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0)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0화(10/278)
10화.
켄의 말에 나는 얼굴을 굳혔다.
“부집사장이?”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황태자궁 장부를 살펴본 결과 지출내역 중 상당 부분이 누락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건 뭐…… 대놓고 돈을 빼돌려서 장부만 가지고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의자에 등을 깊숙하게 기댔다.
부집사장과 시녀, 하인들을 완벽한 명분으로 몰아낼 수 있어 기뻤지만, 막상 황태자궁의 예산을 그들이 횡령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충격도 컸다.
‘이걸 좋아해야 되는 건지, 싫어해야 되는 건지. 이 사건이 밖으로 퍼지면 내 무능력은 한층 더 증명 되겠어.’
내가 쓰게 웃자 켄이 한숨과 함께 덧붙였다.
“황태자궁 예산을 빼돌린 건 비단 부집사장뿐만이 아닙니다. 부집사장은 예산 자체에서 횡령했지만 시녀, 하인들은 황태자궁 집기를 내다 팔거나 식재료를 빼돌리는 등 다양한 비리를 저질렀습니다.”
켄이 혀를 찼다.
“전하도 전하이지만 게일 님도 잘못입니다.”
거침없이 지적하는 켄의 목소리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 게일의 잘못은 없었다. 그는 나 한 명 호위하는 것도 바쁜 사람이니까.
“게일은 직책만 집사장이지 본분은 호위 기사이다. 무능력한 내가 황태자라는 자리에 있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너 정도의 머리라면 충분히 짐작하겠지.”
켄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군요. 게일 님의 직책만 생각했습니다.”
“그는 황제도 탐내는 인재야. 내 옆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되지.”
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내가 피식 웃었다.
“왜? 황제라는 표현이 이상한가?”
“이상하지는 않습니다만 다소 불경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증거를 찾았으니 내일 게일과 함께 부집사장, 시녀, 하인들을 모조리 구금해. 그냥 쫓아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니까.”
“더 조사하실 게 있습니까?”
켄은 장부와 몇 가지 정황 증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모두 애트란 가문 아카데미 출신이야. 분명 테드와 끈이 있겠지.”
켄도 내 말에 동의했다.
“당연하죠. 테드 칼 레오드는 차기 황제로 가장 유력한 황자입니다.”
황태자인 나를 앞에 두고 켄은 거침이 없었다.
본래 저런 성격인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나도 딱딱하게 예의를 따지지 않았다. 나부터 아버지를 두고 황제라 편하게 지칭하지 않았는가.
켄의 말이 이어졌다.
“대외적으로 테드 칼 레오드는 정의롭고 겸손한 사람이라 알려져 있지…… 뭐 귀족이나 황족들의 말을 다 믿을 순 없는 노릇이고 황태자궁 상황을 보니 테드 칼 레오드의 대외적인 평가 역시 전략일 뿐이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나는 켄의 생각이 궁금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켄이 웃었다.
“만약 테드 칼 레오드가 정말 정의롭고 겸손하며,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무능력한 형의 궁에 사람을 심어 둘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역시 나는 켄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몰랐다.
‘카렌을 만나기 전에 낚아챈 게 좋았어. 켄만이 아니라 주요 등장인물들과 끈을 만들어 놓으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거야.’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대답했다.
“그렇겠지. 어쨌든 그들이 테드의 끄나풀인 게 확실한 이상 어떤 형식으로든 나에 관해 테드에게 보고했겠지. 물론 테드에게 직접 보고하지는 않았겠지만.”
“네. 아마도 밑에 있는 누군가에게 황태자궁의 정보가 흘러들어갔겠죠.”
“그 부분도 증거를 잡을 수 있다면 잡도록 해. 물론 은밀하게.”
“네.”
켄이 고개를 짧게 숙였다.
“게일은 궁에 머물고 있지. 하인으로 들어왔으니 네가 전면에 나설 수는 없고, 내가 나서면 테드는 물론이고 다른 황자, 황녀들의 시선이 당분간 집중될 테니, 역시 게일이 전면에 나서서 진두지휘하는 그림이 가장 자연스러워.”
“곧바로 게일 님을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을 기대하지.”
내 말에 켄이 진하게 웃었다.
다시 혼자 남게 되자 나는 몸을 일으켰다.
“후우. 하나씩 진행되는구나.”
처음에 아룬 칼 레오드가 되었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요새는 확실히 이 세계에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내가 오크 술사에게 저주를 걸린 뒤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녀들과 하인들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게일만 내가 달라진 것을 알고 있겠지. 아, 이제 테드도 추가된 건가?’
나는 창문을 열었다.
밤마다 불어오는 바람은 몹시 상쾌했다.
한국의 반지하 원룸은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황태자궁의 내 방은 정원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항상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정령사로서도, 황태자로서도 성공한다.’
본래 소설의 주인공 카렌처럼 대륙을 제패하고 고단하고 힘든 삶을 사는 대륙인들을 구원하겠다는 대의명분은 없었다.
‘아직은 그런 것을 꿈꿀 때가 아니야. 힘을 갖추고 황태자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적이 될 카렌에게 맞서기 위해서…… 제국을 더 강하게 키우는 수밖에 없겠지.’
론 칼 레오드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 카렌과는 태생부터 양립할 수 없는 사이다.
그의 성장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며, 그가 칼페온 제국에 가지고 있는 원한의 크기 역시 나만큼 속속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언젠가는 적이 될 그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쉴 틈이 없었다.
잠을 자기 위한 침대였지만, 나는 누워서도 바람의 호흡법을 떠올렸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할 때보다 마나를 흡수하는 효율이 훨씬 떨어지지만 상관없었다.
수련을 쉬지 않는 게 더욱 중요했다.
* * *
바람의 호흡법을 익히기 시작한 뒤로 육체가 확실히 좋아졌다.
물론 내가 식단도 관리하고 운동도 하면서 기존에 허약했던 육체가 좋아지고 있는 면도 있지만, 효과가 배가되는 것 같았다.
특히 아침에 일어날 때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꼭 새로운 몸을 가진 것 같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생각했다. 어젯밤 바람의 호흡법을 침대에서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 먹기 전에 잠깐 걸을까.”
새삼 그동안 얼마나 허약했는지 깨달았다.
‘정원 산책조차 하지 못했던 수준이라니.’
나는 내 몸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정원에 나가기 전에 습관처럼 내 기억을 적어둔 노트를 한 번 살폈다.
매일매일 읽어야 새로운 인물이나 설정을 만날 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으니까.
스치듯 넘어갔던 구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룬 칼 레오드는 다른 황자, 황녀들이 주는 모욕을 견디다 못해 어둠의 숲에 있는 전설을 쫓았다. 오크 술사에게 저주를 받고 3년이 지나자 그의 영혼에 각인되어 있던 주술이 깨어났다. 어둠의 힘에 중독되고 매료되는 주술로 인해 아룬 칼 레오드는 본격적인 네크로맨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걸…… 왜 그동안 넘어갔지?”
아룬 칼 레오드가 황궁을 떠나고 네크로맨서가 된 계기는 오크 술사의 저주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며 미간을 좁혔다.
아직 해가 뜨기 전부터 일을 하기 시작하는 시녀들과 하인들이 황급히 허리를 숙였지만, 인사를 받아 줄 새도 없이 곧바로 정원으로 나갔다.
‘영혼에 각인되어 있는 주술이라…… 영혼은 나로 바뀌었다. 그럼 주술이 사라졌을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주술은 또 어떻게 설정했더라.”
나는 머리를 짚었다.
하도 이 소설, 저 소설, 이 영화, 저 드라마 등에서 재밌어 보이고 신기해 보이는 모든 요소를 섞은 소설이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설정, 말도 안 되는 설정도 많았다.
보통 판타지는 마법과 검술이 주류를 이룬다. 정령술이나 몇 가지 특이 능력도 있지만 어쨌든 주술 개념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나는 주술도 제법 상세하게 다뤘다는 말이지.”
아무래도 오늘은 주술 관련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생각을 끝내고 편안하게 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정원의 풀잎과 꽃들이 머금은 이슬이 반짝였다.
‘아름답군.’
정원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신비로움이 만나는 아침.
환경이 달라지니 감성도 풍부해졌다.
곧 정원 중앙에 자리한 분수에 도착했다.
분수 역시 햇살에 반짝였다.
나는 마치 뭔가에 이끌리듯 앞으로 다가갔다.
바람의 호흡법이 저절로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마나홀이 꿈틀거렸다.
바람이 불어오면서 분수의 물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순간, 실프 두 마리가 내가 소환하지도 않았는데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과 물.
-불과 흙.
두 마리의 실프가 각각 내 귓가에 속삭였다.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나는 궁금증을 느끼면서도 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익숙한 상태창의 시스템 음성이 귓가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S 바람의 호흡법의 효능으로 숨겨져 있던 재능이 개방됩니다.
-S 물의 수호자가 개방됩니다.
나는 놀랄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숨을 고르고 정령과의 계약에 필요한 주문을 외웠다.
“태초의 맹약에 따라 내가 물의 수호자가 되기를 원하니 그대는 내 부름에 답하라.”
고오오오오-!
분수의 물이 뭉치기 시작했다.
마나홀에서 마나가 무섭게 빠져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을 드러냈고, 마나홀이 찢어지는 느낌 때문에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이건.’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은 바람의 정령을 처음 소환할 때를 떠올렸다.
‘막아야 된다.’
누군가 아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라면 내 몸이 마나 폭풍을 견디지 못해 산산조각 날 것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바람의 호흡법을 운용했다.
마나는 노도와 같이 내 혈맥들을 타고 흐르며 끊임없는 고통을 주었다.
분수의 물이 허공으로 퍼져나가며 하나의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는 정신을 잃어 바람의 최상급 정령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달랐다.
고통은 끔찍했지만, 시야는 여전히 선명했고 이상하게도 정신은 멀쩡했다.
2층 분수보다 훨씬 큰 형상은 곧 인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로 변했다. 단지, 인간과 달리 신비롭고 따뜻한 느낌과 위엄이 넘치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물의 최상급 정령 ‘???’ 소환에 성공했습니다.
시스템 창의 목소리와 동시에 정령의 목소리도 들렸다.
-바람의 동반자, 물의 수호자 그리고 아직 깨어나지 못한 태초의 맹약을 따르는 이여. 부디 다음번에는 그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나는 멀어지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자애로운 물의 최상급 정령의 목소리와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네요.
고통은 씻은 듯 사라지고 조금 전까지 있었던 정령 역시 사라졌다.
분수의 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평온을 찾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꿈을 꾼 건 아닐까?’
아니다.
그건 결코 꿈일 수 없다.
나도 모르게 정령의 말을 곱씹었다.
‘태초의 맹약을 따르는 이? 물의 수호자?’
이 상황을 알 수 있는 건 오직 상태창뿐이었다.
재능
-S 물의 수호자(Lv1)
퀘스트
-F 최초로 물의 정령과 계약
새롭게 추가된 재능과 퀘스트.
S급 재능 그리고 F급 퀘스트, 하지만 나는 퀘스트 보상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랜덤 스킬 개방.
“혹시…… A급 스킬이 개방되지 않을까?”
나는 이쯤 되면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믿었다.
아룬 칼 레오드, 아니 나는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재능을 갖춘 게 틀림없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최상급 정령이 소환되었다. 그것도 서로 속성이 다른 정령이다. 위대한 정령사조차 두 속성의 정령을 최상급까지 동시에 부리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나는 최하급 정령사 주제에 바람의 최상급 정령, 물의 최상급 정령을 소환한 것이다.
무려 S급 재능을 개방하면서!
‘고통만 사라진 게 아니라 마나홀이 족히…… 세 배는 넘게 커졌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마나홀은 마나가 가득 차 내게 환희를 안겼다.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정령에만 매혹되었다.
어느 때보다 자신감 넘치게 주문을 외웠다.
“태초의 맹약에 따라 내가 물의 수호자가 되기를 원하니 그대는 내 부름에 응답하라.”
분수 속에서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운디네가 당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물의 수호자를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나는 이제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