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95)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195화(195/278)
195화.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라고 해놓고 지금 벌써 며칠째입니까.”
기사 중 한 명의 말에 게일은 엄하게 대답했다.
“기다려라. 전하께서도 아무런 불만도 표하지 않고 기다리신다.”
기사가 입을 꾹 다물었다.
* * *
오늘로 사흘이 지났다.
렌은 친절한 말투로 나와 일행들을 대했지만 행동까지 친절한 건 아니었다.
나무 한 그루, 나뭇잎 하나, 바위하나도 건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노숙이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게일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지. 요정들과 전면전을 벌여서 좋을 건 없으니까.”
나의 말에 올리비아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래도 한 번쯤 연통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
“흠, 이미 점심이 지났으니 내일까지는 기다려야지.”
여유를 가지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으니까.
‘마그마의 분노 마법서, 사르한 백작의 행방, 중간계의 위기…… 요정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가치는 막중해.’
그 정보들을 위해서라면 한 달도 기다릴 수 있었다.
슥-!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더니, 요정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렌과 함께 만났던 요정이다.
이름이 필이라고 했던가?
필은 내 모습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관리자 요정 필입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을 소개하는 필의 말에 나도 다시 한 번 이름을 말했다.
“아룬 칼 레오드, 아룬이라 부르십시오.”
“아룬 님, 관리자 회의가 끝났습니다.”
필의 말에 나는 반색했다.
“다행이군요.”
나는 한 마디를 더했다.
“꽤 오래 걸리셨는데 결과가 좋았기를 바랍니다.”
“찰나였지요.”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이들에게 시간의 의미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다.
‘하긴, 뭐 사흘은 이들에게 짧을 수도 있지.’
나는 필에게 다시 물었다.
“우리를 마을로 초대하는 회의라고 들었는데 결과가 나왔습니까?”
“네 분으로 한정하기로 결정났습니다. 나머지분들은 다시 인간 마을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별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시죠.”
나는 게일에게 말했다.
“올리비아, 릴리안까지 가지. 나머지는 마이크 후작 성에서 대기시켜.”
“네, 전하.”
게일이 즉시 기사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필은 우리들이 해산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곧 기사들이 짐을 챙겨 떠나고 나와 게일, 올리비아 그리고 릴리안은 필의 뒤를 따랐다.
“요정 역사상 최초일 겁니다.”
필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이 요정 마을에 초대된 적이 없습니까?”
요정의 역사, 인간의 역사를 단순 비교할 순 없겠지만 요정의 역사는 살아 있다.
인간의 언어, 문자가 생기기 이전부터 요정들은 기록을 시작했고 심지어 역사를 기록한 요정들이 아직도 살아 있으니까.
“세계수의 품은 오직 요정들에게만 허락된 곳이니까요.”
올리비아가 물었다.
“그럼에도 우리를 데리고 가는 이유가 뭔가요?”
필은 급할 필요가 없다는 듯 말했다.
“많은 것들을 듣게 되실 겁니다. 하나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그대가 맹약의 주인이라는 점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이들도 필의 말에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필이 어느 순간 속도를 높였다.
“모두 충분히 따라오시리라 생각하고 빠르게 움직이겠습니다.”
필의 모습이 순간 점이 되어 사라졌다.
“이런!”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실울펜을 불렀다.
실울펜의 등에 올라타면서 필의 뒤를 따랐다.
릴리안은 로브를 펄럭이며 날았고 게일과 올리비아 역시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렸다.
노을이 질 때쯤 세계수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어디를 보아도 똑같은 풍경인 것 같았는데 필은 길을 참 잘도 찾아갔다.
나무들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질 때 쯤 필은 속도를 서서히 줄였다.
주위의 풍경이 이제는 달라질 때 곳곳에서 요정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나를 주목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이쪽입니다.”
필이 안내한 곳은 정말 큰 나무였다.
나무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필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도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안에 있는 요정 중 렌이 가장 눈에 띄었다.
렌은 웃으며 우리를 맞았다.
“오시는 길은 편안했습니까?”
필이 우리에게 자리를 정해주었고 나와 게일, 올리비아와 릴리안은 각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나는 앉으며 대답했다.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맹약의 주인님의 일은 우리 요정들에게도 큰 화두였습니다. 사흘 동안 회의를 진행한 결과, 맹약의 주인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렌의 설명은 필에게도 들었기 때문에 새로울 건 없었다.
“할 이야기가 많죠. 사르한 백작 이야기부터 할까요?”
나의 말에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들어온 인간 일행들 말씀이군요. 네. 그 이야기부터 하지 않으면 오늘 여러분을 초청한 의미가 없죠.”
렌은 결과부터 말했다.
“맹약의 주인이 말씀하신 그 인간들은 저희가 처리한 게 맞습니다.”
릴리안의 반응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인간을 죽인 게 자랑이라고 떠드는군. 온갖 평화로운 척하더니 살인을 저질러놓고.”
렌은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주변 요정들의 표정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그러고 보니 요정들이 꽤 많군.’
렌과 필만이 아니라 족히 열 명이 넘는 요정들이 보였다.
나는 다른 요정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릴리안도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들이 사르한 백작을 죽인 건 사실이니까.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처리라는 표현이 거슬리지만, 일단 왜 그랬는지 이유는 들어봐야겠습니다.”
* * *
“요정들은?”
“아마 지금쯤 황태자와 접촉하고 있을 겁니다.”
대사제의 말에 대답하는 다레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번졌다.
“관리자라는 칭호를 받은 요정들의 오만함은 상상을 넘어섭니다. 그 오만함 덕분에 침투하기가 쉬웠습니다.”
대사제가 싱긋 웃었다.
“다섯 번째 사제님이 오랫동안 공들인 결과물이죠. 다레트 사제님은 유독 뛰어나십니다.”
“요정 사회는 지나치게 맑기에 오염시키기가 더욱 쉬웠습니다. 맑은 물을 오염시키는 건 검은 잉크 한 방울이면 충분하니까요.”
대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두 번째 사제 후보님도 매우 맑은 사람 같더군요.”
“정화의 불꽃으로 물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다레트 후작의 미소가 진해졌다.
* * *
나는 렌의 말에 주목했다.
“인간들은 이미 악에 물든 상태였습니다.”
곧바로 게일이 반박했다.
“우리는 그런 징조를 아예 느끼지 못했소.”
게일은 마냥 요정들의 말을 믿을 수 없는 모양이다.
나도 게일과 다르지 않았다.
사르한 백작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가 이미 악에 물든 상태였다면 다른 영주들이 눈치 채지 못했을까?
렌의 입이 열렸다.
“직접 보시면 되겠군요.”
나는 의문을 느끼며 물었다.
“직접 보라고요?”
“일어나시죠.”
렌이 몸을 일으키자 다른 요정들도 속속 함께 일어났다.
나와 일행들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요정들을 따라 나갔다.
‘뭐지?’
렌이 앞서가며 말했다.
“악에 물든 자들은 대부분 죽였지만 일부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세계수의 힘이 과연 그들을 정화시킬 수 있는지 고민했거든요.”
“일종의 실험을 위해 남겨 두었다는 겁니까?”
내 목소리가 절로 날카로워졌다.
차라리 죽이지. 인간의 생명을 대체 어떻게 생각하기에 실험을 위해서 악에 물든 자들을 남겨 두었다는 말인가.
“필요한 일이죠. 만약 세계수의 힘으로 그들을 정화시킬 수 있다면 중간계에 피바람이 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렌의 말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피바람이 부는 것?”
“요정은 균형의 수호자입니다. 악은 그 무엇보다 빠르게 퍼지는 특성이 있죠. 만약 인간들 사이에 막을 수 없는 악이 퍼지기 시작한다면 요정은 중간계를 수호하기 위하여 인간들과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습니다.”
렌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세계수의 힘으로 악을 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래도 무조건적인 살육은 막을 수 있겠죠.”
나는 렌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렌이 다시 걸음을 옮겼고, 나는 묵묵히 뒤를 따랐다.
곧 도착했다.
나무가 얽혀 있는 곳, 마치 감옥 같은 곳에 세 명의 병사가 보였다.
“저건.”
릴리안이 가까이 다가갔다.
렌은 말리지 않았다.
“미친, 이건 흑마법이야.”
렌이 릴리안의 말에 대답했다.
“맞습니다. 흑마법이죠. 단순한 흑마법이 아닌…….”
“고대의 흑마법.”
올리비아가 물었다.
“고대의 흑마법? 뭔가 우리가 알고 있는 흑마법과 다른 건가요?”
릴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의 종주는 용이었어. 인간에게는 전설로 내려올 뿐이지만.”
릴리안이 슬쩍 렌을 바라보았다.
인간에게는 전설로 남은 역사이지만 요정은 진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마법의 종주는 용이고 그 용을 통해 요정들도 마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요정을 통해 드워프, 인간에게 흘러나갔죠.”
“뭐 정설로 여겨지는 역사인데 요정에게 들으니 확실해지네. 어쨌든 마법의 종주는 용이야. 최초의 마법은 흑마법, 마법 구분이 없었어.”
릴리안은 악에 물든 인간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크르르.”
마치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병사들을 보면서 릴리안의 목소리가 절로 심각해졌다.
“흑마법이 갈라져 나온 건 용에게서 마법이 요정, 드워프, 인간에게로 전해진 뒤야. 인간은 요정, 드워프와 다르게 마법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연구했지.”
릴리안의 설명은 친절했다.
“인간의 사악한 마음이 마계의 악마들을 자극했어. 고대의 흑마법은 악마를 불러들이는 게 목적이지.”
렌이 릴리안의 설명을 맺었다.
“그렇습니다. 인간들은 마법을 통해 악마를 불러들이고 중간계에 강림한 악마를 통하여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했죠. 멍청한 짓이지만.”
렌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어떠십니까? 악에 물든 인간을 본 소감은? 이들은 악마 강림을 위한 재료일 뿐……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나는 인정했다.
“그렇죠. 죽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어 보이는군요.”
“우리가 인간 일행을 죽여야 했던 이유, 그리고 요정의 숲에서 벗어나 인간 세상에 개입하려는 이유가 바로 이들 때문입니다.”
렌은 요정들과 자리를 비워주었다.
우리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느낀 것 같았다.
요정들이 먼저 자리를 비우자 나는 릴리안에게 물었다.
“고대의 흑마법이 확실해?”
“확실해. 저들의 몸에 새겨진 언어는 고대 언어인데 모두 악마 소환에 관한 언어야.”
내 표정이 절로 심각해졌다.
“악마라.”
“내가 전하의 서부 원정에 관해서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보지 못해 모르지만 그때와는 차원이 다를 거야.”
고르간의 이야기다.
“그건 악마였어. 분명.”
“하급 악마? 혹은 악마의 하수인?”
“확실한 건 우리를 모두 압도할 악마는 아니었다는 뜻이지.”
릴리안이 대답했다.
“이 언어…… 좀 더 연구해 보아야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다면 이건 단순한 악마 소환이 아니야. 마왕 강림에 관련된 마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