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20)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20화(120/278)
120화.
수백 명의 요정 중 탐스러운 녹색 머리카락의 요정이 앞으로 나왔다.
“네가 인간들 우두머리인가?”
나는 주눅 들지 않았다.
명백하게 우리를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적에게 주눅 들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
요정들이 우리를 죽이려 했다면 이렇게 대치할 게 아니라 알람 마법을 깨고 들어와 화살로 벌집을 만들었을 것이다.
“네가 요정들 우두머리인가?”
요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그러진 표정에도 요정은 지독하게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이 요정들 모두 각자의 특색이 있었지만 공통점은 역시 조각 같은 외모였다.
신이 손수 깎아 빚은 듯한 아름다움, 그만큼 성격도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지만 신비로운 만큼 무섭고 냉정한 종족이었다.
“무슨 일이지? 우리가 요정한테 딱히 원한을 사지는 않았을 텐데.”
여전히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활시위를 보면서 내가 진하게 웃자 녹색 머리카락의 요정이 입을 열었다.
“당분간 어둠의 숲에 인간들의 출입을 금지한다. 너희의 목적지가 어둠의 숲인 것 같으니 그만 돌아가도록.”
일방적인 요구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둠의 숲이 요정의 숲도 아니고 드나드는 건 우리의 자유이지 요정들이 상관할 바가 아닌데?”
“인간들이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탐욕으로 중간계를 물들이면서 어둠의 세력이 부활…….”
“악의 종자는 이미 죽였는데?”
나는 이상하게 요정과의 대화가 즐거웠다.
조각 같은 외모, 훤칠한 키, 오만한 성격, 영생을 사는 존재, 자연을 사랑하는 종족.
내가 설정한 요정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니 새삼 신기한 면도 있었다.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요정의 말에 따라라. 인간…….”
나는 일단 수하들을 막사로 돌려보내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들어가 있어.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위험합니다, 전하!”
게일이 가장 먼저 반대하며 강렬한 기세를 피웠다.
고오오오오-!
소드 마스터가 마음먹고 기세를 피워 올리자 마치 세상 전체가 떨리는 것 같았다.
녹색 머리카락 요정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욱 굳어졌고,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요정들도 거칠게 몸을 떨었다.
“게일, 들어가 있어.”
내가 다시 한 번 말했지만 게일은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굳이 요정과 대화를 하려는 이유는 어둠의 숲 문제 때문만이 아니었다. 왠지 라인하이드 가문의 흔적을 요정들도 알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더구나 녹색 머리카락의 요정은 요정 왕족의 상징인 견장을 달고 있었다. 어깨 위 금색 견장은 오직 요정의 왕족만 찰 수 있는 장식이라, 쉽게 알아보았다.
“후우, 요정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그 본질인 정령을 누구보다 아낀다고 하던데. 그리고…….”
나는 상급 정령 넷은 물론이거니와 나와 계약한 모든 정령들을 단번에 소환했다.
상급 정령 넷만 동시에 소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모든 계약 정령들을 일시에 소환하는 건 요정족의 정령사들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나만이 가능하다 말할 수 있지.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친화력 문제니까.’
“어? 요정들이네?”
이그니스는 역시 소환되자마자 까불기 시작했다.
“됐고, 올라가 있어.”
나는 이그니스의 말을 끊었다.
모든 요정들의 얼굴에 경악이 번지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의 기세에도 놀라고 몸을 떨었지만, 내 정령술에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정령사라면 종족을 가리지 않고 대화를 나눌 만하지 않나? 누구보다 자연에 가까운데 말이야.”
여전히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요정들을 본 뒤 나는 다시 게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괜찮아. 이 요정은 왕족이고 상식을 아는 자 같으니까. 자연의 친구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거야.”
왕족 요정이 한 손을 들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활을 내려라.”
일제히 요정들이 활을 내리며 물러났다.
“그대의 말이 맞다. 상급 정령사는 자연이 허락한 친구.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자격을 갖추고 있다.”
나는 싱긋 웃었다.
왕족 요정은 이제 무표정했다.
“그럼 찾아온 이유를 들어볼까? 어둠의 종자 때문이면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죽였어.”
나는 게일을 향해 다시 명령했다.
“들어가 있어.”
이제는 게일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신호에 맞춰 왕족 요정도 다른 요정들을 돌려보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나는 실프에게 말했다.
‘주변으로 소리가 나가는 것을 차단해 줘.’
-네.
실프가 나와 왕족 요정 주위를 맴돌면서 바람을 일으켰다.
왕족 요정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악의 세력 부활은 분명히 막았어. 고르란의 시신도 있고. 악의 종자를 핑계로 어둠의 숲으로 가는 우리 걸음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지.”
왕족 요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감정 변화가 거의 없는 요정임에도 내 말은 하나같이 그를 경악시키고 있었다.
“라인하이드 가문의 검을 지키고 있는 와이번을 사냥하러 가는 길이야. 오늘 사냥하는 건 아니고 준비를 위해서 살펴보려고.”
“모르는 게 없는 인간이군.”
요정의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내가 다 썼던 거야, 인마.’
정령들도 듣지 못하게 나는 금세 생각을 멈췄다.
“진짜 그 이유뿐이라면 돌아가 줬으면 좋겠는데. 딱히 그대들과 적대할 이유가 없어. 우리가 그대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도 아니고.”
“인간들이 차지하고 있는 대륙의 모든 곳은 죽어가며 신음하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 이미 인간들은 심판을 받아도 마땅할 존재들이지.”
“그런 말을 하려면 진작 노력했어야지. 요정들이 요정의 숲에만 산 게 수백 년인데, 요정의 삶에서는 그 기간이 짧을지 몰라도 인간의 역사에서는 제법 긴 시간이라고.”
“폐허의 지배자 와이번은 어둠의 숲에서 균형을 이루는 존재다. 사냥은 허락할 수 없다.”
엉뚱한 주제를 가지고 나오는 왕족 요정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균형?”
“오크들이 쉽게 난동을 부리지 못하는 건 와이번 덕분이다. 와이번이 없으면 왕까지 탄생한 오크들이 어둠의 숲을 장악할 것이고 그 어마어마한 번식력으로 인하여 곧 우리의 신성한 숲까지 침범하겠지.”
나는 허탈한 웃음을 머금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오크 왕도 우리가 죽였어. 방금 전 너희를 단칼에 벨 수 있었던 기사가.”
왕족 요정은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 * *
왕족 요정은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고 돌아갔다. 나도 딱히 그에게 내 신분을 알리지 않았다. 그가 궁금해하지도 않았으니까.
요정들에게는 인간이나 오크나 큰 차이가 없는 존재였다.
먼저 다가가서 건드리지 않지만 기회가 있다면 눈에 보이는 족족 죽여도 무방한 종족.
요정의 눈에 비친 오크와 인간이라는 종족은 모두 자연에 해만 되는 존재니까.
그러나 용건만 마치고 그냥 돌아갔다.
‘아마도 나와 게일을 의식했겠지.’
소드 마스터와 상급 정령사 마스터는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니까.
“전하.”
내가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달려 나왔다.
“아, 요정들은 돌아갔어.”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게일의 말에 나는 옅게 웃었다.
“없지. 요정들은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돌아갔어. 오크들이 날뛸까 걱정하던 모양인데 오해를 풀었어.”
“다행입니다.”
나는 으차, 하며 허리를 돌렸다. 뿌드득, 소리가 나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참 어둠의 숲 덕분에 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 요정도 두 번이나 만나고.”
“전에도 요정을 만나신 적이 있습니까?”
“아, 게일은 모르지. 자네를 구하러 가기 위해 서쪽 숲을 한 번 들렀었는데 그때 만났어. 그때는 오크들과 전투 중이었는데 요정들의 도움을 받았지.”
“요정들이 말입니까?”
“사실 그냥 마구잡이로 죽였는데 오크들이 훨씬 많았으니까. 다행히 우리는 무사했고.”
나는 이야기를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일찍 쉬자고.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정찰을 해야 되니까.”
게일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른 이들도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내 막사로 들어갔다.
큰 막사 안에 작은 막사 안이 있는 형태였다.
곧바로 나는 야전 침대에 몸을 뉘였다.
“실울펜.”
“네.”
실울펜이 육성으로 대답했다.
“요정들과 계약한 적 있어?”
“저는 없습니다. 아마 클라임은 있을 겁니다. 아, 엘라임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두 정령에게 고개를 돌렸다.
모두 작은 내 막사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려고 작게 모습을 변환시킨 상태였다.
“클라임은 계약한 적 있어?”
“딱 한 번.”
딱딱한 말투의 클라임이었지만, 나는 어색함 같은 건 느끼지 않고 물었다.
“어땠어?”
“그냥 평범한 요정이었다. 땅을 좋아하고, 땅에서 자라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요정.”
“그랬구나.”
나는 엘라임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는 왕족 요정과 계약했어요. 그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한 요정이었죠. 간혹 전투를 했지만 제가 큰 힘을 쓸 정도는 아닌 상대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전장에서 아쉽게 계약이 깨어졌지만…….”
계약이 깨졌다는 건 요정의 죽음을 의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소환을 한 채로 다같이 자 볼 생각이야. 중간계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정령계에서처럼 힘을 낼 수 있다며?”
내가 확인하기 위하여 다시 한 번 묻자 엘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정령이든 마족이든 중간계의 존재가 아닌 존재가 중간계로 넘어올 때 힘이 반감되거든요. 하지만 중간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본래의 힘을 많이 낼 수 있죠.”
엘라임은 언제나 친절했다.
“정령들은 특히 더 그렇고요. 중간계는 정령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니까요. 자연의 모든 요소가 다 정령의 요소들이니까요.”
“그래. 너무 멀리만 가지 말고 쉬세요.”
엘라임에게는 존대와 반말을 섞어 사용했다.
포근한 어머니와도 같았다가 친근한 누나 같기도 했다.
엘라임의 겉모습으로는 성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범접하기 힘든 어떤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져 더욱 그랬다.
하지만 말투가 다른 정령들보다 좀 더 부드러워서 내가 어머니나 누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칼페온 제국에서도 나에게 어머니와 누나는 없지만.’
남동생과 여동생은 무척 많았지만 그들에게 혈육의 정을 느껴본 기억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과 자리 하나를 놓고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 잔인한 운명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정령들을 소환한 상태였지만, 바람의 호흡법도 잊지 않았다.
* * *
나는 게일과 함께 헤밀튼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우리 뒤에는 리오덴과 데이비드가 받쳐주었다.
어둠의 숲으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진열을 갖추고 이동했다.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헤밀튼이 말했다.
“전하, 조금만 더 가면 첫 번째 매복지 후보입니다.”
어둠의 숲은 신비한 곳이다. 광활한 숲 안에 산맥도 있고 폭포도 있었다. 혹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것처럼 협곡도 군데군데 존재했다.
지도상에서 보면 어둠의 숲 역시 서쪽 숲과 비결될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협곡을 따라 쭉 올라가자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 군데군데 죽어 있는 나무들이 보였다.
헤밀튼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전하 저 위에 숨어서 궁수들을 대기시키고 이곳으로 와이번을 끌어들이면 아주 좋은 사냥터가 됩니다.”
나는 헤밀튼의 말에 주위를 살폈다.
절벽 위는 무척 높았지만,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은 나무들이었지만 나무들이 제법 많아 은신도 가능해 보였다.
절벽 밑은 바위들의 세상이라 말 할 정도로 바위가 많았다.
“와이번은 지상의 생물을 공격할 때 어쨌든 밑으로 내려와야 됩니다. 여기는 와이번이 내려와서 공격할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저 절벽은 와이번이 몸통으로 부딪쳐도 괜찮을 정도로 튼튼하니 좋은 매복지라 할 수 있습니다.”
헤밀튼의 설명에 나는 다른 이의 의견도 구했다.
“어때?”
“괜찮아 보입니다.”
“좋아. 이곳은 다 살펴보았으니 다음 후보지로 가지.”
헤밀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후보지는 죽음의 폭포 근처입니다.”
아무래도 누가 거기에 꿀을 발라 놓았나 보다. 내가 올 때마다 가는 걸 보면.
‘죽음의 폭포 근처 던전 어딘가에 파멸의 검이 있으니 꿀보다 더 좋은 것이 있는 곳이지.’
나는 옅게 웃으며 헤밀튼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