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avior of a Perish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아포피스 (2)
며칠 후, 결국 나는 차우재를 통해 블랙 마켓에서 산 퀘스트를 받았다.
[바나흐의 염원]– 바나흐의 기도 조각을 모아서 하나로 만들어라.
– 보상 : 바나흐의 목걸이
“이딴 게 10억이라니.”
아직 무기를 완성하기도 전인데 벌써 –10억을 까고 시작했다. 재룟값이 최소 10억이니까, 못해도 10억이 넘는 무기가 완성되어야만 수지타산이 맞았다.
[호구는 우재가 아니라 너 아니냐?]“크아아악!”
내가 발작하자 스승님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아놔.
‘부지런히 하면 한 달 정도면 할 수 있겠네요.’
그 대신 대한민국에 있는 바나흐의 던전은 전부 돌아야겠지만, 다행히 그건 차우재가 어떻게든 따내 준다고 했다.
[최성호는 어떻게 할 거냐?]볼일을 마친 후, 이프리트는 정령계로 돌아갔다. 일이 있으면 부르라고 했던가. 이젠 정규 계약이라 필요하면 언제든 부를 수 있었다.
게이트 내부가 아니라면 그냥 말하는 파이어 다람쥐에 지나지 않아서 무슨 쓸모가 있나 싶긴 한데 아무튼.
타앙.
‘이면 게이트에 같이 가자고 해서 사고사로 위장…… 이런 거 하면 안 되겠죠?’
[할 수는 있고?]‘괜찮은 게이트를 물색해 보는 수밖에요. 아니,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니까요.’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악령에, 고요의 마녀를 숭배하는 혁명가에, 이게 뭐람? 역시 쌔함은 과학이다.
‘그 사람 말이에요. 저를 이면 세계의 저항군쯤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이용하면 어떨까 싶긴 해요.’
[상관없는데, 세계 연합 쪽이랑만 얽히지 마라.]스승님은 여전히 내가 세계연합에 발을 들이는 걸 경계하고 있었다. 평택에 있다고 했던가? 내가 아는 그 세계연합은 뭐랄까, UN 같은 존재였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하여튼 뭔가를 계속 열심히 하긴 하는데, 와닿진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엮이면 안 돼요?’
[지금 네 수준으로는.]‘최대한 조심하겠습니다.’
스승님이 괜히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도 모르진 않았다.
타앙.
쏘아진 마탄에 맞은 과녁이 뒤로 넘어갔다. 슬슬 명중률이 올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이만하면 대가리에 총을 겨누고 쏘진 않아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악.
그때, 옆에서 마탄이 날아오더니 말도 안 되는 궤도로 휘며 내 표적을 스치고 지나갔다.
표적이 흔들렸고, 그 탓에 명중하지 못했다. 아씨, 10점짜리였는데.
고개를 확 돌려 옆을 바라봤다. 근데 어떻게 하면 남의 표적에까지 쏠 수 있는 거지?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네요.”
딱 봐도 키가 커 보이는 여자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보다 키가 큰 것 같은데.
“예.”
조심 좀 하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그냥 참았다.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다.
타악.
틱.
여자가 쏜 총은 말도 안 되는 궤도로 꺾이더니 계속해서 내 표적을 침범했다. 심지어 ‘이게 되네’ 싶을 정도로.
이쯤 되니 못 맞히는 게 아니라 일부러 안 맞히는 건 아닐까. 아니라면 시비를 거는 게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티잉.
“거, 좀 살살 쏘면 안 될까요?”
“예에…….”
타아악.
“일부러 그러시는 겁니까?”
“일부러는 아니고…….”
탁.
이젠 하다 하다 내 표적을 맞혀서 쓰러트린다.
“혹시 뭐 잘못했어요?”
“진짜, 진짜 실수로 쏜 거라니까요!”
“그럼 어떻게 그쪽 마탄이 계속 이쪽으로 오는 건데요! 실수도 한두 번이지!”
“장비가 이상한 것 같아요!”
“총 바꾸는 거 다 봤거든요?”
중간부터 여자 때문에 도저히 집중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여자의 총은 왼쪽으로만 휜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멀쩡하거든. 아니, 대체 왜? 왼쪽 성애자야 왜 이래?
나는 총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불만 있으면 말로 해요.”
“그런 건 아닌데……. 아씨, 나도 좋아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거든요? 명중률 40 이하면 총을 안 빌려준다는데 어떻게 해요!”
40점 이하라니, 심지어 무한으로 시도해서 한 번만 40점을 넘기면 빌릴 수 있는 게 마탄총이었다.
그 말은 저 여자가 40점 이상의 명중률을 보인 적이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람인가?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아 주실래요?”
“그냥 쳐다본 건데요.”
“거짓말! 와 40점? 인간인가? 실화인가? 이런 얼굴이었다구요.”
명중률은 낮으면서 심리는 잘 파악하네, 어이가 없다.
“……그렇게 명중률 낮으면 그냥 안 빌리는 게?”
“그러고 싶은데요. 요즘 세상이 좀 많이 흉흉하잖아요.”
“근데 그 실력이면 개머리판으로 패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진짜로.
대가리에 총 겨누고 쏴야 하는 사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옆에 있었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근데 사촌 언니가요. 개소리하지 말고 총이나 챙겨, 뒈지고 싶어? 이러면서 협박하는데…….”
“사촌 언니가 하는 말이잖아요. 굳이 들을 필요 있나?”
“언니가 좀 무서워서. 그리고 그,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카드 정지시켜 버리겠다고 협박해서요.”
“사촌 언니가 누구길래.”
근데 부모도 아니고 언니한테 용돈 받아서 타 쓰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황당하다며 눈을 깜박이자 여자가 슬그머니 내 쪽으로 다가와선 속삭였다.
“정세림인데요.”
“아……. 음.”
나는 머리 위에 떠 있는 스승님을 흘끔 봤다.
정세림.
그녀는 현재 청영 길드에 머무르고 있는 김도진의 또 다른 제자였다.
“그쪽은 이름이 뭔데요?”
“알아서 뭐 하게요? 사촌 언니 이름 들으니까 관심 생겼어요?”
“그냥 이름도 못 물어보나. 됐거든요! 누가 보면…….”
“저기요. 연습 안 하실 거면 나가 주세요.”
나와 그녀는 사이좋게 쫓겨났다. 근데 아무리 봐도 나 때문이 아니라 저 여자가 민폐인데, 차마 내쫓을 건덕지가 없어서 겸사겸사 쫓아낸 것 같단 말이야. 아님 말고.
“그래서 이름이 뭐라구요?”
“정서희요.”
“최수혁입니다.”
“그래서요?”
“커피나 한잔 사요.”
“제가요?”
“양심이 있으면?”
내가 슬쩍 떠 보자, 정서희가 눈치를 봤다.
“좋아요. 대신 제가 가자는 데로 가요. 저 길드 카페는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왜요?”
“커피가 맛이 없어서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암, 그럴 수 있지. 원래는 두 시간 정도는 더 있다 나오려 했으나,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왔기 때문에 나도 시간이 비었다.
정서희와 함께 길드 건너편에 있는 카페로 갔다. 개인이 하는 카페 같은데, 엔티크한 분위기와 오밀조밀한 가구들까지 알 만한 사람들만 아는 맛집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커피를 시켰고, 그녀는 초콜릿이 잔뜩 올라간 음료를 시켰다. 어차피 저런 거 시킬 거면 그냥 길드 카페테리아에서 먹어도 되는 거 아닌가.
[그 꼬맹이군! 못 본 사이에 키가 많이 컸네.]‘아는 사이예요?’
[세림이 그놈 따라다니던 애송이다. 친하진 않아.]‘그렇군요.’
아무튼 정세림의 사촌일 뿐, 아는 건 없다는 결론. 차우재와의 일이 정리가 되면 정세림을 공략해 볼까 했는데 마침 잘됐다.
나와 정서희는 가볍게 잡담을 나눴다.
정서희는 4성이라고 밝혔다. 작년에 4성이 됐다고 하니 추측 레벨은 30대 초반 언저리였다.
정세림의 사촌이라고 하길래 너무 고렙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의외로 또 그렇지도 않았다. 정서희는 각성자가 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고 했다.
“저도 4성 찍은 지 얼마 안 됐어요.”
“얼마 안 됐다는 건?”
“30렙이라는 거죠.”
뻥이다. 33렙이다. 한동안 재료를 구하겠다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녔는데, 그사이에 레벨업을 했다.
근데 그걸 굳이 정서희에게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4성이라는 건 거짓말이 아니니까.
레벨이 비슷한 덕분인지 우리는 금방 대화가 통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바나흐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엥? 바나흐를 한 번도 죽여 본 적이 없다고? 왜?”
정서희는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털털한 성격 덕에 금방 말을 놓았다.
근데 작년에 4성이 됐는데 바나흐를 한 번도 죽여 본 적이 없다는 건 좀 의외인데.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파니타 공격대는?”
“작년까진 있었는데 올해는 그 뭐냐, 쉬고 있어! 넌?”
“난 아직까지 혼자이긴 해.”
“딜러랬지? 바나흐 쓰러트릴 거야?”
“아마도?”
나처럼 다섯 번 내리 가는 미친놈은 없지만, 바나흐는 4성 때 한두 번 정도는 죽이고 가는 몬스터였다.
“그럼 파티가 있는 게 좋지 않겠어?”
“그게 낫긴 하지? 언제까지 혼자 다닐 순 없으니까.”
“나는 어때?”
“응. 안 해.”
커피를 다 마신 나는 벌떡 일어나며 몸을 확 돌렸다. 놀란 정서희가 내 앞을 막았다.
“최소한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
“안 들어도 알겠는데?”
“…….”
“작년에 4성인데 바나흐 공략을 한 번도 안 해 봤고, 파티도 없어, 근데 딜러나 마법사는 또 아니고…….”
혹시 활을 쏘는 건 아닌가 싶긴 했는데, 마탄총 실력을 보니 활일 리가 없다. 그 명중률로 사수면 활에 대한 모욕이다.
내가 정서희에게 내린 평가는 다음 같았다.
‘이상한 직업이다!’
그도 그럴 게 직업 이야기를 조금도 안 했거든.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정세림의 사촌이니까 뭐? 딱히 이득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구만.
“다른 데 가서 알아봐! 훠이, 훠이! 커피 잘 마셨다?”
친구는 되어 주겠지만 파티는 흠, 글쎄.
“정말 5분이면 돼!”
내가 카페를 나오자 정서희가 따라붙었다. 도를 아십니까도 아니고 왜 이러실까. 성큼성큼 걸어온 그녀가 두 팔을 벌리며 내 앞길을 막았다.
“딱 5분만.”
“젠장, 말해 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나 탱커야. 탱커면 좀 괜찮지 않냐?”
아, 물론 여자라는 것에 디메리트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파티를 못 구할 것 같진 않은데?
“수상하…….”
“언니가 추천해 준 팀 말이야. 하나같이 개차반이었어. 생각해 봐, 정세림의 사촌 여동생이잖아.”
“그게 뭐?”
“보통은 ‘뭐?’라는 반응이 아니라고. 팀원으로 받았는데 죽기라도 해 봐.”
“잘은 모르겠지만 만약 그랬다가는 정세림의 마법이 내 머리통을 태워 버릴 거라는 사실은 알겠네.”
그래도 사촌인데 그 정도는 하지 않을까.
“내 말이 그거라니까? 난 싸우러 간 거지, 보호받으러 간 게 아니야.”
“그걸 원했으면 사촌 언니가 정세림이라고 말하지 말았어야지.”
“그건 그냥 엿이나 먹으라고 한 소리… 아니,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지금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앞에 한 말이 진심이지 않을까?
“아무튼 나도 바나흐 가고 싶었어. 근데 바나흐 공략에는…….”
“제대로 된 탱커가 필요하지. 깍두기 말고.”
그렇다고 정서희를 데리고 가자니 만약의 일에 사고가 났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한 모양이었다.
“바나흐 갈 거지? 나 껴 줘.”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생각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데?”
“뭘. 내가 탱킹하다가 뒈지면 우리 언니한테 통구이 되는 상상?”
“어.”
“거짓말.”
“…….”
“너 우리 언니 안 무서워하잖아.”
들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