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7)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27화(27/278)
27화.
“마차 통행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모두 갓길로 다니는군.”
내가 가까이 지나가면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서 엎드렸다.
갓길은 좁고 불편한 것을 넘어 위생적으로도 상당히 나빠 보였다. 중세 시대의 위생 현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 나는 새삼 내가 살던 황궁이 정말 깔끔한 곳임을 깨달았다.
많은 이들이 옷이 더러워지거나 혹은 오물이 몸에 묻는 것을 망설이지 않고 엎드리는 건 바로 신분 때문이었다.
“전하의 행차는 이미 며칠 전 수도 경비대에 보고가 들어갔습니다. 귀족들이 전하의 동선에 마차를 타고 다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켄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과 서민, 그리고 황족 간 신분 차이를 느끼면서 나는 영웅 카렌을 떠올렸다.
‘이런 부분을 좀 더 상세하게 집필했다면 주인공의 동기가 좀 더 자세히 설명되었을까?’
들끓는 복수심이나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신분제의 혁파 같은 목표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으면 좋았을 텐데 적잖이 아쉬웠다.
‘내가 막강한 힘을 갖추고 정치적인 기반을 든든히 한다면…… 그때 신분제 개혁을 진지하게 고민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천천히 생각하자.’
지금은 생존이 먼저다.
‘나는 지금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위태로운 황태자다.’
“곧 중간 지점에 도착합니다. 전하.”
켄의 말에 나는 정신을 다잡았다.
사전 조사에서 암살 시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추측한 곳. 남동대로의 중간 지점이었다.
“자연스럽게 행동하십시오. 주변을 둘러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오랜만의 외출이니 호기심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셔도 좋습니다.”
이번의 조언은 켄이 아니었다.
기사로 위장한 그림자 걸음 길드 조직원 중 전체적인 동선과 계획을 짠 여성 길드원의 조언이었다.
나는 그 조언을 받아들여 적당히 두리번거리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켄에게 말을 건넸다.
“저쪽이 귀족들의 주거지인 모양이군.”
“네, 전하. 4대 수호 가문의 공작저를 중심으로 많은 중앙 귀족들이 수도 동쪽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일부 지방에서 올라오는 귀족들을 상대하는 여관이나 유흥 주점 혹은 여러 잡화점들 역시 모여 있죠.”
내가 시선을 돌리자 켄이 기다렸다는 듯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쪽은 빈민가입니다. 폐하께서 칼페온 제국을 세우시고 칼페온을 수도로 명명하신 이후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정말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필연적으로 빈민가가 형성되었고…… 여러 정책으로 저들을 구제하려 하셨지만 아직까지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언뜻 황태자와 신하가 나눌 수 있는 평범한 대화 같았다.
켄의 복장도 오늘은 하인이 아니라 수행원 복장이었으니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켄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바람에 실리는 살기를 느낄 수 있을까?’
바람의 정령과 친화력이 매우 강한 나는 남몰래 실프를 소환하여 품 안에 품었다. 바로 옆에서 걷고 있는 켄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상태창에 표시되지는 않았지만 정령술이 한층 더 진보한 느낌이다.’
게일도, 켄도 소리스도 심지어 아버지도 내 정령술 재능 자체에는 상당히 놀랐다.
아버지가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어도 내가 최상급 정령들을 소환했다는 사실 자체를 높게 평가한 게 분명했다.
아니라면, 이번 외출을 허락받지도 못했겠지.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긴장을 억누르고 평소처럼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좋은 정책을 많이 펼치시니 저들의 삶도 곧 나아질 것이다.”
희망하는 바였다.
하지만 2차 정복 전쟁이 시작되면 빈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전쟁이란 소수에게 기회이고 대다수에게 고통이며, 힘없는 이들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것.
평민들은 물자 조달을 위해 마른 걸레를 짜내듯 닦달하는 귀족들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노예들과 마찬가지로 전장에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2차 정복 전쟁이라…… 나는 정복 전쟁을 아버지의 야심 정도로 표현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현실이 되어 겪으니 이 시대의 전쟁이라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
아직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빈민들의 처참한 삶이 눈에 보이는데 만약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면?
굳이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되었다.
내 표정에서 착잡한 심정을 읽은 켄은 묘한 눈빛과 함께 말했다.
“생각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지.”
“전하.”
기사로 위장한 길드원의 목소리에 나는 시선을 돌렸다.
“조심하셔야 됩니다.”
길드원들의 목소리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동대로 중간지점은 길이 급격하게 좁아졌다. 겨우 마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였고, 서쪽 빈민가 주거지에서 풍기는 악취가 한층 가까워졌다.
나는 운디네도 소환했다.
여전히 다른 이들은 내가 정령을 소환한 사실을 몰랐다.
‘좋아.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일이었다.
* * *
“꽤 대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수하의 말에 실론이 피식 웃었다.
“황태자가 그동안 자신의 모습을 숨겼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고…… 아마도 저자가 황태자에게 붙은 이후로 모든 게 달라진 것 같군.”
실론은 아룬의 옆에서 걷고 있는 켄을 유심히 살폈다.
“하인 중 한 명입니다.”
수하가 켄의 신분을 말하자 실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단순한 하인이 아니야. 소드 익스퍼트급이다. 최하급 정도이지만…… 그리고 황태자를 지키는 자들도 범상치가 않다.”
실론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무엇보다 황태자에게서 정령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나는군.”
수하가 움찔 몸을 떨었다. 정령사는 흔치 않은 존재인데, 멍청이에 머저리, 겁쟁이로 알려진 황태자가 정령사라는 사실을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실론의 미소가 진해졌다.
“과연 피는 못 속이는 건가? 황제와 이리엘의 피를 이었으니 정령 친화력은 굉장한 모양이군.”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정령사가 된 건…….”
수하의 의문에 실론은 정확하게 소리스를 가리켰다.
“저놈이 스승인 모양이야. 황태자보다 정령 냄새가 진하지는 않지만 수준은 훨씬 높은 것 같군.”
실론이 몸을 일으켰다.
아룬과 족히 몇백 미터는 떨어져 있는 귀족의 저택 지붕이었는데, 실론은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말했다.
“황태자가 예상보다 훨씬 더 발전했어. 게일이 움직인 것인가?”
애트란 아카데미 학장 출신에 검은 물론이거니와 지략에도 일가견이 있는 실론이었지만, 아룬이 스스로 발전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만 가자.”
“결과는 보고 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수하의 조언에 실론이 아룬을 가리켰다.
“네가 알던 황태자가 아니다. 첸은 다혈질이지만 그의 외가는 분명 대단하지. 하지만…… 어째서 주군의 가문을 뛰어넘지 못하는 줄 아느냐?”
실론의 질문에 수하가 고개를 저었다.
“적을 늘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이 우습다하여도 애트란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 오크도 사냥할 때 최선을 다하는 법인데 하물며 인간이 적을 상대하는 일은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모자라지 않지.”
실론이 혀를 찼다.
“뱀의 독 길드라고 명성이 자자해서 기대했건만…… 정작 정예들은 오지 않은 모양이군. 바로 저게 적을 과소평가하는 증거다. 주군이 움직이셨다면 뱀의 독 길드 전부를 동원했을 것이야.”
수하도 동의했다.
“네. 가주님은 충분히 그러셨을 겁니다.”
“많은 준비를 했지만 실력자들이 아니니 황태자가 어렵지 않게 이겨낼 것이고…… 어쩌면 첸이 곤란에 빠질지도 모르겠구나.”
실론은 진정 즐겁다는 듯 웃었다.
“우리 귀염둥이 전하가 이 소식을 기뻐할지 싫어할지 모르겠군. 제 손으로 황태자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하시고, 자신의 먹잇감을 누군가 뺏는 건 싫어하니까. 한편으로는 손 쉬운 승리도 좋아하시니.”
수하는 테드에 관해서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실론이 훌쩍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멀리 보이는 남동대로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첸은 정말 대범했다.
‘아니 뱀의 독이 대범한 것인가?’
나는 바람의 사슬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바람과 대지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정말이지 노움과 계약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바람과 대지의 흐름은 내 전투력을 몇 배나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챙-! 챙-! 챙-!
그럼에도 나는 전면에 나설 수 없었는데, 기사들과 켄 그리고 소리스까지 모두 합심해서 방어해도 적의 숫자가 워낙 많았다.
서걱-!
켄이 암살자 중 한 명의 팔을 잘랐다.
“우욱!”
나는 구역질을 참지 못했다. 현대를 살아온 나에게 팔과 다리가 잘리고 피가 튀는 전투가 주는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또 모순되게도 바로 전투라는 상황 때문이었다.
정신을 놓는 순간 목숨을 잃을 테니까.
“실프!”
두 실프가 동시에 내 주위를 돌면서 암살자들의 검을 쳐냈다.
캉-!
“막아!”
소리스의 정령들은 부드럽게 암살자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켄과 기사들은 나를 지키는 데 주력했고, 소리스가 공격을 맡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미리 약속한 형태였기 때문에 나도 당황하지 않고 바람의 사슬을 연속으로 펼쳤다.
나 역시 공격을 맡았기 때문이다.
공격과 방어 중 더 쉬운 건 공격이다.
방어는 어느 정도 실전 경험이 쌓여야 감각이 느는 부분이 있는데, 공격은 아직 초보인 나도 충분히 적을 죽일 수 있었다.
“실프!”
내 외침에 실프가 강렬하게 마나를 빨아들였다.
칼날이 한층 더 날카롭고 빨라졌다.
암살자들 중 두 명의 허리에 실프들이 스쳐 지나갔다.
서걱-!
‘검은 절대 못 쥐었겠군.’
내가 정령사라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이 피 튀기는 전장에서 내가 직접 사람을 베지 않아도 되니까.
‘괜스레 실프에게 미안하군.’
내 마음을 읽은 실프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유려하게 움직였다. 더불어 가슴을 보호하고 있는 운디네가 따뜻한 기운을 전해주었다.
수십 명의 암살자들 중 절반 정도가 쓰러졌다.
내 예상과 켄의 우려와 다르게 생각보다 수월했다.
“전하!”
길드원 중 한 명의 큰 외침에 내가 시선을 돌렸다.
빈민가 쪽에서 수십 명의 암살자들이 지붕을 밟고 말 그대로 날아오고 있었다.
켄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건 전면전이군.”
암살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이제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대낮에 이런 대로에서 황태자를 공격하다니!
정말 미친 게 아닐까. 첸이 아무리 다혈질이라도 이렇게 대놓고 일을 저지를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전하, 아무래도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켄은 쉼없이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수도 있겠어.”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심했다. 뱀의 독 길드는 전면전 수준으로 나섰고, 나와 켄 그리고 소리스 길드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을 넘었다.
“퇴로를 확보하겠습니다.”
켄의 검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궁으로 돌아간 뒤의 일은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금이야말로 오직 생존만을 생각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