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65)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265화(265/278)
265화.
마왕 벨루시.
위대한 이름이자 영광을 상징하는 단어다.
그는 중간계에 강림한 이후 한참이나 지나서야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킨 벨루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 눈동자와 달리 새하얀 피부, 조각 같은 이목구비는 신비로움을 넘어 어떤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마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붉은 눈동자만 아니었다면 미의 정점이라 불리는 요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의 손으로 빚은 듯한 몸을 벨루시가 가만히 둘러보았다.
자신의 몸을 보는 벨루시의 눈동자에 불만이 서렸다.
“인간의 몸이군. 가장 많은 개체라 그런가?”
벨루시가 손을 휘젓자 그의 몸 위에 가벼운 검은색 옷이 걸쳐졌다.
“날개는 필요 없겠군.”
고위 마족의 상징이자 마왕의 힘을 상징하는 여덟 장의 날개를 벨루시는 굳이 몸 밖으로 뽑아내지 않았다.
곧바로 몸을 굽혀 땅에 손을 대었다.
검은색 마기가 온 주변을 감싸면서 벨루시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곧 벨루시가 싱긋 웃었다.
“재밌는 인간이 있군.”
벨루시는 휘하 마족들 중 간간이 중간계에 강림하는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료하던 차에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했다.
자신을 신으로 모시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들은 건 족히 수백 년 전.
벨루시에게 수백 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꽤나 즐거웠던 이야기의 끝에 기어이 강림이라는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어떻게 보면 하찮은 인간들의 의지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마계 서열 3위에 빛나는 자신을 중간계에 소환하다니.
땅의 기억이 벨루시에게 흘러 들어왔다.
칼페온 제국은 물론이거니와 옛 고대 마법사 가문이라 불리는 라인하이드 가문에 관한 기억까지.
땅은 모든 기억을 담고 있는 세계의 근간이다.
그리고 벨루시의 권능은 그런 땅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냈다.
“아룬, 론, 릴리안, 올리비아라.”
네 명의 인간이 자신을 막기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에 벨루시는 무척 즐거웠다.
그들의 재롱이 피를 끓게 만들었다.
마치 자신이 온전한 힘을 갖고 이 땅에 강림한 것처럼 그들은 부산을 떨고 있었다.
‘고작 중간계 따위…… 온전한 힘을 갖고 강림했다면 곧바로 균형이 무너져 사라져겠지. 정령왕들도 이제 막 왕이 되어서 그런가 뭘 잘 모르는군.’
벨루시는 굳이 인간들의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성이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현재의 자신은 릴리안이 생각하는 파티가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소멸당할 수 있었다.
마족은 태어날 때부터 파괴를 위하여 사는 종족.
마계에서는 수도 없는 싸움이 매일 같이 벌어지고 싸움의 목적은 상대방의 철저한 말살!
그런 마계에서 벨루시는 고위 마족으로 태어나 서열 3위 마왕까지 올라섰다.
천부적인 재능과 마기에 대한 깊은 이해도는 벨루시를 고위 마족에서 마왕으로 이끌었다.
서열 1, 2위 마왕은 신이라 불리는 존재.
우습게도 마계 서열 1, 2위와 천계 서열 1, 2위는 신이라 불리며 같은 존재를 모시고 있다는 점이다.
즉, 벨루시는 신을 제외하고는 마계에서 가장 강한 마족이라는 뜻.
“중간계에서 소멸을 두고 하는 전투라 이거 짜릿하군.”
힘을 제한당했지만 중간계에서 인간들에게 소멸당하면 마계에 있는 본체 역시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벨루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본체가 피해를 입는 순간 다른 마왕들이 벌떼처럼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벨루시의 얼굴에 희열이 번졌다.
그는 전투를 위하여 살아 온 존재다.
많은 마왕을 물리치고 서열 3위에 올랐을 때 벨루시는 무료했다.
전투는 끊임없이 지속되었지만 자신의 소멸을 두고 싸우는 전투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이미 다른 마왕들과 힘이 차이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제약하고 전투를 벌였다.
행여나 힘을 제약하면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존재가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리 힘을 제약했다 하더라도 그 힘이 사라진 건 아니다.
즉, 이미 이길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이 자신을 몰아붙여 보았자 재미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중간계에 강림하는 순간 세계의 힘이 내 힘을 묶어 두었다.”
신의 섭리가 작용하는 이상 벨루시는 결코 중간계에서 온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릴리안이라는 여자가 만든 파티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기다려야겠지.”
벨루시는 마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냥 손님을 맞이하면 재미없지 않은가?
그리고 잔뜩 기대했는데 시험 없이 곧장 만나 주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모든 시험을 이겨 내고 내 앞에 당도하면 한층 더 강해져 있겠지.”
시험을 이겨 낸 인간들이 자신과 어우러지는 상상에 벨루시는 몸을 떨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소멸당하리라.
그 사실이 주는 쾌감에 벨루시는 수천 년 만에 강한 희열을 느꼈다.
정화의 불꽃단 같은 건 벨루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중간계 멸망 따위도 마찬가지였다.
이 땅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벨루시와 하등 관계없는 이야기니까.
설사 패배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본체가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고 마왕들의 도전을 받겠지만 그조차도 벨루시에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여기서의 싸움…… 만약 내가 패배하면 소멸을 각오하고 마계로 돌아가야 하는데 마계에서도 싸움이 기다리고 있지.’
연속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전투에 벨루시는 광소를 터뜨렸다.
대사제라는 인간이 문득 고마워졌다.
자신에게 이런 판을 깔아 주다니.
고위 마족 시절 하루, 하루 매일 같이 소멸을 두고 다른 마족들과 싸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가 벨루시에게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었다.
최선을 다하여 상대방을 무너뜨렸는데 다음 날 지친 자신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다른 마족이 싸움을 걸어왔다.
모든 것을 이겨 낸 벨루시에게는 여덟 장의 날개가 주어졌다.
벨루시는 마계를 만들었고 마물과 마족도 만들어 냈다.
진짜 마물과 마족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인간들을 시험하기에 충분하리라.
성을 구축한 벨루시는 높은 곳에 의자를 만들어 그곳에 앉아 기다렸다.
부디 자신을 재밌게 해 줄 인간들이 빨리 오기를.
‘좀 도와줄까?’
순간 벨루시는 고민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인간들이 오려면 그들을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 *
올리비아는 바람처럼 요정들 사이를 헤집었다.
그녀는 딱히 오러 블레이드를 연속해서 뿜어내거나 화려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다만, 빠르게 움직였을 뿐이다.
푸슉-! 푸슉-!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최소한 세 명 이상의 요정이 쓰러졌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그래서 바람처럼 헤집는다는 말이 절로 나온 것이다.
“믿을 수 없군요.”
제임스 공작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우리는 그저 올리비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놀랍게도 요정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올리비아를 전혀 잡아내지 못했다.
올리비아가 마치 연습용 허수아비들을 베어 넘기는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단순히……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이 강해진다거나 그런 게 아닌 듯싶습니다.”
내 말에 제임스 공작이 설명했다.
“저건 화이트 가문의 독문 검술입니다.”
“저게 검술이라고요?”
그냥 빨리 다니면서 요정들을 베는 것 같은데?
내 궁금증에 제임스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화이트 가문의 독문 검술 중 가장 상위의 것입니다. 상대방이 아예 공격할 틈도 주지 않고 바람처럼 움직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단지 그동안 저 검술을 펼칠 수 있는 가주가 한 명도 없었죠.”
나는 눈을 부릅뜨고 올리비아를 지켜보았다.
이미 바닥에 쓰러진 요정들의 숫자가 수백이 넘어섰다.
올리비아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화이트 가문의 독문 검술을 완벽하게 익혔다.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검술의 정점에 달한 것이다.
서걱-!
요정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 한 명의 인간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지 못하는 듯 경악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한 명도 살려 보낼 순 없지.”
나는 정령을 소환했다.
요정들을 이대로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서부를 완전히 정리하려면 숲을 나온 정령들을 전멸시킬 필요가 있었다.
‘당시 숲을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 요정도 있었다.’
세계수를 지키는 것이 요정의 본분이라 생각하는 요정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들은 소수였다.
소수지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요정들이 있었다는 뜻이고 여기서 요정들이 전멸해도 종족의 멸족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명령을 내렸다.
“진격하라! 요정들을 전멸시킨다!”
병사들의 사기는 말할 것도 없이 크게 올랐다.
그들도 눈이 있고 비록 올리비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지만, 요정들이 픽픽 쓰러지는 건 얼마든지 볼 수 있었으니까.
단 한 명의 인간이 보여 주는 압도적인 모습에 요정들은 넋을 잃었다.
요정들의 뛰어난 합동심도 이제는 소용없었다.
공포심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전염된다.
요정의 정신력은 인간보다 분명히 높은 면이 있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학살에 대한 충격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었다.
“도, 도망쳐!”
누군가가 한 말일까?
그 한 마디가 기폭제가 되어 요정들은 후퇴하는 질서마저 잃고 마구잡이로 달리기 시작했다.
전쟁에서는 후퇴도 중요하다.
후퇴를 하더라도 전열을 유지하는 이유는 적이 쉽게 추격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전열을 유지하면 그만큼 추격에 대응하기 쉽고 최소한의 희생으로 후퇴할 수 있으니까.
요정들은 그 기본마저 잃어버렸다.
공포는 그토록 무서운 것이다.
한 번 전염되면 이미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흩어지는 적들을 말살시키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단 한 명도 남기지 말도록!”
나는 정령들을 모조리 소환하면서 다시 한 번 명령을 내렸다.
켄이 옆에서 말했다.
“이건 규격 이외의 존재군요.”
“그래?”
“네. 작전이 무의미해졌습니다.”
작전이 무의미할 정도의 강함이라.
나는 켄의 감상에 동의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렇게 되면 작전을 변경해서 서부를 빠르게 정리하고 카렌을 치러 가는 게 맞지 않나?”
“네. 아무래도 작전을 그런 쪽으로 다시 수립해야 될 것 같습니다. 황태자비님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 달성은 제 계획에 없었으니까요.”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군.”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정화의 불꽃단과의 전쟁은 이제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습니다. 남은 건 마왕 벨루시겠죠.”
“릴리안는 올리비아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마왕 공략의 가장 중요한 점으로 꼽았어. 이제 그 조건이 갖춰졌지.”
켄이 말했다.
“전하의 모든 속성 정령왕 소환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이제 내가 명상할 차례인가?”
내 말에 켄이 빙긋 웃었다.
“아마도요?”
“나도 확실히 수련이 필요한 건 맞아. 두 속성 정령왕도 제대로 소환하지 못하는데 네 속성 모두 정령왕을 소환하는 건 꿈 같은 이야기야.”
나는 누구보다 내 스스로의 경지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 한계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영단이 아니었다면 불의 정령왕도 소환하지 못했을 것이다.
올리비아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올랐으니 나도 내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경지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네 속성 정령왕이라.’
나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 되겠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정화의 불꽃단과 전쟁을 끝낸 뒤 황궁에서 수련하는 게 좋겠어.”
“최대한 빠르게 전쟁을 끝내는 방법을 생각하겠습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대륙의 역사는 다시 한 번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