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23)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223화(223/278)
223화.
“나보고 도망치라고?”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켄!”
나는 굳은 표정과 함께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직할령의 수장이자 황태자인 내가 전장에서 도망치면 누가 나와 제국에게 충성하지?”
“백성들과 기사들의 충성은 다시 얻으면 되죠. 반면 목숨은 하나, 죽은 끝이죠.”
“켄.”
거듭 켄을 만류했지만, 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하의 목숨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국이 직할령이 왕국연합에 내어준다 한들 약간의 타격만 입을 뿐이지, 흔들리지 않습니다. 전하께서 죽으면 황태자 직위도 뭣도 소용없는 겁니다. 반드시 사셔야 됩니다.”
켄이 덧붙였다.
“물론 저는 이 전쟁을 최선을 다해 승리하도록 전하께 조언을 아끼지 않을 작정입니다만, 지금 상황이 지극히 어려워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나는 후, 하고 한숨을 머금었다.
켄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렇게 도망쳐 보았자 내가 황태자로서 재기할 수 있을까?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도 동의한다.
‘제임스 공작님이 복귀할 때까지 그레니안을 수복 당하지 않으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 지금은 오로지 적을 막는 것만 생각하자고.”
성벽 위에서 켄과 대화를 마무리할 때쯤 적군이 보이기 시작했다.
까맣게 몰려드는 개미 떼처럼 왕국연합의 병사들이 작은 요새 앞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당장 공격할 생각은 없는 듯 군막을 세우기 시작했다.
“많긴 많군.”
나의 말에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지나칩니다. 저토록 가까이 군막을 세우다니요.”
“그렇다고 요새 문을 열고 나가 적들을 맞이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전력의 차이이지.”
켄이 잠시 고민했다.
“일단 안으로 드시죠. 국경에서 오래 싸우셨으니 피곤을 좀 푸셔야 될 겁니다. 지금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전력은 전하니까요.”
켄이 쓰게 웃었다.
“기사를 모두 모아도 고작 백 명도 되지 않고…… 전하 한 분께서 감당해야 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원래 능력이 지나치면 그만큼 일도 고된 법이야. 누구도 최상급 정령사에게 일반 기사와 같은 전공을 바라지 않아. 압도적인 전공을 바라지.”
나는 켄과 함께 성벽을 내려갔다.
병사들에게 경계를 철저히 하라고 명령했다.
딱히 명령하지 않아도 적들이 눈앞에 보이니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다.
‘내일이 걱정이군.’
아마 내일이면 왕국연합 병사들이 밀려 내려 올 것이다.
과연 막아낼 수 있을까?
제임스 공작 일행은 무사히 적의 후방에서 적진을 뚫고 요새로 복귀할 수 있을까?
“황도로 전령이 갔으니 구원군이 오겠지?”
걸음을 옮기며 묻자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의 상황이라면 반드시 구원군이 올 겁니다. 정예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은 마법진을 이용하여 올 수 있고, 보병과 기병은 보름이면 그레니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켄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다만, 병사들은 마법진을 이용할 수 없으니 보름 이상이 걸릴 수도 있지요. 그리고 정예 기사단이나 마법사들 역시 다른 전선도 있으니 크게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마법진은 한 번에 열 명까지 밖에 이용하지 못하니까. 또 병사들이 마법진을 이용하기에는 이용 횟수도 한정적이고.”
마법진을 무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릴리안이니까 그나마 그 정도 마법진을 만들어 놓은 것이지 보통 마법진은 열 명의 사람이 왕복으로 서른 번 정도 왔다 갔다 하면 마나의 흐름이 꼬여버린다.
그때가 되면 마법진을 폐기하고 다시 그려야 한다.
몇만이나 되는 병사들이 마법진을 이용할 수 없는 까닭이다.
“네. 이러나저러나 버티는 길뿐입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헤밀튼이 없어 정보가 한정적입니다. 일단 적 지휘관들부터 파악하면 좀 더 쉬울 건데.”
켄의 말에 나는 즉시 대답했다.
“조직원들은 모두 그대로 활동하고 있어. 부단장에게 보고를 받은 뒤 작전을 세워봐.”
켄의 표정이 환해졌다.
“다행이군요.”
“헤밀튼은 길 안내를 맡았을 뿐이고, 그의 조직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곧바로 만나봐야겠습니다.”
켄이 걸음을 서둘렀다.
나도 집무실로 방향을 돌렸다.
천천히 명상을 하면서 내일 있을 전투를 대비할 생각이다.
곧 집무실에 도착하고 혼자가 되자 절로 카렌이 떠올랐다.
‘병사들을 지휘하는 건 매우 미숙했지만…… 카렌 개인의 강함은 증명되었다.’
그 많은 병사들 속에서도 끝내 카렌은 살아서 돌아갔다.
나와 기사들이 그를 사로잡기 위하여 노력했음에도, 모든 공격을 막아낸 뒤 물러났다.
상황이 바뀌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카렌은 그 전투를 통해 또다시 성장했을 게 분명하다.
‘그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해.’
나는 다음에 카렌을 만나면 반드시 정보부터 확인하리라 결심했다.
그의 레벨은 지금 몇이나 될까?
나의 레벨로 그의 상태창을 확인할 수 있을까?
십만이 넘는 병사의 숫자도 무서웠지만, 카렌의 강함 역시 두려웠다.
그를 막아내지 못하면 직할령은 끝내 왕국연합 손에 넘어가니까.
‘미래가 완전히 뒤틀려서 이제 내가 설정한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카렌이 왕국연합과 손을 잡는 것 따위는 내 소설에 없었다.
그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여 아버지에게 대항하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는 왕국연합의 기사다.
그가 왕국연합으로 가는 과정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내일 또다시 그와 싸워야 되는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나는 집무실에서 가부좌를 틀고 바람의 호흡법에 빠져들었다.
최상급 정령사 마스터가 되었다고 나는 안주하지 않았다.
정령사의 길이 여기가 끝일까?
아니다.
검의 길이 소드 마스터가 끝이 아니듯, 정령사의 길도 최상급 정령사 마스터가 끝이 아니다.
‘내가 강해지면서 상급 정령들이 최상급 정령이 되었다. 내가 더 강해지면 정령왕까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곧바로 운다인을 불렀다.
어렴풋이 추측하는 것과 운다인을 통해 사실을 듣는 건 다르니까.
모습을 드러낸 운다인에게 나는 가타부타 설명 없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내 정령술이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운다인은 정령왕이 될 수 있어?”
* * *
아룬이 카렌과의 전투를 대비하고 있는 시각, 제임스 공작은 벌써 백 명이 넘는 병사들을 베고 있었다.
파파팟-!
제임스 공작이 릴리안을 직접 등에 업고 있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제임스 공작은 릴리안을 죽이려고 했던 것을 사죄하려는 듯 자신의 몸보다 릴리안을 지키는 데 더욱 집중했다.
“막아라!”
기사의 명령에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제임스 공작 오른쪽에서 헤밀튼이 달렸고, 왼쪽에서 올리비아가 달렸다.
그리고 후방은 게일이 맡았다.
올리비아와 게일이 동시에 오러 블레이드를 뿌렸다.
서걱-!
명령을 내린 기사의 목이 바닥에 뒹굴었다.
“으으으…….”
병사들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규격 외의 존재를 만났을 때의 두려움은 오직 신음만으로 표현될 뿐이다.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감히 제임스 공작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국경을 향해 가고 있음에도 제임스 공작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곧 연락을 받은 제인이나 젊은 소드 마스터가 당도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빠져나가지 못한다.’
제임스 공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파파팟-!
최대한 빠르게 속도를 내었지만, 기사들의 닦달을 이기지 못한 병사들이 자꾸만 길을 막았다.
일부 기사들은 용감하게 나서면서 제임스 공작의 발목을 잡았다.
“공작님.”
게일의 목소리에 제임스 공작이 대답했다.
“서두르게.”
“제가 남겠습니다.”
“게일!”
“이대로는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적 소드 마스터들이 도착하면 모두 끝장입니다.”
제임스 공작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게일의 의견을 허락하지 않았다.
“반드시 국경을 돌파하고 전하께 무사히 돌아갈 것이네. 내가 릴리안을 죽이려 지체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 자네마저 남기고 가면 전하를 무슨 낯으로 뵈겠는가.”
“하지만 살아 돌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남아서 시간을 끌겠습니다.”
게일이 남으면 당연히 왕국연합 병사들은 갈라질 수밖에 없다.
일부는 제임스 공작을 막고, 일부는 게일을 막기 위하여 나뉜다.
게일은 그 점을 노리고 남겠다고 다시 한 번 강권했다.
“제가 남겠습니다.”
더 이상 제임스 공작의 허락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게일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제임스 공작이 걸음을 멈췄다.
게일은 적 진영으로 파고들려다가 제임스 공작이 멈추자 덩달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함께 가지 않으면 모두 여기서 함께 죽는다.”
게일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시간이 또 지체되었어. 내 의지는 확실히 전달했으니 다시 가지.”
제임스 공작은 게일의 대답을 듣지 않고 달렸다.
다시 수백 명의 병사와 열 명이 넘는 기사를 베었을 때쯤 서서히 국경이 보였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 하더라도 지친다.
국경 성벽 근처에서 제임스 공작과 올리비아, 게일 그리고 전투보다는 오직 세 사람을 따라가는 데만 집중했던 헤밀튼마저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곧 국경입니다.”
“성벽이…….”
제임스 공작은 말을 잇지 못했다.
국경에는 성벽이 두 군데 있다.
왕국연합이 세운 성벽과 옛 피레온 왕국이 세운 성벽.
두 성벽 모두 허술하기 짝이 없었는데, 피레온 왕국은 왕국연합의 속국이나 다름없었고 전력 차이가 명백했기 때문이다.
왕국연합이 세운 성벽을 돌파했기에 옛 피레온 왕국이 세운 성벽까지만 가면 아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보이는 건 온통 왕국연합 병사들 뿐이다.
그 뜻은 이미 직할령 국경이 왕국연합에 의하여 돌파당했다는 뜻.
그리고 자신들의 처지가 더욱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이다.
제임스 공작의 표정이 어두웠다.
올리비아 역시 힘겹게 검을 휘두르면서도 어두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가.”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제임스 공작이 흠칫 놀랐다.
“파이어…… 볼.”
제임스 공작 등에서 수십 개의 불구덩이가 사방을 향해 날아갔다.
“리, 릴리안 마법사님!”
올리비아가 놀란 듯 외쳤다.
“빠, 빨리 가. 적 소드 마스터 오면 다…… 죽으니……까.”
릴리안은 힘겹게 말을 하면서도 마법을 쉬지 않았다.
제임스 공작이 다시 한 번 힘을 냈다.
콰아아앙-! 쾅-!
일행 중 마법사가 한 명 추가되었을 뿐인데 돌파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세 명의 소드 마스터가 뿜어내는 오러 블레이드와 릴리안의 마법이 왕국연합 병사들을 쉼 없이 쓰러뜨렸다.
릴리안이 다시 한 번 중얼대자 사방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일행에게 접근하던 기사들의 비틀거렸고, 제임스 공작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서걱-!
서걱-!
피바다를 만들어내며 달리자 점점 더 성벽이 가까워졌다.
“단숨에 넘는다. 곧장 요새로 향한 뒤 요새마저 점령당했다면 그때는 우회하여 그레니안으로 들어간다.”
제임스 공작이 가장 먼저 힘껏 뛰어올랐다.
릴리안의 마법이 다시 한 번 펼쳤다.
수십 발의 얼음 화살이 쏟아졌다.
콰아아아앙-!
쾅-!
릴리안이 제임스 공작 등 뒤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
“이제 한계야.”
제임스 공작이 짧게 답했다.
“한숨 더 자시오. 일어나면 우리 진영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