올렸다.
“자, 김. 당황한 것 알겠지만 흥분하는건 환자나 가족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클라리사도 지금 아서 옆 병실에 들어가 있거든.”
“…!”
아서의 아내까지 병실에 들어가 있다는 소식에 형민과 헬레나 모두 깜짝 놀랐다.
“…뭔가 심각한건가요?”
조심스럽게 헬레나가 묻자, 사이먼 모리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서는 원래부터 위가 안 좋았고, 식습관이나 생활도 별로 안 좋았어. 알잖아, 맨날 그 싸구려 위스키나 마시고 있고.”
그 싸구려 위스키를 몇번이나 몰래 마셔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시즌 전부터 위궤양 진단을 받았었는데, 보나마나 약도 제대로 안 챙겨먹고 식사 관련된 사안은 다 무시했겠지. 그러면서 시즌 중에 더 악화된 것 같아. 아무래도 안 좋은 생활에 관리도 안 하는데 스트레스까지 더해졌으니까 결국 몸이 버티질 못한거지.”
“이런···.”
헬레나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가운데, 형민이 고개를 흔들다가 물었다.
“아서를 볼 수 있나요? 의식은 있나요?”
“의식은 있고, 잠깐이라면 괜찮을거야. 기다려봐. 내가 담당 의사한테 물어보고 올테니까.”
작은 병원이었지만 병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헬레나와 사이먼 모리스가 복도에서 기다리는 가운데, 혼자서 병실 안으로 들어온 형민은 진한 약품의 냄새에 눈썹을 찌푸렸다.
침대에 절반쯤 기대어 앉아 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뜬 늙은 수석코치는 자신의 젊은 감독이 울상이 되어서 들어오는 모습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옆자리에 앉도록 손짓했다.
“자네 덕분에 좋은 꿈을 꾸었어.”
평소의 혈색은 온데간데 없이, 창백해진 아서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형민에게 말했다.
침대 옆에 놓여진 의자에 앉은 형민은 처음으로 영국인 할아범의 얼굴이 얼마나 주름졌는지 깨달았다.
그의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살 하나하나가 형민이 살아온 것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도.
“난 원래 선수로서 실패했지. 그리고 나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뭔가 대단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 같아. 능력이 좋은 아이가 오면 좋은 선수가 되었고, 능력이 좋지 않은 아이가 오면 선수도 되지 못했지.”
“그것 만으로도 대단한거에요.”
형민이 말했지만, 아서는 그런 형민의 말을 듣지 못한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션이 자네에 대해서 처음 얘기를 했을 때에, 자네가 처음에 왔을 때에, 신경이 많이 쓰였지. 사실 우리처럼 젊은 나이에 부상을 입어서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할 줄 아는게 축구 밖에 없으니까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닌데도. 왠지 자네한테서 나와 같은 그림자를 본 것 같았거든.”
형민이 침묵하는 가운데, 아서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왠걸. 이 애송이 초짜 감독이 퍼스트팀 지휘를 맡더니 한줄씩 기적을 써내려가기 시작하더군.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어.”
잠깐 숨을 가쁘게 쉬던 아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 늙어버린 이 나이에 프리미어 리그 퍼스트팀을 코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그리고 저 친구는 저렇게 어린 나이에 한걸음씩 애써서 걸어올라가는데, 나는 그동안 대체 뭘 했을까, 그런 생각도. 하지만 클라렛이 높이 나는 것을 보면서 사실 기쁨 밖에 없었던 것 같아.”
“아서···.”
아서가 힘을 주어서 형민의 손을 잡았다.
“내가 같이 가는 길은 여기까지인가봐. 어차피 작년 여름에 은퇴하기로 했었던건데, 일년이나 더 좋은 꿈을 꾸게 도와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자네는 잘 할거야.”
“아서··· 절 계속 도와줘요. 저는 아서가 필요해요. 죽으면 안 되요!”
울먹거리는 형민의 말에, 아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죽기는 누가 죽어! 위궤양이 도진 것 뿐이라니까!”
“…네? 위궤양이 도지면 위암으로 가는거 아니에요?”
“아니야! 이 멍청아! 그냥 절대적으로 안정만 취하면 다 낫는거라고!”
“그럼 클라리사가 옆 병실에 있다는건 뭐에요?! 놀라서 쓰러졌다면서요?”
“쓰러지긴 뭘 쓰러져! 마침 병원에 온 김에 자기도 건강검진이나 받겠다고 간거야! 나 때문에 놀라서 혈압이 오른 것 같다고. 금방 다시 돌아올거라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형민은 갑자기 다가온 안도감에 웃기 시작했다.
“아, 웃지마! 어떻게 이런 멍청이가 프리미어 리그 감독을 한다고! 야, 너 UEFA 프로 라이선스 위조한거지? 어떻게 너 같은 바보가 심사를 통과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