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54)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54화(154/278)
154화.
오크와의 전쟁 때보다 훨씬 피로했다. 전투는 비교적 쉽게 이겼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건 육체보다 정신이 너무도 힘들었다.
나는 막사 안의 공기가 답답해 잠시 밖으로 나왔다.
커다란 보름달이 보였다.
‘상쾌하군.’
봄은 동부에서도 만물을 소생시키고 있었다. 대군이 모여 있는 낡은 성에서도 따뜻한 바람과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대단하시더라.”
“정말 엄청났지. 수준 높은 정령사라더니 진짠가 봐.”
병사들의 목소리에 나는 자연스럽게 막사 뒤로 몸을 숨겼다.
“교대하러 왔어.”
걸걸한 목소리에 이어 피곤함이 가득한 대답이 들렸다.
“가서 밥 먹어. 첫 전투 승리라고 밥도 많이 주고 고기도 나와.”
“그래?”
“얼른 가자고!”
“그럼 수고해!”
교대가 이루어진 듯 이제 두 명의 목소리만 들렸다.
“이제 겨우 성년식을 치를 나이라지? 무능하고 멍청이라는 소문이 수도에 파다했는데 역시 귀족 것들 말은 하나도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이봐, 목소리 좀 낮춰. 기사들이 들으면 큰일나.”
“기사들이 진영 경계 근무 서는 거 봤냐?”
다소 삐딱한 목소리의 걸걸한 목소리의 병사가 동조했다.
“하긴. 어쨌든 꼼짝없이 죽을 줄 알고 끌려온 전쟁인데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 아까 싸울 때는 폐하랑 함께하는 전쟁 같은 느낌이었어.”
나는 쓰게 웃었다.
‘귀족에게는 귀족 것들…… 아버지에게는 폐하라.’
평민 병사에게 귀족과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호칭이었다.
없는 자리에서는 나랏님도 욕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들에게 아버지는 자리에 있든 없든 존경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민심이 황제에게 있다.
‘이 시기에는 아직 민심을 잃지 않았어. 카렌이 서부에서 고르란의 부활을 막으면서 아버지의 실정이 시작되었지.’
아버지의 실정, 즉 무리한 전쟁과 과도한 세금 징수 등 망국의 기조로 갔던 그 기간의 일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정복욕에 미친 무리한 전쟁이 아니었어. 복수를 향해 묵묵히 걷고 있었던 것이지. 과도한 세금 징수는 귀족파 귀족들의 농간이었고.’
내가 아버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동안 병사들의 말이 이어졌다.
“확실히 강해. 게다가 보상은 폐하보다 더 후하게 쳐주셨잖아.”
“황태자라서 그런 거 아닐까? 귀족 것들이 다 싫어한다잖아. 소문도 안 좋고. 이 기회에 그런 소문을 불식시킬 모양이지.”
다소 날카로운 병사들의 식견에 나는 꽤 놀랐다.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면서 오직 가족의 안위와 자신들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던 병사들 역시 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하여 나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백성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모양이야.’
걸걸한 목소리의 병사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 전쟁에서는 잘만 싸우면 죽지 않을 것 같아. 오늘 희생자들도 별로 없었고. 또 내가 죽어도 가족들은 한몫 거하게 챙겨서 잘 먹고 잘살 테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처자식이야 내가 있을 때가 더 좋지. 내 목숨값으로 곡식 좀 받아먹으면서 사는 게 좋겠나?”
나는 마음이 절로 무거워졌다.
유가족에게 아무리 큰 보상을 주어도 결국 죽은 남편,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권력이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적을 무너뜨리는 것.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피레온 곡창 지대를 차지하면 세금도 줄어들고 식량도 풍부해지잖아?”
“귀족 것들이 전부 가져가겠지. 그런 좋은 땅들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 같나?”
“땅이 좋고 넓으니 우리의 몫은 없긴 하겠어.”
“귀족 놈들이 언제 우리 생각을 하기라도 했나? 농노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병사들의 마지막 말에 나는 결심했다.
‘아버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머니의 복수다. 나 역시 어머니에게 저주를 건 자들을 모조리 찾아내어 복수한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던 어머니를 위해서 그 정도도 못 하랴. 다만 아버지처럼 오직 거기에만 매달리지는 않아야겠다.
아버지는 복수에만 집중하였기 때문에 카렌에게 당했지만, 나는 황태자로서 저들의 고충도 들어줄 필요가 있다.
나는 칼페온 제국이 번영하기를 바란다.
서부에서 발걸음이 꼬였지만 카렌은 계속 성장할 것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결국 민심을 움직이는 존재로 성장할 것이다.
왜? 주인공이니까.
그리고 파멸의 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게일에게 내주었던 것처럼 그는 베풀기 좋아하고 대범하고, 고르란의 부활을 홀로 막으려던 정의로움도 가지고 있었다.
카렌은 사람을 주변으로 끌어들이는 재주가 탁월했다.
굳이 그가 의식하지 않아도 카렌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성격 자체가 그를 군주로 만들었다.
‘카렌을 악당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내가 카렌보다 더 뛰어나고 백성들의 민심을 얻는다면 카렌을 적으로 볼 이유도 없어진다.’
누가 뭐라 하여도 나는 이 제국의 황태자였다.
‘곡창 지대라…….’
아직 결과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지만, 나는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전제하에 피레온 곡창 지대를 백성들과 나눌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기로 결심했다.
백성들을 이주시켜 그들에게 일일이 땅을 나눠 주기는 힘들겠지만, 피레온 곡창 지대를 확보했을 때의 경제적 이득을 귀족들이 독점하지 않도록 막는 게 첫 번째였다.
‘나를 위한 전쟁, 어머니를 위한 전쟁 그리고 평범한 이들을 위한 전쟁.’
보초를 서는 병사들의 대화는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끄는 이정표가 되었다.
* * *
다음 날, 켄은 카일라하로 향하는 길에 옆에 와 말했다.
“밤에 잠시 막사를 돌았습니다.”
“막사?”
“네. 은밀히 돌면서 보초들이 떠드는 이야기, 막사 안에서 병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죠.”
나는 괜스레 병사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게 떠올라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지휘관의 감시가 없을 때 병사들의 본심이 나오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병사들의 심정이 백성의 심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전쟁이 없었다면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니까.”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령관님에 대한 긍정적인 말들이 많이 오고 갔습니다. 폐하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폐하의 맏아들이라는 사실이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켄은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불쾌하십니까?”
“뭐가? 병사들이 날 평가한 것? 그게 불쾌할 게 무엇이 있나. 지휘관이 병사들의 능력을 평가하듯 병사들 역시 지휘관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지. 황제가 백성들을 평가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듯 백성 역시 황제의 치세에 대해 떠들 수 있는 거야.”
내 말에 옆에 있던 올리비아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켄은 예상했다는 듯 옅게 웃었다.
“역시 사령관님께서는…….”
말끝을 흐리는 켄을 보면서 올리비아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보통 사령관님처럼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귀족이 왜 귀족인가? 귀족으로서의 권리만 누리면 귀족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돼지에 불과해. 귀족은 권리를 누리는 만큼 의무도 다해야 하는 법이잖아. 황가라 하여도 다르지 않아. 아니, 황가이기 때문에 그 어떤 신분의 사람보다 막중한 의무가 있어.”
나는 어제 병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말했다.
“제국을 수호하고 백성들을 편안케 하는 것. 그 기본적인 의무조차 지키지 못하면 황가로서 자격이 없는 거잖아. 그리고 나는 그 의무를 가장 잘 지켜야 하는 황태자이고.”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
“이 전쟁의 명분 역시 황가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영토를 넓혀 제국의 영광을 실현하고 동부 전선의 안정을 꾀해 백성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곡창 지대를 확보하여 제국 재정을 탄탄히 하여 백성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
나의 의지에 감응했을까?
실울펜이 내 옆에서 바람에 내 목소리를 실어 주었다.
“그게 병사들을 전장으로 이끈 이유이고 황가의 자손으로서 행해야 할 의무이다.”
명분이 목숨보다 중요할까?
권력자에게는 그럴지 모르지만 백성들에게는 아닐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나를 뒤따르는 이들이 진심으로 나와 함께 전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가?
나는 강한 의지를 담아 말했다.
“그러기에 나는 모든 전투에서 항상 앞장선다. 가장 선두에 서 나의 적과 제국의 적을 말살한다. 그게 황제 폐하께서 제국을 세우신 이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선봉에 서신 이유이며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
행렬에는 기이한 침묵이 맴돌았다.
내 멋대로 아버지가 전쟁마다 선봉에 선 것을 정의해버렸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많은 이들을 전장으로 이끈 책임이 있었다.
병사들에게 선언했다.
“모든 전투에서 레오드의 깃발이 가장 선두에 설 것이며 나의 정령들이 가장 먼저 적을 맞이한다.”
켄이 고개를 숙였다.
“네. 사령관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절로 미소가 번지면서 올리비아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호위가 힘들겠어.”
올리비아가 싱긋 웃었다.
“아뇨. 당연한 의무잖아요. 또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요.”
묘한 그녀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괜스레 고개를 돌리면서 켄을 향해 말했다.
“다른 부대들에게 보고 들어온 건 없어?”
“헤밀튼 단장은 카일라하 근처까지 신속하게 이동하여 릴리안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게일 님의 부대는 어제 게릴라군 점령 지역을 소탕했습니다.”
“역시 게일이야.”
켄의 말이 이어졌다.
“리오덴 부대와 다레온 부대 역시 곧 게릴라군 점령 지역에 도착할 겁니다. 아마도 오늘, 내일 정도면 전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리오덴과 다레온은 힘든 전투가 될 거야. 그쪽 게릴라군은 게릴라군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성도 튼튼하니까.”
리오덴과 다레온이 맡은 곳은 게릴라군의 점령 지역이 아니라 그냥 수복당한 곳이었다.
“카일라하처럼 수복당한 곳이지 않은가?”
나의 말에 켄도 동의했다.
“네. 그리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물론 딱 영주성만 빼앗기고 인근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만 성 자체가 함락당한 건 사실이니까요.”
게릴라군이 점령하고 있는 두 곳의 성은 요충지는 아니었다.
마하룬과 인바드라는 성이었는데 두 곳 모두 피레온 왕가가 미치는 지배력이 약한 곳 중 하나였다.
일종의 지방 세력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성이었는데 아버지가 철군하자마자 곧바로 수복당했다.
카일라하와는 경우가 다른 곳이지만 어쨌든 제국으로서는 확보해야 될 거점이다.
아무리 피레온 왕가의 지배력이 약한 지방이지만 왕국의 영토이고, 지역 영주들은 모두 피레온 왕가에 충성을 맹세했다.
마하룬과 인바드를 등 뒤에 두고 카일라하를 공략하면 후방이 위험에 빠진다.
“두 단장은 반드시 마하룬과 인바드를 되찾아올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황궁 소식은?”
“폐하의 그림자 단에게 직접 온 소식인데, 머지않아 동북부로 출발하신답니다.”
“그림자 단과 직접 소통하나?”
“네. 그들은 제게 따로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세 소드 마스터 가문의 멸문이 얼마 남지 않았군.”
켄의 목소리도 낮아졌다.
“세 소드 마스터의 움직임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첩자를 심었습니다.”
“첩자?”
켄이 옅게 웃었다.
“카일라하 성 내부에서 소식을 전해 듣는 것만큼 정확한 것은 없으니까요.”
나는 놀라 물었다.
“언제 심었나?”
“사령관님께서 서부 원정에 돌아오신 이후에 심었습니다.”
“대체…….”
“모든 일에 대비해야 되는 법 아니겠습니까?”
새삼 나는 켄의 능력에 대해서 느꼈다.
그는 여러 가지 상황을 바탕으로 내가 동부 원정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뒤 곧바로 움직였다.
“카일라하 근처까지 나흘입니다. 나흘 뒤까지 두 단장에게 복귀하라고 하였으니 그 결과를 보고 카일라하 공략을 시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켄이 말을 맺었다.
“폐하께서도 나흘 정도면 이미 왕국 연합 국경에 닿아 계실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