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84)
84화: 올해의 감독
딱 한 잔만 더 하자는 위르겐 클롭 감독이나 펩 과르디올라 감독, 그리고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손길을 형민은 필사적으로 뿌리치고는 만찬이 끝나자마자 도망쳤다.
그렇게 화려한 자리에 익숙하지도 않은 것도 있었지만.
왠지 저 세 명(우승에 기뻐하는 선수 출신인 거구의 독일인 1명, 우승을 뺏겨서 슬퍼하는 선수 출신인 스페인인 1명, 그리고 다음 시즌에 두고 보자는 선수 출신인 이탈리아인 1명)한테 붙잡혀서 술을 먹임 당하면 알콜 중독으로 사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한게 더 컸다.
대신 형민은 문자로 전달받은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헬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깨어있었다.
[헬레나?] [형민? 혹시 호텔을 못 찾은건가요?] [아, 아니에요. 잘 찾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아직 안 자고 있다면 트로피를 보여주고 싶어서요.] [호오라. 알겠어요. 지금 퓌무아르(Fumoire)에서 한잔 하고 있어요.] […퓌··· 퓌무? 그게 어디에요?]휴대폰 건너에서 헬레나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호텔로 와서 퓌무아르로 안내해달라고 하면 알려줄거에요.]고풍스러운 호텔에 도착해서 흠칫 놀란 형민이 컨시어지의 안내를 받아서 도착한 것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짙은 밤색 나무로 인테리어가 꾸며진 화려한 바였다.
과거에는 런던을 풍미하던 신사들이 모여서 담배나 시가를 태우면서 술을 즐기던 곳.
이제 실내 흡연이 금지되면서 담배나 시가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런던에서 가장 고풍스럽고 멋진 바 중 하나라는 사실을 변함이 없었다.
양 팔 아래에 상자를 하나씩 끼고 들어온 정장 차림의 동양인 남자를 손쉽게 발견한 헬레나가 반원형의 바에 배치된 자리에 앉아서 그에게 손짓했다.
“형민, 여기에요!”
헬레나 옆에 자리를 잡고 상자를 바 위에 내려놓은 형민이 멍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정말 대단하군요.”
“그렇지요? 저도 클라리지스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오늘 이것저것 지른 김에 한번 와보기로 했어요.”
“어··· 여기가 유명한 곳인가요?”
사실 밖에서 본 고풍스러운 건물이나 벽지조차 화려한 내부와 높은 천장, 그리고 한 눈에 봐도 비싼 티가 줄줄 흐르는 이 바의 내부와 인테리어를 보면 아무리 눈치가 없는 형민이라고 해도 뭔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클라리지스는 런던에서 제일 고급스럽고 유명한 호텔 중 하나에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한번 들어볼래요?”
“그게 뭔가요?”
“세계 2차 대전 당시에 유럽 각국의 왕들이 런던으로 피난 와서 이 호텔에 묵었다고 해요. 그래서 호텔에 전화해서 ‘국왕 폐하와 통화하고 싶다’라고 하면 ‘어느나라 왕이요?’라고 호텔 교환원이 반문했다고 해요.”
헬레나가 기대한 반응은 웃음이나, 찬탄이나, 아니면 감동이나 신기함 같은 거였다.
하지만 형민은 조용히 통원목으로 짜여진 바 위에 올려놓았던 상자 두 개를 들어서 자신의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어··· 형민? 뭔가 안 재밌었나요?”
“…아니요. 그냥 바에 손상을 입히면 제 연봉으로 배상을 못 해줄 것 같아서요.”
“푸하핫!”
오늘 밤에 리그 감독 협회의 만찬에서 나온 수상자 발표와 함께 그가 트로피를 받는 모습이 스포츠를 조금이라도 다루는 모든 방송사와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바에 흠집이 나는걸 걱정하고 있었다.
이 남자는 언제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어서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킬킬대던 헬레나가 상자들을 가르켰다.
“한번 봐도 되나요?”
“물론이지요. 아서한테 줄거지만, 그래도 헬레나한테는 먼저 보여주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하나는 은색 우승컵 모양의 트로피이고, 다른 하나는 황금색 축구공 모양의 트로피.
바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가 누군지 드디어 깨달은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나직한 웅성거림과 함께 그 둘에게 집중되는 가운데, 두 트로피를 살짝 꺼내서 들어본 헬레나가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상자 안에 조심스럽게 트로피들을 넣어주었다.
“아서가 기뻐하겠네요.”
***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없었다니까요?”
2개의 트로피를 보고 기뻐한 것도 잠시.
아직도 퇴원이 허락되지 않아서 병실 생활이 답답하고 지겹다며 징징되던 영국인 할아범의 질문에 형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답변했다.
“그럼 런던 가서 뭐했어?”
“어, 일단 옷을 맞춘 다음에, 만찬이 끝나고는 호텔 바에서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다음날 오전에 비행기 타고 다시 번리로 올라왔는데요?”
이건 뭐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은 아서가 형민에게 다시 물었다.
“근데 왜 올해 초부터 헬레나가 자네를 김이라고 안 부르고 형민이라고 부르지?”
“헬레나가 저를 형민이라고 불러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젊은 감독을 보면서 아서는 고개를 돌려서 그의 옆에 앉은채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아내 클라리사와 눈을 마주쳤다.
이 친구, 영 가망이 없어보이지?
남편이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에 클라리사 브림로우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작은 해프닝과 함께 시즌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후 진행된 번리 풋볼 클럽의 첫번째 핵심 경영진 미팅은 작은 변화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조너선, 이사진에서 논의를 했어요.”
화요일마다 진행되는 핵심 운영진 미팅에 참석한 번리의 테크니컬 디렉터 조너선 랜드리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참석자들을 돌아보았다.
이사인 헬레나나 마이크 갈릭, 존 바나스키위츠는 내용을 알고 있는듯 살짝 미소를 지었지만, 형민은 내용을 모르는듯 그에게 살짝 고개를 저었다.
“이번 시즌에 조너선이 세운 여러 공로를 감안했을 때에, 앞으로 조너선에게 번리 풋볼 클럽의 풋볼 디렉터의 자리를 맡기기로 했어요. 축하해요!”
“축하하네!”
“축하해요, 조너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축하하는 가운데, 조너선 랜드리스는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사를 표했다.
한동안 축하와 덕담이 오간 다음에, 분위기가 조금 정리되자 조너선 랜드리스가 물었다.
“저한테 이런 중책을 맡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번리 풋볼 클럽을 위해서 헌신할 것을 약속 드릴게요.”
“그럼. 우리도 자네가 번리의 풋볼 디렉터에 적임자라는걸 굳게 믿네.”
이사들을 대표해서 마이크 갈릭이 조너선의 다짐에 화답했다.
만면에 미소를 띈 조너선은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그러면 제가 풋볼 디렉터로서 맡게 될 업무는 어떤 것들일까요?”
“음···어디 보자. 선수의 영입과 이적 협상. 스카우팅 업무의 총괄. 퍼스트팀 이외 리저브팀과 유스팀 감독 및 코치진의 채용과 관리. 퍼스트팀 감독과 코치진의 채용에 대한 지원. 그외에 축구와 관련된 경영 실무. 일단 이런 것들이 있을 것 같네요.”
노트북에서 내용을 확인한 헬레나가 답변했다.
“…그건 제가 이미 하고 있는 업무 아닌가요?”
“어···음···그렇기는 한데, 이제 그 모든게 공식적으로 조너선의 업무가 되는거죠! 책임에 따른 공식적인 권한이 부여되는거에요!”
“그러면 저를 지원해줄 새로운 테크니컬 디렉터를 채용해도 되나요?”
새롭게 풋볼 디렉터로 승진한 조너선 랜드리스의 질문에 헬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조너선. 지금은 아무래도 그런 예산을 편성한게 없네요.”
“…그럼 제 연봉은 인상되나요?”
“음···그것까지는 아직 고민을 안 해봤어요. 근데 우리, 원래 계약 기간이 아직 좀 남아 있지 않나요?”
“아니 이 사람들이!”
같은 업무에 같은 연봉.
명함이 바뀐 것 빼고는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는 조너선 랜드리스는 오늘도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아, 어떻게 프리미어 리그인데도 이렇게 가난할 수가! 이넘의 시골 축구 클럽!
조너선이 눈물을 삼키든 말든, 다음 의제로 넘어간 헬레나가 준비한 자료를 스크린에 띄웠다.
“2021/22 시즌에 대해서 최종 결산이 끝났어요.”
자신을 진지하게 주시하는 멤버들을 한번 둘러본 헬레나는 언제나 테이블 끝에 앉아서 인상을 찌푸리거나 심지어 졸던(!) 늙은 수석코치의 빈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지는 것을 깨닫고 잠깐 멍해졌다.
“…헬레나?”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 마이크 갈릭의 말에 그리운 마음을 한구석으로 밀어넣은 헬레나가 설명을 계속했다.
“상세한 내용은 나눠드린 자료를 보시면 될테니까, 큰 내용만 설명을 드릴께요.”
슬라이드가 넘어가면서 깔끔하게 정리된 수치들이 펼쳐졌다.
“이번 시즌 동안 전체 구단 수입은 대략 1억 5,400만 파운드. 역시 중계권료가 가장 큰 비중인데,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8,600만 파운드를 받았고, 거기에 저희가 기록한 6위에 대한 순위 특별 보상금이 2,900만 파운드에요. 그외에는 금액 순서대로 하면 경기 티켓과 시즌권으로 총 1,760만 파운드, 스폰서쉽으로 1,200만 파운드, FA컵 출전보상 및 우승에 따른 300만 파운드, 그리고 나서 다른 잡다한 이익을 합쳐서 640만 파운드에요.”
설명을 마친 헬레나는 파워포인트의 다음 슬라이드로 넘겼다.
“지출한 비용은 총 1억4,900만 파운드에요. 선수 주급으로 4,300만 파운드. 경기 수당 및 보너스로 2,000만 파운드, 선수 영입에 대한 순지출 1,700만 파운드, 구단 임직원 급여 1,100만 파운드, 경기장 및 훈련장 운영비 400만 파운드, 경기 당일 운영비 300만 파운드, 기타 잡비용과 세금은 200만 파운드에요. 이걸로 2021/22 시즌 번리 구단의 순이익은 500만 파운드입니다.”
헬레나는 조너선과 형민을 힐끗 바라보았다.
“참고로 선수 영입에 대한 순지출에는 카림 아데예미와 니콜라스 세이왈드의 완전 이적을 위해서 지출한 2,700만 파운드가 포함되어 있어요.”
“어··· 비용쪽에서 숫자가 조금 비는 것 같은데?”
숫자들을 살피던 마이크 갈릭이 묻자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기서 빠져있는게, ALK 캐피털이 부채 상환을 위해서 가져간 이자 및 배당금 4,900만 파운드에요.”
존 바나스키위츠가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나가지 않거나 클럽을 위해서 사용되었어야 했을 4,900만 파운드라는 거금이 전 구단주의 빚을 갚기 위해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댓가로 번리 풋볼 클럽은 파산의 벼랑에 몰린채 시즌 내내 아슬아슬한 운영의 줄타기를 계속해야 했다.
점잖은 영국 신사인 존 바나스키위츠조차도 충분히 욕을 내뱉게 만들만한 상황이었다.
“뭐··· 다행인건 형민이 FA컵까지 우승하고 6위까지 번리의 순위를 끌어올려준 덕분에 특별 보상금과 FA컵 우승으로 대략 3,200만 파운드의 추가 수입이 발생했다는거죠. 그러니까 그게 아니었다면 번리는 2,700만 파운드의 적자를 내면서 파산했을거에요.”
사실 시즌이 시작하기 직전에 번리 풋볼 클럽을 인수했던 카트라이트 펀드 입장에서도 아슬아슬한 상황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고향팀에 애정과 헌신을 쏟아넣었던 마이크 갈릭은 아예 눈시울이 붉어진채 형민을 바라보았다.
“김··· 정말 고맙네. 고마워!”
“아, 아닙니다.”
쑥쓰러워하는 형민 옆에 앉아 있던 존 바나스키위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 동안의 감동이 흐를 시간을 줬던 헬레나가 슬라이드를 넘기면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중요한건 이제 다음 시즌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