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59)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259화(259/278)
259화.
교황 벨헬룬은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잔뜩 찌푸린 미간과 깊은 눈빛, 간간이 낮게 터트리는 신음이 그가 얼마나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드러냈다.
“폐하.”
황제 이외에 폐하라 불리는 사람.
교황, 교단의 황제.
벨헬룬은 자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고 있는 기사를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곧 제국의 황제를 만나실 시간입니다.”
“즉위식 이후 처음인가?”
벨헬룬의 머릿속에 젊은 날의 론 칼 레오드가 떠올랐다.
대륙을 정복한 젊은 황제는 교황 앞에서도 당당했다.
그는 교단의 전통적 지위를 박탈하였으며, 빛의 신을 모시는 교단 이외의 사이한 교단의 종교 전파마저 허가해 주었다.
‘그런 자가 다시 나를 찾는다라!’
벨헬룬이 쓰게 웃었다.
지금이 황제 앞에서 지난날의 굴욕을 복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마왕 벨루시의 강림!
“황제가 직접 교단에 와서 예를 갖추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황제는 교단을 무시한 자입니다.”
“무시했지. 빛의 신 이외의 다른 신을 인정하면서 대륙에 기이한 종교들이 퍼졌고 정화의 불꽃단 역시 그런 종교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렇습니다. 그런 황제가 이제 와서 폐하께 도움을 청하다니요.”
“도움을 청한다라!”
벨헬룬은 고개를 저었다. 론이 과연 지난날의 모욕을 사과하고 자신에게 고개를 숙일까?
아니다.
론은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빛의 신을 들먹이며 교황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타박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 압도적인 황제조차 마왕 벨루시와 정화의 불꽃단에 고전하고 있다.’
벨헬룬은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신을 모시면서도 그는 신에게만 기대는 삶을 살지 않았다.
누구보다 현실적인 사람이 벨헬룬이었다.
“이미 오래전 일을 들먹여서 좋을 게 무엇이 있겠나. 지금은 황제와 자존심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마왕 벨루시가 강림했고…… 이 땅은 멸망의 위기에 접해 있다. 빛의 신의 사제로서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지.”
“이미 여러 차례 성 기사를 파견했습니다.”
기사의 말에 벨헬룬이 고개를 저었다.
턱을 쓰다듬는 벨헬룬의 모습에 기사가 다시 한 번 강경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 기회에 황제에게 교단의 입지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됩니다. 잃어버린 폐하의 영향력도 찾아올 기회입니다.”
“흠.”
“폐하!”
“일단 황제를 만나지. 그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 결정하세. 견습 성 기사를 여러 번 파견하였지만 전쟁은 종료되지 않았어.”
“폐하.”
“가세. 자네도 황궁은 오랜만이지 않은가. 하하, 멀지도 않은 황궁을 십 년도 넘게 가지 않았어.”
벨헬룬이 몸을 일으켰다.
* * *
“교황은 꽤나 이성적인 사람이지.”
론의 말에 릴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황이? 신에 미쳐 있는 사람 아니야?”
릴리안의 말에 론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신앙심은 다른 사제보다 특출나지 않아.”
“대체 어떻게 교황이 된 거지?”
“강하니까. 그래서 지금 일도 열심히 간만 보다가 벨루시의 강림 이후 움직이는 거고.”
릴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당신은 황제이면서 마치 내 친구처럼 편안하게 말하네?”
“그대는 그럴 자격이 있지. 한계를 초월한 이에 대한 최대한의 공경이라 생각하도록.”
피식 웃는 릴리안의 모습에 론이 다시 책장에 등을 기댔다. 팔짱을 끼고는 지그시 릴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황, 나, 그리고 당신이면 아룬이 정화의 불꽃단을 토벌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교황이 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마왕을 견제할 당신,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거야?”
“만나면 알게 될 거야. 집무실로 가자고. 곧 올 거니까.”
론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릴리안 역시 궁금증을 느끼고 론을 따라갔다.
교황,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존재다.
더구나 릴리안은 마법사.
현상을 다루고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릴리안에게 신의 존재를 거론하며 믿음을 설파하는 사제들이란 귀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들의 신성력은 연구 대상이었지만, 마법의 일종이라 생각하는 릴리안으로서 신의 존재는 언제나 먼 곳에 있었다.
“교황은 신을 강림시키지 못하나?”
릴리안의 엉뚱한 말에 론이 크게 웃었다.
“이런, 릴리안. 마왕 벨루시가 중간계에 강림했다고 신도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생각하는 건가?”
“마왕에 대립하는 세계는 천계이니까.”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힘을 사제를 통해 설파할 뿐 결코 중간계에 개입하지 않지. 유구한 역사에서도 마왕 강림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있었지만 신과 천계에 관한 이야기는 없으니까.”
곧 론의 집무실이 있는 궁으로 들어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벨헬룬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군요.”
벨헬룬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론 역시 짧게 고개를 숙였다.
“일찍 오셨습니다.”
벨헬룬은 물론이거니와 그를 수행하는 성 기사 역시 움찔 몸을 떨었다.
“들어가시죠.”
“자네는 밖에서 기다리게.”
“네. 폐하.”
성 기사는 집무실 밖을 지켰고 세 사람은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론이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세요.”
두 사람이 앉자 론도 자리를 잡았다.
“이런저런 말은 하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황태자가 정화의 불꽃단을 토벌하는 동안 마왕 벨루시의 움직임을 막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벨헬룬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 늙은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오?”
“물론이죠.”
벨헬룬이 릴리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분은…….”
“릴리안.”
자신을 짧게 소개하는 릴리안의 모습에 벨헬룬이 흠, 하고 신음을 삼켰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마법사.
“마법의 종주, 용이 이룩해 놓았던 경지에 다다른 마법사입니다.”
벨헬룬의 눈동자가 커졌다.
* * *
아룬은 대전 회의를 주관하면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했다.
그리고 올리비아와 함께 서부로 방향을 잡았다.
제임스 공작도 함께였다.
“서부로 가시는 건 좋은 선택입니다.”
말을 모는 제임스 공작의 표정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단단해 보이는 어깨와 순백의 오러를 뿜어내는 제임스 공작의 검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오스틴 공작이 전사한 곳이기에 만만치 않지만 전하께서라면 충분히 요정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들은 이미 한 번 만나 보았습니다. 그들은 빛의 종족이라는 그들 스스로의 명예를 버리고 마왕 벨루시의 수하가 되었죠.”
“요정들은 본질을 잃었습니다. 세계수를 지키고 대륙의 허파라 불리는 서쪽 숲의 지킴이들이 숲을 나와 전쟁을 벌이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현실입니다. 그들이 변한 이유 같은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죠. 그나마 서부 영주들이 잘 버텨 주어 다행입니다.”
올리비아가 슬쩍 대화에 참여했다.
“남부는 괜찮을까요?”
본래 내 생각은 황궁으로 돌아온 이후 남부로 진격해서 카렌과 일전을 겨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러 회의를 거듭한 결과 남부가 아니라 서부로 방향을 잡았다.
“아바마마의 작전이 좋으니까. 카렌이 마지막 관문에 도달할 때쯤이면 우리 역시 서부에서 승리를 거두고 카렌을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네.”
나는 제임스 공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에 전장인데 느낌이 어떠십니까?”
제임스 공작은 주로 행정을 담당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그는 제국의 4대 수호 가문 중 한 가문의 가주라는 사실이다.
네 명의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이고.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찌 이 한 몸을 아끼겠습니까. 지난번 그레니안에서 전하와 함께할 때 큰 영광이었습니다. 다시 전하와 함께 전쟁에 나서니 늙은 몸을 제국에 바칠 수 있게 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오, 영광입니다.”
4대 가문이라 불리던 가문 중 이제 화이트 가문만이 남았다.
카렌의 검에 베레곤 공작이 주검이 되었고 그의 희망이나 다름없었던 내 동생 테드는 정화의 불꽃단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테드를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오스틴 공작의 전사 이후 첸은 조용히 숨만 쉬고 있다는 편이 옳았다.
그는 전쟁에 나가기를 극도로 꺼려 했고, 이미 차기 후계자로 자리를 굳힌 나에게 더 이상 대항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황궁의 권력 싸움은 의미가 없게 되어 버렸으니까.’
나는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제국을 지탱하던 가문들이 무너졌습니다. 남은 건 화이트 가문뿐입니다.”
“다른 가문들은 그 힘이 오직 가주에게만 집중되어 있어 가주를 잃고 뿌리째 흔들렸습니다. 전하를 지키는 화이트 가문은 다릅니다. 제가 세월을 이기지 못해 떠나거나 혹은 전장에서 죽어도 올리비아가 있지 않습니까.”
“공작이 오래오래 살아 내 곁을 지켜 주셔야죠.”
나는 빙긋 웃었다.
“네. 전하.”
“올리비아의 발전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두 분은 마치 운명처럼 제국이 위기에 빠지자 등장하셨고 무섭게 성장하셨죠.”
서부로 가는 길에서 제임스 공작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깊었을 때 우리는 진군을 멈추고 군막을 설치하여 휴식을 취했다.
내 군막 안에 켄이 방문했다.
“전하, 켄입니다.”
“들어오도록.”
나는 켄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번 전쟁도 켄이 군사를 맡았다.
적이 인간이 아니라 요정과 언데드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켄은 언데드를 상대로 그레니안을 성공적으로 방어해 냈다.
그의 머리는 나와 올리비아, 제임스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병사들의 전력을 몇 배나 올려 주니까.
“서부 영주들에게 전령을 보내십시오.”
이번 원정에 나서면서 켄은 작전을 내지 않았는데, 생각하고 있는 중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켄 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라도 났나?”
“서부 영주들을 이곳 바르겐의 숲 뒤까지 후퇴시키십시오. 영주만이 아니라 병사들 그리고 주민들까지도요.”
“바르겐의 숲?”
켄이 가리킨 지도를 보면서 나는 주위 지형지물을 살폈다.
딱히 특별한 지형은 보이지 않았다.
바르겐의 숲 규모도 작았다.
“굳이 이곳으로 모든 사람들을 후퇴시킨다고? 지금 후퇴하면 오히려 피해가 커질 건데? 서부 영주들은 결사항전하고 있어. 후퇴는 사기만 떨어뜨리지 않을까?”
“바르겐 숲에서 요정들과 언데드들을 전멸시킨 뒤 남부로 향하는 길을 우회하여 두 번째 관문에서 카렌의 후미를 칠 것입니다.”
켄이 지도에 경로를 그렸다.
“가능할까?”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적들은 아직 전하와 올리비아 전하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합니다. 정화의 불꽃단은 서로 교류하지 않는 게 분명하니까요.”
켄의 말이 이어졌다.
“황궁에서 그동안 전투 기록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전투 기록에서 서부와 남부 정화의 불꽃단 부대들의 교류를 전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저들은 따로 독립되어 있는 부대입니다.”
“그래서.”
“한 곳을 멸망시키고 다른 한 곳의 후미를 치더라도 저들은 가만히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켄의 말은 언제나 따르는 편이지만 문제는 서부 영주들이다.
“서부 영주들이 쉽게 납득할까?”
“적을 단숨에 전멸시킬 수 있는 작전입니다. 바르겐 숲은 세계수의 뿌리가 심어져 있는 곳입니다.”
“세계수의 뿌리?”
켄이 빙그레 웃었다.
“요정들이 빛의 종족의 본질을 잃지 않았다면 바르겐의 숲에서 있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이 올라가고 상처마저 치료할 힘을 얻게 되죠. 저들에게 세계수는 그런 의미이니까요. 하지만 요정들은 타락했습니다.”
“맞아.”
“타락한 요정들에게 세계수 뿌리가 심어져 있는 숲은 오히려 전투력을 떨어뜨릴 겁니다.”
“요정들이 숲을 외면하면?”
켄이 단호하게 말했다.
“요정들은 결코 바르겐 숲을 우회하여 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 그리 확신하지?”
“요정들은 자신들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요. 세뇌의 폐해 중 하나죠. 저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빛의 종족이라 여기고 이 땅을 더럽히는 인간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출전했으니 오히려 바르겐 숲에 반드시 들를 겁니다. 세계수의 뿌리를 만나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