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87)
87화: 여름 휴가
미국 본가에서 어떤 모략이 꾸며지고 있는지 까맣게 모른채 다음날 기분 좋게 출근한 헬레나는 곧바로 감독의 집무실로 쳐들어갔다.
“여기서 뭐해요?”
자신의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온 갑작스러운 구단 대표이사의 질문.
형민은 어리둥절한 듯이 자신이 바라보고 있던 노트북과 집무실을 한번 둘러본 다음에 다시 시선을 헬레나에게 향했다.
“일하고 있는데요?”
“에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형민의 책상으로 걸어간 헬레나는 그 위에 흰 봉투를 내려놓았다.
“어··· 이게 뭔가요?”
“한국행 비행기표에요. 왕복으로 1등석.”
“…?”
이번에는 확실하게 구단 예산으로 구매했다.
헬레나는 형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걸 만족스럽게 팔짱을 끼면서 내려다보았다.
“한국에 돌아가본지 3년도 더 됐다면서요?”
“아··· 그거···.”
“이번 여름에는 가볼 계획이었나요?”
“아니, 팀을 재편해야 하고, 다음 시즌 계획도 세워야 하고···.”
헬레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적절하게 잘 쉬고 오는 것도 일의 일환이에요. 지난 시즌이 시작한 날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렸잖아요? 이번에 가서 2주 정도 푹 쉬고 와요.”
“어··· 여름 이적시장은···.”
“급한 일은 조너선한테 전화하라고 할테니까 그냥 잔말 말고 갔다와요! 참고로 내일 오전에 맨체스터 공항에서 출발이니까 늦지 말고!”
***
추방이라면 추방일텐데, 왕복행 비행기표를 받았으니까 다시 돌아오라는건 확실하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형민은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챙기고, 한국에 잠깐 들어간다고 집에 연락하고, 다음날 오전에 맨체스터 공항에서 비행기를 탑승했다.
런던 히스로 공항을 경유해서 한국까지 직항으로 12시간이 좀 넘지만, 평생 처음 타보는 1등석은 정말 편했다.
온갖 최신 전자장비와 오만가지 각도로 펼쳐지고 침대로까지 변신하는 의자를 가지고 다양한 자세를 취해본 것도 잠시.
왠지 모를 피로감에 잠에 빠진 형민은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의 진동과 함께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방금 전에 깨어나서 여전히 정신이 몽롱하지만, 그렇게 무려 3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형민은 감회가 새로웠다.
인천공항은 별로 바뀐게 없구나···.
자동 출입국 심사기에 여권을 찍기 위한 줄에 서 있으니, 주변에서 사람들이 그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형민은 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짐도 얼마 되지 않아서 기내에 반입한 작은 여행가방 밖에 없다.
따라서 유럽에서 귀국하면서 이것저것 짐이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수화물이 나오는걸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 입국장과 수화물 픽업을 통과해서 보안 게이트 밖으로 나갔는데···.
…실명할 뻔했다.
“…감독님! 김형민 감독님!”
“…C의 김진우 기자입니다! 감독님, 금의환향한 소감이···!”
“…감독님, 모처럼 귀국하신···!”
“…감독님!”
“…김형민 감독님!”
눈 앞에서 터지는 수백개의 카메라 플래시에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서 얼굴을 가린 형민에게 수십, 아니 백여명은 가볍게 넘을 것 같은 기자들이 폭풍과 같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녹음기, 마이크, 촬영용 카메라에 초대형 플래시가 달린 사진 카메라까지.
밀려오는 소음과 빛에 몽롱했던 형민의 넋은 그대로 몸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급기야 보안 게이트 앞에 처져 있는 펜스를 넘어서 형민에게 기자들이 달려드려고 하는 순간.
묵직한 손이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하아, 이 자식. 경기장만 떠나면 어리버리한거 아직도 안 바뀌었네.”
“누구···?”
선글라스를 착용한 190센터의 날렵한 장신이 형민의 손에서 여행가방을 뺏어 들었다.
형민의 고등학교 시절 내내 꿈에서는 악몽으로, 경기장에서는 든든한 동료로, 훈련장에서는 증오하는 상대로 나타났던 한국 국가대표팀의 베테랑 공격수 정태진이 고등학교 동창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자, 일단 닥치고 뛰어!”
190센터의 장신이 자신에게는 마치 핸드백처럼 작아보이는 여행가방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180센티의 깡마른 30대 남자의 팔목을 잡아끌고는 인천공항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야··· 아니··· 왜···?”
숨을 헐떡이면서 간신히 쫓아가는 형민.
“얌마, 쟤네들한테 붙들리면 오늘 내에 집에 못 가! 넌 에이전시도 없지?!”
“헉··· 에이전시가··· 헉··· 왜··· 헉··· 필요한···?”
“그래. 그렇게 혼자서 학처럼 고고하게 살아봐라. 퍽이나 잘 살겠다.”
은퇴 직전이지만 여전히 국가대표팀 주전 공격수인 현역 프로 선수와 은퇴한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프로 축구팀 감독으로서 훈련을 진행하면서 최소한의 체력을 관리했던 두 남자.
그 둘은 입국장에서 주차장까지 이어기는 긴 통로를 전력으로 질주해서 쫓아오는 기자들을 간신히 따돌렸다.
“여기야!”
차 문에 기대서 숨을 헐떡이는 형민에게 트렁크 문이 열리고 자신의 여행가방이 안으로 던져지는 소리와 함께 운전석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빨리 타!”
형민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조수석 문을 열자, 형형색색 장난감들이 널부러진 조수석이 드러났다.
“앗, 미안. 애들이 장난감을 던져놔서···.”
호쾌하게 한 손으로 장난감을 다 바닥으로 쓸어내린 정태진이 조수석을 두들겼다.
“빨리 타! 저 치들이 쫓아오기 전에!”
형민이 조수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채우기도 전에 이미 시동이 걸린 차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정신을 조금 차린 형민이 주위를 둘러보자 가장 발이 빨랐던 기자들이 한두명씩 주차장에 진입했지만, 빠져나가는 여러 대의 차들 사이에서 그들을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게 눈에 보였다.
다행히 태진의 차 창문에 쳐진 짙은 썬팅 덕분에 기자들에게 노출되지 않았다.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수석에 깊이 누워 있던 형민은 차가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가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자신도 모르게 쌓였던 긴장이 풀리면서 자리에 제대로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능숙하게 차를 몰면서 고속도로에 진입한 베테랑 공격수는 답답하다는듯이 형민에게 말했다.
“야, 넌 도대체 왜 전화를 안 받냐?”
“전화?”
형민이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찾아서 켜자, 갑자기 미친듯이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부재 중 전화가 50통 이상, 문자는 거의 200여건.
어머니와 아버지에서 온 건 몇개.
그걸 제외하면 모르는 번호에서 온 전화와 문자들이 대부분이다.
“어··· 이건 네 번호야?”
“그래, 임마. 저장을 좀 해둬라. 나도 김형민 감독을 안다고 주변에 자랑 좀 하게.”
“뭐래니.”
어처구니 없다는듯이 중얼거린 형민이 태진의 전화번호를 저장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들었다.
“내가 오늘 입국하는건 어떻게 알았어?”
“바보냐? 너E버 정면에 아예 배너가 떠 있다. ‘축구의 종가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김형민 감독님의 귀국을 환영합니다’라고.”
“엥?!”
평소에 잘 들어가보지 않던 녹색 웹사이트에 들어가자, 그 중앙에 강렬하게 떠 있는 영롱한 색상의 대형 배너에 형민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걱정되서 어머님이랑 아버님한테 연락을 드려보니까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계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공항에 픽업을 나간다고 말씀을 드렸지.”
“어머님이랑 아버님? 누구 어머님이랑 아버··· 우리 엄마랑 아버지?!”
“그래, 임마.”
“네가 우리 엄마랑 아버지 연락처는 어떻게 알아?”
“하아···.”
운전대를 잡고 있던 태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대학 간 다음에도 핸드폰을 안 만들어서 어머님 핸드폰으로 맨날 연락했잖아. 기억 안 나냐?”
“…사실 그 시절은 기억이 잘 안 나···.”
형민이 중얼거리자, 태진이 그를 힐끗 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서 도로를 주시했다.
“그래, 뭐···. 기억이 잘 안 날 수도 있지. 어쨌든, 그후로도 종종 연락을 드렸거든?”
“우리 엄마랑 아버지한테?”
“응.”
당연하다는듯이 대답하는 고등학교 동창을 어처구니 없이 바라보던 형민이 갑자기 뭔가 떠올라서 물었다.
“얼마나 자주?”
“뭐라고?”
“얼마나 자주 연락을 드렸는데?”
“뭐··· 1년에 한두번? 보통 설날이랑 추석 때에 한번씩 연락을 드리니까, 1년에 두 번 정도는 드리는 것 같은데?”
“네가 먼저 연락을 드리는거야?”
“당연한거 아니냐?”
정신 나갔냐는듯이 자신을 흘깃 바라보는 동창의 표정에 형민은 잠깐 머리를 감싸쥐었다.
자신이 부모님에게 드리는 연락 횟수에 대한 헬레나의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이래서 아들 자식은 키워도 소용이 없다고 하는건가···.”
“야, 나도 아들이거든? 난 부모님한테 연락 잘 드리거든?”
“그래, 잘난 효자여서 좋겠다.”
예전부터 이랬다.
훈련장에서 악몽과 같은 순간들만 아니었다면, 자신과의 넘어설 수 없는 격차만 아니었다면.
언제든지 믿음직하고 듬직한 동창.
실력이나 외모에 비해서 겸손하고 소탈한 태도 때문에 언제나 인기가 많았지.
잠시 옛날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안 좋은 기억들이 스물스물 올라오려고 하는걸 떨쳐내려고 일부러 주변의 도로를 살펴본 형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집 주변이 다 밀리고 공원이 만들어졌나? 왜 이렇게 수풀이 우거져 있어?
서울은 재개발되서 고층 건물들이 더 들어섰으면 들어섰지, 새로 공원을 만들지는 않았을텐데?
“야, 우리 어디로 가는거냐?”
“일찍도 물어본다. 어디로 가기는. 우리 집에 가지.”
“너네 집? 너네 집에 내가 왜 가?!”
형민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집이 아니라 내 별장이기는 한데··· 뭐 어쨌든.”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왜 너네 집에 가는건데? 난 아직 우리 부모님도 못 뵜다고!”
“하아···.”
운전대를 잡고 있던 장신의 동창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너네 집 앞에도 지금 기자들이랑 방송사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어. 아파트 관리실에서 동 안으로 진입하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막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출입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너네 집··· 아니지, 너네 별장으로 간다고?
“그래. 기자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어머님이랑 아버님까지 미리 모셔다드리고 공항 가는게 아슬아슬했다.”
이건 뭐지.
형민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난 왜 이렇게 주변 사람들한테 납치를 자주 당하는거야?
한참이나 더 달린 차가 도착한 곳은 주변에 듬성듬성 불빛이 보이는 시골이었다.
물론 대놓고 시골이라고 부르기에는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고 가로등도 잘 서 있었지만, 높은 펜스를 두르고 있는 2층이나 3층 집들이 서로 넓직하게 간격을 둔 채 아주 듬성듬성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파주. 뭐, 정확하게 말하자면 파주에서도 끄트머리쯤에 위치한 어딘가이지만, 어쨌든 행정구역상 파주야. 와이프가 주말에 도시에서 벗어나서 애들이랑 같이 자연도 즐기고 하고 싶다고 했는데, 마침 땅이 나와서 사서 집을 지었거든? 근데 요즘 세금이 장난이 아니다.”
집을 지을 때에는 하수도가 어떻고, 전기를 끌어오려면 한국전력과 지자치 단체와 복잡다난한 협의를 해야 하고, 막상 지었더니 겨울에는 매번 와서 수도관이 터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고, 여름에는 잔디 깎고 모기 잡고 쥐까지 잡아야 해서 귀찮은 일이 잔뜩이라고 투덜대는 동창을 보면서 형민은 놀랍다는듯이 중얼거렸다.
“…넌 정말 변한게 없구나.”
“뭐가? 얼굴이? 음, 내가 원래 동안이기는 하지. 훗.”
스스로의 농담에 만족스럽다는듯이 끄덕이는 동창의 모습에 형민도 피식 웃었다.
“아니··· 넌 예전부터 참 어른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도 변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라는거냐.”
처음에는 질투였고, 그 다음에 좌절감, 그리고 나서 포기 끝에는 존경심 정도였던가?
예전처럼 아프지는 않고, 담담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형민이 말했다.
“고맙다.”
“그래, 고마워해라. 아마 내일부터는 너랑 나랑 신문에 같이 도배될테니 덕분에 나도 당분간 여기에 같이 숨어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