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45)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45화(145/278)
145화.
아버지는 말없이 걸었다.
뭔가 질문을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침묵은 길어졌다.
나도 딱히 입을 열지 않았다.
대전 신하들이 하나둘 떠나 어느새 나와 아버지만이 황궁 안을 걷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곳.
기억에는 매일같이 왔던 기억이 있지만 엄밀히 그건 내가 아니었으니까.
방에만 박혀 있었던 어린 시절,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면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문을 부여잡고 울었다.
아룬 칼 레오드로 살아가면서 나는 이곳을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감정이 격해지는 건 내가 이제 아룬이기 때문이겠지.’
기억이 교차하면서 아련함이 차올랐다.
모습을 보이지 않던 신하들이 다시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황궁의 모든 건물은 주인이 있고 건물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오직 이곳만은 비어 있었다.
정원은 봄을 맞이하는 꽃들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여러 잡초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낡아버린 분수대와 곳곳이 갈라진 바닥을 걸으며 나는 우울해졌다.
궁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으로 보이는 곳까지 걸을 동안 여전히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신하들이 분주히 식당 안에 불을 밝히고 음식을 준비했다.
‘식당은 사용한 흔적이 있군.’
정원만큼 오랫동안 방치하지 않은 듯 식당 안은 먼지도 거의 없었고, 나무로 만든 식탁 역시 윤기가 흘렀다.
나는 아버지가 간간이 이곳에서 홀로 밥을 먹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앉아라.”
아버지의 말에 나는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의 궁, 그리고 황후의 궁.
황궁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별궁이 네 개나 딸려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황후궁 안 식당에서 아버지는 처음으로 어머니에 관해 입을 열었다.
“이리엘은 현명한 여자였다.”
음식은 모두 준비되었고,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지만 아버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와인잔을 채우는 아버지는 아련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돌했지. 이리엘을 처음 만났을 때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복수심 같은 건 사라졌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와 함께 피의 길을 걷는 건 썩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이리엘의 가문도 멸문하였지만, 그녀는 그것 역시 시대의 숙명이자 운명의 흐름이라 받아들였다. 나와는 달랐지.”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처음이었다.
‘론 칼 레오드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
나의 설정을 직접 입으로 듣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카일라하를 빼앗겼다는 이유로 세 가문의 멸문을 결정하던 것과 지금의 아버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제국을 건국한 이후 오랫동안 살았던 전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리엘의 배 속에 아이가 있었고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했으니까. 나의 가문, 이리엘의 가문을 멸문시킨 자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버지가 해주는 어머니의 이야기. 아버지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숨겨진 마음은 무엇일까 고민했던 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풀리고 있었다.
“아이의 이름을 아룬이라 지었다. 이리엘은 아이를 낳고 몸이 조금 쇠약해졌지만 금세 털고 일어났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이리엘은 이 궁 안의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
행복.
아버지의 말처럼 한 남자가 전국 시대 흐름에 분연히 일어나 제국을 건설하고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한 뒤 아이를 낳았다.
여느 소설처럼 행복한 결말이지 않은가.
“많은 이들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아이를 보았지만 이리엘은 슬퍼하지 않았다. 나는 오직 그녀만을 내 마음에 두었다.”
처첩은 이 시대 문화에서 흠이 아니다. 더구나 아버지는 제국의 황제다. 몇 명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던 문제될 것은 없었다.
“외부로는 나와 맞설 적이 없었으나, 내부에는 여전히 수호 가문이라 불리는 이들과 지방의 세력들이 잠재적 위협 요소로 남아 있었다. 이리엘은 하나의 강대한 제국이 세워졌으니 더 이상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정복욕이 삶의 이유라 느껴지는 아버지의 입에서 도저히 나올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째서 그 많은 부인을 두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어머니가 전쟁을 원하지 않으셨고 아버지는 내부의 위협을 누르기 위하여 여러 가문의 영애들을 아내로 맞았다.’
황제가 주요 가문의 영애와 지방 세력과 혼인으로 맺어지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아버지의 진짜 목적이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는 건 정말 뜻밖이었다.
“이리엘 이외의 다른 이들을 맞이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도, 그녀도 서로 아파했다. 내게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아마 그 방법을 선택했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었지.”
건국 초기의 국가는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잘못이라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리엘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변했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목소리에서 평소 아버지로 돌아왔다.
무심한 듯 날카로운 목소리.
“상급 정령사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군. 제국, 아니 대륙의 모든 곳을 뒤져 이리엘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 혹은 약을 찾아 헤맸다.”
“병으로 돌아가셨습니까?”
아버지가 옅게 웃었다.
“병으로 죽은 줄 알았다. 나는 하늘이 내게 내린 벌이라 생각했다. 내 검에 목숨을 잃은 수천, 수만의 사람들 원한이 모여 하늘이 내게 벌을 내린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이리엘은 저주를 받아 죽었다.”
* * *
나머지 이야기는 식사를 하고 하겠다는 듯 아버지가 포크를 들었다.
나도 먹긴 했는데 밥이 코로 들어가는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건 여전히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 저주를 받아 죽었다.’
과연 누가 있어 론 칼 레오드의 분노를 감당하겠는가.
아버지가 와인을 마신 뒤 말했다.
“저주의 흔적은 대륙 모든 곳에 퍼져 있었다.”
정복욕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복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얼마나 더 놀라야 하는 것일까.
“많은 왕국들을 정복하고 제국의 영향력을 키우면서 저주의 흔적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쫓았다. 최근 그 흔적이 하나의 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혹시 왕국 연합입니까?”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바로 여기 내가 이리엘을 위하여 공들여 지은 곳, 그녀가 종종 말하던 가문의 모습을 최대한 복원하여 만든 황후궁.”
“그럼 어머니에게 저주를 건 것은 왕국들이 아니라 내부의 소행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왕국들도 연관되어 있지. 오스틴과 베레곤은 아주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
아버지의 미소가 아까보다 진해졌다.
“그들은 네 성장에 마음이 급한 듯 피레온 왕국과 접촉했다. 그리고 피레온 왕국 역시 저주의 흔적이 발견된 곳 중 하나이지.”
나는 혀를 내둘렀다.
“어머니에게 저주를 걸기 위해서 마치 대륙의 모든 가문과 왕국이 짜고 움직인 것 같군요.”
“맞아.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저 답답한 상황에 빗대어 한 말이었는데 아버지의 결론이 그렇다니.
“다이어 왕가의 왕자로 살 때도 그랬다. 모든 이들은 나를 두려워했고 동시에 죽이고 싶어 하였지.”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전국 시대에서 힘을 가졌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경계의 대상이며 나아가 제거의 대상이다.
아버지는 천재였고 누구보다 빨리 소드 마스터에 도달했다.
올리비아가 더 빠르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건 제국의 역사책을 보기 전의 이야기다.
‘검술만이 아니라 마법, 정령술까지 그 어린 나이에 어마어마한 수준에 올라섰으니.’
“복수도 가슴에 묻어두고 그저 이리엘과 조용하게 살고 싶었지만 시대가 나를 내버려두지 않더군. 어쩌면 제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복수만을 끝내고 야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아버지의 회한이 담긴 말에 나도 모르게 위로했다.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알고 있다. 그저 이리엘이 나 때문에 끝내 자신의 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할 뿐이지.”
다시 베레곤과 오스틴 이야기로 돌아왔다.
“동북부의 왕국 연합, 피레온 왕국, 남부의 도시 국가들 모두에 저주의 흔적이 남아 있다. 베레곤과 오스틴은 피레온 왕국과 그리고 얀은 왕국 연합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안팎으로 전부 적이다.
나는 황권이 매우 강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듣고 보니까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아버지의 압도적인 무력이 모든 것을 누르고 있는 상황이라는 말인가.’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이제는 짐작이 갈 텐데? 오스틴과 베레곤 공작이 살아 있는 이유.”
“그들도 어떤 형식으로든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고 내부의 사람이 죽으면 외부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관련 인물들이 숨어 버릴지도 모르겠군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정복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다. 대륙을 통일하여 하나의 제국으로! 거대제국에서 백성을 평안케 하리라.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그럴 듯한 명분이니까.”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리 생각하신다고 느낍니다.”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네게는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대뜸 훅 치고 들어오는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과거에 못난 모습을 보여….”
“동부 원정에서 피레온 왕국을 정복하거든 국왕을 붙잡고 묻거라. 어떤 형식으로 이리엘의 죽음과 관련이 되어 있는지, 그리고 오스틴, 베레곤과 얼마나 깊게 연관이 되어 있는지.”
정복당한 왕국의 왕가는 대부분 멸문했다.
일부 살아남은 왕가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자신의 성을 잊은 채 제국 지방에서 감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과는 관련이 없는 자들이군.’
아버지가 결론을 내렸다.
“대충 이야기가 끝났으니 일어나지.”
나도 모르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전히 분노하시기에 전쟁을 계속 하시는 겁니까?”
“전쟁에서 죽어가는 소녀를 안고 이리엘이 내게 묻더군. 언제쯤 대륙의 비극은 끝날지를.”
아버지가 도리어 내게 물었다.
“죽고 죽이는 대륙의 비극은 왕가, 명가라 불리는 이들의 욕심부터 비롯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대륙에 단 하나의 황가만 남겨 놓는 것이 답이라 생각했다. 너의 답은 무엇이지?”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나의 모든 것이었던 사람을 많은 이들이 합심하여 앗아갔다. 그들을 정리하는 일과 그녀가 바라는 일을 나의 생각대로 펼치는 일이 아주 많이 겹치더군.”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머니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지 않은 왕가와 명가를 찾기도 힘들 정도다.
복수와 통일.
“나는 이리엘에게 말했다. 오늘 수천, 수만, 수십만이 죽어 내일의 수백만을 지킬 수 있다면 나는 내 검으로 수십만을 벨 것이라고.”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있을 수 있지. 나는 내가 선택한 방법으로 이리엘의 넋을 기리고 그녀가 바라던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너는 너의 세상을 너의 방법대로.”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말을 끊었다. 분명 내게 황태자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져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내 세상, 내 방법, 황태자로서 인정을 확실히 하겠다는 뜻이다.
-아버지를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그는 외로운 사람이니까. 그리고 많은 것들이 네게 허락된다면 아버지 곁에 있어주렴.
어머니의 정령술서에 적혀 있는 그 말은 유언이나 다름없었고, 또 어머니가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했는지 잘 나타내주었다.
“어머니도 마지막 순간까지 아바마마를 생각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