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00)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00화(100/278)
100화.
노을이 질 때까지 오크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어제 하루 충분히 쉬었다는 듯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오크들에 병사들은 점차 지쳐갔다.
아무리 튼튼한 성벽 위에서 수성전을 벌여도, 완벽한 방어는 불가능했다.
오후에는 동쪽 성문이 뚫려 병사들이 많이 죽었다.
게일이 급히 투입되어 성 안까지 오크가 들이닥치는 것은 막았지만, 동쪽 성문과 성벽은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나 역시 동쪽 망루에 서서 열심히 정령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다.
“실울펜!”
바람의 사슬이 수십 마리 오크의 목에 걸렸다.
푸슉-!
성벽을 기어오르던 오크들과 성문을 공격하던 오크들의 목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나는 입에서 단내를 풍기며 숨을 골랐다.
“후우!”
서걱-! 서걱-!
게일 역시 성벽 위를 기어오르고 있는 오크들의 목을 베는 중이었다.
마이크 후작 역시 지휘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모든 영주들이 마찬가지였다.
한 명이라도 더 힘을 보태지 않으면 성벽이 뚫릴 수도 있었다.
“노에스!”
노에스가 성벽 밑의 땅을 흔들었다.
서너 개의 사다리가 흔들리는 땅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럼에도 오크들은 다시 사다리를 들어 성벽에 놓았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계속 노에스로 대지의 포효를 사용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정령들로 사다리를 파괴했다.
쾅-! 쾅-!
“사령관님!”
어느 병사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오크들이 날리는 화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운다이론!”
운다이론이 내 앞에 물의 장벽을 펼쳤다.
쾅, 소리와 함께 화살들이 우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등에는 저절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끝이 없군.’
하루 종일 전투가 이어지니까 이제는 정령들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벅찼다.
“전하,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십시오.”
어느새 게일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애써 차분하게 숨을 고르면서 바람의 호흡법으로 마나를 마나 홀에 채웠다.
오크들이 쏘는 화살은 여전히 위력적이었고, 성벽을 오르는 오크들 역시 개미떼처럼 많았지만 바람의 호흡법에 집중하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서걱-! 서걱-!
게일은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것 같은데 성벽을 올라온 오크들의 목이 허공에 떠올랐다.
실로 신묘한 움직임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마나 홀을 어느 정도 채우자 다시 전투에 나섰다.
쿵-! 쿵-! 쿵-!
멀리서 들려오는 거대한 발소리에 오크들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워워워워!
성벽을 기어오르던 오크들이 멈췄고, 화살을 쏘고 돌덩이를 날리던 오크들 역시 함성만 질러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소리의 진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게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크 왕과 오크 술사들입니다.”
“왕이…… 결국 왔군.”
주인이 죽었으니 왕 역시 방황하거나 혹은 죽었기를 바랐지만, 역시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아주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오크 왕은 다른 오크보다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했고, 뿜어내는 살기가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따가웠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할 것 같습니다.”
오크들이 썰물처럼 물러났다.
나는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크들이 자신들의 진영으로 모두 물러날 때까지 나는 망루에 서서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았다.
“헤밀튼 남작이 조만간 오크 진영을 자세하게 관찰할 거야. 오크 왕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무엇보다 오크 술사들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해.”
“전달하겠습니다.”
게일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 왕이 도착함으로써 헤밀튼 남작의 임무가 한층 더 어려워졌지만, 나는 그를 믿었다.
그를 추천한 마이크 후작의 안목과 자신감도 신뢰했다.
“혹시 게일은 헤밀튼 남작에 관해서 알고 있어?”
나는 망루를 내려가며 물었고 게일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대답했다.
“노예 출신 최초로 귀족 작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헤밀튼 남작이 노예 출신이라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래 귀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노예 출신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네.”
우리의 대화를 들은 걸까?
마이크 후작이 뒤에서 나타나며 대답했다.
“그는 서부의 철광산에서 일을 하던 노예였습니다.”
마이크 후작에게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하얗게 서리게 내린 머리카락은 먼지가 가득했고, 검에는 오크의 핏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화살도 한 방 맞은 듯 갑옷 어깨도 찌그러져 있었다.
“후작, 괜찮으십니까?”
“이 정도쯤은 괜찮습니다.”
마이크 후작이 옅게 웃었다.
“치료부터 받으십시오.”
“경상이니 오늘 하루 쉬면 괜찮습니다. 보급 물자가 부족한 시점이니 중상인 병사들에게 포션을 배급하고 저 같은 경상자는 스스로 이겨내야지요.”
나는 안타까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사라진 철광산이었지만 헤밀튼은 그곳에서 일을 하던 노예였고, 통일 전쟁 당시 큰 공을 세워 남작 작위를 받았죠. 당시 4대 명가를 비롯한 중앙 귀족들이 대거로 폐하께 반기를 들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강한 사람이고 절대 권력을 움켜쥐었지만, 신분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일에 귀족들은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게 당연했다.
평민 출신도 아니고 노예 출신이었다.
이 세계에서 노예는 가축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귀족들은 노예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그건 평민들마저 마찬가지였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그들이 바로 노예라는 굴레를 뒤집어쓴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가장 낮은 작위라고 하지만 노예가 작위를 받았다는 건 정말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헤밀튼 남작이 무슨 공을 세웠기에…….”
마이크 후작이 웃으며 대답했다.
“1차 통일 전쟁 당시 헤밀튼 남작은 병사로 차출되었습니다. 폐하께서 에르란 협곡을 넘으실 때 정찰 임무를 맡았죠. 그 임무에서 헤밀튼 남작은 카이온의 목을 들고 복귀했습니다.”
나도, 그리고 게일조차도 마이크 후작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 * *
헤밀튼은 수하들을 불렀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헤밀튼의 수하들은 마치 헤밀튼의 형제라도 되는 듯 하나같이 덩치가 컸다. 근육도 우락부락해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에르란 협곡 작전 이후 오랜만이군요.”
수하 중 한 명의 말에 헤밀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룬은 알지 못했지만 헤밀튼의 정찰 부대는 고작 열 명뿐이었다.
그것도 헤밀튼을 포함한 숫자였다.
이들은 모두 헤밀튼과 같이 서부 철광석 광산 노예 출신들이었는데 작위를 받은 건 헤밀튼뿐이었고 나머지 아홉 명은 평민이 되었다.
“대장, 오크 진영 정찰은 처음인데 괜찮겠습니까? 들어보니 오크 왕도 왔다고 합니다.”
수하들은 헤밀튼이 남작, 즉 귀족이 되었음에도 습관처럼 대장이라고 부르곤 했다.
광산 때부터 부르던 호칭을 쉬이 고치지 못했고, 헤밀튼 역시 남작님이라는 호칭보다는 대장이라는 호칭을 훨씬 편안하게 느꼈다.
헤밀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어려울 거 없어. 평소대로 하면 된다.”
“황태자가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면서요?”
다른 수하의 말에 헤밀튼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폐하를 연상케 하더군.”
론 칼 레오드가 언급되자 모든 수하들의 표정이 동시에 활짝 펴졌다.
“제국의 앞날이 밝군요. 폐하와 같으신 분이라면요.”
이들에게 론 칼 레오드는 황제 그 이상의 존재였다. 신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웠어도 노예는 노예였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의 굴레를 황제는 간단하게 정리했다.
너희가 가서 통곡의 성이라 불리는 곳에 박혀 있는 소드 마스터의 목을 들고 와라. 그럼 헤밀튼의 작위를 거두고 저들의 면천을 취소하며 소드 마스터의 목을 들고 온 이에게는 내 자리를 내어주지.
그날, 대전에서 헤밀튼에게 남작 작위를 내릴 때 했던 황제의 말에 귀족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때 느꼈던 통쾌함과 전율은 헤밀튼을 비롯한 헤밀튼의 수하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노예도 공을 세우면 면천이 될 수 있고, 귀족도 될 수 있었다.
론 칼 레오드는 자신들을 가축으로도 여기지 않는 귀족들의 입을 한순간에 다물게 만들었다.
“대충 들어보니 군사 역시 소매치기 출신이라더군.”
헤밀튼의 말에 수하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 소매치기 말씀이십니까?”
군사의 능력은 이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황태자가 자리를 비운 동안 켄 군사는 람과 톰슨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면서 오크들을 큰 피해 없이 막아냈다.
마이크 후작은 물론이거니와 서부 영주들 사이에서도 켄의 평가는 무척 높았다.
딱 보아도 엄청 많이 배운 사람이었고, 실전 능력까지 뛰어나니 당연히 귀족이라 생각했는데 무려 범죄자 출신이라니.
수하들이 어안이 벙벙한 모습을 보고 헤밀튼이 어깨를 으쓱였다.
“황태자 전하와 함께 별동대 임무를 수행했던 기사들은 대부분 용병 출신들이더군. 평가 대회 참가자들이기는 하지만…… 용병 출신을 직속 수하로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폐하만큼이나 차별이 없으신 분이군요.”
“맞아. 범죄자도 잘못을 뉘우치고 능력을 올바른 곳에 사용하면 거둬들이는 분이시지.”
헤밀튼은 아룬이 고르란의 시신을 성 안에 펼쳐 놓은 순간 마이크 후작 다음으로 아룬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서부의 기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두 거대 가문과의 협상 소식을 들었을 땐 어쩌면 폐하보다 더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이번 임무는 중요하다.”
수하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네. 대장!”
아룬이 자신에게 맡긴 첫 임무였고, 황가에 다시 한 번 충성심을 보여줄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서부를 위한 일이니, 목숨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내일 새벽 출발한다. 목표는 오크 왕의 목.”
헤밀튼은 이번에도 주어진 명령보다 목표를 더욱 크게 잡았다.
에르란 협곡에서도 그랬다.
당시 자신에게 임무를 주었던 귀족의 명령은 에르란 협곡에 있는 통곡의 성 안으로 잠입하여 상대 병력을 정확하게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노예 출신에 고작 열 명에게 내린 명령이었는데 그냥 죽으라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그 귀족은 자신의 부대에 노예 출신이 있는 사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죽으라고 던진 임무를 헤밀튼은 성공시켰고, 소드 마스터까지 암살하여 그 목을 들고 복귀했다.
황제가 자신을 부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자신 덕분에 그 귀족 역시 공을 인정받았다.
“오크 술사까지 몇 놈 처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단 오크 왕을 목표로 하고 잠입한다.”
헤밀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 * *
“카이온이라면 동부 왕국 연합의 대표 소드 마스터잖아?”
내 말에 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카이온을 죽인 건…….”
내가 말끝을 흐리자 마이크 후작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주 어리실 때의 일이었으니 기억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본래 얀 백작의 전공이라 알려졌지만, 얀 공작 휘하에 헤밀튼 남작이 있었죠. 카이온의 목을 들고 온 건 헤밀튼 남작이었습니다.”
얀 공작, 바로 4대 명가 중 세르란 가의 현 가주였다.
애트란, 리버힐에 비해서 그 세가 약한 가문이었지만 공신 가문 중 하나이고 얀 공작 역시 굉장한 실력자라 알려져 있었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대체 헤밀튼 남작이 어떻게 소드 마스터의 목을 들고 온 겁니까?”
마이크 후작의 말은 내 상상을 다시 한 번 아득히 뛰어넘었다.
“열 명이서 에르란 협곡 통곡의 성에 잠입했고, 카이온 백작을 암살했다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