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48)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48화(148/278)
148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곳은 없다.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것일 뿐, 바람은 언제나 움직인다.
나뭇잎 위를 뛰어다니는 실프들의 모습이 점차 선명해졌다.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실프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숲은 자연의 순환을 위해서 정령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 중 하나입니다. 나무, 풀, 벌레, 땅, 계곡… 세계의 순환을 축소시켜 놓은 장소가 있다면 바로 그곳이 숲입니다.”
실울펜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엘라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더해졌다.
“요정들이 정령 친화력이 높은 이유가 바로 숲의 종족이기 때문이죠.”
“저 아이들은 노움인가?”
풀 속에서 노움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풀벌레를 보기도 하며, 나무에 기대어 잠을 자는 노움도 보였다.
“네.”
풀 위에는 작은 운디네들이 있었고, 샐러멘더들도 간간이 바위 같은 곳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숲은 실울펜의 말처럼 정령들의 공간이다.
모든 곳에 정령이 머물고 있었고, 그들은 나름대로의 자연 순환을 위하여 자신의 힘을 미약하게나마 중간계 숲에 투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 속에서는 실프가, 땅에서는 노움이, 이슬에는 운디네가 바위 위에서는 샐러멘더의 힘이.
무척이나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요정들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이런 숲을 파괴하니 그들은 화를 낼 수밖에 없다.’
이토록 신비롭고 평화로운 광경을 파괴하니 다른 종족에 대하여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고, 숲의 출입 자체를 금지했다.
‘지금은 요정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생각과 동시에 시스템 음성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재능 레벨 잠김이 해제됩니다.
‘재능 레벨 잠김?’
시스템은 내 물음을 들은 듯 설명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뎠습니다. 위대한 정령사의 길을 걷는 자, 태초의 맹약을 따라는 자 호칭의 잠김이 해제됩니다.
깨달음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다가온다.
지금의 느낌은 깨달음이 분명했다. 최상급 정령사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가닥은 분명하게 잡혔다.
나는 파멸의 검을 뽑았다.
날카로운 금속이 주는 섬뜩함에 주변의 정령들이 화들짝 놀랐다.
정령들에게 괜찮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동안 올리비아는 숨죽이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뭔가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걸음도 내 뒤에서 걸었다.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평범한 사람이나 혹은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기사들도 이런 작은 바람은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령사이기에, 바람의 정령과 친화력이매우 높기에 바람의 흐름 자체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실프는 장난기 가득한 작은 요정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건 중간계로 넘어오면서 형체를 가진 것뿐이다. 그들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바람이었다.
‘바람은 끊임없이 흐른다.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실프의 본질을 보고 느끼려 노력했다.
내가 계약한 실프들이 파멸의 검 위에서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실프들과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꽤 길어졌을 때, 투명한 요정의 몸 속에 끊임없이 회오리치는 바람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실페레에게 시선을 돌렸다.
실페레는 실프보다 더 큰 회오리를 몸 안에 품고 있었다.
그리고 실울펜은 늑대의 몸 안에 작은 태풍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강력하고 빠른 회오리를 품은 게 보였다.
바람의 본질.
끊임없이 흐르려는 바람이 한 곳에 모여 정령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가만히 파멸의 검을 들었다.
가장 먼저 실프들이 파멸의 검 검신 속으로 스며들었다.
미스릴이 가지고 있는 극도의 날카로움과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경도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검신은 바람을 품었다.
“올리비아.”
“네, 전하.”
“돌아가죠.”
숲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정령검술의 가닥만 잡은 게 아니라 최상급으로 나아가는 길도 찾았으며 지금 당장 이 감각을 잊기 전에 실험하고 싶었다.
숲의 조용한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황태자궁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살짝 서두르자 올리비아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
“전하.”
“네, 영애.”
“검술을 시험해보지는 마십시오.”
올리비아는 내 마음을 읽었다. 누군가와 검을 마주쳐 정령의 기운을 담은 검의 위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는데.
“제가 가르쳐드린 내려치기와 찌르기로 수련용 허수아비 정도에게 시험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검술은 올리비아가 전문가다.
나 역시 검의 위력을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지 내가 기사 정도로 검술을 훌륭하게 펼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네.”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애 덕분에 진정이 되었습니다.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뛰려고 하면 다치기 마련인데 제가 정령의 본질을 느끼고 마음이 다급했던 것 같습니다. 섣불리 다른 이와 검을 마주하려 했다면 아마도 부작용이 있었을 겁니다.”
올리비아가 싱긋 웃었다.
봄의 화사함이 그녀의 미소에 묻어났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까처럼 불러주세요.”
“네?”
“영애가 아니라 올리비아라 하셨잖아요.”
“아, 그건 제가…….”
올리비아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인 뒤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 말했다.
“그럼 올리비아라 부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말도 낮추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원정에서 제 직위는 호위 기사니까요.”
“그건 올리비아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아무리 내가 황태자라 하여도 그녀는 공작의 영애다.
화이트 가문의 차기 가주라는 직함도 가지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다시 한 번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눈빛은 감당할 수가 없군.’
맑고 큰 눈동자에 담긴 확고한 뜻을 나는 끝내 거부할 수 없었다.
“알겠어, 올리비아.”
다시 한 번 올리비아가 환하게 웃었다.
* * *
곧장 수련장으로 향했다.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길을 잡는다는 건 이토록 설레는 일인가?
기대감에 벅차고 두근거렸다.
수련장에 도착하자마자 파멸의 검을 뽑았다.
챙-!
미스릴 검신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곧바로 실프를 불렀다.
처음부터 실울펜의 강력한 바람의 본질을 검신에 담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올리비아의 충고가 적절했다.
급하게 걸으면 넘어지는 법이다.
나는 실프들의 본질을 느끼며 그들의 기운을 검에 담았다.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숲에서 느꼈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검신에 바람의 본질, 즉 바람의 힘이 담겼고 미스릴 검신은 정령의 기운조차 무리 없이 받아냈다.
기사의 마나를 가장 잘 받아들이고, 오러와 오러 블레이드의 날카로움이 극대화되는 것이 미스릴의 가치다.
그리고 미스릴은 정령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한층 날카로워졌다.
‘상급 정령의 기운을 담아낼수록 오러와 오러 블레이드도 막아낼 수 있다.’
세상 무엇도 벨 수 있다는 오러 블레이드!
나는 소드 마스터에게 검으로도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다.
곧바로 수련용 허수아비를 향해 올리비아와 함께 수련했던 내려치기를 사용했다.
서걱-!
절로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수련용 허수아비의 강도는 낮지 않은 편이다. 수련용 목검으로 두드리는 것도 충분히 견딜 수 있고, 진검으로도 베기가 쉽지 않다.
“올리비아, 거기 수련용 목검 좀.”
나의 말에 올리비아가 곧바로 수련용 목검을 내게 가져왔다.
나는 파멸의 검을 집어넣었다.
방금 전 허우아비가 수직으로 갈라진 건 파멸의 검 자체가 가진 날카로움 덕분일 수도 있었다.
‘미스릴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나처럼 초보 기사도 미스릴 검이라면 허수아비를 반으로 쪼갤 수 있다.
올리비아가 말했다.
“미스릴 검이라서 베었을 수도 있지만 방금 전 전하의 내려치기 자세는 아주 훌륭했어요. 열심히 수련한 결과가 나온 거예요. 정확한 자세의 내려치기는 충분히 강력해요.”
내가 목검에 실프의 기운을 담는 것을 보며 올리비아가 말을 이었다.
“물론 정확한 자세로 내려쳐도 수련용 목검으로 허수아비를 반으로 쪼개는 건 불가능해요. 목검은 날카롭지 않으니 힘으로 부수는 건 몰라도 방금 전처럼 반으로 가르는 건 불가능하죠. 아마 이번에도 전하께서 수련용 허수아비를 쪼개시면 그건 정령검술의 힘이라 할 수 있어요.”
올리비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무게감이 느껴졌던 목검이었는데 어느새 깃털처럼 가벼웠다.
‘날카롭다.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회오리가 목검 안에 담긴 것 같다.’
아마 다른 사람은 이 상태의 목검을 손에 쥐지도 못할 것 같았다.
샐러멘더를 다른 사람은 뜨거운 화염 때문에 만지지 못하지만 계약 정령사는 가능한 것처럼 지금 이 목검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의 본질을 담은 이 목검은 실프나 다름없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허수아비를 목검으로 내려쳤다.
서걱-!
허수아비가 이번에도 반으로 쪼개졌다.
올리비아가 탄성을 터뜨렸다.
나는 올리비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른 정령들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네.”
올리비아의 눈빛에 기대가 찼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샐러멘더를 불렀다.
도마뱀의 몸 속에도 타오르고 있는 화염이 보였다.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꽃!
나는 목검에 그 불꽃을 담았다.
화악, 하고 목검이 불타올랐다.
보이기만 그렇게 보일 뿐 목검의 형태는 멀쩡했다.
“저, 전하!”
“괜찮아. 원래 정령사는 정령들의 힘에 해를 입지 않는 법이거든.”
너무 놀라 잠시 상식을 잊었던 올리비아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직 멀쩡한 허수아비를 향해 다시 한 번 내려치기를 시도했다.
허수아비가 반으로 갈라지지는 않았다.
‘바람의 정령은 날카로움이 극대화 되는 것 같고 불의 정령은…….’
올리비아가 즉시 허수아비에게 다가와 살펴보았다.
“베어진 부분이 완전히 타 버렸어요.”
“정령의 본질이 모두 다르니…….”
“다르지.”
나와 올리비아가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였다.
‘자주 보는군.’
요새 아버지와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좋았다. 황후궁에서 나눴던 대화 덕분에 아버지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졌고, 어머니의 유언도 가슴에 새롭게 새겼기 때문이다.
즉시 예를 표했다.
“검에 각 속성 정령의 본질을 담는 법을 깨우쳤으니 당분간은 검술에만 집중하도록. 정령술을 열 번 수련하면 검술은 세 번 정도 수련하는 비중으로 진행해라.”
“네, 아바마마.”
다른 사람이 있을 때도 친근한 호칭을 부르는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그럼에도 딱히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정령검술은 나보다 네게 더 어울린다. 끊임없이 흐르는 바람은 미스릴 따위보다 훨씬 더 날카롭다. 모든 것을 태우는 불은 마법사의 마법 나부랭이보다 더욱 파괴적이다. 물의 부드러움은 모든 것을 막게 해주며, 땅의 단단함은 오러 블레이드도 벨 수 없다.”
올리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만 들어보면 검술보다 정령검술이 훨씬 뛰어나지 않은가?
“영애는 그리 놀랄 것 없다. 정령검술도 단계가 있는 법이고 조금 전의 말은 극에 이렀을 때의 정령검술이니까. 정령술도 아직 최상급에 도달하지 못한 미숙한 상태인데 정령검술은 이제 막 걸음마가 아니더냐.”
상급 정령사 마스터가 미숙하다니.
역시 아버지다.
아버지의 시선은 여전히 올리비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새로운 것이 지닌 힘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자꾸 눈을 다른 힘에 눈을 돌리지. 기사들은 마법의 효용성을 부러워하며, 마법사들은 정령의 편리함을 연구하고 싶어 하며 정령사들은 기사의 검술을 부러워하고.”
“검술 하나만 익히는 것보다 마법이나 정령술을 곁들이면 훨씬 강해질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도 전하께 정령술만이 아니라 정령검술까지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역시 올리비아다. 아버지 앞이라고 주눅 드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가 옅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건 저놈의 재능이니까. 영애, 네 가문의 검술은 쉬이 볼 게 아니다. 극에 이른다면 능히 지금의 나도 이길 수 있다. 네 아비가 왜 공작인 줄 아느냐? 그저 나라만 바쳤다고 공작이 됐다고 말하는 이들은 바보일 뿐.”
제임스 공작 이야기가 나오자 올리비아는 물론 덩달아 나도 집중했다.
“제임스 공작은 나와 가장 가까운 이다. 소드 마스터로서만 대결을 펼친다면 능히 나와 반나절을 겨룰 수 있는 사람이지.”
나는 물론이거니와 올리비아의 얼굴에도 경악이 번졌다.
아버지의 말뜻은 간단했다.
‘제임스 공작이 다른 공작보다 훨씬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