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02)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02화(102/278)
102화.
‘비기너 단계를 뛰어넘었으니까, 시도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땅이나 혹은 물의 상급 정령을 계약하고 싶었다.
일단 내가 보유하고 있는 스킬을 점검했을 때 땅의 정령이 좀 더 대규모 전투에 효율이 좋을 것 같았다.
물의 장벽, 물의 폭풍, 정화의 물결 세 가지가 물의 정령 전용 스킬인데 물의 폭풍이 광역 공격 스킬이었다.
‘물의 폭풍도 좋지만 대지의 포효가 수성전에 더 적합할 것 같다.’
나는 결정을 내리고 게일에게 말했다.
“게일 정령과 계약할 생각이니까 잠시 이곳을 부탁해.”
“네, 전하.”
게일이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냈다. 지금까지는 오러 블레이드는 사용하지 않았다. 마나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게일 같은 실력자는 굳이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더라도 오크쯤은 죽일 수 있으니까.
나의 부탁에 지휘관 망루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인 것 같았다.
‘이그니스는 마스터가 된 뒤에 추가 계약을 하라고 했지만, 이대로는 병사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
전쟁에서 단 한 명의 병사도 죽이지 않겠다는 건 철없는 오만이었다.
전쟁은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죽는 사람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크 술사들을 막지 않으면 방어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제와 다르게 성벽 위로 올라오는 오크들의 숫자가 훨씬 많으니까.
오크 술사들의 공격 주술은 성벽을 직접적으로 타격했고, 우리의 병사들이 그만큼 많이 희생되었다.
또 오크 전사들의 눈동자를 볼 때 정상이 아닌 게 틀림없었다.
살기는 한층 흉폭해졌고, 힘이나 속도 역시 월등히 강해진 것 같았다. 오크 전사들에게 오크 술사들이 일종의 주술을 걸어 더 용맹하게 싸울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성벽을 나가 오크들을 상대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병사들의 희생을 더 크게 강요하는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내 스스로 조금 무리더라도 다른 상급 정령과 계약하는 것이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태초의 맹약을 읊었다.
쿠쿠쿵-!
성벽 밑에 있는 흙들이 휘몰아치면서 내가 있는 지휘관 전용 망루까지 올라왔다.
고오오오오-!
상황이 급하신 모양이다.
클라임의 말투는 뭔가 요상했다.
거인과 같은 클라임은 지휘관 망루 천장까지 꽉 찼다.
실울펜, 이그니스와 다르게 클라임은 인간과 가장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계약을 권했다.
저 촉새가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지금 맹약의 주인은…….
나는 클라임의 말을 잘라냈다.
‘알고 있어. 하지만 급해. 불가능해?’
-아니.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클라임은 이그니스에 못지않게 독특했다.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사용하고 어조도 진지한 건지 장난기가 가득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계약부터 맺었다.
클라임은 내 강한 의지를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계약을 맺어주었다.
상급 정령 클라임은 성벽 위를 훌쩍 뛰어내렸다.
병사들의 시선이 순간 집중되었다.
하지만 곧 계속 달려드는 오크들로 인하여 전투는 금세 재개되었다.
대지의 포효.
내가 클라임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 스킬 때문이었다.
클라임은 내 의지를 정확하게 읽고 성벽 근처의 땅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이, 이건!’
나도 모르게 몸을 비틀댔다.
근처의 방패병이 재빨리 다가와 나를 부축했다.
나는 말을 더듬었다.
“괘, 괜찮다.”
콰쾅쾅쾅-! 쾅-! 콰아아아앙!
이어 엄청난 폭음과 함께 성벽 앞의 땅이 흔들렸는데, 성벽까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콰콰콰쾅-!
폭음은 끝나지 않았다.
놀라운 건 불의 장막보다 대지의 포효 범위가 훨씬 넓다는 사실이었다.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나는 마나 홀의 마나가 바닥이 났다.
“저, 전하.”
마이크 후작조차 목소리를 떨었다.
나는 힘써 웃었다.
“시간을 좀 번 것 같습니다.”
힘차게 전진하던 오크들은 엄청난 지진에 움직임을 멈췄다.
수천 마리가 일시에 지진으로 인하여 곤죽이 되었는데 아무리 주술에 눈이 돌아간 오크 전사들이라 하더라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정령사는 알수록 어마어마한 존재이구나.’
스스로 정령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큰 뿌듯함을 느꼈다.
대규모 인원이 싸우는 전쟁에서 정령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도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가 한 일이었지만 눈앞의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대지의 포효는 단순히 이동을 방해하는 스킬인 줄 알았는데 클라임이 모든 마나를 빨아들여 사용하니 지진이나 다름없군.’
수천 마리의 오크들이 매몰되거나 혹은 지진의 여파로 온몸이 찢어졌다. 성벽 앞에는 족히 십 미터가 넘는 구덩이가 생겨 있었고, 그 안은 오크들의 시신으로 가득했다.
대지의 포효 레벨이 단숨에 5에서 10으로 올랐다.
‘단 한 번의 사용인데 많은 오크들을 죽여서 그런가?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받은 모양이야.’
스킬의 레벨이 오르는 조건은 두 가지였다.
바로 숙련도와 경험치였다.
많이 사용할수록 숙련도가 올라가는 법이었고, 당연히 경험치도 올라갔다.
단 한 번의 사용으로 스킬 레벨이 5나 올랐다는 건 엄청난 경험치를 단번에 얻었다는 뜻이었다.
‘후우.’
나는 숨을 고르며 바람의 호흡법을 운용했다.
마나 홀에 마나가 쌓이면서 육체의 피로도 점점 가셨다.
“오크들이 모두 물러났습니다.”
벼락도 멈췄고, 비도 그쳤다. 오크 술사들의 주술도 끝났다.
한 번의 고비를 클라임 덕분에 힘들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게일이 곁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오크들이 당분간 쉴 것 같으니까 내려가시지요.”
나는 굳이 그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다.
스킬 한 번 사용했음에도 피로감이 너무 심하니까. 바람의 호흡법을 간결하게 운용할 게 아니라, 아무래도 막사에서 푹 쉬면서 집중해야 될 것 같았다.
* * *
클라임과 계약한 건 확실히 내게 부담을 주었다.
바람의 호흡법으로 명상에 빠졌지만 좀처럼 피로가 회복되지 않았다.
마나 홀이 가득차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에야 나는 청량한 기분을 느꼈다.
“후우우우우!”
크게 숨을 내쉰 뒤 막사 밖으로 나가니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밤공기가 아직도 차가웠다.
겨울은 거의 지나가고 있었지만, 서부 벌판의 바람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서부의 겨울은 유난히 긴 것 같습니다. 수도는 북부 쪽임에도 지금쯤이면 벌써 봄이 왔을 겁니다.”
데이비드의 목소리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군. 피곤했을 텐데 쉬지 그러나?”
“많이 쉬었습니다. 용병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잠이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래?”
데이비드가 내심 궁금한 듯 물었다.
“불의 정령, 바람의 정령 그리고 땅의 정령까지…… 전하는 벌써 세 속성의 상급 정령과 계약을 맺으셨는데 최상급 정령사의 길이 보이십니까?”
“최상급 정령사? 글쎄, 아직 상급 정령사 마스터도 아니니 좀 멀었지.”
데이비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통 다른 속성의 상급 정령들과 계약할 수 있는 건…….”
말끝을 흐리는 데이비드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상급 정령사 마스터는 되어야 다른 속성의 상급 정령과 계약할 수 있지. 나처럼 세 속성의 정령과 계약하려면 자네 말대로 최상급 정령사 경지에는 올라야 돼.”
“그럼 어떻게 계약하신 겁니까?”
“어머니가 좋은 재능을 물려주셨거든. 다른 정령사보다 친화력이 높은 편, 아니 아주 높은 편이지. 그래서 가능했던 거야.”
나는 데이비드를 보며 말했다.
“궁금증이 좀 풀렸나?”
내 말에 데이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의 재능은 언제나 볼 때마다 놀랍습니다. 켄의 말에 따르면 정령술을 배우신 지 오래되지도 않으셨는데…… 아마 누군가에게 전하의 이야기를 하면 믿지 못할 겁니다.”
“나도 믿기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라도 믿기 힘들겠지. 뭐, 그런 건 상관없어.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거든.”
나는 괜스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본래 살던 곳보다 훨씬 큰 달이 하늘 한켠을 뒤덮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은하수 역시 마치 쏟아질 듯 하늘을 채웠다.
“황궁과 이곳은 확실히 달라.”
나의 말에 데이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은 중앙과 북부 사이에 걸쳐 있죠. 서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긴 하죠.”
“자네는 다른 곳도 가보았나?”
데이비드는 용병이었으니 대륙 곳곳을 다녀보았을 것이다.
“저는 주로 중앙이라 불리는 중부 지역, 남부 초입 지역에서 많이 활동했습니다.”
“그래? 중부는 어떤 곳인가?”
나의 말에 데이비드는 약간 신나게 설명을 시작했다.
중부는 물론이거니와 남부에 대해서도 물었고 나는 내가 집필했던 내용들을 데이비드로부터 들었다.
그건 무척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참 밝은 이야기를 하던 데이비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어느 지역이든 빈민가가 없는 곳은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는 왕자로 태어났고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나라가 전쟁으로 멸망하고 부모와 형제를 잃고, 누리던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데이비드는 그 아픔을 몸소 겪은 사람이었고 어쩌면 그 때문에 나의 신하가 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의 가문과 나라를 멸망시킨 건 애트란이었지만 애트란도 결국 나의 아버지 명령을 받든 것뿐이었다.
“자네에게 사과하는 것도 민망하군.”
“전하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폐하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보라고 하시겠지만 저는 애트란 가문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나의 시선이 절로 데이비드에게 돌아갔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게 정말로 가능할까?
궁금증 섞인 나의 눈빛에 데이비드가 말을 이었다.
“전쟁이 만연한 대륙에서 제 가문의 힘은 너무나도 미약했습니다. 제국이 아니더라도 아마 오래 버티지는 못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려했지만 복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베레곤 공작의 목을 베기 전까지 누구도 죽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그때였지요.”
무딘 검 데이비드. 데이비드가 용병 시절 얻은 호칭이었다.
“하지만 대륙을 떠돌다 보니까…… 복수심이 사그라들었습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하루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등집니다. 그 이유라는 게 고작.”
데이비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감정을 추스른 데이비드가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오늘 저녁에 먹을 빵이 없어서, 스프가 없어서였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창가로 팔고, 아내는 자식을 팔아 연명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죠. 전하, 전쟁보다 무서운 건 배고픔입니다. 인간에게 배고픔이란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이죠.”
데이비드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내가 물었다.
“그래서 빈민가를 돌아다니며 그들을 도왔나?”
“제가 왕자로서 누리던 모든 것들이 그들을 착취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복수심을 버렸습니다. 내가 누리던 사치를 위하여 죽어갔을 이들을 위하여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데이비드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전하께서는 제게 빈민가를 돕는 방법이 잘못되었다 하셨죠. 귀족의 것을 빼앗아 나누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생산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그들을 살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막사들을 가리켰다.
“자고 있는 병사들 중 평소에 점심을 챙겨 먹을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될 것 같나?”
데이비드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침, 저녁만 챙겨 먹어도 제법 잘 사는 축에 속하지. 제국이 날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제국민들은 힘겨운 삶을 살고 있네. 우습지 않은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만 세 끼를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있고 가끔 고기나 술도 먹을 수 있지.”
나는 데이비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처지라 할 수 있지. 살기 위해 인재를 모으는 거야. 꿈꾸는 이상을 알리고, 영웅적인 능력을 보이고, 그들을 위하는 마음을 보이는 일. 함께 생사를 넘는 작전을 하면서 죽은 이들에게 보상하고, 나는 다른 귀족, 황족과 다르다는 점을 보이는 모든 것도 생존을 위한 일이야.”
제법 긴 말을 한 번에 하느라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데이비드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어려운 일이야. 이기적이고 나의 생존만을 위한 일이었을까? 진심이 없었다면 과연 그들이 나를 따랐을까?”
데이비드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자네에게도 말하는 거야. 나의 제국은 자네가 방방곡곡 돌아다닐 때 빈민가를 찾아볼 수 없는 제국이야. 언제가 될지는 몰라.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죽는 날까지 머릿속에서 그 목표는 지워지지 않을 거야. 그게 자네에게 할 수 있는 나의 약속이지.”
데이비드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드디어 무딘 검 데이비드의 마음을 온전히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