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72)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72화(172/278)
172화.
릴리안의 거취는 단순히 적군 병사 한 명이 제국에 투항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마법사다.
대륙에서 마법사의 존재는 귀하다.
마법은 진입 장벽이 굉장히 높은 학문이며, 일단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고위 마법사가 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니까.
릴리안은 대륙에서 두 명밖에 없는 8서클 마법사이니, 그녀의 존재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릴리안을 수하로 들였고, 그 자체만으로 내 영향력은 전과 비교하는 게 우스울 만큼 강해진다.
‘오스틴 공작이 아무리 방해하더라도 내가 릴리안을 내칠 이유는 없어. 동부 원정에 따라온 마법 병단 마법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 가주의 추상 같은 명령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릴리안을 생포해라.
생포하지 못하면 죽이기라도 해라.
안드레는 두 가지 명령 중 어떤 것도 수행하지 못했다.
동부 원정의 결과는 안드레 입장에서 최악이다.
가주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 것을 넘어 가주의 정적인 황태자가 릴리안을 수하로 만들었으니까.
“이대로 본가에 돌아가면 저는 가주께 꾸중을 듣는 것을 넘어 본가에서의 모든 영향력을 잃어버릴 것이며,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안드레는 솔직했다.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절박함도 묻어났다.
리버힐 가문의 고위 마법사가 내 앞에서 비굴한 태도를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기억 속 리버힐 가문의 마법사들은 나를 항상 천대하고, 비웃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
나는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말했다.
“그런 말을 한 것도 오스틴 공작의 귀에 들어가면 공작이 썩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나의 말에 안드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주께서 아시면 제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크게 벌을 주시겠죠. 하지만 전하께서 오늘의 대화는 밖으로 새어나가게 하시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애초에 전하께 거래를 제안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나는 호오, 감탄을 터뜨렸다.
확실히 안드레는 귀족임에도 다른 귀족과는 조금 달랐다.
‘마법사이기 때문인가?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들이 바로 마법사이지.’
자신의 자존심만 생각한다면 안드레는 내게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없었다.
그는 굴욕을 감수해서라도 더 큰 그림을 그리길 원했다.
“릴리안을 수하로 받아들이는데 전하께서 그녀에게 내건 조건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건 라인하이드 가문과 연관되어 있겠죠.”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있음에도 안드레는 훌륭하게 추론했다.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안드레의 말을 들었다.
“릴리안은 오랫동안 라인하이드 가문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왕국 연합에 붙은 것도 라인하이드 가문의 유적 때문이지요. 8서클, 그 이상의 경지에 대한 해답을 고대 마법에서 찾으려 했음은 분명합니다.”
“어떻게 확신하나?”
안드레가 빙긋 웃었다.
“가주께서 권력, 가문의 명예, 그리고 대륙 최고의 마법사라는 이름만큼이나 집착하시는 것이 바로 라인하이드 가문입니다.”
오스틴 공작도 9서클을 위하여 고대 마법을 연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하께서 릴리안과 거래한 그 조건을 제게도 공유해주십시오. 그 정도면 릴리안이 전하의 수하가 된 것을 마법 병단이 막지 못했다는 사실도 가주께서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
“좋아. 내가 라인하이드 가문의 정보를 자네와 공유하면 자네는 가문에 돌아가도 오스틴 공작에게 질책을 당하지 않겠지. 다시 묻지. 그래서 내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리버힐 가문 차기 가주의 정치적 지지입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오스틴 공작의 장남이 차기 가주라 알고 있는데? 자네는 방계이고.”
“리버힐 가문 가주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뛰어난 마법 실력 그리고 리버힐 가의 피를 이었다는 것뿐입니다. 반드시 현 가주의 장남이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는 빠르게 계산했다.
‘안드레가 오스틴 공작의 아들을 밀어내고 차기 가주를 거머쥘 수 있을까? 아니, 설사 차기 가주가 되지 못하더라도 공작의 아들과 경쟁하는 마법사가 나와 한 편이라면 나쁘지 않지.’
안드레가 말했다.
“비밀 동맹입니다. 리버힐 가문과 전하는 정적입니다. 가주의 외손주 첸이 황자이니까요. 첸 황자가 지금은 황태자 경쟁에서 탈락한 듯 보이지만 분명 오스틴 공작님은 첸을 중앙정치에서 어떻게든 존재감을 발휘하게 만들 겁니다.”
“쉽게 포기하지는 못하겠지.”
“가주는 가문의 일보다 황궁의 일에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주께서도 오해하고 계시는 점이 리버힐 가문은 애트란과 다르게 전통적으로 능력 있는 마법사가 가주를 맡곤 했습니다. 방계에 대한 차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실력이 뛰어나면 방계가 본가를 차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죠.”
안드레가 진하게 웃었다.
“리버힐 가문은 그래서 본가와 방계가 바뀌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방계가 가주가 되면 그 즉시 방계였던 가족이 본가가 되는 거니까요.”
나는 결론을 내렸다.
“좋아. 대신 한 가지 확실하게 하지.”
“네. 전하.”
“라인하이드 가문의 정보는 오스틴 공작에게만 공유하겠다. 아는 사람이 많아져서 좋을 건 없거든. 그 정도는 자네도 감수해야지.”
“가주에게 질책만 받지 않는다면 저는 라인하이드 가문에 대해 정보를 공유받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대신 외부에서 자네를 지원하지. 물론 은밀하게. 리버힐 가문의 마법사와 황태자의 동맹이 드러난다면 그 자체로 황궁은 큰 소용돌이에 휩싸이니까.”
안드레가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해 차기 가주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
안드레와 대화를 마친 뒤 아는 켄과 동행하여 레피오를 만났다.
레피오의 얼굴에는 절망이 깃들어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레피오의 얼굴에 나는 한숨을 머금었다.
‘왕이라는 사람이…… 가장 먼저 도망친 것은 물론이거니와 적군의 사령관 앞에서도 저토록 무기력하다니.’
아무리 패배했다 하더라도 왕으로서의 위엄은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지내시기는 불편하지 않습니까?”
“도살장에 끌려가기 전 돼지의 기분이지.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고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면 무엇하나. 제국의 황도로 끌려가 처형될 일만 남았는데.”
나는 릴리안이 말했던 비밀 조직에 대하여 레피오가 알고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런데 지금 상태를 보니 아는 게 없을 것 같았다.
비밀 조직은 레피오를 철저히 허수아비로 세웠을 뿐, 레피오에게 자신들의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레피오에게 물었다.
“다레트 후작과는 무슨 관계입니까?”
“그 배신자 놈? 한때 가장 아꼈던 신하지. 내가 왕이 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왕가의 권력을 강하게 만들었던 놈이니까. 하지만 그러면 무엇하나. 약속을 어기고 왕가의 재산을 가지고 제 혼자 도망쳐 버렸는데.”
켄이 말했다.
“말씀을 높이시지요. 눈 앞에 계신 분은 동부 원정 사령관이자 제국의 황태자입니다.”
레피오가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어쨌든 다레트 후작은 배신자요. 딱히 해 줄 말은 없소.”
“릴리안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녀의 말이 사실입니까?”
나는 굳이 릴리안이 했던 이야기의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레피오도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다행히 레피오는 내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뭐, 그 부분은 다레트 후작이 담당했으니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지만, 릴리안 마법사가 금기된 연구를 했다는 건 우리 쪽에서 흘린 소문이 맞소. 그녀가 다른 곳에 가면 곤란하니까.”
레피오가 허무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릴리안도 다레트처럼 배신자에 불과하지만 말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피오에 대한 처리는 아버지께 일임할 생각이다. 내가 굳이 처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레피오는 피레온 왕국 왕으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차라리 지방 영주들이 더 나았군.’
나는 몸을 돌렸다.
“전하, 살려주시오.”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레피오가 더 매달리기 전에 방을 나왔다. 그가 왕임을 감안하여 감옥에 가두지는 않았지만, 왕궁의 침실 중 하나에 감금하여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수도까지 호송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고, 더 이상 그에게 신경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집무실로 향했다.
“왕궁 전반에 대한 조사는 끝났나?”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다레트 후작이 왕가의 재산을 모두 들고 도망가는 바람에 왕궁에 딱히 건질 건 없습니다. 다행히 릴리안에 관한 서류는 남아 있어 그녀의 결백을 증명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재산 따위야 애초에 관심이 없었어.”
“제국 국민 전체가 족히 삼 년은 풍족히 먹고살 수 있는 재산이 있었습니다. 모두 사치품 위주였지만 처분한다면 당분간 식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군량미도 어마어마하게 확보했을 겁니다.”
켄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피레온 왕국에 재산이 그토록 많았다고? 그런데 대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오로지 자신들의 향락과 사치를 즐기는 데만 사용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기 힘들었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 군량을 쌓고, 성을 보전하는 등 행정적인 부분에 그 많은 재산을 사용했다면?
피레온 왕국은 아무리 아버지가 친정에 나섰어도 그토록 쉽게 무너지지 않았으리라.
나의 원정도 어려워졌을 게 분명했다.
“대부분의 예산을 다레트 후작이 집행했습니다. 서류를 살펴보니 알 수 없는 곳에 돈이 많이 흘러들어갔더군요. 아마도 그 조직과 연관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조사해. 아바마마와 황궁에 전령은?”
“보냈습니다. 폐하께 답신이 오기 전까지는 왕궁과 수도를 안정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 뷔칸 상단과 협조하여 수도 빈민가 문제부터 해결하심은 어떠십니까?”
켄이 먼저 구휼 정책을 언급하자 나는 다소 놀랐다.
켄은 내 표정에 빙그레 웃었다.
“지금은 민심을 얻을 때입니다. 우리는 점령군이고 이제 피레온 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제국의 영토가 되겠죠. 제국 지도에 피레온 왕국까지 포함 시켰을 때 피레온 왕국 수도는 굉장한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그래?”
“네. 이곳 민심을 전하께서 휘어잡으신 뒤 논공행상에서 황태자 직할령으로 받아내는 것이 좋습니다. 풍부한 식량 생산량, 이미 튼튼하게 세워진 성, 빈민이 많지만 수도의 인구 역시 제국의 수도와 비교했을 때 그리 밀리지 않습니다.”
켄은 이미 전후 처리는 물론이거니와 원정 종료 이후 나의 정치적 이득마저도 계산하고 있었다.
“이곳을 직할령으로 얻으시면 전하께서는 강병을 키우실 수 있습니다. 각 조직의 수장들을 모두 얻으시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머릿수를 늘려야 할 때입니다.”
“자칫 아바마마의 오해를 살 수도 있어.”
황태자 직할령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칫 반란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켄이 말했다.
“그래서 조건을 달아야 합니다.”
“조건?”
“이곳은 왕국 연합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입니다. 피레온 왕국은 왕국 연합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수도가 국경 바로 아래라는 사실은 크게 상관없었죠. 하지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니 이제 이곳은 수도가 아니라 국경 지대의 거대한 군사 도시가 될 겁니다.”
나는 켄의 뜻을 짐작했다.
“자네?”
“네. 전하께서 왕국 연합과의 전쟁을 감당하겠다고 하십시오. 황태자라는 직위에 이어 직할령 변경백 지위도 함께 가지신다면 전하의 정치적 위상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켄이 말을 맺었다.
“이제는 다른 황자와의 경쟁이 아니라 귀족파 귀족들과 본격적으로 힘겨루기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피레온 왕국의 수도는 그 싸움의 기반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