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68)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268화(268/278)
268화.
콰아앙-!
정령들이 전장을 수놓았다.
굳이 정령왕까지 소환할 이유는 없었다.
최상급 정령만으로도 충분히 전장을 휘어잡을 수 있으니까.
다만 나는 거듭된 전투 속에서 한 가지 확실한 점을 깨달았다.
‘정체되었어.’
나의 경지는 어느 순간부터 성장하지 않고 있었다.
벽에 가로막힌 정도가 아니다.
시스템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나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는데, 그때마다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벽의 존재를 항상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그 벽을 더 또렷하게 인식하고 벽을 깨부순 순간 성장했다.
정령왕을 소환하게 될 수 있을 때도 그랬다.
성장의 전제 조건은 언제나 바로 내 앞의 ‘벽’을 인식하는 일이었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 벽.
지금은 벽을 전혀 인식할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걸까.
정령술이 어딘가 잘못된 건 아닐까?
감조차 잡히지 않으니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정령들을 다시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전하.”
“게일.”
언데드들을 정리하고 내 곁으로 돌아온 게일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머금었다.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게일의 말처럼 내 표정은 굳어 있었다. 얼굴에 힘이 들어간 사실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손은 축축했고,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최상급 정령 소환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데.’
정령왕을 소환할 정도의 마나를 품게 되면서 최상급 정령 소환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상위 경지에 도달하면 자연스레 그 밑의 경지를 펼치는 건 편안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냥 답보된 경지에 대한 불안감?”
내 말에 게일이 입을 열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하는 믿을 수 없는 성장을 하셨습니다. 고작 몇 년 전에 정령술에 입문하셨는데 지금은 대륙 최고의 정령사이십니다.”
그건 시스템 덕분이다.
내가 내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문득 시스템이 그리워졌지만 이내 고개를 털었다.
시스템은 내가 이곳이 진짜 현실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일종의 방해물이었다.
시스템을 극복하면서 나는 칼페온 대륙의 아룬 칼 레오드로서 완벽한 각성을 이루었다.
‘그래 일종의 각성.’
왜 내가 론에게 부성애를 느끼는가. 꿈에 나오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왜 사무치는가.
내가 진짜 아룬 칼 레오드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얻는 대신 나는 시스템을 잃었고 단 한 번도 그 사실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전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미 전하께서는 충분히 강자이십니다.”
나는 게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급하게 마음먹어서 좋을 거 하나도 없으니까.”
말은 그리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급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당장 내일이면 카렌을 만날 수 있으니까.
카렌이 끝도 아니고 마왕 벨루시는?
릴리안은 내가 네 속성의 정령왕을 모두 소환할 수 있어야 마왕 벨루시를 상대할 만하다고 말했는데.
그녀의 말이 틀릴 리가 없으니 아직 마왕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장은 모두 정리가 되었다.
카렌의 후미에 있는 언데드, 정화의 불꽃단을 모두 정리했다는 의미였다.
실로 오랜만에 제국이 정화의 불꽃단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뜻이지만 나는 여전히 밝게 웃지 못했다.
최대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군사들을 충분히 쉬게 하고. 아바마마와의 연락은?”
“내일 카렌의 후미로 들이닥치면 성문을 열고 호응하기로 연락이 되었습니다.”
켄의 말에 내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성에 아바마마와 릴리안 모두 나와 있나?”
“네. 지금 카렌을 상대로 성을 방어하고 계십니다.”
“릴리안도 나왔으니 내일이 정화의 불꽃단이 존재하는 마지막 날이겠군.”
나는 확신했다.
내 성장 여부를 떠나서 아무리 카렌이라도 나와 아버지, 릴리안 그리고 올리비아를 막을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올리비아 혼자서도 카렌을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쪽 전황은 어때?”
내 말에 켄이 보다 상세하게 설명했다.
“릴리안 마법사가 카렌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직접 성벽에 올라와 방어를 지휘하십니다.”
“아바마마가?”
“네.”
“릴리안 혼자 카렌을 막는 건 릴리안 말고는 카렌을 상대할 사람이 없다는 건가?”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안 마법사도 카렌을 묶어 두는 데만 주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올리비아가 옆에서 말했다.
“카렌 역시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른 게 틀림없어요. 9서클 마법사 혼자서 묶어 두는 게 고작이라면 소드 마스터로는 불가능해요.”
“릴리안이 묶어 두는 게 고작이라면 카렌 역시 릴리안을 어쩌지 못한다는 뜻이지?”
“네. 아마 카렌도 릴리안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을 거예요.”
9서클 마법사와 그랜드 소드 마스터.
마법과 정령술이 최상급에 이른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방어 자체가 불가능했으리라.
언데드는 물론이거니와 남부의 야만인 연합 역시 만만치 않은 전력이니까.
특히 언데드들은 죽여도 계속 살아나기 때문에 인간 병사보다 평균 전력이 훨씬 높은 편에 속했다.
성을 끼고 방어한다 하더라도 결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무리가 아니다.
“노을이 질 때 맞춰서 후미를 공격하기로 결정했으니 내일이면 승부가 납니다.”
켄의 말을 듣는 모두의 얼굴에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긴 전쟁의 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점점 더 긴장하고 있었다.
‘괜찮을까?’
분명 객관적인 전력은 압도적이다.
강자의 숫자가 다르니까.
평균 전력만 높을 뿐 절대 강자의 숫자는 제국이 훨씬 많다.
‘괜찮을 거야.’
나는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노력했다.
* * *
“흠, 재밌는 인간이네.”
벨루시가 있는 곳은 마치 황제의 대전처럼 화려하면서도 거대했다.
우뚝 솟은 검은색 의자 위에서 벨루시는 권태롭게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성의 중앙에는 실로 어마어마할 정도로 큰 검은색 구체가 카렌의 모습을 비췄다.
벨루시는 검은색 구체를 보면서 즐거운 듯 미소를 머금었다.
카렌의 모습에 이어 아룬의 얼굴도 검은색 구체에 드러났다.
“정령왕을 소환하는 인간이라!”
아룬을 보면서 벨루시는 혀를 찼다.
“아직 덜 여물었어. 그 마법사가 아직 오지 않는 이유가 모든 정령왕을 소환할 수 없기 때문이고.”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 줄 인간의 성장이 정체되어 있다는 사실에 벨루시는 짜증을 느꼈다.
“투쟁이 부족해. 투쟁이.”
벨루시는 아룬이 정체되어 있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중간계 입장에서 본다면 초월적인 존재나 다름없었다.
세계의 흐름을 볼 줄 아는 존재이며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자가 바로 벨루시였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카렌이 꽤나 이채롭게 보였다.
“저 인간에게서 창조주의 냄새가 나는데…… 천족은 아니고.”
벨루시는 카렌을 보면서 고민에 잠겼다.
정화의 불꽃단이라는 우스운 이름으로 자신을 추앙하고 있는 존재이고, 인간이 분명했다.
“천족이 아닌데도 창조주의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라!”
벨루시는 카렌을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이대로라면 너무 쉽게 무너질 것 같으니까.”
곧 벨루시의 의지에 성의 천장이 움직였다.
성의 천장이 열렸다.
열린 천장 사이로 갈색빛이 쏟아져 내리면서 벨루시 앞에서 네 갈래로 갈라졌다.
푸슈슈슛-!
작은 소음과 함께 곧 네 갈래의 빛이 네 개의 구체로 모이더니 점점 형상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벨루시가 눈을 감았다 뜨자 네 명의 마족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왕이시여.”
벨루시는 굳이 말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마족들에게 전달했다.
마족들의 등에 네 장의 날개가 펼쳐졌다.
열린 천장을 향해 날아간 마족들이 곧 빛이 되어 사라졌다.
“저 정도면 충분하겠지.”
벨루시는 빙긋 웃었다.
나머지 세 명은 완성이 되었다.
9서클 마법사, 그랜드 소드 마스터 그리고 소드 마스터이자 마법과 정령을 다루는 자.
두 명은 완성형이고 완성되지 못한 한 명의 인간이 가진 재목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남은 한 조각.
화려한 외모를 뽐내는 인간은 황태자라 불리며 두 속성 정령왕을 소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모든 속성의 정령왕을 소환해야 완성이 되는 것이다.
벨루시는 투쟁이 부족한 정령사에게 투쟁을 선물해 주었다.
네 명의 최상급 마족이면 요상한 인간을 보좌하기에 충분하리라.
다시 한 번 구체를 불러내자 카렌과 최상급 마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벨루시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자신이 만든 최상급 마족과 카렌을 바라보았다.
“그래. 투쟁해라. 투쟁하여 내 앞까지 도착해라.”
* * *
아, 아 신이시여!
카렌은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앞에 나타난 네 명의 전사를 보면서 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대사제의 일 같은 건 굳이 묻지 않았다.
“내일 새벽이면 적들이 성문을 열고 진격할 것이다. 그리고 후미에서는 다른 인간들이 쳐들어올 것이고.”
붉은 눈동자를 자랑하는 마족의 말에 카렌이 눈을 부릅떴다.
“후미에도 적이…….”
“황태자라 불리는 인간이 이끄는 군대더군.”
역시 신의 전사가 아닌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카렌은 신이 자신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대륙의 정화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내일 저들을 한꺼번에 소탕한다.”
“네. 전사님!”
카렌이 조심스럽게 신의 전사들을 향해 말했다.
“저, 병사들을 한 번이라도 위로해 주시는 게 어떠십니까? 사기가 많이 오를 겁니다.”
“그러지.”
순순히 신의 전사들이 자신의 제안을 수락하자 카렌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벨루시 님의 세계를 위한 일이다.”
벨루시는 최상급 마족들을 만들 때 대사제의 기억을 불어넣었다.
즉, 최상급 마족들은 벨루시가 정말 정화의 불꽃단이 추앙하는 신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곧 최상급 마족과 함께 카렌이 언데드, 야만인 병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언데드들이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최상급 마족을 향해 경배했다.
야만인들은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이내 최상급 마족의 등에서 돋아나는 네 장의 날개를 보며 입을 벌렸다.
갈색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최상급 마족들을 감쌌고, 그들은 공중으로 날아가며 한목소리로 말했다.
“왕께서 강림하셨다.”
“우어어어어어!”
야만인들이 함성을 질렀다.
언데드들의 몸에서도 갈색빛이 흘러나오며 그들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카렌은 이 기적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언데드들이 신의 병사인 사실을 의심했다.
신의 사자가 친히 나와 권능을 행사하니 신의 병사가 한층 더 강해졌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신의 병사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며 그들이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강력한 기운이 더욱 강렬해졌으니까.
카렌은 승리를 확신했다.
거대한 악인 황제도, 자신을 막아서던 마법사도, 그리고 황태자까지도.
내일이면 모두 죽을 것이며 대륙은 신의 불꽃으로 깨끗해지리라.
카렌 역시 야만인들과 함께 함성을 질렀다.
“신이시여!”
카렌이 외치자 모두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신의 전사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카렌은 신의 전사들 등 뒤에 있는 날개에 시선을 빼앗겼다.
저 아름다운 날개를 보라.
카렌 역시 날개를 가지고 싶었다.
신의 전사로서 신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너의 강함은 알고 있다.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에 카렌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신의 목소리다.
신의 전사에 이어 목소리까지.
신은 자신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날개는 신의 전사라는 증거. 모든 힘이 담겨 있는 정수. 그대의 전쟁이 마무리되면 그대 역시 날개를 가지게 되리라.
카렌은 바닥에 고개를 박았다.
자신이 신의 전사가 되리라는 사실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