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37)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37화(137/278)
137화.
리오덴은 눈치가 빨랐다.
챙-!
실프가 부리는 바람의 사슬을 막아내며 나를 향해 쇄도했다.
나는 노에스를 불러 즉시 대지를 튕겼다.
대지의 포효가 리오덴의 경로에 펼쳐지면서 리오덴의 속도를 줄어들게 만들었다.
‘당황하지 않잖아.’
달리는 발밑이 갑자기 꺼지면 당혹스러울 법도 한데, 리오덴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대지의 포효를 피해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상급 정령들을 소환했다.
기사들의 압박이 장난 아니었기에 하급 정령들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클라임과 엘라임이 만들어내는 늪의 요정에 기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늪의 요정 덕분에 혼자가 아니라는 말이지.’
수련장 땅은 순식간에 늪으로 변했고 기사들의 기동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나는 단숨에 승기를 잡았다.
서걱-!
늪의 요정을 베면서 데이비드가 번개같이 쇄도했다.
바람과 대지의 흐름이 가까스로 데이비드의 공격을 피하게 해주었다.
귀 밑을 스치는 수련용 목검의 날카로움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위험했어.’
자칫 방심하다가는 한순간에 잡힐 수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거리를 벌리면서 이그니스를 향해 말했다.
‘불의 장막.’
이그니스의 화염이 수련장을 뒤덮었다.
“흩어져! 포위하면서 거리를 좁혀!”
리오덴의 목소리에 나는 정면은 불의 장막으로 막고, 등 뒤는 엘라임의 물의 장벽을 세웠다.
쿠쿠쿵-!
불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 거대한 방어막을 세우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나는 노에스와 노움을 적극 활용했다.
불의 장막과 물의 장벽은 단순 방어만이 아니라 적의 시야도 한층 좁게 만들어준다.
스킬 안쪽에 있는 나는 두 스킬 너머를 투명한 망토처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나는 적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지만 적들은 불의 장막과 물의 장벽을 뚫고 나를 볼 수 없었다.
노에스 둘과 노움 다섯이 흩어졌다.
쿵-! 쿵-!
땅이 갈라졌다.
대지의 포효가 이번에는 제대로 적중했다.
동시에 나는 실울펜을 불렀다.
실울펜의 등에 올라타면서 엘라임과 클라임을 동시에 불렀다.
단숨에 승부를 볼 참이었다.
엘라임과 클라임이 함께 만드는 늪의 요정들이 자취를 감추자마자 나는 실울펜과 함께 높게 솟으며 비산하는 물방울을 펼쳤다.
순간적으로 클라임과 이그니스를 돌려보내면서 생기는 마나 소모 공백을 모조리 엘라임에게 쏟아부었다.
파파파팟-!
물방울이 기사들을 덮쳤다.
“전하.”
게일이 다가왔다.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어느새 허공을 밟고 나의 뒤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대련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나는 정령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가볍게 땅에 착지했다.
기사들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잔부상이 있는 기사들도 보였지만, 크게 다친 이들은 없었다.
“물방울은 처음 보는 기술인데 압력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리오덴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혀를 내두르며 하는 말에는 감탄이 섞여 있었다.
“물방울에 맞는 순간 몸이 터질 것 같았는데 안에 갇히니까 정말 물에 빠진 듯 숨을 쉬지 못하겠더군요. 그리고 물이 사방에서 몸을 찌그러뜨리겠다는 듯 조이는데 엄청 아팠습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최근에 새로 익힌 기술이야. 나쁘지 않지?”
“네.”
게일이 말했다.
“리오덴, 기사들과 함께 특훈장으로 가 있도록.”
윽, 하고 리오덴이 신음을 내뱉었다.
게일의 무시무시한 눈빛에 기사들의 걸음이 무거워졌다.
“너무 굴리지는 말라고.”
게일은 내게 고개를 숙인 뒤 기사들을 뒤따랐다.
나도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오후 수련은 이 정도로 할 생각이었다.
‘꽤 괜찮은 대련이었어.’
대련을 복기하면서 걸었다.
확실히 다른 정령사들과 달랐다.
일단 계약한 정령 숫자부터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내가 동급 정령사보다 더 많은 정령과 계약했고, 친화력이 말도 되지 않게 좋아 의식만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건 곧 전투의 효율로 이어졌다.
‘네 속성의 상급 정령들을 모두 계약한 것, 스킬 효율이 극도로 높은 것 그리고 나름 전투에 대한 감각이 좋은 것.’
일단 나의 승리 이유를 점검해 보았으니 부족한 점도 짚어보았다.
‘거리를 주는 순간 끝장이야. 바람과 대지의 흐름 레벨을 더욱 올릴 필요가 있어.’
내 자신의 기동력을 높일 필요도 있었다.
그리고 최후의 한 수도 생각해보았다.
‘마나가 모두 소모되고 정령들을 소환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파멸의 검을 허리춤에서 분리한 뒤 들어 보았다.
느낌이 생소했다.
미스릴 검이라 가벼웠지만 검집 안에 있는 검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무기의 힘에 기대어 최후의 한 수를 준비해볼까? 내가 정령사라는 사실은 계속 알려질 것이고…… 정령술이 높아질수록 정령사라는 인식은 더 강해지니까.’
마지막 한 수로 검을 휘두르는 것.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많이 배울 필요도 없었다. 방심하고 있는 적을 단숨에 벨 수 있는 베기 혹은 찌르기면 충분한 것 같았다.
게일이 돌아오면 상의하기로 결정하니 어느새 수련장에서 멀어졌다.
후원을 지나면 곧장 궁이니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전하, 올리비아 영애가 뵙기를 청합니다.”
* * *
궁까지 찾아온 그녀의 모습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상복도…….’
언제나 화사한 그녀는 다른 귀족 영애와 다르게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 기사들이 즐겨 입는 평상복을 입고 있었는데 무척 잘 어울렸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아, 일단 안으로 드시죠.”
올리비아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나를 따라왔다.
‘차부터 마실까? 지금 저녁 시간인데?’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맹렬하게 돌아가는 느낌도 들었다.
공존할 수 없는 두 감정의 충돌에 나는 허둥댔다.
“올리비아 영애,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아, 함께 저녁을 드시겠습니까?”
순간 올리비아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이렇게 말재주가 없어서야.’
나는 속으로 한탄했지만, 이내 올리비아가 싱그럽게 웃었다.
“전하와 차를 나누고, 저녁까지 함께할 수 있다면 영광이지요.”
* * *
집무실에서 올리비아와 차를 한 잔 마신 뒤 후원으로 나왔다.
연회를 열었던 후원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과 따뜻한 오후의 봄 햇살이 올리비아의 걸음을 화사하게 빛냈다.
“올해 성년식이라 들었습니다.”
겨우겨우 찾아낸 화제가 바로 나이였다.
조용히 내 옆에서 걷던 올리비아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여름에요. 아마 원정을 다녀오면 성년식을 치르겠네요.”
자연스레 동부 원정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아직 제임스 공작의 제안에 답을 내리지 않았다. 연회 당시 귀족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적당히 넘어갔다.
“영애 정도면 기사단을 맡아 출정할 수 있습니다.”
섣불리 나의 호위가 되어 달라고 말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녀가 소드 마스터라서?
나는 몰래 고개를 저었다.
‘정략결혼이 당연한 곳이지만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현대 사회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일까?
나는 올리비아의 허락은 당연히 구하지 않았을, 제임스 공작의 정략결혼 제안이 썩 달갑지 않았다.
평범한 귀족 영애라도 남편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플 법한데, 올리비아는 공작의 영애다.
작위도 높을뿐더러 제국 북부에서 명망을 떨쳤던 화이트 왕가의 핏줄이다.
아무리 내가 황태자라도 정략결혼으로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건 달갑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의 태생, 신분도 대단했지만 실력 자체가 정략결혼과 어울리지 않았다.
소드 마스터라면 가문이 입김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충분히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여 결혼할 수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영애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면 제임스 공작님에게는 제가 잘 말하겠습니다. 굳이 호위가 아니더라도 기사단 단장이면 영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아직은 소녀가 아닌가.
아버지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평생의 반려를 자신의 의지 없이 결정해야 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황태자비라는 자리보다 소드 마스터로서 넓은 기사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올리비아가 나지막하게 질문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제가 전하의 호위가 되는 거요.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요.”
다소 당돌하다고 느낄 정도로 올리비아는 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깊은 눈동자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과연 내가 무슨 대답을 할까, 무척이나 궁금한 듯 올리비아는 환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전하의 의중이 중요하잖아요. 아버님의 제안은 말 그대로 제안일 뿐 결정은 전하의 몫이니까요.”
올리비아는 평범한 귀족 영애와 달랐다.
실력 때문일까? 성격일까?
아버지의 명령을 추상과도 같이 여기는 여타 귀족 영애와 다르게 올리비아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내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나의 선택이 중요하지 아버지의 제안은 중요하지 않다.
올리비아는 나를 향해 직설적으로 말했다.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 전하께서 답이 없으셔서 왔어요. 저도 이왕이면 전하께 직접 듣는 편이 좋고요.”
서슴없는 그녀의 말들은 나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괜스레 마음이 흔들리는 게 부끄러웠다.
“호위는 제 결정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애의 결정이 중요하죠. 영애께서 원하시지 않으면 기사단 단장직을 제안드리겠습니다.”
올리비아가 걸음을 멈췄다.
나도 그녀를 따라 멈췄다.
후원에 자리한 꽃향기들이 은은하게 퍼졌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올리비아의 시선에 나도 모르게 조금 전과 달리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황태자로서 본분을 어기는 것일 수 있지만 정략결혼을 원하지 않습니다. 영애는 제국의 훌륭한 인재입니다.”
나는 후우,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소드 마스터가 한 개인의 반려가 된다는 건 제국에 크나큰 손실입니다. 전장에서 사령관을 호위하는 것보다 기사들을 이끌고 전투에 나서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막상 한 번 말을 시작하자 매끄럽게 목소리가 나왔다.
“영애는 화이트 가의 보물이며 제국의 보배입니다. 황가와 화이트 가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휘둘리실 분이 아니시죠.”
소드 마스터는 일인 군단이라 불린다.
이 시대의 여성들은 결혼을 하는 순간 남편의 일신영화에 모든 것을 바친다.
그건 황가와 결혼한 여성들이라 하여도 다르지 않았다.
당장 동생들의 어머니들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친정의 영광을 위하여, 아들과 딸이 권력의 정점을 차지하게 만들기 위하여 자신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고 있었다.
전장에서 유려한 검술을 선보이는 올리비아는 상상이 잘되었지만, 사교 모임에서 다른 귀족 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올리비아는 어색했다.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올리비아가 옅게 웃었다.
“혹시 모르죠. 제가 진정 원하는 것을 배려할 사람을 만나면 저도 전장에서 마음껏 검을 휘두르게 될지도요.”
나는 걸음을 옮겼고, 올리비아는 내 옆을 지키듯 걸음을 맞췄다.
“성년식이 되기도 전에 마스터가 되었다는 건 재능, 노력 여부를 떠나서 진정 검술 자체를 즐기고 사랑한다는 뜻일 겁니다.”
“맞아요.”
올리비아는 부정하지 않았다.
“공작님의 제안이 매우 달콤한 건 솔직히 사실입니다. 화이트 가의 영향력은 제게 있어 무척 필요하니까요.”
한 번 솔직해지기 시작하자 나도 거침이 없었다.
올리비아는 적당히 포장하는 말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더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모양이야.’
전적으로 나의 판단일 뿐이지만, 내심 확신이 들었다.
“폐하의 뜻은 원대하고, 황태자로서 제국의 번영을 바라는 저 역시 앞으로 많은 전장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나는 올리비아를 향해 고백했다.
“이번 원정에 호위를 맡아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올리비아가 배시시 웃었다.
“저도 전하를 알아가고, 전하께서도 저를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심장이 두근거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올리비아가 대담하게 말을 이었다.
“전 평범한 황태자비는 원하지 않아요. 귀족 부인들과의 화합도 노력할 테지만, 전하를 지키는 최후의 기사이자 전하의 적을 용서하지 않는 기사가 되고 싶거든요.”
마지막으로 올리비아가 덧붙였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의 옆자리를 내어주어야 가능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