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91)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91화(191/278)
191화.
다레트 후작, 아니 이제는 다시 사제로 살아가는 다레트는 인자한 미소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맛있니?”
“네. 정말 맛있어요. 이런 건 처음 먹어봐요.”
“다음에도 또 줄 테니 천천히 먹어라.”
“정말 감사합니다.”
다레트 근처에는 수십 명의 아이들이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었다. 다레트가 몇 번이나 천천히 먹으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지금이 아니면 먹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게걸스럽게 밥을 해치웠다.
다레트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사제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다레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클리에 천천히 다니렴. 그러다 넘어지면 다친단다.”
“그런 잔소리는 꼬맹이들한테나 하시고요! 지금 큰일 났어요.”
“아무리 큰일이라도 차분하게 생각하면 길이 보이기 마련이야. 급할 필요는 없어.”
막 열다섯 살이 된 클리에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다레트의 성격이 좋았지만, 지금은 마음이 급해 다레트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영주님께서 오신대요!”
“영주님?”
“네. 영주님이요.”
다레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렇구나.”
클리에가 답답한 듯 외쳤다.
“영주님은 무서운 분이라고요! 분명 고아들과 빈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는 것을 따지러 오시는 걸 거예요. 몇 번이나 영주님이 초대하셨지만 거부하셨잖아요. 영주님은 사제님을 싫어한다고요.”
클리에는 끝내 눈물을 머금었다.
자신의 인생을 바꿔 준 사람, 진정 신의 화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어 준 사람이 귀족의 분노 앞에 놓여 있었다.
클리에는 고작 열다섯 살이었지만 영주가 분노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몇 번이나 보았다.
다레트가 진하게 웃었다.
“클리에 나는 괜찮단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영주님의 영지에서 고아와 빈민을 구휼했는데 아마도 상을 주시러 오시는 것일 거야.”
다레트가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소식을 들었으니 마중을 나가야겠지? 영주님을 안에서 맞을 순 없는 노릇이지. 마침 비축된 식량이 점점 떨어져 가니까 영주님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
* * *
나는 서부에서도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이크 후작의 영지에 도착했다.
서부를 떠날 때만 하더라도 겨우 기초공사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영주성이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성으로 변해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규모가 상당히 컸고, 전쟁을 대비하여 최후의 순간에는 방어 요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지극히 실용적으로 지어진 영주성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마이크 후작의 성격을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신분 제도를 뒤흔들 정도로 개방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귀족으로서의 품격과 의무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전하!”
멀리서 들리는 마이크 후작의 목소리에 나는 질풍에서 내렸다.
곧 마이크 후작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전하!”
“오랜만입니다, 후작님.”
마이크 후작은 진심으로 나를 환대했다.
영주성으로 들어가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을 하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저녁 만찬 시간에도 마이크 후작과 나는 끊이지 않는 웃음을 자아냈다.
만찬에 참석한 서부 영주들 역시 오크와의 전쟁 때보다 표정이 훨씬 좋았다.
서부에 아주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부는 나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내가 처음으로 존재감을 강력하게 드러낸 곳이었으며, 급격한 성장을 이룬 곳이니까.
서부 영주들은 내게 충성을 맹세했고, 그들은 황태자파 세력의 주류가 되었다.
나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직할령보다 마음이 더 쏠렸다.
저녁 만찬을 성대하게 치른 뒤 내일 본격적인 회의를 하기로 결정하고 서부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 * *
어제 만찬에서 생각보다 와인을 많이 마셔 조금 늦게 일어났다.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한 뒤 나는 마이크 후작과 마주 앉았다.
마이크 후작의 집무실은 단촐했다.
그는 내게 직접 차를 내려주었다.
“서부에서만 나는 특산품인데 향과 맛이 제법 괜찮습니다. 차가 오지에서 자라다 보니까 채취하기가 힘든 편입니다. 지난 전쟁 당시에는 비축했던 물량이 떨어져 전하께 대접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귀한 차군요. 향부터 확실히 좋습니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상당히 말끔한 맛이 느껴졌고 내 취향과도 제법 부합했다.
“이곳 정리는 대부분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전하를 뵈었으니 내일쯤에 황도로 출발할 생각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님께 큰 짐을 드리는 것 같습니다.”
마이크 후작이 싱긋 웃었다.
“중앙 정계는 익숙하지 않지만 전하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이 있으며, 제임스 공작님도 계시니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도 마이크 후작의 말에 동의했다.
내가 그에게 원하는 건 황태자파 세력을 키우는 것이나 혹은 좋은 개혁 정책을 내달라는 것도 아니다.
황태자파 세력 유지를 위하여 후작이라는 영향력을 더해 달라는 것 정도였다.
중앙에서 황태자파를 이끄는 건 냉정하게 제임스 공작이고, 마이크 후작의 역할은 제임스 공작의 정치적 목소리가 낮아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거니까.
마이크 후작 역시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황태자파는 이제 막 출범한 정치 세력입니다. 제가 간다면 나름대로 중앙 정계에 파문을 던질 수 있고 제임스 공작님도 한결 든든할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후작님.”
마이크 후작이 이제 서부 이야기를 꺼냈다.
“서부 연합체 차기 수장에 관한 것은 결정하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본래 마이크 후작님에게 쭉 맡길 생각이어서 생각해두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몇몇 영주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어떤 공동체이든 수장 자리가 오래 비어서 좋을 건 없습니다. 그나마 전하께서 서부에 오셨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지만, 빨리 수장을 결정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후작님은 누구를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사르한 백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와 켄과 의견과 같았다.
* * *
서부에서도 오딘 가, 파웬 가문과 같은 명가가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서부의 정치적 영향력은 작았다.
척박한 땅, 그만큼 낮은 소출과 잦은 몬스터 침략 등 서부는 환경 자체가 다른 곳보다 확실히 좋지 않았다.
생존 자체가 힘든 서부의 환경은 자연스레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철저한 생존 위주의 생활 방식이다.
서부는 아무리 적은 소출을 기록하더라도 반드시 식량을 비축했다. 오늘 당장 굶어 죽을 것 같아도 내일을 위하여 식량을 비축하는 게 좀 더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처절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몬스터와의 수많은 전투로 서부의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칼과 창을 다루었고 어린 아이들끼리의 전쟁놀이에서 누군가가 크게 다치는 것도 예민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고작 몇 년만 더 지나면 ‘놀이’가 아닌 ‘생존’을 위하여 싸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서부인들은 자신의 생존이 가장 첫 번째 덕목이었기에 중앙 정계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장 영주민들이 올해에는 몇 명이나 죽어 나갈까, 라는 걱정이 태산 같은 이들에게 중앙 정계의 권력은 머나먼 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서부 영주들 중 독특한 사람이 있었다.
“서쪽 숲 정찰을 나갔다고?”
켄에 묻는 나의 목소리에는 황당함이 묻어났다.
켄이 쓰게 웃었다.
“네. 회의록에 따르면 사르한은 군주가 원하는 것을 먼저 행하여 이뤄드리는 게 신하의 덕목이라 하였더군요.”
나는 기가 찼다.
“허! 그 군주가 나를 말하는 것이겠지?”
“적어도 회의에서는 그렇게 들리게끔 말했습니다.”
켄은 헤밀튼의 보고서를 통하여 사르한 백작과 베레곤 공작의 연결 고리를 의심했다.
헤밀튼은 현재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조사에 들어갔고, 조만간 결론이 나올 예정이다.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켄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했다.
“전하는 본래 직할령으로 가시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부에 왔고 최근 전하께서는 서부의 요정 자료를 요청하셨죠. 사르한은 그 사실을 알고 서쪽 숲에 갔습니다.”
“행동력이 엄청 빠르군. 겉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자신의 말을 지키는 사람인 것 같아.”
켄이 옅게 웃었다.
“서쪽 숲 정찰 결과를 두 군데에 보고하겠죠. 하나는 서부 연합체, 한 곳은 베레곤 공작.”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사르한 백작이 정말 베레곤 공작의 끄나풀일까? 서부 영주들은 중앙 정계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당장 영지가 오늘 망할지, 내일 망할지 모르는데 중앙 정계에 눈을 돌릴 틈이 있었을까?”
켄은 내게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전하, 오늘 망할지, 내일 망할지 모르는 영지에 식량 지원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베레곤은 마음만 먹으면 서부 영주 전체를 휘하로 둘 수 있었습니다. 오스틴 공작도 마찬가지고요. 그들 가문의 소출은 서부 전체를 압도하고도 남습니다. 일정량만 투자하면 아마 너도나도 충성을 맹세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둔 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나는 혀를 찼다.
“대전에서 서부의 일을 더 신경 써야 했었는데. 서부 역시 제국의 영토 아닌가. 그동안 주요 전선이 있는 남부와 동부 그리고 황궁이 있는 북부에만 투자하여 서부에 소홀했어.”
딱히 아버지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정책 방향이 서부를 소외시킨 건 사실이다.
서부 영주들이 내게 충성을 맹세한 건 바로 소외된 자신들의 처지를 공감했기 때문도 있었다.
“그래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자세히 알아보자고. 헤밀튼 마음이 싱숭생숭하겠군.”
“헤밀튼은 냉정한 사람입니다. 그가 정보 조직의 단장을 맡을 수 있는 이유 역시 정에 휘둘리지 않는 성격 덕분이죠.”
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사르한 백작이 서쪽 숲 정찰을 나갔으니 그들을 기다리는 게 좋겠군. 당장 서쪽 숲으로 가는 것보다는 사르한이 어떤 결과물을 가지고 오느냐에 따라 대응 방법도 정해질 거니까.”
“요정에 관한 자료도 계속 수집하겠습니다.”
“그래. 마그마의 분노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은 요정의 영역 한가운데이니까.”
켄이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 마법서…… 정말 용족이 만든 것일까요?”
“아마도.”
나는 그 이야기는 대충 짧게 얼버무렸다.
‘사실 자세히 설정하지 않아서 모른다고.’
켄과 이야기가 길어지면 내 설명의 허점이 수도 없이 발견될 것이다.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는 없었다.
“전하!”
밖에서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 온 사람은 게일이었다.
“게일?”
“요정 숲에 나갔던 병사가 귀환했습니다.”
게일의 보고에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요정 숲에 나갔던 병사? 사르한 백작이 아니라?”
“직접 보셔야 할 듯합니다.”
게일의 말에 나와 켄은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가자 하인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나를 발견하고 속속 길을 비켰다.
“아, 아, 아.”
그리고 영주성 마당에 병사 한 명이 쓰러져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겨, 경고, 경고.”
병사의 정신은 완전히 나가 있었고 몸은 전부 뒤틀려 끔찍한 형태였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겨, 경고, 경고, 겨, 경고. 인간이 다시 세계를 오염시킨다.”
나는 아무것도 병사에게 묻지 않았다.
어느새 릴리안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정신 마법이야. 그것도 매우 지독한. 아마 정해진 말을 할 때까지만 숨을 유지할 거야.”
릴리안의 말에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신성한 땅마저 오염시키려는 인간. 저, 정화의 시간이 다시 다가온다.”
병사가 마지막 말을 토해냈다.
“서쪽 숲으로부터 시작되는 정화가 온 대륙에 미칠 것이다.”
몸이 뒤틀린 병사가 쓰러졌다.
‘정화라…… 저 병사의 정신 마법은 정녕 요정의 짓인가?’
곳곳에서 요정을 성토하는 말이 터져 나왔다.
“정화라니 끔찍한 놈들! 서쪽 숲이 아무리 제 놈들 것이라 하지만.”
“백작님은 그저 정찰 임무만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찌 사람을 저리!”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