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50)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50화(150/278)
150화.
노을이 질 때쯤, 행군을 마치고 파라한 영지에서 휴식을 취했다.
영주는 나를 극진히 맞아 주었고, 병사들에게 식량을 충분히 공급했다.
“전하, 뷔칸 상단의 상단주가 뵙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 뷔칸!”
나는 수행 기사의 말에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다급하게 쫓아온 모양이로군.’
지난 날 나는 뷔칸에게 좀 더 그럴듯한 제안을 들고 오라고 말했다.
정령검술 수련도 바빴고, 동부 원정 출발이 갑작스레 이루어져 그를 만나볼 시간이 없었다.
“일단 들어오도록.”
나는 침실에서 뷔칸을 맞았다.
뷔칸이 들어온 뒤 나에게 허리를 깊게 숙였다. 나는 한쪽 테이블에 있는 자리를 뷔칸에게 권했다.
“오랜만이군.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뷔칸은 자리에 앉은 뒤 대답했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평소보다 활동량이 많았습니다.”
나는 싱긋 웃었다.
“저녁은 먹었나?”
“네, 사령관님.”
뷔칸은 역시 눈치 빠른 상인이었다. 호칭을 정확하게 사용하면서 말했다.
“사령관님이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하셨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한 뒤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제안드릴 수 있는 건 두 가지입니다.”
나는 뷔칸에게 계속 말해보라는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이번 전쟁은 과감하게 투자하고 서부 유통망 확보에 힘을 쓰겠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제안이었다. 전쟁에 소모되는 보급품을 투자라고 할 정도면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는 전쟁 상인이라는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뜻이니까.
급히 출발하느라 전쟁 상인들에 대해서는 아직 정리를 하지 못했다. 뷔칸 상단을 독점적으로 밀어줄 수 있는 환경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본래 원정 출발 전에 전쟁 상인 지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상인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사령관은 물론이거니와 원정 부대에서 영향력이 강한 이들은 상단에게 보답을 빙자한 뇌물도 공공연하게 받는다.
이번 원정은 그런 일이 차단되었다.
일단 누구도 출발 시점을 예상할 수 없었고, 내가 수련에 바빠 상단들을 만날 시간도 나지 않았으니까.
사정을 모르는 뷔칸으로서는 내가 여러 상단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착각한 듯 과감한 결정을 가지고 나왔다.
“투자를 하겠다는 건 전쟁 상인으로서 이득을 보는 게 아니라 무료로 보급품을 대겠다는 말인가?”
“네.”
“뷔칸 상단이 그럴 여력이 되나? 동부 원정군은 숫자만 하더라도 칠 만이 넘는 대군이야. 그들이 하루에 소비하는 보급품이 얼마나 되는 줄 알고 하는 말인가?”
상인이 그 정도 계산도 없을 리 만무하건만, 나는 뷔칸 상단의 능력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자칫 뷔칸에게 독점을 주었다가 전쟁 상인이 돌아다닐 때보다 보급품 수급량이 줄어들면 그것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공작이 충분한 보급을 편성했지만 전장에는 변수가 많다. 보급품이 충분해도 병사들은 전쟁 상인이 공급하는 보급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지급되는 보급품보다 전쟁 상인들이 전장에 직접 와서 위험을 무릅쓰고 판매하는 물건들의 질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가격이 시장 가격보다 월등하게 높지만.
무기, 방어구, 포션과 같은 소모 아이템, 잡다한 물품들. 나라에서 공급하는 물량은 한계가 있지만 자신의 돈을 주고 구매하는 건 한계가 없으니까.
전쟁이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자신의 목숨이 귀한 병사들은 전쟁 상인에게 비싼 돈을 주고 보급품들을 구매한다.
하나라도 더 많은 보급품이 있다면 생존 확률이 올라가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네. 뷔칸 상단 단독만으로는 물량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네 개의 상단을 흡수 통합하였습니다.”
“서부 유통망의 가치를 아주 높게 평가하는군. 유통망을 따내기 위하여 전쟁 보급품을 무상 공급하겠다라!”
나의 말에 뷔칸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전쟁이 길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뷔칸과 전장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지.’
차를 마신 뒤 결론을 내렸다.
“이번 원정은 뷔칸 상단에게 밀어주겠다. 군사와 나머지 이야기를 하면서 조율하도록.”
뷔칸이 일어나 내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전하!”
“꽤 많은 출혈을 감수해야 될 거다.”
“투자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정이 끝난 뒤 서부 유통망 이야기를 나누지.”
나는 그대로 뷔칸을 배웅했다.
내일 켄을 찾으라는 말을 남긴 뒤 나는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꽤 넓은 침실이다. 파라한 영주는 침실까지 내줄 기세였지만, 적당히 거절하여 영주성 중앙에 위치한 손님용 침실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뷔칸 상단이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시간이 좀 더 많았다면 여러 상단을 알아보았겠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뷔칸 상단뿐이니까.’
내게도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저녁 만찬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나는 먹지 않고 자기로 결정했다.
행군이 꽤 피곤했던 것 같았다.
똑똑-!
“사령관님, 올리비아 호위입니다.”
“어. 들어와.”
올리비아가 들어왔다.
“파라한 영주가 저녁 만찬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피곤해서 쉴 생각이야. 올리비아는 참석해도 좋아.”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물었다.
“참, 올리비아는 호위니까 내 바로 옆방인가?”
“아뇨. 저도 사령관님과 같은 침실을 사용합니다. 아직 제국 영토라고 하지만 원정이 시작되었으니 사령관 호위는 한시도 사령관님과 떨어질 수 없으니까요. 본래 여러 명의 호위가 번갈아가며 지키지만 이번 사령관님 호위는…….”
나는 올리비아의 말을 황급하게 잘라냈다.
“취침 시간에는 믿을 만한 기사들과 돌아가면서 경계를 서도록 해. 올리비아와 한 침실에 있는데 편안하게 자라는 건 좀 무리니까.”
나의 솔직한 심정에 올리비아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녀는 슬쩍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네, 사령관님.”
* * *
아침 일찍부터 다시 행군이 시작 되었다.
동부 국경까지 이틀 안에 도착하려면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최대한 빨리 국경을 넘어 피레온 왕국 정복 지역까지 들어가는 게 목표였다.
카일라하만이 아니라 적들이 다른 지역까지 수복하면 전쟁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까.
대열의 선두는 게일이 맡았고 나는 기사단 뒤에서 켄과 대화를 나눴다.
“어제 뷔칸을 만났습니다.”
“내가 보냈어.”
“적당히 잘 조율했습니다. 빚을 크게 냈더군요.”
“그래?”
뷔칸 상단은 대륙 상단 순위권에 겨우 턱걸이를 할 정도이니 전쟁 보급품을 감당하려면 빚을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흡수 합병한 상단들의 명단을 보니 모두 뷔칸 규모의 상단들이었습니다.”
“비슷한 규모의 상단 여러 개를 흡수하긴 힘든데?”
“모두 아들들이 운영하던 상단이었습니다.”
나는 허, 하고 감탄을 터뜨렸다.
“헤밀튼 부장이 보고한 보고서에 따르면 흡수한 네 개의 상단 중 두 곳은 정실 부인의 아들들이고 나머지 두 곳은 첩의 아들들입니다.”
돈 많은 사람이니 처첩을 두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수완이 대단한 사람이군. 뷔칸 상단도 떼어놓고 보면 결코 만만한 상단이 아닌데 아들들이 모두 비슷한 규모의 상단을 운영하고 있다니.”
“거의 뷔칸 상단에 종속된 형태였습니다. 지금까지 대외적으로는 분리된 상단이었지만 이번에 하나의 상단이 된 거죠. 거대 상단이 탄생한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뷔칸에 대한 평가를 높였다.
“서부 유통망은 중요해. 아마 뷔칸은 서부에 대한 잠재력을 아주 높게 평가한 모양이야.”
“네. 이번 전쟁의 공에 따라 서부 유통망 독점을 제안했습니다.”
“잘했어. 뷔칸 정도면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삼 대 상단 안에 드는 상단과 긴밀한 관계라면 나쁘지 않지.”
뷔칸의 목표는 어쭙잖은 100위권 상단이 아니다. 그는 대륙 제일 상단을 노리는 사람이었다.
뷔칸 이야기는 그 정도로 마무리하고 헤밀튼의 이름이 나온 김에 어제의 작전에 대해 물었다.
“헤밀튼을 먼저 파견한다고 했었지?”
“헤밀튼 부장과 그 수하들 그리고 마법 병단을 이끄는 안드레 반 리버힐을 릴리안 암살에 파견할 생각입니다.”
“안드레까지?”
안드레는 오스틴 공작의 친동생이다.
그는 이번 리버힐 가문의 마법 병단을 이끄는 사람이었고 리버힐 가문에서도 핵심으로 분류되는 인원이었다.
“안드레가 동의할까? 그들은 릴리안을 정면 승부로 잡고 싶어 할 것 같은데.”
켄이 빙긋 웃었다.
“전장에서 군령보다 더 우선인 건 없습니다. 안드레도 알고 있을 겁니다. 기사단과 마법 병단만으로는 릴리안을 묶어두는 게 고작이라는 사실을요.”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켄의 말에도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헤밀튼의 능력이야 신뢰하지만 상대가 워낙 거물이다.
안드레와의 호흡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헤밀튼과 그 수하들을 단독으로 암살에 파견하는 건 어떨까?
“헤밀튼 역시 반가워하지 않을 수 있어.”
“릴리안 암살을 위해서는 마법사가 꼭 필요합니다.”
“일단 둘과 이야기를 나눠 보는 건 어때?”
켄이 고개를 저었다.
“군령을 먼저 내리신 뒤에 둘의 화합을 유도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사령관님이 일일이 부하들의 동의를 구하면 전쟁이 복잡해집니다.”
“그럴 수 있겠어.”
일리 있는 말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에서 사령관이 하나하나 수하의 동의를 구한 뒤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좋아. 그럼 헤밀튼과 안드레를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둘에게 통보하도록.”
“이 작전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과제?”
“네. 릴리안은 충분히 대비하고 있을 겁니다. 소드 마스터들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헤밀튼이 카리온을 암살하면서 소드 마스터도 암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상식처럼 번져 있습니다.”
“맞아. 카리온 죽음 이전에 소드 마스터가 전쟁에서 죽는 경우는 오직 같은 소드 마스터를 만날 때뿐이었지. 릴리안도 마찬가지야. 그녀 역시 소드 마스터급 강자이지만 카리온 사건을 알고 있으니 암살에 충분히 대비하겠지.”
켄이 지도를 펼쳤다.
질풍이 자연스럽게 켄이 타고 있는 말 옆으로 바싹 붙었다.
‘영물 중 영물이야.’
켄은 지도를 보면서 설명했다.
“여기 카일라하에 적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죠.”
“카일라하는 요충지니까. 더불어 방어도 상당히 잘되어 있고. 수도 쪽 성벽은 약하지만 우리가 올라가는 남쪽 경로의 성벽은 튼튼하기로 유명하고.”
“군을 세 방향으로 나눌 생각입니다. 게일 님이 하나의 부대를 맡고 올리비아 님이 하나의 부대 그리고 사령관님이 이끄시는 본대입니다.”
올리비아가 즉시 반박했다.
“저는 호위입니다, 군사님.”
“소드 마스터들을 떨어뜨리지 못하면 이 전쟁의 승산은 없습니다. 폐하께서 출병하셨다지만 작전은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고 수립해야 됩니다. 저는 소드 마스터들이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경우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올리비아가 입을 다물었다.
“만약 각개격파를 당한다면?”
“게일 님이 많은 기사단을 이끌고 카일라하 서쪽을 우회하여 직접 수도로 올라가는 형태를 취할 겁니다.”
“수도?”
“네. 동부 원정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피레온 왕국 정복입니다. 그리고 왕국을 정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왕을 잡는 것이죠.”
켄의 눈동자가 빛났다.
“삼분의 일을 희생하고서라도 피레온 왕국의 왕을 잡을 수 있다면 감수하는 겁니다.”
나는 잠시나마 켄의 본모습을 느꼈다.
그는 결과를 위해서 과정에서의 희생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점이 항상 정의로운 카렌과 부딪쳤다.
그리고 나 역시 이제 선택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