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76)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76화(176/278)
176화.
대전 신하가 날 찾아왔지만, 그가 나를 안내한 곳은 대전이 아니라 황후궁이었다.
아버지는 손수 황후궁의 정원을 정리하고 계셨는데, 그 뒷모습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아버지는 지금도 마음이 많이 힘드시려나.’
언제부터였을까?
내 기억 속 아버지와 나와 마주하는 아버지에 대한 느낌이 사뭇 달라졌다.
‘제국의 역사는 조만간 시간을 내서 정독해야겠어.’
아버지의 과거를 가감없이 서술한 책.
지난번 도서관에서 보고, 아버지와 처음으로 황후궁에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고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비밀도 들었다.
동부 원정으로 인하여 책 읽을 시간이 나지 않았지만, 당분간은 황궁에 머물 생각이니 반드시 시간을 내기로 결심했다.
“아바마마.”
내가 아버지를 부르자 아버지가 허리를 펴고 몸을 돌렸다.
“저녁은?”
“아직입니다.”
“저녁이나 들면서 이야기하지.”
“네.”
황후궁 식당은 이미 저녁 준비가 끝나 있었다.
“동부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건 큰 공이다.”
“감사합니다.”
나는 구구절절 아버지께 아부와 같은 말들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딱 칭찬에 대한 답만 한 뒤 아버지의 말을 기다렸다.
“직할령과 변경백은 분명 큰 상이다.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원했던 이유가 무엇이냐.”
부드러운 아버지의 목소리는 나를 타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진짜 뜻을 궁금해하는 목소리였다.
“과거 이 나라의 황태자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귀족들 중 황태자의 자질을 의심하는 자들은 여전히 많은 상황이고 동생들을 비롯하여 동생들의 외가는 호시탐탐 정당하게 주어진 저의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솔직했던 것일까?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지만, 나는 이왕 말을 꺼낸 김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황태자로서 직위를 공고히 지키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더 키우려면 공보다 좀 더 큰 상을 받을지라도 능력을 증명하는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 있는 모양이군.”
“옛 피레온 왕국 수도는 광활한 영토이며, 그곳에서 나는 소출은 제국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많습니다. 저는 단순히 왕국 연합과의 전쟁을 대비하여 보급품을 비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국의 식량 보급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생각입니다.”
아버지는 해결 방법까지 묻지 않았다.
“네가 공보다 상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네가 대전에서 장담한 기간은 오 년이다. 왕국 연합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최근에는 너와 비슷한 재능의 방랑 기사가 합류했더군.”
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설마 카렌인가? 아버지는 카렌을 나와 비슷한 재능의 소유자로 본 것일까?
영웅 카렌의 재능은 대륙 그 어떤 사람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최종 보스 론 칼 레오드마저 뛰어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람…….’
아버지의 말이 이어졌다.
“이름이 카렌이라 하더군. 내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던 젊은 방랑 기사였다. 그가 왕국 연합 안으로 들어갔으니 고든과 에릭이 죽은 것 따위는 왕국 연합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
“그토록 강한 기사라니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나의 말에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호승심이란 좋은 것이지. 현 시점에서는 그가 황태자보다 조금 더 강하다. 부지런히 정진하도록. 자신감은 좋지만 자만은 퇴보의 지름길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나름의 훈훈한 부자지간의 대화가 오고간 뒤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확실히 나는 아버지와의 거리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릴리안에 대한 보고서를 읽어봤다.”
와인을 마시면서 하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좋은 인재입니다.”
“레피오 따위가 그런 음모를 꾸며 릴리안 정도의 마법사를 옭아맬 능력은 없고. 역시 비밀 조직인가.”
“비밀 조직에 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오래전부터 대륙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조직이라는 것. 어떤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어떻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리엘의 죽음에 관여한 이들은 모두 한 조직 소속이었다.”
아버지가 식탁 위에 하나의 그림을 올려놓았다.
“기호입니까?”
사실 그림인지 기호인지 헷갈렸다.
“아마도 그 조직을 상징하는 문양 같다. 정확한 것은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 어쨌든 릴리안을 옭아맨 것은 그들이 틀림없고, 다레트 후작이 그 조직 소속이라 보아야 옳겠지.”
“그렇습니다.”
“릴리안을 잘 활용하도록. 그녀는 비밀 조직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제자가 다레트 후작에게 볼모로 잡혔다고?”
“네. 그녀가 아끼던 제자였던 터라 릴리안은 다레트 후작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피레온 왕국 소속 마법사로 활동했습니다.”
“인재를 등용하는 건 군주로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지. 오스틴 공작의 반발은 아마 계속될 것이다. 릴리안과 그쪽의 인연은 제법 깊으니. 그 부분은 네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가도록.”
“네, 아바마마.”
“당분간은 제국 내부를 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동안 황태자도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면서 수련을 거듭하고 이번에 거머쥔 상들을 잘 활용하도록.”
아버지가 마지막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황태자 직위는 내가 내렸지만 지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너의 몫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도록.”
나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나는 릴리안을 불렀다.
집무실에서 릴리안을 맞이했다.
“앉아.”
릴리안이 집무실 소파에 앉았다.
그녀의 앞에 차를 놓으며 말했다.
“마그마의 분노에 대해 이야기해야지. 릴리안이 내 수하가 된 이유 중 하나니까.”
“내가 황태자 전하의 수하가 된 건 황태자 전하를 통해 비밀 조직에서 이브를 빼내는 것도 목적이지만 마그마의 분노 영향도 크지.”
“이브의 생사는 어느 정도 포기한 모양이로군.”
무거운 나의 목소리에 릴리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브가 살아 있다고 확신한다면 릴리안은 마그마의 분노보다 그녀를 구하기 위하여 더 동분서주할 것이다.
‘겉으로는 툴툴거리고 말투도 차가운 편이지만 제자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딸이나 다름없는 제자다. 나를 통해 비밀 조직에 복수할 생각이야.’
마그마의 분노는 그녀의 구미를 당기게 만든 계기가 되었을 뿐, 그녀가 순순히 마나의 서약을 맺은 건 어디까지나 비밀 조직에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비밀 조직에 대하여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건 아버지라고 릴리안이 직접 말했다.
‘어제 아버지는 릴리안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두 사람이 가진 정보를 교차 비교하면 비밀 조직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겠지.’
일단 마그마의 분노부터 해결하는 게 좋았다.
마나의 서약에는 마법서의 위치를 알려주는 게 전부이니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나는 탁자에 대륙 지도를 펼쳤다.
“서쪽 숲, 용의 둥지라 불리는 곳이야.”
릴리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세계수가 있는 곳이잖아?”
“난 마나의 서약을 맺었어.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지.”
“황태자 전하에게 한 방 먹었군. 이거 어리다고 내가 너무 무시했어.”
릴리안이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서쪽 숲 용의 둥지는 세계수의 보금자리이며 동시에 요정들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까지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곳이다.
물론 옛 문헌에 따르면 요정들과 인간이 동맹을 맺었을 때, 인간들도 용의 둥지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명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맹이 끊어지고 요정들이 서쪽 숲 자체에 대한 인간의 출입을 금지하면서 전설 속 장소가 되고 말았다.
“요정의 손에 있다면 구할 수 없네. 황태자 전하가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구할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말하지 않았는데 마법서가 주는 이름값에 정신이 팔려 서약을 맺었어.”
릴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보를 전부 주지 않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요정의 손에 있는 건 아니고, 마그마의 분노는 릴리안을 위해 구할 생각이야.”
“지금 황태자 전하 입으로 용의 둥지에 있다고 한 것 같은데 그곳까지 어떻게 가겠다는 거야?”
“방법은 차차 생각해야지. 하지만 릴리안은 마그마의 분노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와 계약을 맺은 거잖아? 적어도 노력은 해야지. 군주로서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수하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거니까.”
릴리안이 소파에 등을 기댔다.
“할 일이 많으시네. 마탑 건설, 직할령 안정, 서부 안정, 왕국 연합 견제 거기에 비밀 조직 상대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어.”
나는 빙긋 웃었다.
“훌륭한 수하들이 많으니 괜찮아. 어쨌든 정보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은 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아니. 마그마의 분노를 쉽게 얻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고 황태자 전하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까. 위치를 알려준다고 했지 구해준다고 하지는 않았잖아.”
나는 어제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문양을 그려 놓은 종이를 지도 위에 올렸다.
“이건 뭐야?”
“비밀 조직의 상징.”
릴리안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잠깐, 이게 상징이라고?”
나는 아버지와 어제 오랜 대화를 통해 받은 몇 개의 정보를 릴리안과 공유했다.
“맞아. 지금까지 아버지가 비밀 조직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척살하시면서 발견한 하나의 공통점이야. 그들 모두가 이 문양의 문신을 팔목 위에 하고 있었다더군.”
“이거 아무래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아는 건가?”
아버지도 모르는 정보를 릴리안이 가지고 있었다.
‘역시 정보가 교차되니 새로운 정보가 나온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문양 그리고 릴리안은 그 문양이 비밀 조직의 상징인 건 몰랐지만 문양 자체는 알고 있었다.
“좀 알아봐야겠어. 확실하지 않거든. 아마도 종교와 관련되어 있는 문양인데.”
“종교?”
“그래. 대륙은 넓어. 사람은 많고. 당연히 미친놈들도 많지. 악마를 숭배하는 놈들은 고대로부터 계속 있어 왔고 악마의 왕, 마왕을 신으로 모시는 놈들도 있었지.”
나는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악마의 문양이라고?”
“아마도. 확실한 건 아니야. 개인적인 정보망이 있는데 일단 며칠 기다려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안은 기쁜 듯 일어났다.
“역시 황태자 전하의 정보망은 남다르네. 서약을 맺은 보람이 있어.”
나도 몸을 일으켰다.
“가서 알아보고 알려줘.”
릴리안을 배웅한 뒤 나는 수련장으로 향했다.
멀리서 하인 한 명이 다가왔다.
“전하, 올리비아 영애께서 오셨습니다.”
“영애가?”
머지않아 올리비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원정이 끝났으니 수련을 다시 시작해야죠.”
나는 아, 하고 탄성을 터뜨린 뒤 옅게 웃었다.
“맞아.”
나는 올리비아와 함께 수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작님은 전쟁에서 다치신 곳은 없나?”
“네. 무사히 돌아오셨어요. 너무 오랜만에 전장에 나갔는데 검도 제대로 뽑지 않으셨대요.”
올리비아의 말이 이어졌다.
“에릭과 베레곤 공작님의 대결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셨대요. 애트란 가문의 가주가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고요.”
“베레곤 공작이 더 강해지고 있다라!”
나에게 묻혀서 그렇지 이번 전쟁에서 베레곤 공작도 큰 공을 세웠다.
적 소드 마스터를 베었고, 덕분에 애트란 가문의 명성도 높아졌다.
‘세간의 시선은 베레곤보다 에릭을 살짝 앞서는 소드 마스터로 평가했으니까. 내 설정도 그랬고. 베레곤이 에릭을 상대로 승리한 것도 달라진 미래다.’
수련장에 도착한 뒤 나는 결심했다.
‘아직 멀었다. 이제 막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어.’
내 경쟁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강해진다.
‘카렌도…… 드디어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에서 나보다 더 큰 명성을 얻은 건 카렌이다.
무려 아버지를 상대로 동수를 이뤘으니까. 설사 검술 한정이라 하여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쉽게 잊혀지지 않으리라.
나는 마음을 공고히 다진 뒤 말했다.
“올리비아, 시작하자. 당분간 전쟁은 없으니 이번 시간을 통해 반드시 검술을 어느 정도 끌어올려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