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94)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94화(194/278)
194화.
요정들은 서쪽 숲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숲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막으며 살았다.
그러기를 수백 년.
사람들의 입에서 요정은 이제 술 취한 사람들의 안줏거리에 불과했고, 그렇게 점점 잊혀 갔다.
나는 그 보기 어렵다는 요정을 상대하는 게 벌써 세 번째.
요정들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변하면서 서쪽 숲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실피드.”
-조심하십시오. 저들은 보통 요정이 아닙니다.
나의 부름에 실피드는 물론이거니와 상급 정령 넷도 모두 소환되었다.
-하이 엘프 후손들이에요.
-주인, 저 꼴통 놈들은 상종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엘라임, 이그니스가 동시에 놀랐다.
아직은 낯선 실울펜은 담담히 주변을 훑었고, 클라임은 언제나처럼 묵묵했다.
요정들이 뿜어내던 빛이 사그라들고 요정들의 바뀐 모습이 보였다.
귀가 한층 더 길어졌고, 눈빛에는 살기가 물들어 있었다. 피부는 하얗게 질렸는데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요정들의 모습을 기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순간 요정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엘라임!”
내가 놀라며 외치자 엘라임이 물의 장벽을 만들었다.
콰아아앙-! 쾅-! 쾅!
요정들이 날린 화살이 물의 장벽을 때렸다.
일부 요정들은 놀랍게도 육탄전을 펼쳤는데, 그들의 주먹은 바위보다 더 단단했다.
물의 장벽이 요정들 주먹에 맞을 때마다 강하게 흔들렸다.
나와 함께 온 일행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올리비아와 게일을 필두로 내 주위를 감싸면서 진영을 펼쳤다.
우리에게 숲은 전투를 펼치기에 좋지 않은 지형이다. 너무 좁고,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많았다.
서쪽 숲은 빽빽해서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나무들이 촘촘했다. 길도 없었고 땅에 박힌 바위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요정들은 나무 사이를 원숭이보다 능숙하게 다녔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활을 쏘는데 화살의 위력은 엘라임이 펼치는 물의 장벽에 금을 가게 만들 정도였다.
‘족히 수십, 아니 백 명은 넘는 것 같다.’
나는 차분하게 바람의 호흡법을 운용하면서 정령들의 스킬을 펼쳤다.
올리비아와 게일은 어느새 나무 위로 올라가 화살을 날리는 요정들을 노렸다.
“전하!”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재빨리 실울펜을 불렀다.
실울펜이 바람의 사슬을 펼쳤다.
서걱-!
네 발의 화살이 반으로 갈라졌다.
‘긴장을 늦추면 당한다.’
올리비아, 게일, 릴리안까지 있는데 요정들을 상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에 국가급 전력이라고자랑했는데 고작 백여 명에 불과한 요정들과 막상막하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니던가.
나는 정령들에게 더욱 많은 마나를 불어넣었다.
고오오오오-!
이그니스와 실울펜이 화염의 바람을 펼치며 요정들을 공격했다.
“재밌네. 요정들이라.”
릴리안의 목소리와 함께 나무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였다.
수십 그루의 나무들 뿌리가 땅 속에서 튀어나오며 요정들의 발목을 잡았다.
요정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생생히 보였다.
나와 기사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죽여야 하나? 제압만 해야 하나?’
릴리안이 본격적으로 마법을 펼치자 전투의 균형이 확 기울었다.
‘하이 엘프…… 대대로 요정 왕족의 후손들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아직 내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올리비아와 게일, 기사들은 요정들의 공격에 방어만 하고 있었다.
일행들 역시 요정들을 죽였다가는 다가올 후폭풍에 대해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압만 하도록!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죽여도 좋다!”
내 말과 동시에 올리비아와 게일의 기세가 변했다.
릴리안도 달라졌다.
올리비아의 움직임은 한 편의 춤사위다.
챙-!
자신의 손톱을 막아내는 올리비아를 보면서 요정이 피식 웃었다.
올리비아의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흘러나왔다.
게일의 검에서도 족히 2미터가 넘는 오러 블레이드가 흘러나오며 요정들을 압박했다.
나는 실피드에게 어마어마한 마나를 불어넣었다.
실피드는 곧장 바람의 사슬을 펼쳤다.
콰아아앙-!
성인 네 명이 함께 팔을 둘러도 다 감싸 안지 못할 정도의 나무들이 실피드가 펼치는 바람의 사슬에 잘려나갔다.
캉-! 캉-!
놀랍게도 요정들은 바람의 사슬을 합심하여 막아냈다.
네 명 이상의 요정들이 모여 함께 새하얀 빛을 뿜어내면서 바람의 사슬에 대응했다.
올리비아, 게일이 펼치는 오러 블레이드 역시 같은 방식으로 막아냈다.
릴리안은 요상한 미소를 지으며 지팡이를 흔들었다.
“릴리안!”
올리비아가 놀라며 릴리안을 향해 달려갔다.
요정들은 릴리안의 마법을 가장 경계하는 듯 그녀가 마법을 펼치기도 전에 나섰다.
수십 명의 요정들이 릴리안을 향해 쇄도했다.
나는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요정들은 나도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최상급 정령사와 마법사부터 잡겠다는 건가.’
웬만하면 제압하는 것으로 끝내고 싶었지만, 요정들이 저리 나오니 어쩔 수 없었다.
후폭풍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금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나는 눈을 빛냈다.
“이그니스!”
이그니스가 불의 장막을 펼치면서 동시에 엘라임이 물의 폭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클라임이 땅을 뒤흔들었다.
* * *
“개입해야 됩니다.”
필의 목소리에 렌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저들은 모두 위대한 하이 엘프, 왕족의 후손들입니다. 다른 요정들과 다릅니다.”
요정 세계는 철저한 계급 사회다.
세계수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 하이엘프, 요정 중에서도 선택받은 이들이다.
세계수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 요정들 중 가장 뛰어난 네 명의 요정이 숲을 관리한다.
필과 렌은 그 네 명 중 두 명이었고 벌써 오백 년이 넘게 숲을 관리하고 있었다.
특히 렌은 네 명의 하이 엘프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존재다.
나머지 세 명의 요정들이 렌을 보좌한다.
렌과 필을 비롯한 네 명의 관리자들을 왕족 후손이라 불리는 하이 엘프들이 모신다.
수만의 요정 중, 하이 엘프라 불리는 요정은 고작 천 명.
나머지 수만의 요정들은 모두 평범한 요정들이다.
“인간들 중 우두머리가 자제하고 있는 것 같지만 곧 살수를 쓸 겁니다.”
필의 말에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군. 전에 들어온 인간들이랑은 확실히 달라.”
렌이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요정들을 물려. 내가 직접 저 우두머리를 만나야겠다.”
“하지만 관리자시여.”
필이 말렸지만 렌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로 압박했는데 저들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그리고 맹약의 주인이라면 숲에 들어올 자격은 충분하지.”
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만.”
작은 말이었지만 관리자의 목소리는 숲 어느 곳에라도 전달이 된다.
조금 전까지 인간들과 싸우던 요정들이 썰물처럼 물러갔다.
아직 멀쩡한 요정들이 부상을 당한 요정들을 챙겼다.
렌은 필을 향해 말했다.
“가지.”
* * *
요정들이 갑자기 물러나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치열하게 싸우던 상대가 갑작스레 사라지자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당황했다.
그리고 곧 전방에서 두 명의 요정이 천천히 다가왔다.
다른 요정들보다 키가 월등히 컸다.
‘2미터도 넘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요정들의 신체 비율은 완벽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아름답고 조각 같은 얼굴은 요정들의 공통점이었지만, 다가오는 둘은 정말 세상의 미를 다 갖춘 것 같았다.
‘성별은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실피드를 불렀다.
“태초의 힘을 간직한 이여, 중간계에서 뵙게 되니 실로 영광입니다.”
입을 연 요정은 붉은 머리카락의 요정이었다.
아마도 두 요정 중 좀 더 지위가 높은 요정 같았다.
딱 보아도 파란 머리카락의 요정이 붉은 머리카락의 요정을 보좌하는 것 같았으니까.
실피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붉은 머리카락의 요정은 실피드의 태도에 실망하지 않고, 내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이 인간들의 우두머리입니까?”
“아룬 칼 레오드.”
내가 이름을 말하자 붉은 머리카락의 요정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세계수의 아이, 렌입니다.”
렌이 말을 이었다.
“요정의 숲은 인간들에게 허락된 땅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대화로 했다면 편했을 것 같은데.”
나는 굳이 말을 높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죽기 살기로 싸웠던 요정에게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었다.
렌은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며칠 전 악에 물든 인간이 서쪽 숲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간계에 닥친 문제를 그 인간들을 통해 알게 되었죠.”
순간 미쳐버린 병사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릴리안이 나섰다.
“그래서 죄 없는 인간에게 그토록 사악한 세뇌 마법을 걸었나?”
“세뇌 마법을 건 것은 요정이 아닙니다. 요정에게 그런 마법은 전해져 내려오지 않아요. 오직 신성한 마법만이 전해져 내려올 뿐.”
릴리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이 계약한 정령들의 기운은 요정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태초의 힘이 강렬하게 담겨 있습니다. 당신이 단순한 정령사가 아니라는 뜻이죠.”
이그니스가 끼어들었다.
“주인, 저것들은…….”
필이 이그니스의 말을 잘라냈다.
“불의 본질을 이토록 크게 담고 있는 이그니스를 보는 건 처음입니다.”
이그니스의 입이 순식간에 헤벌쭉해졌다.
“역시 요정 놈들이 정령을 좀 알긴 알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렌이 상황을 정리했다.
“맹약의 주인은 계약한 정령들에게 태초의 힘을 각성시키죠.”
필의 얼굴이 굳어졌다.
“관리자시여, 저 정령사가…….”
렌은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상황은 뜻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나는 요정들을 죽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래도 이들이 갑작스레 우리를 공격하고 죽이려 했던 건 변하지 않는다.’
사르한 백작의 행방도 행방이고, 무엇보다 세계수 근처에 있는 마법서 ‘마그마의 분노’를 확보하기 위해서 요정들의 협력은 필수다.
우리가 요정들을 모조리 제치고 들어갈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상황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화로 풀 수 있는데 굳이 공격한 까닭은 무엇이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숲에 들어오셨으니 당연한 대응입니다.”
“그건 그대들이 만든 규칙이고.”
렌이 말했다.
“숲은 세계수의 집이며 요정은 집을 관리합니다. 인간에게 권한 같은 건 없습니다. 세계수를 관리하고 지키는 건 대대로 요정의 몫.”
렌이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그대가 맹약의 주인이기에 예외적으로 기회를 준 것뿐. 중간계를 위협에 빠뜨린 인간들을 생각하면 과분한 대우입니다.”
일단 요정들의 입장을 확실히 알았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중간계를 위협에 빠뜨렸다는 건 잘 모르겠고 일단 그대들의 숲에 마음대로 들어왔으니 그건 사과하지.”
나는 이어서 숲에 들어온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보다 먼저 들어온 인간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악에 물들었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다.
내가 그 부분을 물었다.
“악에 물들다니 무슨 뜻이지?”
렌이 짧게 답했다.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듯싶군요. 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당신들을 초대할지 아니면 돌려보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