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47)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47화(147/278)
147화.
“정령을 형체가 아니라 본질로 보려고 노력해보세요. 아마 느낌 자체가 다르실 겁니다.”
엘라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엘라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인상의 엘라임은 인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와 같은 인상…… 이것도 선입견이다. 엘라임은 형체가 아니라 본질을 보라고 했으니까.’
물의 정령 본질은 결국 물이다.
한참이나 엘라임을 바라보았지만, 새로운 느낌을 받지 못했다.
“맹약의 주인님, 짧은 순간 내에 정령의 본질을 그대로 직시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차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먼저 주변의 자연부터 관찰하는 습관을 기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연?”
“네. 자연 속에는 모두 정령이 있답니다. 중간계의 자연을 유지하는 건 정령의 힘. 그 힘을 느끼시는 것부터 시작하면 정령의 본질에 대해 깨닫게 되실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엘라임을 돌려보냈다.
곧장 밖으로 나갔다.
수행원들이 따라붙었다. 이제 제법 사람들과 함께 다니는 게 익숙했다.
그들은 내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후원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나의 질문에 가장 가까이 있던 수행원이 입을 열었다.
“전문 관리 인원이 매주 한 번씩 관리하고 있습니다. 꽃과 나무, 분수의 물까지 철저하게 살피면서 아름다운 후원을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사람의 손이 닿는다는 뜻이다. 엘라임이 말한 자연은 말 그대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의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나는 후원 속으로 들어갔다.
‘어렸을 때…… 자연 속에 노니는 정령들을 보았다.’
평범한 사람은 정령을 볼 수 없었다.
정령사 역시 계약한 정령이 아니라면 자연 속에 스며 있는 정령을 눈으로 볼 수 없었는데, 내 기억은 어린 시절의 내가 분명 정령을 눈으로 보고 뛰어다녔다는 것이다.
‘어머니도 보시는 것 같았는데…….’
맹약의 주인, 어쩌면 나는 그 호칭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S급 재능들이 개방된 원인이라고만 의식하고 있었다. 정령들과 편리하게 소통할 수 있는 칭호라고 좋아할 뿐이었다.
한 번도 맹약의 주인이라는 칭호에 대하여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모든 정령들이 나에게 맹약의 주인이라고 부르고 있는데도.
-태초의 맹약을 따르는 자
└모든 속성 정령과 대화 가능.
└모든 속성 정령과 시야 공유 가능.
나는 시스템 창을 확인한 뒤 고민에 잠겼다.
‘대화가 가능한 건 굉장히 편리했어. 시야도 공유가 가능하면 정령이 보는 것을 나도 보는 것인데, 정령들 눈에는 분명 다른 정령들이 보일 텐데. 딱히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지.’
나는 후원을 지나 수련장으로 향했다. 고민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지만, 몸을 움직이면 머리가 트이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안고 걸었다.
‘밖으로 나갈까? 황궁은 모두 사람이 깎고 만든 자연만 있으니까.’
“내일 잠시 수도 근처를 돌아볼 것이다. 준비하도록.”
* * *
오늘 오전도 변함없이 올리비아와 수련했다. 어제는 이론 수업이었지만, 오늘은 다시 기초 동작을 몸에 익혔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난 뒤 올리비아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슬쩍 물었다.
“영애, 오후에 수도 주변을 둘러볼 참입니다. 혹시 시간 있으시면 같이 가시겠습니까?”
“게일 님도 기사단 수련에 바쁘시고 모두가 동부 원정 준비에 몰두해 있으니 전하를 호위할 인원이 부족하겠군요. 미리 호위 업무를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전하와 함께하겠습니다.”
올리비아의 수락에 나는 옅게 웃었다.
곧장 준비를 시작한 뒤 황태자궁을 나섰다.
말에 타지 않고 직접 걸었다.
따라붙는 많은 수행 인원들을 나는 적당히 줄였다. 올리비아와 있으니 안전은 걱정 없고 신분을 숨기고 수도를 둘러보고 싶다고 둘러댔다.
‘수행 인원이 많으면 조용히 다닐 수가 없으니까.’
후드 망토를 입고 적당히 얼굴을 가린 뒤 황궁 성문을 나섰다.
올리비아도 내가 건네준 망토로 적당히 신분을 감췄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황태자, 화이트 가의 영애를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나는 황궁 성문을 나서자마자 제법 빠르게 움직였다.
시장을 통과하고 곧장 수도 외곽으로 방향을 잡았다.
“숲으로 갈 겁니다.”
“숲이요?”
“네. 어제 엘라임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올리비아에게 어제 엘라임과 나눴던 대화를 짧게 요약해서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어머니와의 추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어머니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내가 어렸을 때 정령을 본 것에 대한 점만 부각시켰다.
올리비아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으며 하늘로 향했으니까.
그녀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전하의 재능은 정령사가 아닌 저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확실히 놀라운 수준이에요.”
다행히 올리비아는 어머니라는 주제에 집중하지 않고 나의 재능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네. 하지만 재능만으로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재능, 노력, 깨달음이 한데 모여야 인간의 한계를 넘은 최상급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요.”
올리비아가 내 말에 동의했다.
“맞아요.”
“일단 깨달음의 계기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숲을 찾는 것이고요. 황궁 안에는 아무래도 사람의 손이 닿은 인공적인 자연밖에 없으니까요. 그 속에서도 정령들은 있겠지만…… 아무래도 자연 본연의 곳에 더 많은 정령들이 있겠죠.”
내가 빙긋 웃자 올리비아가 내게 힘을 주었다.
“전하께서는 잘해 내실 겁니다.”
* * *
숲은 고요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천천히 숲을 거닐었다.
올리비아는 조용히 내 뒤를 따랐다.
이제는 완연한 봄이 되어 숲은 푸르게 옷을 입고 향긋한 내음으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왜 지금은 정령들이 보이지 않을까?’
나는 실울펜을 불렀다.
갑작스레 내 옆에 늑대가 나타나자 올리비아가 흠칫 놀랐지만, 이내 정령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아, 놀랬나요?”
“아뇨. 괜찮습니다.”
올리비아가 싱긋 웃었다.
나는 실울펜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정령들은 보통 정령계가 아니라 중간계에 있는 건가?”
-주인이시여, 정령들 중 절반은 중간계에 나와 자연의 순환을 돕습니다. 절반은 정령계에 있습니다.
“그럼 정령사가 계약을 시도하면 중간계에 있는 정령들이 응답하는 건가? 참, 육성으로 말해도 괜찮아.”
실울펜이 힐끔 올리비아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계약은 정령계에 있는 정령들이 응답합니다.”
“그렇구나. 내가 어렸을 때 분명 어머니와 함께 정령들을 보았다는 말이지.”
자연스럽게 황후궁에서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와 의식을 공유하는 실울펜은 내 기억을 충분히 살펴본 뒤 대답했다.
“태초의 맹약이 주인의 어린 시절 더욱 강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본디, 인간들도 요정들도 자연의 순환을 돕는 정령들을 보는 건 불가능합니다.”
실울펜은 내 옆을 따라 걸으며 말을 이었다.
“친화력이 매우 뛰어난 요정들은 정령의 존재 자체를 느끼기는 하지만 눈으로 확인하는 건 다릅니다. 친화력만으로는 자연의 순환을 돕는 정령들을 보는 건 불가능합니다.”
“내가 특별했다는 건가?”
“아마도 태초의 맹약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올리비아가 슬쩍 물었다.
“태초의 맹약 주인이라는 건 무슨 말이지요?”
“아직 주인께서는 준비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실울펜은 올리비아의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나도 궁금했던 터라 실울펜의 말에 집중했다.
“상급 정령에게 허락된 범위까지만 알려드릴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범위는 최상급 정령이 되면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실울펜의 말에서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최상급 정령이 되면?”
“모든 정령은 아주 작은 존재로부터 출발합니다. 저 역시 실프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호기심에 물었다.
“정령이 어떻게 상위의 정령이 되는 거지?”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오랜 세월 동안 바람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실프보다는 실페레가 실페레보다는 실울펜이 바람의 본질에 가깝습니다.”
“두 번째는요?”
올리비아가 서둘러 물었다. 그녀도 실울펜의 이야기가 제법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두 번째는 강해지는 것입니다. 정령들이 자연의 순환을 돕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레 강해집니다. 그게 창조주께서 정령들에게 부여한 임무이니까 일종의 보상입니다.”
실울펜이 덧붙였다.
“자연의 순환을 돕는 것보다 계약자와 함께하면 더 빠르게 힘을 쌓아 상위 정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령 친화력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입니다. 친화력이 높은 이와 중간계에서 힘을 발휘해야 정령의 힘도 강해지니까요.”
나는 실울펜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모든 정령들을 소환했다.
나와 함께하는 것 자체만으로 강해지는 정령들인데 굳이 소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그니스가 입을 열기 전에 나는 재빨리 실울펜에게 물었다.
“그럼 실울펜은 최상급 정령이 될 때까지 오래 걸리나?”
“주인께서 최상급 정령사가 되시면 아마 저희 중 하나는 동시에 최상급 정령이 될 것입니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통 상급 정령사가 최상급 정령으로 넘어갈 때 상급 정령 역시 강한 힘을 부여받게 되어 있어요. 대부분의 상급 정령사들은 두 속성의 상급 정령과 계약하고 그중 친화력이 높은 정령이 최상급 정령이 되지요. 주인께서는 모두와 친화력이 뛰어나시니 저희 넷 중 둘이 최상급 정령이 될 수도 있죠.”
엘라임의 추측에 나는 재빨리 물었다.
“만약 실울펜과 엘라임이 최상급 정령이 된다면 저는 다른 실울펜과 엘라임과 추가로 계약할 수 있는 겁니까?”
엘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능하시다면요.”
이그니스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이봐, 주인. 나도 이프리트가 되게 해 줘야지.”
“근데 나는 이프리트를 소환했었는데? 운다인이나 다른 최상급 정령들도 모두 계약을 시도할 때마다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엘라임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들은 왕이 될 준비를 마친 자들이에요. 태초의 맹약의 주인과 계약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왕이 될 수도 있죠. 그래서 더욱 궁금했을 겁니다. 맹약의 주인이.”
“호기심에 나와봤다는 뜻인가?”
엘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비아가 말했다.
“전하께서는 정말 특별한 정령사이시네요.”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주인께서 아직 미령하실 때 정령들과 뛰놀던 기억,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감정들… 아마 그러면 저 나무 아래 앉아 있는 실프나 풀 속에서 숨어 있는 노움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엘라임의 조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들은 제각기 흩어졌다.
딱히 계약한 정령들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이그니스는 어느새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고, 실울펜은 내 옆에서 걸었다.
클라임도 보이지 않았다.
엘라임은 작은 소녀 요정으로 변하여 실울펜 머리 위에 앉아 숲 속의 산책을 즐겼다.
이슬에 맺힌 물방울들을 떠오르게 만들며 장난을 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다.
“이제 정말 봄이네요. 수도 근처에 이토록 조용한 숲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올리비아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네. 날이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수련을 빙자한 나들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화로웠다.
올리비아와 어느새 걸음을 자연스레 맞추며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번졌다.
따뜻한 바람이 뺨을 스치면서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어?’
나무가 흔들렸다.
실프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