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새로운 수석코치
잘 쉬었다고 말하기에는 인터뷰를 어떻게든 따내려는 기자들과 어떻게든 광고 제안을 들이밀어 넣으려는 기업 담당자들을 피해서 숨어다니느라 태진의 별장에서 몇번 나오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2주의 휴가를 보낸 형민이 번리로 돌아왔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감독에게 산적한 구단의 여러가지 현안을 업데이트 하기 위해서 핵심 경영진 회의가 소집됐다.
“저···.”
그렇게 산적해 있던 각종 안건들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되던 시점, 각종 사안들에 대한 논의를 경청하던 형민이 입을 열었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자, 형민이 질문했다.
“수석코치를 영입하는건 누구랑 얘기해야 하나요?”
아서의 빈 자리를 체감한 모두가 잠시 침묵한 가운데, 조너선 랜드리스가 애써 밝게 말했다.
“보통 수석코치나 퍼스트팀 코치 임명은 감독에게 전권을 주지요?”
조너선의 말에 마이크 갈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자네가 수석코치를 뽑고 싶다면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네.”
헬레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을 확인한 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계약 같은 세부적인 내용은···.”
“아, 그건 내가 지원해주면 되니까 나랑 상의하면 될 것 같아.”
이제 코치진의 영입과 처우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은 풋볼 디렉터 조너선 랜드리스가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형민은 번리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유럽 본토를 방문했다.
***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160킬로미터를 가면 독일에서 8번째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도시 라이프치히가 나온다.
지금도 독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고 평가받는 곳.
신성로마제국 시대부터 무역의 중심지였고, 지금은 독일 내에서 손꼽힐만큼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가운데 문화인과 예술인들까지 몰려들면서 활기가 넘친다.
이 활기찬 도시를 거점으로 낙점한 레드불 풋볼 그룹은 2009년에 독일의 5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던 SSV 마크란스타트를 인수하고 RB 라이프치히로 개명.
2016/17 시즌에는 독일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 진출까지 성공하면서 라이프치히를 스포츠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도시로 변모시켰다.
이렇게 경제, 스포츠,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라이프치히의 명물은 1409년에 설립되어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라이프치히 대학.
라이프치히 대학의 졸업생 중에 문과 쪽으로 독일 문학의 거장 괴테나 철학자 니체가 있고, 근대에는 이과 쪽으로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4명이나 배출하면서 문과와 이과 양쪽에서 위용을 뽐냈다.
그렇게 3만명의 재학생을 자랑하는 명문 라이프치히 대학 근처의 한 카페에 젊은 동양인 남자가 들어섰다.
“형민! 여기야!”
카페 입구에서 서서 복잡한 카페 내부를 두리번거리는 남자를 한쪽 구석에 미리 자리를 차지한 선객이 불렀다.
손을 들어서 위치를 확인했다는 표시를 한 형민은 바로 나온 커피를 들고 상대가 기다리고 있던 테이블로 향했다.
“오랜만이야.”
“그러게, 누가 할 말을!”
악수와 가벼운 포옹으로 반가움을 표한 두 사람은 미리 선객이 맡아두었던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시작했다.
“야, 근데 여긴 좀 시끄럽지 않아?”
형민의 말에 상대가 진한 금빛의 눈썹을 들어올렸다.
“구단이 모르는 조용한데서 보자고 했잖아? 라이프치히 기준으로는 이게 조용한거라고. 봐, 아무도 우리 신경을 안 쓰잖아.”
형민은 그 말에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다.
워낙 번화한 도시였기 때문에 대학가에 위치한 카페의 젊은 손님들은 옆에 앉아 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가 지난 시즌에 프리미어 리그 번리의 감독을 맡아서 돌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채 자신들 만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네. 요즘에는 거의 바깥 출입을 못 하거든.”
“훗. 그게 유명세라는거지. 번리는 엄청 시골이라며? 아마 문 밖에만 나가면 구름처럼 군중들이 몰려들지 않아?”
“음···구름이라고 할 만큼 번리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하지만 좀 불편하기는 하지.”
어떤 가게를 가도 당장 줄의 앞으로 건너뛴다던가, 식당에 가면 기존에 있는 손님을 내쫓고 가장 좋은 자리를 준다던가 (사실 보통은 기존에 있는 손님이 먼저 일어나서 자리를 내주기는 했다), 뭘 사도 공짜로 하나 더 받는다던가.
아니, 아예 돈을 안 받으려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맥도날드에서도, 스타벅스에서도 모세의 기적처럼 앞에 있던 줄이 증발한다.
자신을 발견한 번리 주민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기억한 형민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한국에서 짧게 머물렀던 2주가 더 심하면 심했지, 번리 정도면 상당히 교양이 넘치고 느긋한 편이었다.
그런 생각에 잠긴 형민을 바라보던 상대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라이프치히까지 와서 하고 싶다는 얘기가 그런 하소연이었어? 아이고, 우리 강아지··· 밖에 나가서 산책도 못 하니 불쌍해서 어쩌나?”
“아오. 그런게 아닌거 알잖아.”
“흐흐흐. 알지. 알기는 알지.”
피식 웃는 금발의 상대에게 형민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어, 나 이 표정 알아. 뭔가 진지한걸 말하고 싶은 형민 김.”
“아씨··· 좀 조용히 들어봐.”
키득키득 웃는 친구를 타박한 형민이 진지하게, 하지만 방금 전까지의 무게는 빼고 말했다.
“번리에 와라.”
“내가 왜?”
“와서 수석코치를 해줘.”
“흠···. 근데 너, 수석코치가 있지 않았어?”
형민의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아서는 이번에 은퇴해. 몸이 좀 안 좋거든.”
“아, 저런···.”
잠시 진지한 표정을 지은 상대가 다시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근데 내가 왜 번리 시골 촌구석에 가야되는데?”
“수석코치를 시켜준다니까?”
“난 여기서도 인정을 많이 받는데?”
“아무리 너가 레드불이랑 라이프치히에서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감독이랑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상 퍼스트팀 코치가 되려면 한참 더 남았잖아.”
“글쎄?”
친구의 시큰둥한 반응에 형민이 큰 마음을 먹고 준비한 수를 던졌다.
“그럼 주급도 올려줄께!”
“그거 안 받아도 나 돈 많아.”
“으윽···.”
필승의 제안을 던졌지만 이빨도 안 먹혔다.
성공한 프로 축구선수로 아마 지금 번리 선수들 중 상당수보다 더 많은 주급을 받았을 친구를 형민이 짜증스럽게 바라보다가 마지막 수를 던져보았다.
“그러면 컵 대회는 네가 지휘해.”
“유로파도?”
“야, 그럴거면 네가 와서 감독하던가!”
“흐흐흐. 그야 그렇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은 형민이 벌컥 화를 내자, 자신도 농담이었다는듯 키득키득 웃은 상대가 조금 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뭐. 컵 대회 지휘는 됐고. 근데 진짜로, 왜 나한테 오라는거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네가 세부 전술이 제일 좋고···.”
“…좋고?”
“…퍼스트팀 코치나 수석코치로 단기간에 올라서기 제일 힘드니까.”
형민의 진지한 말에 상대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오랫동안 보아오면서, 상대가 그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할 때의 태도라는 것을 아는 형민이 말을 이었다.
“나는 네 능력을 아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걸 완전히 인지하거나 인정하기 전에 낚아채겠다는거지. 너한테도 기회가 될 수 있고. 솔직히 내가 너보다 능력이 더 좋아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건 아니잖아? 그냥 운이 좋았던 것 뿐이고.”
식어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형민이 말을 이어갔다.
“번리로 오면 적어도 지금보다 더 많이 노출되고, 더 네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거야. 번리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너 정도의 실력자를 감독도 아닌 수석코치 정도로 데려올 수 있는건 아니니까.”
“…뭐 유망주만 쇼케이스 하는게 아니라 코치까지 쇼케이스하겠다니, 참 너도 대단하다.”
형민이 그저 미소를 짓는 가운데,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나도 생각해볼께.”
“어··· 지금 결정해주는거 아니야?”
당황한 형민의 질문에 상대가 팍 짜증을 냈다.
“장난해?! 지금 이직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인줄 알아? 그것도 독일에서 영국까지 가야되는데?”
“아, 그렇구나.”
생각하지도 못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한 형민의 표정에 상대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내가 너보다 능력이 좋다고 말한건 받아줄 수 없어. 적어도 자신의 전술을 팀에 입히면서 색깔을 더해가는건 너가 최고라고 엔느-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에서도 모두가 동의한거니까.”
“고마워. 그럼 와준다는거야?”
“아, 그냥 꺼져!”
***
일주일 뒤, 형민의 안내를 따라서 구단 사무실을 가로지르는 사람을 발견한 번리 풋볼 클럽의 직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야, 저거 혹시?”
“…정말?! 진짜네!”
놀라움으로 웅성대는 직원들을 뒤로 한채 손님을 이끌고 헬레나의 집무실 문 앞에 도착한 형민이 가볍게 그녀의 문에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헬레나의 답변을 확인한 형민이 문을 열고 대표이사 집무실에 들어섰다.
“아, 형민!”
자리에 앉아서 손을 들고 형민을 반갑게 맞이하던 헬레나는, 형민을 따라서 들어온 사람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분은 누구신가요?”
왠지 모르게 힘이 들어간 헬레나의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형민이 소개했다.
“이번에 새로 퍼스트팀의 수석코치로 영입한 제 친구입니다.”
180센티의 장신에 긴 금발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30대 중반의 활기찬 미녀.
형민의 소개에 그녀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헬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새롭게 번리 풋볼 클럽 퍼스트팀의 수석코치로 부임한 카롤리나 슈테판이에요.”
“반가워요. 번리 풋볼 클럽의 대표이사인 헬레나 카트라이트입니다.”
어라, 뭔가 방금 불꽃이 튄 것 같은데? 왜 불꽃이 튀지? 형광등이 고장났나?
짧은 단발의 헬레나와 긴 장발을 뒤로 질끈 묶은 카롤리나가 하늘처럼 파란 두 쌍의 눈을 빛내면서 서로를 뜯어보는 가운데,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든 형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형광등을 올려보았다.
***
프리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영입된 수석코치의 정체를 확인한 번리의 선수단은 별다른 감흥이 없는 가운데 (사실 선수들이 하도 많이 교체되고 있어서 다들 얼떨떨하다), 레드불 풋볼 그룹 소속인 RB 잘츠부르크 출신의 유망주 두 명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으아악! 왜 하필이면?!”
“잘츠부르크로 돌아간다고 하면 안 받아주실까?”
“마크 이사님이 퍽이나! 이미 이적료 지급도 다 끝났다고!”
번리 임대생 숙소 (임시) 거실 소파에 널부러져서 게임에 집중하던 번리의 수비 유망주 네이선 콜린스가 의아해하면서 바닥에 주저 앉아서 좌절하고 있는 카림 아데예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누군데 그래?”
“카롤리나 슈테판! 카롤리나 슈테판을 몰라?!”
“어··· 이름은 들어본 것 같기도?”
소파 반대편에서 역시 게임에 열중하던 드와이트 맥닐이 갑자기 일시정지를 누르면서 외쳤다.
“아, 누군지 알겠다!”
카롤리나 슈테판, 36세.
아버지는 독일인, 어머니는 이탈리아인, 본인은 오스트리아에서 출생.
여자 축구를 풍미했던 스타 미드필더.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독일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여자 월드컵 우승을 2번이나 이끌었고.
클럽 커리어로는 유럽 최강을 자랑하는 여성 프로팀인 올림피크 리옹 페미닌에서 2010/11 시즌부터 플레잉 코치로 뛴 2016/17 시즌까지 리그앙 7연패, 챔피언스 리그는 4번 우승.
성공적인 선수 생활 후 30대에 접어들면서 지도자로 전환했는데, 신기하게도 여자팀이 아니라 남자팀 코치를 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그녀는 “남자도 여성팀 감독이나 코치를 하는데, 굳이 여자가 남성팀 감독이나 코치를 못 할 이유가 뭔가요?”라고 당당한 발언을 내뱉으면서 한동안 세간의 주목을 받았었다.
가까스로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를 네이선 콜린스와 공유한 드와이트 맥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뭐가 문제야? 선수 생활도 훌륭했고, 코치로서도 딱히 뭔가 안 좋은 얘기를 들은게 없는데?”
번리 팬들이 애지중지하는 젊은 에이스의 질문에 레드불 풋볼 그룹을 경험한 니콜라스 세이왈드와 카림 아데예미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가 동시에 드와이트 맥닐의 순진무구한 얼굴로 눈을 돌렸다.
“그분이 코치 생활 초기에 RB 잘츠부르크에서 유소년 코치를 하셨거든? 너··· 잘츠부르크에서 슈테판 코치님 별명이 뭐였는지 알아?”
“뭔데?”
“더 베스타터 (Der Bestatter).”
“…그게 무슨 뜻인데?”
“저승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