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avior of a Perish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0
20화 동대문 인력 시장 (5)
김도진은 요화에 대해 말하며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사실 내 생각도 그렇다.
요화를 죽이기 전까지 이능 개화를 하면 안 된다는 건, 이능 개화 없이 그녀를 죽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20레벨 이후로 할 수 있는 이능 개화는 각성자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이벤트였다.
[솔직한 대답과 아닌 대답이 있다.]‘솔직하면 했지, 아닌 대답은 또 뭐예요?’
[스승으로서 제자를 응원할 수도 있지.]‘전 현실적인 게 좋아서요. 희망 고문이라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당했습니다.’
[애늙은이 같은 소리 하기는.]그렇지만 사실이다. 반복 회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만 믿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헛된 희망을 가지면서 꿈에 부푸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낫잖아.’
[뭘 해?]‘실패했을 때의 플랜도 세워 둬야죠. 죽지 않으면 어떻게든 되니까요.’
그래서 궁금했다. 김도진의 눈으로 보고 있는 내 실력은 어느 정도일지. 그가 점친 나는 몇 점일지 말이다.
[이 할이다.]‘실패할 확률이요? 이야, 생각보다 높은데요?’
[네가 계획대로 얼음 마녀를 죽일 수 있는 확률.]‘그래도 제 생각보단 높네요.’
[이 할이?]‘일 할은 아니잖아요.’
가챠 겜도 쓰알 확률이 이 할이면 혜자 소리 듣는다. 물론, 내 인생의 코인은 한 번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말이다.
[긍정적인 건지, 아니면 태평한 거냐?]‘둘 다라고 합시다. 아, 그런데요, 요화를 죽이고 정수를 먹으면 그쪽 테크를 타는 거 아니에요?’
내 이능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능 개화만큼이나 중요한 게 정수였다. 정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탤런트는 딱 3개로 한정된다.
그러니까 탤런트가 귀한 거지만, 말인즉 어떤 정수를 먹냐에 따라서 싸움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의미였다.
[왜? 생각해 둔 거라도 있어?]‘그런 건 아닌데요. 얼음 마녀면 마법사잖아요.’
[마법사 별로냐?]‘이제 와서요? 그야 할 수 있으면 좋긴 한데…….’
현실이랑 이상은 다른 법이었다. 마법사가 될 만한 자격을 가진 녀석들은 마력량부터가 달랐다.
내가 근딜에 검을 들기 시작한 것도 처참할 정도로 낮은 마력량 때문이었다. 이능 개화를 한다고 해서 낮은 마력량이 갑자기 늘어날 가능성은 낮았다.
게다가 마법사는 혼자서는 뭘 하기가 힘들지 않나. 마법을 익히기 위해선 골드도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괜히 마법사가 귀족 대우를 받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마법사들은 대부분 태생부터 금수저인 경우가 많으니까.
[걱정 마라, 그거 먹는다고 네가 마법사가 되진 않을 테니까. 뭐, 마검사 정도는 괜찮지 않겠냐?]‘그쪽이 더 희귀한 거 같은데 말이죠. 쩝, 좀 아쉬워서 그래요.’
[뭐가?]‘모처럼 좋은 스승님을 찾았잖아요. 기왕이면 스승님이 가는 대로 따라가고 싶었죠.’
[내 제자들 중에 나랑 비슷한 놈이 있긴 하더냐?]‘무한검제가 있잖아요.’
무한검제 이호혁.
그는 김도진과 같은 근접 딜러에 김도진의 스킬을 그대로 전수받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이었으나 스승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내가 되려 하지 마라. 어리석은 짓이야.]‘그건 알죠. 근데 서운해서 그럽니다. 서운해서.’
내가 대놓고 서운함을 토로하자 스승님이 곤란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만약, 업경에 대해 더 빨리 알았다면 누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챙겼을 거다.]스승님은 자기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케이스니까. 매번 업경에 대한 걸 놓쳤다고 한다.
‘하지만 확정이라 해도 3개 중에 한 개라면서요.’
정수는 네임드 몬스터의 이능에서 일정 확률로 떨어진다. 요화가 가지고 있는 이능은 총 3개로, 그중 하나가 랜덤으로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확정으로 정수를 얻는다고 해도 3개의 능력 중에 어떤 것이 뽑힐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거기서부터는 정말로 운의 영역이었다.
[어떤 게 나오든 이득이지.]‘쩝, 그건 그래요. 세 개 다 사기긴 하더라구요. 근데 스승님.’
[아, 또 왜?]내가 계속 말을 걸자 스승님이 귀찮다며 짜증을 냈다. 거, 어차피 말 들어 주는 사람 나밖에 없는데 너무한 거 아닌가.
‘무한검제에게 검을 전수하신 거 후회하십니까?’
[눈치 빠른 새끼.]스승님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더 묻지 않았다.
나는 다를 거라고, 이호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그 얘길 하는 건 요화를 쓰러트리고, 무사히 양자의 탑에서 나온 이후여야 한다.
아침 식사가 끝나 갈 무렵, 이면 게이트에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걸어 나왔다. 전부 남자로 이뤄진 그들은 우리가 담당하게 될 이면 게이트를 돌고 있던 팀이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나와 함께 라면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고 있던 윤서진이 벌떡 일어났다.
“오! 끝난 모양인데?”
“잠깐만, 형.”
나는 윤서진을 말리며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우리가 들어가기로 한 이면 게이트는 D급, [주인 없는 아훌의 집]이었다.
땅굴개미의 정식 명칭은 아홀이었으나. 생긴 게 개미처럼 생겼고, 대부분의 지형이 지하 동굴이기에 한국에선 편하게 땅굴개미라고 부른다.
주인 없는 아훌의 집 자체는 그렇게 강하진 않았다.
‘막 이능을 얻은 3성 각성자 한 명에 10레벨 후반대로 구성된 팀. 거기에 마법사도 없고, 탱커도 없단 말이지?’
딱 봐도 뺑뺑이를 돌기 위해 급조해서 만든 팀이었다.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진 않았다.
날조해서 만들든, 자기들끼리 뭉치든 일만 잘하면 상관이 없다. 문제는 일을 똑바로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저 인원이라면 보스방까지 찍고 돌아오는 데 1시간은 걸려야 했다. 45분은 너무 짧다.
“좋아, 다음 던전으로 이동…… 뭐야?”
나는 조장인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는 20대 후반의 장준석이라는 남자였다. 그는 내가 입고 있는 작업복을 위아래로 훑더니 말했다.
“아, 니들 게이트라면 방금 끝내고 왔다. 들어가도 돼.”
그가 빨리 다음 게이트로 넘어가야 한다며 몸을 돌렸다.
“끝 방까지 돌고 온 거 맞냐?”
“…….”
“뭐?”
“끝 방까지 찍고 온 거 맞냐고.”
“새끼가, 왜 반말이야?”
“마법사도 없는 팀이 45분 만에 끝방 찍고 돌아왔다고? 니들 대충 한 거 아냐?”
“우리가 빙신으로 보이나. 내가 개미굴만 몇 번째 들어간 줄 알아? 문제없으니까 꺼져!”
“나중에 문제 생기면 책임은 져라.”
“하, 새끼 말 더럽게 안 듣네. 노가다 뛰는 주제에 조용히 들어가면 될 것이지. 안에 몬스터라도 남아 있을까 봐 쫄리냐? 응?”
그가 노골적으로 겁을 줬다.
“남아 있어 봤자 땅굴개미 한두 마리 정도겠지. 그 정도는 니들이 잡아. 그것도 못 잡는 머저리들이 꼴에 각성자라고 깝치기는.”
뭐, 대충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윤서진도 그만하라며 나를 말렸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다들 교묘하게 장준석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행실이 안 좋았나 보군. 하긴 말하는 싸가지만 봐도 각이 나오긴 하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장준석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때 내 얼굴을 보더니 작업반장 하나가 빠르게 달려와 장준석에게 속삭였다.
“뭐…?”
박대식에 대해 말한 모양인지 장준석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버스 기사들 입장에서도 노가다꾼을 데려다주는 박대식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괜히 밉보였다가는 어줍잖은 놈들이 마석 노가다를 하러 들어올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장준석이 몸을 확 돌리며 들으라는 듯 소리를 높였다.
“새끼, 넌 박 사장 때문에 산 줄 알아라.”
“문제 생기면 정식으로 책임지라고 할 거다.”
“또라이 새끼, 그럴 일 없으니까 일이나 똑바로 해.”
그가 나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더니 떠났다. 장준석이 가자 윤서진이 다가왔다.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야? 별일 없겠지.”
“형, 사고는 그러다가 나는 거야.”
“땅굴개미 몇 마리 남아 있는 정도쯤이야.”
“땅굴개미가 문제면 나도 안 이랬지.”
여왕이 버리고 간 땅굴개미의 던전의 보스는 여왕개미의 호위인 아울이었다. 통칭 기사 개미로, 여왕을 지키던 호위 놈들이다.
그놈들은 여왕의 방 앞에 위치해 있었다. 가끔 스피드런을 하려는 놈들 중에서는 여왕개미의 방까지 확인하지 않고 보스만 처리하고 나오는 놈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빈방이긴 한데, 10% 확률로 새 여왕개미의 알이 탄생한다는 게 문제지.’
그럼 그때부터는 D급 쩌리 게이트가 아니라 30~40레벨대의 C급 게이트가 된다. 알이 있으면 부수면 되지만, 그걸 방치하면 골치가 아팠다.
“에이, 너무 신경 쓰지 마.”
내가 뭘 걱정하는지 모르지 않는 윤서진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반복 회귀에 갇히기 전의 나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같은 일을 겪다 보니, 사소한 변화에 무척 민감해졌다.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에 스승님을 보았다.
‘스승님도 제가 예민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조금?]‘쩝.’
스승님까지 저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도 그렇지 솔직히 장준석인지 하는 놈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알겠어.”
“들어갈 준비나 하자.”
가방을 챙겨 윤서진과 함께 장준석 일행들이 나온 게이트 내부로 들어갔다.
아훌의 집은 넓은 길게 이어진 땅굴처럼 생겼다. 하나로 된 길을 지나가자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오, 진짜 활이네.”
이면 게이트로 들어온 윤서진의 어깨에는 활이 메여 있었다. 각성자 중에서 활을 쏘는 사람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렵게 산 거야. 이면 게이트에서 쓸 수 있는 무기는 비싸잖아.”
“하긴, 활 같은 건 더 비싸지. 수요가 없으니까.”
그만큼 구하기도 어려웠다. 때깔이 좋은 게 산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나와 윤서진은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윤서진이 왼쪽이었고, 내가 오른쪽이었다. 동굴 벽 한쪽에는 성인 남성만 한 아훌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새끼들, 정리도 안 해 주고 나오냐.”
어쩐지 빨리 나올 때부터 알아봤다. 하여튼 어딜 가나 있다. 마석을 캐는 우리는 을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들이 갑이라 생각하는 놈들이.
나중에 박대식에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시체와 함께 벽 곳곳에 검은 덩어리들이 눌어붙어 있었다.
아훌은 몸에서 나오는 점액을 이용해 마석들을 벽에 붙여 보관하는 습성이 있었다. 저걸 뜯어내는 게 노가다꾼들이 할 일이었다.
나는 마석을 무시한 채 곧장 길의 끝으로 달려갔다. 아훌의 집은 지리 패턴이 정해져 있어서 길을 외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중간 지점에서 멈춰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끝방 확인해 보는 거 아니었나?]‘안 가도 될 것 같아요.’
여기서 왼쪽 길이라면 여왕의 방은 내가 온 방향이 아니라 윤서진 쪽에 있었다.
‘양자의 탑에 들어가기 전에 확인하고 싶었는데.’
윤서진이 있는 곳까지 돌아갔다가 양자의 탑에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냥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