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71)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271화(271/278)
271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주변 병사들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공기는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흐르며 물결치고 있었다.
아주 느리게.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피가 터져 나오면서 입안이 비릿한 맛으로 가득 찼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마족은 마치 내 스승이라도 되는 듯 미소와 함께 내가 아퀼루스를 부르는 것을 기다렸다.
굴욕적이었다.
적이 베푸는 은혜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꼴이라니.
피닉스의 공격을 여유롭게 막아 내면서도 시종일관 나에게 눈을 떼지 않는 마족의 모습에 절망감마저 느꼈다.
‘벨루시의 수하가 저 정도인데 대체 벨루시는…… 얼마나 강하다는 뜻일까.’
그가 만들어 낸 수하 네 명이 전쟁의 향방을 바꾸어 놓고 있었다.
우리 측 절대 강자들이 꽁꽁 묶이면서 평균 전력이 높은 정화의 불꽃 진영 언데드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쓰러지는 제국군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반면 언데드들은 쉽게 죽지 않은다.
그리고 남부 야만인 연합은 말 그대로 광신도였다.
제아무리 제국군이 강병이고, 충성심이 높더라도 눈알이 돌아 버릴 정도로 사이비 종교에 빠져 버린 광신도의 정신 상태는 이길 수 없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체 일부분이 잘려 나가는 것 역시 신경 쓰지 않았다.
오랫동안 수련한 기사나 혹은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인간의 한계를 돌파한 이들도 결국 인간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광신도들은 달랐다.
“크어어어!”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제국군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제국군 병사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창을 내밀었다.
‘성문을 열고 나온 게 치명적인 실수였다.’
아룬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아퀼루스는 기어이 소환되지 않았고 피닉스를 유지하는 마나도 점차 바닥을 드러냈다.
피닉스의 형체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모습은 한계를 이미 넘어섰다는 증거였다.
-마나가 부족해.
피닉스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족이 뚜벅뚜벅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마나 홀을 쥐어짰다.
‘아퀼루스!’
정령왕을 소환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마나였지만,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이대로 이 마족을 막아 내지 못하면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투의 패배는 곧 전멸을 의미한다.
이곳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제국군 병사들.
그리고 아버지와 올리비아, 게일과 켄, 릴리안까지…… 가족은 물론 내 충성스러운 신하들까지 있었다.
이들을 이토록 쉽게 보낼 순 없으니까.
온몸에서 퍼지는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아퀼루스!”
다시 한 번 아퀼루스를 부르자 내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정신이 점점 흐릿해졌지만 곧 청량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고오오오!
공간이 일그러지자 마족이 더욱 진하게 웃었다.
“아주 좋아. 그 상태야.”
무엇이 좋은지 마족이 이내 광소를 터뜨렸다.
곧 그의 몸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흘러나왔다.
마기는 내 몸을 덮쳤다.
마치 여러 가닥의 실로 만든 그물이 내 몸을 통과한 듯 마기를 맞은 곳곳에 실선이 생기며 피가 터졌다.
실선은 점점 더 커지며 상처는 그만큼 깊어졌다.
두 다리를 딛고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퀼루스를 부르는 건 멈추지 않았다.
‘모두 죽는다.’
눈앞에 닥친 현실이 바닥을 드러낸 마나 홀을 잊게 만들었다.
나는 연신 바람의 호흡법을 붙잡으며 호흡과 함께 쌓이는 마나를 즉시 정령왕 소환에 투입했다.
내 몸은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마치 정령계와 중간계를 잇는 하나의 통로처럼 느껴졌다.
중간계에 퍼져 있는 마나가 내 몸이라는 통로를 거쳐 정령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바람이 점점 더 강해졌다.
마족의 마기는 마치 연주라도 하는 듯 바람이 강해지는 것에 맞춰 함께 커졌다.
콰아아아아아앙-!
바람이 하늘을 뒤덮었을 때 아퀼루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마족의 마기와 부딪히면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한편, 갈라진 공간 사이로 푸른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지 못했다.
“어?”
멍청한 표정과 함께 눈을 부릅뜨는 순간 내 몸에 있던 상처가 사라지고 마나 홀마저 사라졌다.
-아리아가 맹약의 주인을 뵙습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퀼루스 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리아. 운다인이 새롭게 왕의 자리에 올라 소환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물결은 나를 치료했고 나아가 전장에 있는 모두를 치료했다.
부스스슥-!
신체가 훼손된 제국군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고,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병사들 역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언데드는 성수를 맞은 듯 녹아내리고 있었다.
피닉스와 아퀼루스가 마족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아리아 역시 수백 개의 물방울로 마족을 압박했다.
놀라운 건 세 정령왕의 공격에도 마족은 끊임없이 갈색 구체를 뿜어내며 방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잠시 멍하니 전투를 지켜보았다.
‘마나 소모가 없다.’
이내 깨달은 현실은 경악스러웠다.
세 정령왕이 막대한 위력을 뿜어내고 있는데 나는 마나를 전혀 소모하지 않고 있었다.
‘마나 홀이…….’
마나 홀이 사라졌다.
대신 주변의 마나가 끊임없이 나에게 흘러 들어오며 즉시 정령왕들한테 투입되었다.
‘정말 통로가 된 것인가?’
자연의 마나를 끌어당겨 쓴다는 개념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허황되어 단 한 번도 그런 경지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땅을 내려다보았다.
온갖 피와 언데드들의 시체와 병사들의 시체를 품고 있는 땅.
고오오오오-!
땅이 들썩 거렸다.
내 의지에 따라 마지막 정령왕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태초의 맹약에 따라 맹약의 주인, 그대의 부름에 응답한다.
언제나 거의 말이 없던 땅의 정령들이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땅의 정령 목소리를 들었다.
모든 땅의 정령들의 왕.
굳이 그가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름이 떠올랐다.
‘이름을 내가 공들여 짓지 않아도 되었구나.’
아퀼루스와 피닉스는 내가 직접 이름을 지었다.
그조차도 일종의 예정된 미래라 할 수 있었다.
아리아는 이미 자신의 이름을 알고 나에게 알려 주었고 ‘노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족의 몸을 여러 갈래로 뻗어 나온 흙들이 잡았다.
“멀지 않은 곳 미래에서 기다리겠다.”
그의 목소리가 이전과 달랐다.
눈동자에서 흘러나온 갈색 빛이 내 몸을 순간적으로 굳게 만들었다.
‘벨루시?’
* * *
“크하하핫!”
벨루시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보다 재능이 더 뛰어난 인간이잖아?”
자신이 만들어 낸 최상급 마족들은 마계에 풀어 놓아도 충분히 제 몫을 할 놈들이다.
특히 한 놈은 최상급 마족보다 더 고위에 있는 마족, 자신의 힘을 일부 떼어 내어 만든 마왕 후보급 정도는 된다.
그런 마족을 아룬이 네 속성 정령왕을 소환하여 죽이는 모습을 보며 벨루시는 희열을 느꼈다.
몸이 떨리도록 긴장이 느껴진다.
이곳에서 패배하면 마계에 있는 본체까지도 위험하다.
그리고 마계의 본체가 타격을 받는다면 다른 마왕들은 결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시 한 번 소멸을 걸고 투쟁할 수 있다.
그 사실이 주는 흥분에 벨루시는 연이어 광소를 터뜨렸다.
“경계를 확실하게 만들지.”
벨루시는 이제 모든 게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위기에 몰아넣을 인간들이 모두 갖추어졌다.
마법사.
검사.
정령사.
인간들이 왕국 연합이라 부르는 경계까지만 마기를 풀어놓았다.
그 너머로는 결코 마기가 흘러가지 않도록 만들었다.
인간들한테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벨루시는 인간들이 한계를 돌파할 때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왕 벨루시만 죽이면 된다.
그 희망을 인간들한테 심어 주기 위해서 벨루시는 왕국 연합만 정복하고 다른 곳은 결코 침략하지 않았다.
딱히 그럴 이유도 없었다.
‘정화의 불꽃단이라는 놈들을 모두 정리한 뒤 제국의 여러 가지 일을 수습하면 나에게 오겠지.’
인간 입장에서야 그 시간이 길지 몰라도 불멸의 삶을 사는 벨루시에게 기다림은 매우 익숙한 일이었다.
무료하던 차에 자신을 흥분으로 몰아넣을 인간들이 오히려 더 늦게 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긴장감이 넘치는 전투를 치루기 전 기다리는 그 맛도 매우 좋으니까.
“기다리지. 이 즐거운 시간을.‘
* * *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투는 점점 막바지로 흐르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올리비아와 카렌의 전투뿐이다.
마족들은 모두 소멸되었다.
나와 아버지 그리고 게일이나 릴리안이 두 사람의 전투에 끼어들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섣불리 끼어들면 오히려 올리비아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었다.
‘올리비아가 불리해.’
아룬은 두 사람의 움직임을 보면서 초조했다.
올리비아가 쉼 없이 몰아붙이고 있었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불리해 보였다.
“황태자비가 높은 경지에 도달했구나.”
아버지였다.
이미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아리아는 단 한 번의 물결로 모든 이를 치료했다.
마족과 힘겹게 싸웠던 아버지와 게일의 부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바마마.”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카렌은 강하지만 깊이가 얕다.”
“깊이가 얕다는 말씀은?”
“카렌과 대결했을 때 느꼈다. 강대한 마나의 양과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내는 속도는 빠르지만 검술 자체의 숙련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얕았다.”
나는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시스템의 폐해다.’
시스템에도 숙련도라는 스탯이 있었다.
스킬에 부여되는 스탯인데 의무적으로 올려야 한다.
스킬의 등급을 올리려면 높은 숙련도는 필수적이다.
숙련도는 반복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시스템의 혜택을 받았을 때 꽤 지루하게 느꼈던 기억이 났다.
마나의 양이 많아지고 경지는 높아지고 스킬의 등급도 올라간다.
하지만 진정으로 스킬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올리비아는 다르다.
아니, 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않는 이들은 검술 그 자체를 적게는 십 년 혹은 평생을 몸에 익혀 온 사람들이다.
그게 그들이 강해지는 방법이었으니까.
“깊이가 얕은 검술은 정통 검술에 약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대결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다. 처음에는 올리비아가 아슬아슬하게 밀렸지만 지금은 카렌이 오히려 당황하고 있다.”
아버지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과연 카렌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표정에는 여유가 없었다.
“며느리를 잘 들였군.”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언젠가부터 웃음이 많아지셨다.
“오늘로서 정화의 불꽃단은 끝이다.”
아버지의 선언과 동시에 올리비아의 검이 카렌의 목을 스쳤다.
“커어억!”
카렌의 목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주춤주춤 밀려나는 카렌을 향해서 올리비아의 검이 순백의 빛과 함께 뻗어 나갔다.
푸슉-!
“커윽!”
카렌의 심장을 올리비아의 검이 꿰뚫었다.
올리비아가 그대로 검을 뽑으며 뒤로 물러났다.
‘주인공…… 의 죽음인가.’
땅으로 쓰러지는 카렌을 보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와아아아아!”
동시에 병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올리비아가 후우 숨을 몰아쉬며 검을 높게 들었다.
이어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전장 전체를 울렸다.
“정화의 불꽃단의 수괴가 황태자비 검에 죽었다! 칼페온 제국은 다시 한 번 승리했다.”
질질 끌어오던 전쟁의 끝이었다.
그리고 릴리안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나지막한 릴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다시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