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62)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262화(262/278)
262화.
대륙의 유서 깊은 가문은 여럿 있었다.
많은 가문들이 ‘통일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에 멸문당하거나 혹은 이름만 남았을 뿐 옛 영광은 모두 잃어버렸다.
론 칼 레오드가 대륙에 등장한 뒤 모든 역사가 바뀌었다.
언제나 그렇듯 살아남는 가문이 있기 마련이고 그들의 유서는 살아남은 만큼 더 깊어진다.
화이트 가문도 바로 그중 하나였다.
론 칼 레오드가 대륙에 모습을 드러내기 백 년도 전부터 화이트 가문은 ‘명문’이었다.
첫 소드 마스터가 탄생한 뒤 주기적으로 화이트 가문의 가주는 소드 마스터에 올랐다.
“대대로 소드 마스터를 배출하기 시작한 뒤 가문의 고민은 오히려 깊어졌다.”
제임스 공작의 말에 올리비아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소드 마스터 이후의 경지를 아무도 오르지 못한 거 말씀이세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제임스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만으로도 화이트 가문은 대륙의 명가로 인정받았어. 황제 폐하의 등장과 오스틴 공작, 베레곤 공작, 얀 공작 등으로 대표되는 많은 강자들이 나타났지만 그럼에도 화이트 가문은 명문 중 명문이었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는 모두가 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어.”
하얀 입김이 제임스 공작이 말할 때마다 뿜어져 나왔다. 기이하고도 붉은 홍조가 얼굴에 맴돌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우리 가문을 최고의 명가라 생각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황가에도 없는 경지에 대한 내용이 우리 가문에 있기 때문이다.”
“가문의 비전이라는 게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이 끝이 아니었나요?”
“맞다. 최초로 소드 마스터에 이른 가주께서 정립해 놓으신 이론이 있다. 하지만 후대 가주 중 누구도 익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위험하기 때문에.”
“해 보겠어요.”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고민이 많았다. 가문과 내가 충성한 제국 나아가 대륙을 위하여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딸에게 목숨을 걸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없으니까.”
“절 믿어 주세요.”
제임스 공작은 정작 말을 꺼냈으면서도 여전히 고민을 지우지 못했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인가.
대의를 위해서 가족을 희생시킨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고 들어도 제임스 공작은 그런 사람을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런 바보가 되어야 한다니.
제임스 공작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믿어 주세요. 반드시 해내겠어요.”
올리비아가 다시 한 번 간청했다.
“제가 해내지 않으면 대륙도, 제국도, 가문도 결국 마왕 벨루시의 발아래에 짓밟히게 되잖아요.”
제임스 공작이 결정했다.
“따라와라.”
올리비아가 제임스 공작을 따라갔다.
그의 군막 안으로 들어가자, 제임스 공작이 짐 속에서 서책을 하나 꺼냈다.
낡은 서책이었다.
“읽기 어렵지 않을 거다. 진본이고.”
“사본…… 없나요?”
“사본도 제작해 두었다. 진본이 소실 될 것을 염려하여. 하지만 이왕 보여 주는 김에 진본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미 결정하고 오신 거군요?”
올리비아가 웃자 제임스 공작이 대답했다.
“마지막까지 망설였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더구나. 내 딸이 인류의 희망이라는 게 참 힘들지만.”
“폐하도 계시고 전하도 계시잖아요.”
“그래. 전하도 계시지. 황태자 전하가 아니었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르지. 릴리안에 이어 폐하, 그리고 전하…… 마지막 추가 올리비아 바로 너다.”
제임스 공작이 올리비아를 가볍게 품에 안았다.
“절대 죽지 말거라.”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몸으로 전해지는 떨림에 올리비아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자신은 황태자비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딸이다.
누구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올리비아는 자신 있었다.
아룬을 만난 이후 불가능은 없다고 여겼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룬을 보면서 인간에게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제임스 공작이 떨어진 뒤 말했다.
“그만 군막에 가서 쉬거라. 절대 급한 마음을 먹지 말고 천천히 살펴봐야 한다.”
“네.”
올리비아는 제임스 공작을 다시 한 번 안아 준 뒤 자신의 군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책의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오래된 양피지는 부서질 듯 가루를 흩날렸지만 용케도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군막에 돌아온 뒤 마법불을 피웠다.
금세 훈훈해지는 열기 속에서 올리비아는 의자에 앉아 조심스럽게 서책을 펼쳤다.
첫 장은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다.
화이트 가문의 검술이 기본부터 심오한 내용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올리비아는 서두르지 않았다.
처음 화이트 가문의 검술을 정립하고 소드 마스터에 오른 가주님이 남긴 책이다.
또 자신과는 다른 검술에 대한 해석도 무척 도움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검술을 사용할 수도 있구나.’
아주 오래전에 저술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검술이 훨씬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올리비아는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서책을 읽으며 검을 쥐고 실행에 옮기기를 반복할 무렵 소드 마스터 이후의 경지에 대하여 나왔다.
-어느 날 한계에 부딪혔다. 마나 홀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뭔가 더 있지 않을까? 고작 마나를 검에서 뽑아내는 것 이상이 있지 않을까?
올리비아도 경험했던 고민이다.
아룬의 도움을 통해 올리비아는 한계를 돌파했다.
-수도 없이 명상에 잠기고, 고민하다가 위로 흐르는 물을 보았다. 믿겨지는가? 위로 흐르는 물이라니! 마법도 아닌데 말이다.
점점 책의 내용이 올리비아의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흡법을…… 거꾸로 하라고? 그럼 마나 홀이 파괴되는데?”
올리비아의 손이 떨렸다.
이게 맞는 걸까?
아버지가 위험하다고 말한 이유가 있었다.
정말 이건 목숨을 건 도박이니까.
상식적으로 호흡법을 거꾸로 돌리는 건 마나 홀만이 아니라 온 혈맥을 파괴하는 행위다.
호흡법은 단순히 숨 쉬는 법이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 마나를 체내에 쌓고, 나아가 마나가 체내에 순환하면서 다시 체내 밖으로 발출되는 소위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낼 수 있도록 혈맥을 튼튼하게 하는 작업이니까.
그런데 그걸 파괴하는 행위를 하라고?
올리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망설이고 있었다.
* * *
“올리비아는?”
“명상 중이십니다.”
기사의 대답에 제임스 공작이 다가오면서 덧붙였다.
“가문 최후의 비전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요?”
내가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제임스 공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걸었습니다.”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목숨을 걸었다고?
“실패하면…… 올리비아가 많이 위험할 겁니다.”
나는 더 이상 제임스 공작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곧바로 올리비아의 군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임스 공작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은 그냥 두셔야 합니다.”
“공작.”
처음으로 제임스 공작에게 말을 놓았다.
“네. 전하.”
곧바로 몸을 돌려 제임스 공작의 멱살을 잡았다.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목숨을 걸다니요?”
“가문 최후의 비전을 익히면 그랜드 소드 마스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지극히 위험하여…….”
제임스 공작이 머뭇거렸다.
나는 제임스 공작을 노려보았다.
“그동안은 숨기고 있었습니다. 딸 아이에게 목숨을 걸라고 할 순 없었으니까요.”
손에 힘이 저절로 풀렸다.
제임스 공작의 표정은 평온했다.
“벨루시는 그 이름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실체를 본 건 전하와 올리비아뿐이었습니다. 온전한 실체를 보신 것도 아니죠.”
“공작.”
“그럼에도 대륙의 모든 강자들은 대륙의 멸망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인류 최고의 마법사라 할 수 있는 릴리안 그리고 폐하까지도요.”
맞는 말이다.
나는 당시 벨루시의 존재감만으로도 견디지 못하여 도망쳤다.
두 정령왕을 소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인류 최고의 마법사가 자신과 폐하, 그리고 모든 정령왕을 소환할 수 있는 전하와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올리비아에게.”
“네. 지금은 폐하보다 올리비아가 더 강하고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가까운 것 또한 올리비아니까요. 또 전 딸의 재능도 믿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한테 말 한마디 없이 너무 성급했습니다.”
제임스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전하께서 아셨다면 올리비아는 결정하지 못했을 겁니다. 인류, 대륙, 제국, 가문 모두 다 좋지만 올리비아는 전하와 함께 살고 싶기에 도박에 나선 겁니다. 부디 이해하시기를.”
제임스 공작이 고개를 숙였다.
딸을 사지로 몰아넣은 그의 마음을 생각하자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시죠. 마이크 후작이 멀지 않은 곳에서 오고 있습니다.”
제임스 공작이 내가 군막을 나온 이유를 상기시켰다.
“뒤늦게 추격대가 편성되어 마이크 후작의 뒤를 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친 병사들이 대부분이니 가서 도와줘야 합니다.”
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올리비아의 군막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돌아오면…… 올리비아가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을 겁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제임스 공작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저도 올리비아를 믿습니다.”
지금은 그녀를 믿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말에 오른 뒤 출발했다.
‘제발 올리비아.’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기도했다. 신이 있다면, 아니, 신은 있지.
신에게 빌었다.
올리비아가 무사하기를.
곧바로 바람 속을 질주했다.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릴 줄 알았는데 점점 더 무거워졌다.
‘지금 할 일에 집중하자. 적은 너무나 많고 제국은 여전히 위험하다.’
마이크 후작과 그 휘하의 영주들 그리고 피난민들까지.
지금 이 시간에도 목숨을 걸고 나를 믿고 도망치거나 싸우는 이들이 많다.
나는 내 자신의 위치를 자각했다.
‘황태자다. 더불어 지금은 이 전쟁의 총사령관…… 감정을 추스르자.’
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 * *
“후미를 막아!”
“뚫리고 있습니다. 요정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마이크 후작이 소리를 질렀다.
“막아라! 붙잡히면 끝장이다.”
후퇴하는 도중 날씨가 험하여 병사들의 피로가 쌓여만 갔다. 힘도 많이 빠졌고 사기도 떨어졌다.
추격대를 편성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기뻐했는데 요정들은 성을 정비하자마자 추격을 시작했다.
일부 부대이기를 바랐지만 족히 천 명이 넘는 요정들이었다.
하나, 하나가 모두 정예들이라 자칫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피난민들에 딸려 보낸 병사들이 너무 많다.’
그때 휘하 기사가 외쳤다.
“후작님 선두에서 병사들이!”
“제국군입니다!”
이어서 거친 눈발 사이로 거대한 불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타오르는 화염은 눈발마저 걷어내고 있었다.
얼어붙은 땅도 순식간에 녹았다.
“이, 이건!”
“정령왕이다!”
병사들이 크게 외쳤다.
“와아아아아!”
불새는 요정들을 덮쳐 갔다.
콰아아앙-!
쾅-!
두두두두두-!
이어서 기병들이 합류했다.
“후작님, 오랜만이군요.”
반가운 목소리에 마이크 후작의 목소리가 메말라졌다.
“전하.”
아룬이 빙긋 웃자 마이크 후작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추격대는 몇 명이나 됩니까?”
이내 아룬이 고개를 저었다.
“아, 숫자는 상관없습니다. 저들이 전부입니까?”
“네.”
이내 공간이 왜곡되면서 바람 사이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의 정령왕과 불의 정령왕.
요정들을 덮쳐 가는 두 정령왕은 거칠 것이 없었다.
마이크 후작이 이내 입을 벌렸다.
그토록 강하던 정령들이 바람과 불에 말 그대로 일거에 쓸려 가고 있었으니까.
“저, 전하.”
“총 십만이 넘는 요정이라 들었습니다. 근처에 숲이 하나 있는데 우리는 그곳을 요정의 무덤으로 정했습니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서부는 저의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곧 되찾을 겁니다.”
마이크 후작은 마치 벌써 전쟁에 이긴 것 같았다.
그리고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