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38)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38화(138/278)
138화.
켄을 불렀다.
올리비아가 저녁을 맛있게 먹고 돌아간 이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결정을 내렸다.
‘혼자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다.’
솔직히 나는 연애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황태자라는 사실을 자각한 이후 정략결혼에 대하여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올리비아 같은 여성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장황하게 오늘 올리비아와 있었던 일을 켄에게 설명했다.
“일단 평소 전하와 다르게 말씀이 잘 정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황을 볼 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뭐지?”
내가 서둘러 묻자 켄이 빙긋 웃었다.
“전하께서는 올리비아 영애에게 반하신 듯합니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켄에게 말했다.
“반했다니 무슨 말이야. 고작 두 번 만났어. 연회 때 한 번, 오늘 한 번.”
“전하, 올리비아 영애의 출전 문제는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회의할 안건입니다. 정략결혼 제안이며, 화이트 가와 혈연으로 묶이는 일입니다.”
켄의 말에 나는 큼, 헛기침을 터뜨렸다.
진중한 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서부의 세력을 얻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한 정치적 이득을 보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 반면 화이트 가와 혈연이 되는 순간 그 즉시 전하의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집니다.”
켄의 설명은 이치에 맞았다.
소드 마스터가 두 명인 가문은 제국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를 뒤져 보아도 없으니까.
연회 이후 화이트 가의 영향력이 증가한 건 당연했다.
“제임스 공작이 폐하와 오랫동안 독대를 나눴답니다. 아마 그 자리에서도 분명 두 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겁니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왔음에도 올리비아가 검술을 펼치는 모습이 여전히 머릿속에 생생했고, 꽃이 가득한 후원에서 보여준 그녀의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빙빙 돌려 말했지만 나는 분명 올리비아에게 가문을 위해서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일을 결정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진심이었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누군가가 결정 짓는 건 옳지 않으니까.
그게 상식인 시대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런 개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칼페온 제국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식, 문화, 사상 같은 것이 나의 장점이 되기도 하니까.
많이 배우지는 않았지만 나는 칼페온 제국의 학자들, 정치인보다 더 대국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훨씬 발전된 세계에서 산 경험 덕분이었다.
“올리비아 영애 문제는 내가 선택할게. 밤중에 불러서 미안하군. 솔직히 감정이 격해져서 누구와라도 말하지 않으면 답답했어.”
“전하, 누군가를 마음에 두는 건 남자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황태자이십니다.”
켄은 냉정했다. 그게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하니까.
“폐하께서 제임스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맞아.”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올리비아가 서로 어떤 합의를 했더라도, 혹은 마음을 나눴더라도 아버지의 허락이 없다면 끝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영애를 데려와 황태자비로 맞으라 말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게 내 운명이었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라면 아버지도 화이트 가를 아주 높게 평가하는 점, 제임스 공작이 나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올리비아 영애와 정략결혼이 진행되지 않으면 앞으로 전하께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에게도 선택할 자유는 없다는 거구나.”
본래 최고의 혼처는 테드였지만 그는 일찌감치 베레곤 공작이 찾아 준 귀족 영애와 약혼을 맺었다.
많은 황자들이 성년식 이전에 약혼을 하였는데 나는 그동안 누구도 약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황태자이지만 너무 위태로웠으니까.
내 능력을 확인한 뒤부터 귀족들 마음이 변했을 것이다. 연회에서 그들의 눈빛이 어떠했는가.
‘당시 내가 제임스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이더라도 다들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려는 눈빛이었어.’
켄은 또 한 가지를 짚었다.
“저도 남녀 사이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폐하의 결정 혹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진정 원하시는 분과 결혼하실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아버지가 반대해도?”
“네.”
나는 무척 놀랐다.
“그런 방법이 있다고?”
“그 누구와 맺어져도 흔들리지 않는 입지를 다지시면 됩니다.”
나는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정략결혼의 본질은 서로의 집안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켄은 정략결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황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가문보다는 당사자에게 부족한 점을 좀 더 고려하여 상대방을 고를 뿐이죠.”
켄의 결론은 간단했다.
“서부가 안정되어 전하를 든든하게 지원하고 동부 원정을 성공시키시면 충분히 전하 스스로 결혼 상대를 정하실 수 있을 겁니다.”
켄이 덧붙였다.
“청혼부터 하셔야겠지만요.”
“내 멋대로 청혼하는 건 무리야. 올리비아 영애의 개인적인 마음부터 얻어야지.”
켄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민망해서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켄은 내 감정을 짚어 주었고 현실적인 문제에 관한 것도 명쾌하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나의 입지라! 좋아, 뷔칸부터 만나보자. 서부를 좀 더 빨리 발전시켜야 되니까. 원정 준비에서 필요한 게 있다면 그때 그때 말해주고.”
“네, 전하.”
밤이 꽤 늦었다.
나는 켄을 돌려보냈다.
홀로 집무실에 앉아 올리비아를 떠올렸다.
절로 미소가 번졌다.
‘내 실력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한다.’
올리비아의 레벨이 머릿속을 스쳤다.
‘일단 나부터 올리비아만큼은 강해져야겠어. 그녀는 누가 뭐래도 소드 마스터니까. 자신보다 약한 남자를 선택하는 건 아쉽지 않을까?’
어느새 나는 그녀의 입장에서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
* * *
새로운 열정이 내게 힘을 불어넣었다.
“징집은 한 달 뒤까지 모두 끝내야 돼.”
나의 말에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하. 귀족들이 잘 협조하고 있으니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시선을 게일에게 돌렸다.
“많은 기사단이 참여하는 전쟁이 될 거야. 게일, 부담스럽겠지만 나는 이번 전쟁에서 나의 기사단이 가장 빛났으면 좋겠어.”
“네, 전하.”
게일은 섣불리 내게 호언장담하지 않았다.
‘게일이라면 믿을 수 있지.’
나는 게일을 누구보다 신뢰하고 있었다. 현재 기사단 단원들 모두 재능이 넘치는 자들이니 충분히 다른 기사단보다 더 강한 전력을 내리라 생각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준비 사항 다시 한 번 점검해 줘. 내일 회의를 끝내고 아바마마께 동부 원정 날짜를 보고할 거야.”
모두 동시에 네, 하고 대답했다.
준비 사항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뒤 내일 회의에서 날짜를 정하고 대전에 찾아갈 생각이었다.
이미 사령관 직위를 받았으니 전쟁 준비에 관한 모든 것을 나의 재량으로 진행했다.
귀족들만이 아니라 아버지도 내가 요청하는 사안들을 별말 없이 도와주었다.
오전 회의를 마친 뒤 나는 집필 정보가 담겨 있는 양피지를 꺼내 읽었다.
‘동부 원정은 본래 역사에 아예 없던 일이다.’
나는 홀로 심각하게 책상을 두드리며 이 시기의 정보를 읽고, 생각하고 분석했다.
‘피레온 왕국은 아버지의 첫 원정에 정복되었어. 즉…… 내가 집필한 것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자그마한 변수나 혹은 사건들이 내가 쓴 소설과 다르게 흘러갔지만, 이번 동부 원정은 유독 많이 틀어졌다.
내 아버지 론이 최초로 철군을 결행하였으며, 나 아룬이 그 전장을 이어받았다.
‘점점 더 달라진다.’
파멸의 검도 내 손에 들어오고, 소드 마스터 올리비아의 등장도 놀라웠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래를 알고 있기에 나는 자신 있게 움직였고 성장해 왔다.
이제 기댈 곳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양피지 묶음을 덮고 서랍에 조심스럽게 넣은 뒤 열쇠로 잠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새로운 인생이잖아.’
아룬 칼 레오드가 나의 이름이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내 지식이 모두 쓸모없어진 건 아니니까.
나는 여전히 시스템 창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많은 양질의 정보들을 누렸다.
‘급하지 않게 차분히.’
동부 원정에 대한 불안감을 지워 버렸다.
“전하, 뷔칸 상단주가 뵙기를 청하옵니다.”
어제 수도에 도착한 뷔칸 상단주를 궁으로 불렀다.
아마 꽤 놀랐을 것이다.
자신이 수도로 올라오는 것을 알고 시기까지 맞추어 마중을 나갔으니까.
‘헤밀튼 덕분이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들여보내도록.”
집무실 문이 열리고 뷔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뷔칸이 내게 예를 표했다.
나는 뷔칸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쪽에 앉지.”
하인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차 좀 부탁할게.”
“네. 전하.”
종종 걸음으로 나가는 하인을 보면서 나는 뷔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서부에 보고 처음이지?”
“그렇습니다, 전하. 서부에서 여러 일들이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하께서 이리 일찍 궁으로 돌아오실 줄 몰랐습니다.”
“아바마마께서 부르셔서. 막중한 직책도 맡았고. 서부의 일은 이곳에서도 할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없어.”
나는 빙그레 웃었다.
뷔칸이 담담하게 말했다.
“여러 상단을 고려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뷔칸 상단주는 마음에 들어. 하지만 뷔칸 상단의 능력은 확신할 수 없어.”
노련한 상인을 상대로 나는 굳이 빙빙 돌려 말하지 않았다.
“정화의 물은 아주 중요해. 단순히 유통을 해서 끝나지 않아.”
“위로는 황가부터 아래로는 평민까지. 모든 이가 고객이 될 수 있습니다. 특정한 계층에게만 장사를 한다면 큰 이득을 거둘 수 없는 성질의 물건이죠.”
하인이 차를 내왔고, 나는 마신 뒤 이야기하라는 듯 손짓했다.
뷔칸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황가, 귀족 가문에는 최상급을 납품하고 평민들에게는 가벼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만큼의 상품만 만들어서 팔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통 이야기 하나였는데 뷔칸은 상품성부터 시작하여 대상 고객을 설명하고 있었다.
“시장에 단순히 내놓으면 많이 팔리겠지만 큰 이익을 남길 순 없습니다. 고객 특성을 고려하고 제조 물량을 조절하고 유통 물량도 조절해야죠.”
내가 하고픈 말을 뷔칸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정화의 물은 서부의 특산품이다.
최고의 효능을 자랑한다.
돈이 있어도 최상급 정화의 물은 쉽게 살 수 없지만, 평범한 등급의 정화의 물은 구할 수 있다.
“최상급은 품귀 현상을 빚게 만들어 가격을 폭등시키고 평민들에게는 다소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물량을 푼다면 전하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는 마음도 충족되실 겁니다.”
“뷔칸.”
“네, 전하.”
나는 웃으며 말했다.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야. 내가 알고 싶은 건 뷔칸 상단이 과연 내 상품을 그렇게 만들어줄 능력이 있는가? 그게 중요하지.”
뷔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 원정을 나가신다 들었습니다.”
갑작스레 화제를 돌리는 말투가 썩 반갑지 않았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전쟁 상인들은 큰 이득을 남기죠. 목숨을 걸고 전장을 돌아다니기에 당연히 남는 게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일단 뷔칸의 말을 들어주었다.
“정화의 물 유통권을 보장해 주시면 귀족들에게 납품하는 보급품은 제 가격을 받겠으나,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파는 보급품의 가격은 시세의 십분의 일만 받겠습니다.”
뷔칸은 내게 운명을 걸었다.
서부 정화의 물만이 아니라 전쟁 상인 임명까지 노렸다.
귀족들에게는 혜택을 주지 않고 일반 병사들에게는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이 설정은 변함이 없어. 전쟁 상인들이 이득을 챙기는 가장 큰 통로는 귀족, 황가에 납품하는 보급품이 아니라 전장을 돌아다니며 병사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보급품이다.’
전쟁 상인이 득실거리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황가와 귀족의 납품하는 건은 따내기 힘들지만 병사들에게 판매하는 건 전장만 따라다니면 되니까.
물론 누구도 전쟁 상인의 목숨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뷔칸이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계산이 틀렸어, 뷔칸. 이번 전쟁은 어느 때보다 보급품이 풍부해. 황도의 소문을 좀 더 듣고 오는 게 좋지 않을까?”
뷔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서부까지 찾아왔으니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지. 준비를 잘해 봐.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는 다른 상인들이 물밀듯 밀려올 거야.”
뷔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다음에 다시 시간을 잡지, 뷔칸. 그때가 백대 상단에서 십대 상단으로 도약할 마지막 기회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