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71)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71화(171/278)
171화.
한창 수도 공략 작전을 세워야 할 무렵, 나는 피레온 왕국 왕궁을 둘러보고 있었다.
“황궁에 전령을 보냈나?”
내 뒤를 조용히 따르고 있던 켄이 대답했다.
“네. 폐하께도 따로 전령을 보냈고, 황궁 대전에도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냈습니다.”
“동부 원정이 성공으로 끝났군.”
험난한 원정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쉽게 원정이 끝났다.
레피오 왕과 왕자들은 모두 감금 되어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켄이 말했다.
“왕가가 민심을 잃었던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지방에는 일부 영주들을 중심으로 게릴라군이 형성되었지만, 수도에 사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왕가를 혐오했고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치려 했던 레피오 왕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맞아. 게일에게 레피오 왕의 행적을 알려준 건 왕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던 신하였고, 성문을 연 것도 작당하여 지휘관들의 목을 베어버린 병사들이었으니까.”
나는 민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원정을 통하여 몸소 느꼈다.
‘전쟁이 일상화되어 있는 시대에서민심은 천명이나 다름없다.’
화려한 왕궁 안을 거닐다 보니 많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륙에서 가장 넓은 곡창 지대를 가지고 있는 피레온 왕국조차 굶어 죽는 이들이 많았다. 백성들은 넓은 농토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국가가 자신들을 방치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살기 위하여 외부의 적이 왔을 때 자신들을 다스리던 왕가보다 차라리 외부의 적을 선택하기에 이르렀어.’
이 시대의 귀족들은 재산이 많거나, 버는 소득이 많다 하여 더 많은 세금을 부과받지 않는다.
오히려 세금은 적게 내고 더 많은 부를 독점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결코 백성들과 나누는 법이 없다.
왕가라 하더라도 귀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수많은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일부의 귀족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자신이 다스리는 영지의 영주민들이 굶어죽는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당장 자신의 오늘 저녁 식탁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버리는 게 이 시대 영주들의 실상이다.
“포로들을 배불리 먹이고 왕가가 쌓아놓은 식량을 수도에 풀어 민심을 달래도록. 제국의 황가는 피레온 왕가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돼.”
“곧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왕국 연합에서 내려오는 길목인 북부 요새를 철통같이 경계하는 것도 잊지 말고. 또다시 제국이 점령한 영토를 적들이 수복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곤란해.”
“네, 사령관님.”
켄의 힘찬 대답을 들으며 나는 내가 원정에서 승리했음을 실감했다.
유독 맑은 봄 하늘을 보면서 괜스레 한숨을 쉬었다.
켄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말씀하신 것들을 처리하러 가겠습니다.”
“그래. 전쟁도 중요하지만 뒷수습은 더욱 중요해. 이제 피레온 왕국이라는 이름은 역사 뒤로 사라지고, 대륙의 동부 곡창 지대는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어. 정복한 곳을 지키는 건 정복하는 것보다 더 힘든 법이니까.”
“네, 사령관님.”
“참, 릴리안은?”
“다레트 후작은 이미 수도를 떠난 것 같습니다. 레피오 왕은 다레트 후작에게 배신을 당한 모양입니다. 왕의 도망을 밀고한 병사의 말에 따르면 다레트 후작과 유적지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혹시 모르니 찾아보도록. 수색은 병사들에게 맡기지 말고 기사들을 선발해. 다레트 후작은 흑마법사이니 병사들은 발견해도 잡지 못할 가능성이 크니까.”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켄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모습이 사라질 때쯤 나는 다시 걸었다.
왕궁 정원이 보였다.
“화려하군.”
나의 말에 옆에 있던 올리비아가 대답했다.
“네. 황궁 정원보다 규모도 크고 더 화려한 것 같아요.”
“레피오의 취향을 잘 알겠군. 왕궁 안에도 금과 보석이 가득하더니.”
레피오는 확실히 사치를 즐기는 자였다.
왕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것을 넘어섰기 때문에 충분히 사치라 부를 수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의 날들이 험난하구나. 레피오는 적국의 왕이기 때문에 전쟁을 통해 그의 것을 빼앗을 수 있었다. 반면 귀족파 귀족들은?’
그들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이다.
내부의 적은 외부의 적보다 무서울 때가 있는데, 그건 내부의 적을 적이라 하여 함부로 내치거나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일단 피레온 왕국을 확보한 건 다행이다. 아버지가 이미 피레온 왕국을 거의 정복했지만 깃발은 꽂은 건 어디까지나 나이고, 추후 피레온 왕국 처분에 관해서는 당연히 내 의견이 절대적으로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나는 정원을 거닐면서 여러 고민을 거듭했다.
중점은 백성들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개선시키느냐였다.
막상 황태자가 되어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귀족들의 의견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들이고, 나는 그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거나 명분으로 마냥 밀어붙일 수 없었다.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아버지조차 귀족파 귀족들이 대거 반대에 나서면 한 발 물러선다. 아직 나의 정치력으로는 그들을 짓누를 수 없어. 그리고 계속 누르면 언젠가는 결국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귀족들도 적당히 달래가면서 피레온 왕국을 처분해야 돼.’
동부 원정이 끝나면 한동안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결국은 민심을 얻어야 하는데.”
“배불리 먹는 데서 민심이 나온다고 했어요.”
올리비아의 대답에 내가 시선을 돌렸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올리비아는 웃으며 말했다.
“백성들이 원하는 건 귀족들처럼 화려한 삶이 아니에요. 그들은 오늘 먹을 저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원하고 있어요. 일단 그 문제부터 차근차근 해결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올리비아의 말에 나는 내가 너무 이상적인 목표를 당장 이루려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아. 당장 모든 문제의 근본부터 해결할 순 없지. 하나 하나 해결하다 보면 결국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을 거야.”
* * *
“섣불리 움직이지 마시랍니다.”
폴의 말에 안드레가 얼굴을 찌푸렸다.
“가주께서 직접 보내신 전령인가?”
“본가에서 온 전령입니다. 소가주께서 내리신 명령입니다.”
안드레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피레온 왕궁의 별궁 중 하나를 배정받은 마법 병단 마법사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들 회의의 주된 내용은 릴리안 처리 문제였다.
안드레는 헤밀튼과 함께 릴리안을 생포하는 작전에 참가했기 때문에 그녀의 처우에 관한 요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자신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릴리안이 황태자의 수하가 되는 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전장에서 사령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군령을 어기면 사형까지도 가능하니 감히 사령관의 확고한 의지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릴리안 그년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는 거야. 그냥 갇혀 있기만 했으면 사악한 마법사라는 사실을 내세워 어떻게든 전장에서 처형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안드레는 본가로 돌아갔을 때 맞딱드릴 가주의 분노가 두려웠다.
오스틴은 한번 분노하면 아무리 애지중지하는 제자라고 하여도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리버힐 가문의 핏줄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가주께서는 왕국 연합으로 가신 뒤 따로 연락이 없으시다고 합니다. 소가주께서는 황태자에 맞서지 말고 조용히 돌아오시라고 했습니다.”
폴의 말에 안드레는 얼굴을 찌푸렸다.
“기어이 그 사악한 마녀가 황태자의 수하가 되는 꼴을 지켜보겠다는 말인가?”
“소가주께서 따로 생각이 있으시겠죠. 그리고 수도로 돌아가면 가주께서도 돌아와 계실 겁니다. 아마도 가주께서 직접 나서시면 사악한 흑마법사가 제국에서 설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안드레는 폴의 말이 답답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마법 병단 마법사들이 폴의 생각과 비슷한 점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심한 것들. 이러니 가주가 마법병단 마법사들을 계속해서 바꾸는 것이지. 자신의 생각이라는 게 없어. 시대의 천재라는 것들이 말이야.’
마법사는 머리가 아둔하면 결코 될 수 없다.
‘무식하게 몸만 쓰는 기사들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안드레는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과 계속 이야기를 해도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가주의 분노는 정해진 일이고 어떻게 그 분노의 화살에서 피하느냐가 남았다.
“소가주께서 전령을 보내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따른다. 사령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조용히 수도로 복귀한다.”
“네. 단장님.”
고개를 숙이는 단원들을 뒤로하고 안드레가 몸을 일으켰다.
“가서 쉬도록. 남은 건 전후 처리이고 그 문제는 우리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니까. 논공행상은 수도에나 가서 시작될 것이니 우리는 돌아갈 때까지 쉰다. 사고만 일으키지 말고.”
마법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안드레는 돌아서면서 생각했다.
‘놀 궁리만 가득하군. 저래서야 마법 병단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러니 애트란 가문의 기사단에게 밀린다는 이야기를 듣는 거야.’
안드레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법사들이 흩어지는 것을 보면서 안드레는 왕궁 본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도 고민하지 않지만, 안드레는 본가로 돌아갔을 때 가주의 분노를 피할 방법을 궁리했다.
결론은 황태자와의 담판이다.
‘릴리안이 살아 있는 것을 가주께서는 결코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황태자의 수하가 되다니. 이런 결과를 가지고 본가로 돌아갔다가는 나의 단장 자리는 당장 날아간다.’
안드레는 마법 병단 단장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리버힐 가의 핏줄을 이었으니 본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싶었다.
‘가주 눈에 들지는 못하더라도 외면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된다. 황태자와의 담판이 알려지면 가문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그냥 돌아가더라도 내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일은 없다. 뭐라도 가주께 들고 가야 돼.’
피레온 왕국 정복 같은 건 오스틴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오스틴은 제국의 영광 따위에는 감흥이 없고 오직 가문과 자신의 명예만 생각한다.
안드레는 굳은 결심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단장?”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마침 아룬이 보였다.
* * *
세상의 고민을 전부 짊어진 듯한 안드레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 차를 내주었다.
“앉아.”
“네.”
왕궁 집무실에서 그에게 자리를 권한 뒤 물었다.
“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짧게 했으면 좋겠어.”
“네.”
안드레 역시 말을 돌리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릴리안을 수하도 받아들이신 부분에 대하여 전하께서 직접 가주님을 설득해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제 안위를 생각하고 있군.’
오스틴 공작과 릴리안의 사이는 대략적으로 라이벌 정도로 알고 있지만, 안드레의 태도를 보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설정에 없었던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아니던가.
내가 집필했다 하여 그 모든 것을 일일이 알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오스틴 공작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고, 그에 관련한 설정들은 당연히 따로 정리하였다.
그럼에도 내가 모르는 점이 있을 수 있었다.
한 명의 인간에 대한 일생을 꿰고 있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신이 아닌 이상에야.’
나는 웃으며 물었다.
“내가 오스틴 공작을 설득하면 자네는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설마 인정에 기대서 그런 말을 하러 온 것 같지는 않고.”
안드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입니다.”
안드레의 표정이 묘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