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3)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3화(13/278)
13화.
황제의 집무실이라고 보기에는 꽤 단촐해서 살짝 놀랐다.
‘하긴 내가 론 칼 레오드는 검소한 사람이라고 설정했지.’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을 칼페온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산 사람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따르든 크게 괘념치 않았다.
희생된 가문 중 하나가 바로 영웅 카렌, 즉 주인공 가문이었다.
직접 제국의 병사들을 이끌고 카렌의 가문을 멸문시키지는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아버지가 일으킨 1차 정복 전쟁의 여파임은 분명했다.
카렌은 모든 사건의 원흉처럼 느껴지는 론 칼 레오드를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성장해, 끝내 칼페온 제국을 무너뜨린다.
‘그건 소설이고. 여기는 현실이고.’
내가 쓴 소설이고, 소설 속으로 들어왔지만 나는 이제 영웅 카렌을 집필했던 기억을 하나의 정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맞닥뜨린 상황은 현실이며 나는 아룬 칼 레오드이니까.
“앉도록.”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조심스럽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게일은 내 뒤에 자리를 잡고 섰다.
지독히도 차가운 아버지의 눈빛을 보면서 나는 움츠러들지 않기 위하여 호흡을 골랐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아버지의 눈빛에 이채가 스쳤다.
하지만 곧 아버지의 시선은 게일에게로 향했다.
“많이 늘었군, 게일.”
게일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예의였다.
나는 굳이 아버지의 말에 끼어들지 않았다.
“조만간 벽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영원히 벽 앞에서 헤매는 사람이 훨씬 더 많지.”
“명심하겠습니다.”
벽? 나는 궁금증이 들었다.
‘아, 소드 마스터로 향하는 길을 말하는 모양이군.’
제국에 또 한 명의 소드 마스터가 탄생한다면 그건 게일일 확률이 현재로서는 가장 높으니까.
일국에 비견한다는 소드 마스터의 무력! 2차 정복 전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게일의 존재를 누구보다 든든하게 여길 것이다.
“봄에 평가를 거쳐 좋은 기사들 위주로 직속 기사단을 하나 더 창설한다. 단장으로 그대가 적격인데, 아직 마음이 그대로인가?”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게일보다 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은 단 한 가지였다.
바로 명령.
어떤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고 아버지는 오로지 명령만 내렸다.
‘본래 아룬의 기억 속 아버지는 두려움의 상징이지만 괜히 최종 보스겠어? 이 사람은 제국을 이끌어 나갈 능력이 충분하고 그중에는 훌륭한 용인술도 포함되어 있겠지.’
나는 슬쩍 게일의 눈치를 살폈다. 게일은 평소처럼 담담하게 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는 이그니에 가문의 가신으로서 전대 가주께서 돌아가신 뒤로 그분의 유언을 받아 황태자 전하를 모시고 있습니다.”
아주 깔끔한 거절이었다.
역시 게일은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이 제국에서 누가 있어 아버지의 제안을 저토록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알겠다.”
아버지 역시 게일을 대하는 건 무척이나 특별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황제의 권위를 이용해서라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을 것이다.
‘게일이 그만큼 특별한 것일까? 물론 게일이 뛰어난 기사인 건 맞지만…… 다른 이유도 있는 건 아닐까?’
문득 내 머릿속에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아버지의 시선이 내게 닿자 생각을 접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버지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내가 아쉬운 입장이었으니까.
“사람 꼴은 하고 있구나.”
아버지의 말에 나는 짧게 대답했다.
“네.”
나는 솔직히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하니 그의 눈빛과 태도, 위압감에 몸이 떨리는 기분이었다.
살짝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려는 찰나,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테드 휘하의 기사들과 네 궁에 속한 사람들 문제 때문인가?”
역시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소문은 이미 궁 전체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굳이 소문이 아니더라도 황궁의 일을 황제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나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들을 구금했지만 처벌하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나는 말을 하면서도 내 스스로가 참으로 우스웠다.
황태자를 모욕한 기사들, 황태자궁의 예산을 착복한 이들을 처리하면서 권위를 운운하다니.
그들은 엄연히 제국법을 위반했고 당연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들이다.
다른 황자였다면 이런 문제로 아버지를 찾지도 않았다.
내 경우는 특수했다.
황태자라는 직책은 분명하지만 나에 대한 평가는 최악이었고, 황태자궁 부집사장, 시녀, 하인들은 몰라도 테드 휘하의 기사들 문제는 여러 말이 나오게 될 가능성이 상당하니까.
만약 기사들이 자신들의 죄를 부정하고 테드가 그들을 옹호한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나를 의심할 것이다.
정의롭고 겸손하며 뛰어난 능력의 테드 휘하의 기사가 모자란 황태자를 왜 모욕한다는 말인가.
자격지심에 가득 찬 황태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편이 사람들에게는 훨씬 설득력 있다.
아버지는 의자에 등을 깊숙하게 기댄 뒤, 턱을 괴고 고민에 잠겼다.
나는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에 집중했다.
“제국법 앞에서는 어떤 권위도 필요 없다. 하지만 사람 꼴조차 하지 못했던 네게는 다른 문제겠지.”
폐부를 찌르는 아버지의 말에도 나는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당장 나는 아버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최하급 정령사? 그 정도는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도 주지 못했다.
당장 아버지는 상급 정령사다.
소드 마스터, 마법사, 정령사…… 모든 능력의 정점에 서 있는 게 바로 론 칼 레오드이자 내 아버지다.
“성년식까지 지켜보지.”
아버지는 가타부타 말없이 딱 그것으로 이야기를 끝낸 듯 몸을 일으켰다.
그 기세에 나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어떤 말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엉덩이를 떼었다.
‘그 정도로 충분해.’
성년식까지 지켜보겠다는 말의 의미에 관한 건 게일과 상의하면 될 것 같았다.
솔직히 아버지이지만 내게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니까.
내가 문을 나서기 직전 아버지가 흘러가듯 덧붙였다.
“바람과 물의 정령이라……. 적어도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진한 기운이어야 될 거다.”
나는 문을 나서며 작게 웃었다.
‘역시…… 전부 알고 계시는군.’
* * *
아버지의 집무실을 나가자마자 모든 시선이 내게 쏠렸지만 나는 의식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궁을 나서고 난 뒤에야 사람이 조금 적어져 게일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게일.”
“네.”
“성년식까지 지켜보자는 아바마마의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지?”
아바마마, 본래의 아룬 칼 레오드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호칭이다. 나 역시 처음이라 입에 살짝 거슬리는 느낌이었지만 사실이지 않은가.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고 아버지가 황제이니 당연히 아바마마지.
게일은 의식하지 못한 듯 내 질문에만 대답했다.
“아마도 폐하께서는 전하에게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
“기회?”
내게 되묻자 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죄를 저지른 기사와 부집사장, 시녀, 하인들을 직접 처리하실 수 있는 대외적인 권위를 성년식까지 자격을 갖추시면 주겠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아바마마의 권위로 그들의 처리 문제를 뒷말 나오지 않게 미뤄두고 내가 성년식 이전까지 아바마마의 마음에 드는 수준까지 올라와야 된다는 말이지?”
“네. 정확하십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내 마음을 달리 먹었다.
‘확실히 아버지는 내게 조금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군. 아니면…… 어머니에 대한 감정인가?’
아버지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 철혈의 황제 론 칼 레오드가 처음으로 감정적으로 변했던 시절이 바로 내 어머니 이리엘을 만났던 시기다.
‘이건 유일하게 나만 알고 있는 정보이니.’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곳은 중세 판타지 세계. 귀족끼리의 정략결혼은 합당한 이치였으며, 전국시대에는 더욱 심했다.
아버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국의 기반을 공고하게 다지기 위하여 귀족의 여식들을 아내로 맞았으니까.
‘뭐 그건 그거고…… 최소 중급 정령사 정도는 되라는 말인 것 같은데.’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내 스스로도 성장이 빠르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하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가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참, 기사단 신설을 위한 봄 평가라…… 정확히 언제지?”
“황태자라는 분이 그런 것도 모릅니까.”
대답을 한 건 게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한 남자가 참 많은 사람들을 뒤에 주렁주렁 단 채, 내게 다가왔다.
나보다 키가 좀 더 컸는데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이 무척 껄끄러웠다. 비웃음이 가득한 그의 시선은 곧 게일에게 옮겨갔다.
“그대는 아직도 미래가 없는 궁에 붙어 있나? 폐하를 알현하고 오는 길 같은데 별 볼 일 없는 장남에게 붙어 있으니 떡고물이라도 주시던가.”
지독히도 모욕적인 남자의 언사에 게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한 번 말하면서 나와 게일을 동시에 모욕하는 재주를 지녔다.
나는 피식 웃었다.
‘첸 칼 레오드.’
칠황자이며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하여 가장 많이 노력하는 황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외가 역시 만만치 않았는데 4대 수호 가문 중 하나였다. 애트란 가문에는 살짝 밀리지만 첸의 외할아버지 역시 초대 황궁 수석 마법사로 여전히 제국 마법사들의 존경을 받는다.
물론 실력으로만. 인성으로는 누구도 존경할 수 없을 정도로 첸의 외할아버지도 첸도 파탄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머저리 형님…….”
“미쳤군.”
내가 첸의 말을 잘라먹자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심지어 그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마저 마찬가지였다.
과연 마법사 외가가 미는 황자답게 수행하는 이들 대부분이 마법사처럼 보였고, 기사는 몇 명 되지 않았다. 나는 첸이 입을 열기 전에 다시 말했다.
“듣는 귀가 한둘이 아닌데 사사로이는 형이자 공적으로는 황태자를 능멸하다니. 황가의 일원이라고 그 죄가 무마될 거라 생각하나?”
내 말에 첸은 크게 웃었다.
“형? 황태자? 이런, 방에만 처박혀 있다가 오크 술사 저주나 걸려 빌빌대더니 아예 정신을 놓으신 모양이네. 나 첸이야, 첸이라고, 첸! 아시겠어요, 형님?”
웃으며 또박또박 말하는 첸을 보면서 내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게일은 어느새 검을 반쯤 뽑았다.
‘확실히 테드보다 멍청해.’
물론 아주 멍청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허접한 수준인 형님은 모르겠지만 이미 내 말은 반경 몇 미터에서 흘러나가지 않는다고.”
첸이 턱짓으로 뒤의 마법사들을 가리켰다.
게일이 담담하지만 기세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
“전하, 언사가 심하십니다.”
“봄 평가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아바마마는 또 자네에게 기사단장을 제안하신 모양이군? 제국에 인재가 참 많은데 아바마마께서 굳이 자네에게 집착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어.”
나는 첸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황자끼리 사소한 담소라도 나누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 둘 다 웃고 있으니까.
“자네가 또 거절한 모양이니 기사단이 아니라 마법단을 창설하시라고 건의드릴 생각이야.”
첸은 자랑스러운 듯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어린 아이가 자신의 좋은 장난감을 자랑하는 듯한 모습에 나는 혀를 찼다.
‘진짜 실력자들은 오히려 겸손한 법이지.’
한순간 방심하여 내게 당했지만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테드 같은 인물이 더 뛰어나고 위험한 법이다.
나는 굳이 첸과 이야기를 지속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를 놀리고 조롱하고 싶었겠지만, 그동안의 반응과 다르니 첸 역시 금방 흥미를 잃은 듯했다.
“아, 이번 봄 평가에서는 황자, 황녀들의 평가도 있는데 우리 황태자 전하께서는 또 방 안에 틀어박히실 예정이시죠?”
화가 치밀어 앞뒤 생각 없이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번에는 나갈 생각이다.”
첸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냥 방에 계시는 게 어떻습니까. 망신만 당하실 것 같아 걱정입니다.”
존댓말조차 조롱조로 쓰는 첸을 보면서 나는 진하게 웃었다.
“황태자의 특혜를 이용해서 첫 상대를 꼭 첸 칠황자로 지목하지.”
그리고 나는 방금 어린 나이에 4서클에 이른 첸을 도발했다.
정령사로 치면 이미 중급 비기너, 즉 중급 정령사 초기라 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와는 현격한 차이가 나는 실력자다.
감정을 전혀 숨기지 못하는 첸은 내 가벼운 도발에 욱했는지 발을 굴렀지만, 나는 가볍게 돌아섰다.
‘봄에 있을 평가라…….’
애써 내색하지 않았지만 걱정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