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80)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80화(180/278)
180화.
테드에게 당장 답을 주지는 않았다.
대전에서 내가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건 신중하게 여러 검토를 거친 이후에 할 일이다.
최근 많은 공을 세우면서 나의 입지가 크게 올라갔지만 대전에서 섣불리 나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다가는 도리어 역풍을 맞을 수 있었다.
‘가뜩이나 내 영향력이 커진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귀족들이 많은데 어쭙잖게 나섰다가 귀족들에게 물어뜯길 수도 있어.’
나는 생각을 정리한 뒤 일단 헤밀튼을 불렀다.
외부에 출장을 나갔던 헤밀튼은 해가 질 때쯤 돌아왔다.
나는 집무실에서 헤밀튼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아.”
“네, 전하.”
헤밀튼은 이번 전쟁을 통해 백작 작위를 받았음에도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그의 생활에 별 변화도 없었다.
백작이면 상당한 고위 귀족이었지만 헤밀튼은 백작이라는 작위보다 내 직속 정보 조직 단장직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요새 바쁜가?”
헤밀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황궁으로 돌아오면서 점검해야 될 정보들이 많습니다. 최근 켄 군사가 남부쪽 정보를 원해서 남부 연합체 정보를 취합하고 있습니다.”
나는 새삼 켄의 통찰력에 혀를 내둘렀다. 오늘 테드가 남부 연합체 문제와 애트란 가문의 문제로 황태자궁을 방문했는데, 켄은 이미 남부 연합체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렇군. 나도 남부 연합체쪽 정보를 한번 알아보라고 말하려 부른 거야. 이미 켄이 부탁해 둔 건 몰랐어.”
“여러 정보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마 조만간 남부 연합체에 관한 정보를 보고서로 작성하여 올릴 수 있을 겁니다.”
나는 편안하게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남부 연합체 쪽 정보도 정보이지만 애트란 가문의 차기 가주에 관한 점들도 궁금했다.
“애트란 가문의 차기 가주가 누구인지 알아?”
“미첼 벤 애트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헤밀튼의 입에서 애트란 가문의 차기 가주 피츠에 관한 정보가 술술 나왔다.
“미첼은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성년식을 치를 때 최상급 소드 비기너가 되었을 만큼 굉장한 재능으로 주목받았지만 현재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최상급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대단하군. 나이 마흔에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면 충분히 소드 마스터를 노려볼 수 있는 재능이라는 뜻이니까.”
주위에 워낙 괴물이 많아서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는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대륙에서 활동하는 기사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는 최상위 경지다.
헤밀튼도 나의 말에 동의했다.
“네. 성년식과 동시에 애트란 차기 가주로 임명되었습니다. 베레곤 공작은 열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미첼이 검술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부분에서도 가장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고 합니다.”
“장남인가?”
“네.”
나는 흠, 하고 고민에 잠겼다.
‘미첼이라. 한 번 봐야 되나?’
이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시점에서 굳이 애트란의 차기 가주를 만나서 좋을 건 없었다.
헤밀튼의 말이 이어졌다.
“미첼은 동부 전선에 있다가 잠시 가문에 복귀한 뒤 폐하의 동부 친정과 동시에 남부로 내려갔습니다. 그 곳에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남부에서 정확히 어떤 활동을 했는지 한번 알아봐.”
“네, 전하.”
나는 그 정도로 헤밀튼과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소리스에게 요청해. 정보는 조직을 지탱하는 근간이야.”
“지금도 가장 많은 예산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더…….”
나는 헤밀튼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정보 조직은 예산 걱정하지 않아도 돼. 쓸데없는 지출은 피해야 되겠지만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를 써도 상관없어.”
“명심하겠습니다.”
헤밀튼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웃으며 헤밀튼을 내보냈다.
집무실에 홀로 남은 나는 미첼에 대하여 생각했다.
‘미첼과 베레곤 그리고 테드.’
세 사람의 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겉으로 볼 때 베레곤은 테드를 후원하며 테드는 황태자 자리를 위해 노력한다.
누구보다 외조부 베레곤을 존경하는 테드는 아버지의 재능과 외조부의 재능을 동시에 물려받아 이른 나이에 벌써 소드 마스터의 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미첼은 테드의 말에 따르면 애트란 가문의 차기 가주 정도의 권력으로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남자다.
‘베레곤 공작 역시 삶의 목표가 아버지를 뛰어넘는 것이다. 제국의 황가 성을 레오드가 아니라 애트란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인물이지. 자신이 불가능하다면 자신의 자식 대에서라도 황가의 성을 바꿀 인물이야.’
베레곤 공작은 내가 세심하게 설정한 편에 속했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반면 미첼은 한 줄 정도만 언급했을 뿐 자세히 설정하지 않았다.
‘세계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구성된다. 내가 쓰지도 않은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곳은 살아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헤밀튼이 남부 연합체와 미첼에 관한 정보를 가져올 때까지 테드의 부탁에 대한 대답은 미뤄두기로 결정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황가의 성을 레오드가 아닌 애트란으로 바꾸고 싶은 게 베레곤 공작의 열망이라면…… 테드는 베레곤 공작에게 그저 발판에 불과할 수 있다. 테드 역시 베레곤 공작의 핏줄이지만 테드는 애트란이 아니라 레오드야. 그리고 테드 역시 그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드와 베레곤 공작의 갈등은 나에게 나쁠 게 없었다.
경쟁자가 내부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거니까.
“켄과 상의해야겠군.”
테드와 미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 놓고 결정은 추후 상황에 따라 내려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 * *
이그니스가 불의 장막을 펼치며 실피드의 빙하의 강풍에 대항했다.
콰아아앙-! 쾅-!
불의 장막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그니스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이건 불공평하다.
이그니스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불사조가 부리를 내미는 모습은 무척 웃겼다. 단단히 화가 난 이그니스의 눈매 역시 웃음을 자아냈다.
내가 큭큭 거리자 이그니스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웃겨? 내가 웃겨? 지금 내가 최상급이 되지 못했다고 비웃는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지. 가끔 네가 화내는 것을 보면 꼭…….”
말하면 더 화낼 것 같아 입을 다물었지만, 이그니스는 내 의식을 읽고 곧바로 더 역정을 냈다.
-뭐? 내가 어린아이 같아? 이봐, 맹약의 주인! 아직 이십 년도 살지 않은 주제에 내가 어린아이 같다고? 나는 족히 수백 년…….
-그만해요.
엘라임이 말리자 이그니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삐친 이그니스를 한동안 달래주었다.
이번 수련은 실피드의 위력이 어느 정도나 되나 시험해보는 측면이 강했다.
‘빙하의 강풍은 레벨이 1에 불과하지만 레벨 20의 불의 장막을 가볍게 뚫어냈어. 역시 상급과 최상급의 차이인가?’
무엇보다 빙하의 강풍 스킬은 바람의 성질만이 아니라 물의 성질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최상급이라 스킬에 다른 성질도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일까? 빙하의 강풍은 일종의 속성 화합 스킬이나 다름없어.’
내 궁금증을 엘라임이 풀어주었다.
-맹약의 주인 생각이 맞아요. 빙하의 강풍은 속성 화합 정령술이라고 보는 게 옳고, 특징은 실피드가 최상급 정령이기 때문에 굳이 물의 정령과 화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죠.
“그럼 이그니스나 엘라임, 클라임도 최상급 정령이 되면 빙하의 강풍과 같은 속성 화합 스킬을 사용할 수 있어?”
-그건 맹약의 주인 능력에 달린 문제에요. 아마도 바람의 정령과 친화력이 가장 높아 실피드가 먼저 최상급 정령에 올랐고 나머지 상급 정령들은 최상급이 되더라도 속성 화합 스킬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엘라임은 여러 정령술을 알고 있잖아? 비산하는 물방울도 엘라임이 가르쳐 주었고.”
-최상급 정령사가 되셨으니 물론 다른 정령술도 가르쳐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가르쳐 드릴 정령술은 빙하의 강풍처럼 속성 화합 성질이 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기대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문제 없어. 정령술이라면 당연히 배워야 하니까.”
이그니스가 끼어들었다.
-나도 하나 가르쳐 줄 게 있다. 지금 맹약의 주인 정령술은 바람의 정령에 편중되어 있어. 불의 정령 단독으로 펼치는 정령술은 불의 장막이 유일하지. 불의 정령이 바람의 정령보다 공격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불은 공격의 상징이지.”
나의 화답에 이그니스의 콧대가 단숨에 높아졌다.
-역시 뭘 알긴 아는군!
-정령술을 배우시기 전에 맹약의 주인께서 아셔야 될 게 있어요.
엘라임의 말에 이그니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지금 계약한 모든 정령들을 소환한 상태였는데, 이그니스만이 아니라 다른 정령들도 입을 다물고 엘라임에게 집중했다.
나도 덩달아 조용히 하면서 엘라임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령계는 차원의 균형을 유지하는 세계입니다.
엘라임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균형?”
-하나의 차원은 마계, 천계, 정령계 그리고 중간계로 이루어져 있어요. 각 세계는 서로를 보완하고 때로는 자극하면서 유지 되죠.
마계, 천계, 중간계, 정령계는 이 시대의 흔한 상식이니 새삼 놀라울 건 없었다.
하지만 정령계가 정확히 차원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듣는 건 새로웠다. 더구나 설명의 주체가 상급 정령 엘라임이니 더욱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살던 세계의 상식은 전혀 통하지 않는 곳, 새로운 세계, 새로운 차원.
나는 학생의 기분으로 엘라임의 설명을 들었다.
-마계의 주인 마족은 멸망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태어났죠. 천계의 주인 천족은 신을 모시는 이들로 차원을 유지하기 위한 수호자로 태어났어요. 그리고 정령계는 마계와 천계 그 어느 쪽에도 힘이 실리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게끔 태어났습니다.
“마계와 천계의 균형?”
-네. 한낱 정령이 창조주의 뜻을 알 순 없지만 마계와 천계의 힘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균형을 이루게 만드는 힘이 바로 정령계입니다. 그래서 정령은 마족과도 계약할 수 있고 천족과도 계약할 수 있습니다.
엘라임의 말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중간계는 마계와 천계 그리고 정령계의 힘이 순환하는 곳입니다. 중간계에 어떤 힘이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느냐에 따라 마계와 천계의 우위를 판단할 수 있어요.
나는 짧게 물었다.
“중간계에 마계의 힘이 더 크냐, 천계의 힘이 더 크냐에 따라 두 세계 힘의 균형을 살펴볼 수 있다는 말이지?”
-정확하게 이해하셨어요. 그리고 맹약의 주인은 바로 그 균형을 수호하는 자.
엘라임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위엄이 깃들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마계 마왕들의 힘이 강력해지고 천계는 그 힘을 점점 잃어가고 있어요. 타락한 인간들은 창조주 휘하의 신들에게 힘을 주지 못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천족들의 힘도 약화됐죠.
인간이 신의 힘을 약화시킨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일단 넘어가고 엘라임의 말에 집중했다.
-마족의 본질은 멸망, 파괴. 마계는 천계를 직접 공격할 수 없고, 천계는 마계에 직접 영향력을 펼치지 못해요. 중간계는 차원의 균형이 유지되는 곳. 어느 한 세계의 힘이 강해지면 균형은 무너지고 차원은 멸망을 향해 달려갑니다.
“맹약의 주인은…… 정령의 힘을 통해 그 균형을 유지하는 자라는 말인가?”
무려 차원 수호자라는 뜻인 것 같았다.
-수천 년 전부터 강해지기 시작한 마계의 힘은 이제 중간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령계는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마계의 힘은 정령계조차 누를 정도로 강해졌죠.
실피드가 살짝 끼어들었다.
-맹약의 주인이 나타나 정령계의 새로운 왕들을 탄생시키고 중간계를 안정시킨다. 태초부터 내려온 맹약의 주인에 관한 예언.
엘라임이 실피드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아룬 님이 바로 맹약의 주인입니다.
부담감이 어깨를 눌렀다.
나는 솔직히 얼떨떨하기도 했다.
‘이거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