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45)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245화(245/278)
244화.
졸지에 올리비아와 떨어져 있게 되었지만, 나는 어디 불평할 수도 없었다.
대전 회의를 마치고 나는 오랜만에 나의 궁으로 향했다.
제국이 사방에서 공격받고, 언데드들이 대륙 곳곳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와중에도 황태자궁 정원은 평화로웠다.
하인들과 하녀들이 나를 보고 인사했다.
내가 없어도 궁을 관리하는 그들을 격려한 뒤 침실로 향했다.
나는 좀 쉬고 싶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하루도 쉰 적이 없었다. 육체적 피로는 명상과 바람의 호흡법으로 풀 수 있지만, 정신적 피로는 달랐다.
하루, 하루 쌓인 정신적 피로는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육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이제 최상급 너머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수련보다 휴식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 * *
족히 하루 이상은 잔 것 같은 느낌인데, 막상 눈을 뜨자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초저녁에 잠이 들었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따뜻한 물로 씻은 뒤 침실을 나섰다.
하인이 따라붙었다.
“따라오지 않아도 되네.”
“네. 전하.”
나는 홀로 황태자궁을 나섰다.
목적지는 황후궁이다.
황태자궁과 황후궁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금세 도착한 황후궁 정원은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랑 왔을 때는 관리가 되지 않았는데, 올리비아가 궁에 들어 온 이후 황후궁도 관리가 시작되었다.
올리비아가 직접 하인들에게 따로 일을 시켰으니까.
황궁 역시 완연한 겨울 날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피어 있는 꽃들이 보였다.
달빛을 받는 꽃들을 보면서 나는 천천히 정원을 거닐었다.
‘어머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어머니였지만, 나는 그리움이 물씬 차올라 절로 걸음이 느려졌다.
내 기억 속에는 이곳에서 어머니, 정령들과 함께 뛰놀았던 것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까.
한참을 정원에서 머물다가 나는 황후궁 안으로 들어갔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실피드와 운다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야? 요새 부르지도 않는데 자주 소환되는 것 같아.”
내 말에 운다인이 작은 요정으로 변한 뒤 대답했다.
“간혹 맹약의 주인께서 강렬한 정령 기운을 내뿜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저희 의지와도 상관없이 주인의 곁으로 소환된답니다.”
“그런 일이 가능해?”
“다른 정령사와 다르게 주인께서는 맹약의 주인이시니까요.”
“지금도 그런 경우야?”
“지금은 이 장소 때문인 거 같습니다.”
운다인이 주변을 날아다니며 말을 이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정령의 기운이 머물고 있는 곳입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어머니의 궁이? 저번에 왔을 때는 아무런 말도 없었잖아.”
아버지랑 방문했을 때는 정령들이 소환되지 않았다.
“그때는 주인의 힘이 미약했을 때니까요.”
나는 피식 웃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궁에서 식사할 때도 충분히 강했는데, 지금에 비하면 약한 건 사실이니까.
나는 대략적으로 납득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근데 이곳에 정령의 기운이 머물고 있다고? 나는 느낄 수 없는데.”
운다인이 차분하게 말했다.
“집중하시면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정령들만 느낄 수 있는 기운인데 맹약의 주인께서는 특별하시니까요.”
나는 운다인의 말을 믿기 어려웠지만, 일단 해보기로 결정했다.
최상급 정령이 정령의 기운이 많다고 말하는 곳이다.
어머니의 궁은 뭔가 특별한 모양이었다.
나는 천천히 궁 전체를 살펴보았다.
방 하나, 하나에도 모두 들어가 보면서 구석구석 궁 전체를 파악했다.
모든 곳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침실로 보이는 곳에 도달했을 때 나는 운다인이 말한 ‘정령의 기운’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꼈다.
“여기가…… 정령의 기운이 제일 강한 곳이야?”
운다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순간 실피드의 몸에서 강한 바람이 일어났다.
“이곳은…….”
실피드의 굵은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렸다.
바람은 방 전체를 휘감았다.
이내 침실 벽 한 곳으로 바람이 강하게 몰아쳤다.
고오오오오-!
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뭐지?”
그저 오랜만에 황궁에 와서 어머니 궁에 한 번 들른 것뿐인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운다인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실피드에 힘을 집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곳은 바람의 본질이 머무는 곳입니다.”
운다인에게 질문을 하기도 전에 정령계로 돌아갔다.
실피드가 입을 열었다.
“제가 일으키는 바람이 아닙니다. 이곳에 담긴 힘과 제힘이 공명되고 있습니다.”
몸속의 마나가 미친 듯이 실피드에게 흘러들어 갔다.
바닥까지 드러내는 마나 홀에 나는 마나의 흐름을 멈추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실피드에게 마나가 흘러 들어갔을 때 방 안에는 청량한 기운이 가득했다.
고오오오오-!
방이 흔들리면서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갈라진 벽 사이로 바람이 흘러나오고 순백의 빛이 내 시야를 차단했다.
-이리엘 가문의 초대 가주님은 정령의 기운을 받고 태어나셨단다.
이 목소리는?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억 속에 선명한 목소리다.
나도, 아버지도 한 번만 들어보고 싶었던 목소리다.
-저주에 걸렸을 때 직감했단다. 나의 정령은 중간계에 자라나고 있는 거대한 ‘악’에 대해서 말해주었어.
어머니의 목소리다.
바람에 실려 내 귓가에 내려앉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더 진해졌다.
-론에게 말하기도 전에 그들의 힘이 내게 닿았어. 그나마 다행인 건 네게 정령술서 한 권이라도 남겨 놓았다는 것.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론이 아무리 강해도 그는 혼자니까.
바람이 이제 곧 하나의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어머니가 서 있었다.
* * *
켄은 릴리안, 올리비아, 게일과 함께 그레니안 방어에 힘쓰고 있었다.
“오늘은 마법진을 그리시죠.”
“그럼 밤에 내가 힘을 쓸 수 없어. 황태자 전하도 없는데 괜찮겠어?”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제단 파괴가 가장 중요합니다. 다소 희생이 있더라도 제단을 공격할 유일한 방법을 포기할 수는 없죠.”
켄의 말에 올리비아와 게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게일이 입을 열었다.
“군사, 그건 희생이 너무 큰 작전이오. 차라리 전하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단 파괴 작전을 진행하는 건 어떻습니까?”
켄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제단을 파괴하지 못하면 그레니안이 아니라 직할령 전체가 언데드에게 점령당할 겁니다.”
켄의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릴리안 마법사님이 없더라도 방어는 가능합니다. 릴리안 님은 격일로 마법진을 그려 주십시오.”
“그럼 마법진을 모두 그릴 때까지 한 달 정도 걸리겠네.”
“네. 마법진이 모두 그려지면 제단 파괴 작전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켄은 세 사람을 둘러보며 황도 소식도 전했다.
“폐하께서 사경을 헤매고 계십니다. 제국은 지금 세 전선을 감당하는 것보다 더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올리비아가 물었다.
“남부 전선은 어떻게 되었어요?”
“적들이 진군을 멈추었답니다. 자세한 건 소식이 들어봐야죠.”
켄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과 황실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폐하의 무력입니다. 무적이었던 폐하께서 쓰러진 건 제국 전체가 흔들릴 일입니다.”
게일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전쟁 중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습니까. 다른 국가와 전쟁하는 것도 아니고 언데드와의 전쟁 중인데.”
“있을 겁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니까요.”
“군사.”
게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황도에는 전하와 제임스 공작님이 계시니까요. 황실 기사단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황도의 권력이 결정되겠죠.”
“황실 기사단은 모두 전하께 힘을 실어 줄 겁니다.”
“확신할 수 없는 일이죠. 그들은 오직 폐하의 검이니.”
켄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지만 이번에는 게일이 장담했다.
“황실 기사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걱정은 오히려 그림자 부대이지.”
“전하를 믿으면 됩니다. 전하의 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니까요.”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릴리안 마법사님은 마법진을 마저 그려주시고. 두 분은 오늘 밤 작전에 대해서 간략하게만 설명을 들으신 뒤 충분한 휴식을 취하십시오.”
릴리안은 회의실을 나갔고, 켄은 게일과 올리비아를 향해 말했다.
“지금까지 언데드들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저들의 지능은 매우 높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두 사람도 켄의 말에 동의했다.
“특히 리치들과 듀라한, 데스 나이트들이 합류하면서 언데드 부대를 통솔하는 모습까지 보았죠.”
켄은 진하게 웃었다.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닌데 웃는 모습에 두 사람은 의아했다.
게일이 물었다.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네. 하지만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한계?”
“네.”
켄이 특유의 미소를 머금었다.
생각하고 결론을 내릴 때마다 짓는 특유의 비웃음과 같은 미소다.
“분명 작전도 있고 부대 통솔도 하고 있지만 그 수준은 낮습니다.”
게일이 신음을 삼켰다.
켄의 말이 이어졌다.
“올리비아 님은 기병들을 데리고 이곳에 매복을 하십시오.”
켄이 테이블 위에 있는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국경 근처의 넓은 숲이다.
“이곳에요?”
“네. 언데드들이 모두 땅속에 숨어 있는 건 아닙니다. 리치가 관리하는 아공간에 숨어 있거나 혹은 해가 들지 않은 곳에 숨어 있습니다.”
언데드들은 보통 동굴이나 빽빽한 숲에서 생겨난다.
모두 해가 거의 들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왕국 연합의 언데드들은 숫자가 워낙 많았다.
그레니안 근처 숲이나 동굴에만 몸을 숨길 순 없었다.
언데드들은 리치들의 아공간 속에도 머물고 있었다.
“리치를 찾아내서 아공간을 파괴해버리면 손쉽게 언데드들을 죽일 수 있지만 그건 힘들 것 같고요.”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숲에 매복을 하고 있다가 국경 근처에서부터 진격하는 언데드들의 뒤를 노리십시오. 너무 욕심을 내시면 위험합니다. 그레니안을 공격하는 언데드들의 진영을 무너뜨리는 데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켄이 게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게일 님은 이곳에 매복을 하고 계시다가 올리비아 님이 언데드 진영에 혼란을 주면 리치들을 노리십시오.”
게일이 의문을 던졌다.
“아군의 피해가 클 텐데.”
“황태자비 전하와 게일 님의 안위만 생각하시고 작전을 진행하십시오.”
“켄.”
게일이 놀랐다.
“작전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적당한 성과만 올리면 두 분은 두 분의 안위만 걱정하시고 돌아오시면 됩니다.”
“켄!”
게일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켄이 차갑게 말했다.
“명령입니다.”
켄의 작전은 분명 훌륭했다.
하지만 이 작전의 문제점은 올리비아, 게일 같은 소드 마스터의 생존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작전에 동원되는 수하들은 대부분 죽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언데드들 사이를 헤집는 작전이니까.
켄이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명령입니다. 불복하시면 군령대로 처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