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61)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261화(261/278)
261화.
바르겐의 숲이 하얗게 물들었다. 밤 동안 내린 눈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할퀴었고, 내린 눈은 얼음이 되어 땅보다 더 단단하게 얼어붙었다.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나를 향해 켄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을 제외하고 모두 군막에서 쉬고 있습니다.”
“마법불은 충분히 넣어 줬나?”
“네. 넉넉하게 넣어 주었으니 군막 안에서는 따뜻하게 쉴 수 있을 겁니다.”
정확한 온도는 모르겠지만 느낌으로는 최소 영하 15도는 되는 것 같았다.
추위는 병사들만이 아니라 서부에서 몰려오고 있는 피난민들에게도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피난민들은 괜찮을까?”
“아마…… 오는 도중에 많은 이들이 죽었을 겁니다.”
켄의 말에 나는 다시 흩날리기 시작하는 하얀 눈을 보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차라리 서부로 가는 게 좋지 않았을까? 바르겐의 숲에서 요정들을 몰살시키는 것도 좋지만 서부 방어 전선에 합류하여 요정들을 상대하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물론 그런 방법도 있었습니다만, 만약 그런 방법을 선택했다면 더 많은 이들이 죽었을 것이고 카렌의 진격 속도에 맞춰 우리가 후미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지 못했겠죠.”
켄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눈발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도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었으나, 말투만큼은 확신이 가득했다.
“희생에 머뭇거리면 더 큰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전선의 지휘관은 냉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 한 명 살리자고 열 명을 죽일 순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점점 심해지는 눈발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입김마저 얼어붙을 듯한 날씨가 한탄스러웠다.
“갑자기 이토록 추워질 줄이야.”
“벨루시의 강림에 영향을 받은 걸까요?”
“왕국 연합에 박혀 있는 벨루시가 이곳 날씨에까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기는 힘든데.”
“겨울이 이례적으로 빨리 찾아왔고, 이토록 심한 추위도 오랜만입니다.”
“여러모로 어렵군.”
날씨까지 괴롭힐 줄은 몰랐다.
“별동대를 더 많이 편성하시죠.”
“별동대?”
“피난민들을 인도할 별동대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켄 역시 피난민들을 최대한 살리고 싶은 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냉정한 군사이지만 속으로는 따뜻한 사람이다. 켄은 동생을 위해서 내게 충성을 맹세했고, 목숨마저 걸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켄이 타인이라 하여 박대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의 직책에 따라 냉정하게 말했을 뿐, 나름의 해결 방안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바로 편성해서 피난민들에게 보내지. 보급품도 어느 정도 딸려 보내. 마법불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좋겠어. 피난민들이 굶어 죽는 것보다 얼어 죽는 일이 더 많을 거야.”
“네. 전하.”
켄이 제안했다.
“그만 군막에 들어가서 쉬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처리해 놓겠습니다.”
“아니야. 이왕 나왔으니 경계병들의 경계 경로도 한 번 돌아볼 생각이야.”
추위는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 그게 좋겠군.”
나는 이내 불의 정령들을 모두 소환했다.
빗발치는 눈보라 속에서 불의 정령들이 존재감을 뽐냈다.
진지 전체에 포근한 기운이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만족스러웠다. 마나가 많이 소모되진 않지만, 이 정도로도 진지 안에 있는 병사들은 추위에 어느 정도 맞설 수 있으니까.
“가지.”
나는 켄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황태자비 전하께서 며칠이나 명상 중이시던데 과연 다시 한 번 벽을 뛰어넘으실까요?”
현재 올리비아는 모두의 관심 대상이다.
검술로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으니까.
“글쎄. 나도 기사가 아니니 명확하게는 모르지만, 쉽지는 않겠지.”
“제국에 초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인류에 희망이 있다는 뜻이죠.”
“그래. 정화의 불꽃단만 있는 게 아니지.”
눈발은 이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세졌다.
“심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켄의 목소리에도 걱정이 물들었다.
“만약 요정들이 올 때까지 눈이 계속 내린다면 작전을 다시 짜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 폭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다만, 저들 역시 힘들 겁니다.”
우리는 기다리는 입장이지만 요정들은 이곳까지 진격해야 되는 상황이다.
“이곳은 황도와 서부로 이어지는 핵심 길목입니다. 서부 전체를 점령하고 안정적인 방어를 하든, 아니면 황도로 진격하든 이 지역은 반드시 점령해 둬야 되는 지역이죠.”
“요정들이 어떤 날씨로 가로막히더라도 이곳으로 온다는 뜻이군?”
“네. 우리는 방어 준비에 주력하면 됩니다. 바르겐의 숲에서 저들을 몰살시키고 곧바로 남부로 가기 위해서는 속전속결이 중요하죠.”
켄이 빙긋 웃었다.
“물론 속전속결을 펼치기 전에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고요.”
이내 진지 밖을 돌고 있는 경계병들과 만났다.
“전하!”
내게 경례를 하는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날씨가 험한데 불편하지는 않은가?”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지만 아직은 괜찮습니다.”
“좋군! 고생하도록.”
나는 병사들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 다시 길을 나섰다.
“군기가 잘 잡혀 있습니다.”
“정예병들이니까.”
나는 슬그머니 물었다.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 것 같나?”
“요정, 카렌은 문제가 아닙니다. 왕국 연합에 있는 벨루시가 문제이죠.”
“벨루시는 왜 가만히 있을까.”
너무 질문만 계속 던지는 느낌에 내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분명한 건 이번 전쟁이 끝나면 당분간 전쟁이 없을 거라는 사실이야.”
“대륙이…… 제국으로 통일되겠죠.”
크고 작은 나라들은 이미 정화의 불꽃단에 휩쓸렸다.
당장 제국 이외에 가장 큰 국가였던 왕국 연합은 이제 사람 한 명 살지 않는 죽음의 지역이 되어 버렸다.
정령들이 열심히 균형을 회복하던 그곳은 벨루시의 강림 이후 완전히 마계나 다름없었다.
“이번 전쟁만 끝나면.”
나는 다짐하듯 중얼댔다.
* * *
마이크 후작은 서부 영주들과 함께 후퇴하고 있었다.
“전선을 버리고 가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영주의 불만에 마이크 후작이 빙그레 웃었다.
혈기 넘치는 젊은 영주는 지금까지 많은 공을 세웠다. 가장 앞서서 적들을 물리쳤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 많은 병사들이 젊은 영주를 따랐다.
“후퇴하는 게 불만인가?”
“그렇습니다. 충분히 맞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럼 내가 자네에게 한 가지만 묻겠네. 우리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많은 영주들이 죽었어. 그동안 적의 숫자는 얼마나 줄었나?”
젊은 영주가 입을 다물었다.
“의지만으로 이겨 낼 수 있는 전쟁이 있고, 그렇지 않은 전쟁이 있는 법이네. 우리는 정말 잘 싸웠어. 특히 자네처럼 젊은 영주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네.”
마이크 후작의 눈썹이 휘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격려의 손길에 젊은 영주는 묵묵히 경청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남는 건 전멸이네. 무엇보다 오스틴 공작으로 생각되는 리치마저 보였어. 우리가 전멸을 당하자고 그토록 열심히 싸웠던가?”
“아닙니다.”
“그래. 단지 물러나는 것뿐이야. 우리의 터전이 저들에게 짓밟히겠지만 사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법이야. 주민들이 피신했고, 이제 병사들과 함께 우리가 피하면 되네. 황태자 전하와 함께 저들을 멸망시키고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올 거야.”
젊은 영주가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떨면서 물었다.
“정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물론이네. 우리의 땅인데 당연히 돌아와야지.”
“황태자 전하께서는…… 후작님 말씀처럼 정말 그렇게 강하신 분입니까?”
마이크 후작의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았다.
“소문이 거짓은 아닐거야. 불의 정령왕, 바람의 정령왕을 소환하신다고 하셨으니…… 요정들이 기겁하겠군.”
“정말일까요?”
“물론.”
마이크 후작이 다시 한 번 젊은 영주의 어깨를 두드렸다.
“기대되지 않나? 타락한 요정들이 마치 자신들이 빛의 종족인 양 정령들을 부리며 우리를 정화시키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들이 정령왕을 봤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마이크 후작이 허허허, 웃었다. 진정 즐거운 듯 어깨를 들썩였다.
“렌이나 하였나? 그 요정들의 왕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꼭 보고 싶어.”
젊은 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은 반드시 제가 목을 벨 겁니다.”
“그래. 나도 전하께 자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두두두두-!
앞서 나간 정찰병이 돌아왔다.
마이크 후작은 예를 표하는 정찰병들에게 물었다.
“매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나?”
“네. 적들이 미리 경로를 차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점령한 성에서 쉬는 모양입니다. 날씨가 이 모양이니까요.”
눈발이 그나마 약해졌지만, 여전히 이동하기에는 어려운 날씨다.
마이크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적들을 주시하면서 후퇴하도록. 피난민들은?”
“아마도 지금쯤이면 피난민들이 황태자 전하를 만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전하의 전령이 도착하자마자 출발했으니 지금쯤 도착했을 겁니다.”
“전하가 별동대를 편성하여 피난민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래?”
“네. 피난민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적들에게 희생당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하셨답니다. 날씨도 좋지 않으니까요.”
마이크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계속 적들을 주시하도록.”
“네. 후작님!”
정찰병이 물러가자 마이크 후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정들이 추격하면 희생이 따랐을 건데…… 그나마 날씨가 도와준 건가?’
지독한 날씨가 아니었다면 요정들은 분명 추격 부대를 편성했을 것이다.
전쟁에서 후퇴는 가장 위험한 작전 중 하나다.
앞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눈보라 속을 헤치고 후퇴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적들이 쫓아오지 않으니 마음은 편했다.
‘전하를 만나면 반격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영주를 설득하고 달래기 위하여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이크 후작 역시 누구보다 분했다.
물론 아룬의 마음과 작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충실히 명령에 따랐지만, 분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마이크 후작 역시 전면에 나서서 요정들을 상대했고, 자신의 터전이 누군가에게 침범당하는 건 오랜 삶을 살면서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니까.
‘반드시 전멸시킨다. 단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마이크 후작은 젊은 영주들 모르게 이를 갈고 있었다.
* * *
올리비아가 깊은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좀처럼 명확해지지 않네.’
곧 닿을 듯 느껴지면서도 어느새 눈을 뜨면 멀리 달아나 있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길은 험한 게 아니라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정말 그런 경지가 존재할까?
오러 블레이드를 한층 더 강화시킨 오러 소드.
검술의 끝은 오러 소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올리비아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버님도 그랬고 폐하도 분명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대해 말씀하셨어. 존재하지 않는 경지가 아니야. 단지 내가 그 길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을 뿐.’
올리비아는 안타까웠다.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벨루시가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데.
릴리안은 벨루시를 상대할 전력으로 자신을 지목했다.
‘집중하자. 조만간 요정들이 올 거야. 그때가 되면 이렇게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어.’
“올리비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올리비아가 몸을 일으켰다.
“아버님.”
제임스 공작의 모습에 올리비아가 환하게 웃었다.
“명상 중이었니?”
“네. 요새는 계속 명상에 집중하고 있어요.”
제임스 공작이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너에게는 가르칠 것이 별로 없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간혹 나는 생각할 수 없는 방향으로 검술을 해석했으니까.”
“아니에요. 아버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사실 많이 망설였다.”
제임스 공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직 네게 가르쳐 주지 않은 검술이 있다.”
“아버님!”
올리비아가 놀라자 제임스 공작의 표정에 괴로움이 담겼다.
“위험을 동반하는 기술이었고, 소드 마스터이니 충분히 그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도 굳이 배우지 않았고.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제임스 공작이 올리비아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딸에게 위험한 공부를 가르칠 아버지는 없으니까.”
올리비아가 제임스 공작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버님, 지금이라면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