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73)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273화(273/278)
273화.
“휘유.”
나는 책상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의 안정을 위하여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있는 일은 서류 결재였다.
그리고 내 옆에선 켄이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이건 제 능력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나도 알아.”
“그럼 언제까지 이 결재 서류들을 보아야 합니까?”
내 책상에도, 켄의 책상에도 서류가 잔뜩 쌓여 있었다.
제국은 정화의 불꽃단과 전쟁을 치렀다.
오랫동안 전쟁을 치렀고 그 여파로 왕국 연합과 남부 야만인 연합 그리고 서부의 요정 세력이 모두 무너졌다.
왕국 연합은 벨루시의 차지가 되었지만 남부와 서부는 말 그대로 텅 비어 버렸다.
특히 서부가 겪은 전쟁의 폐해는 말이 아니었다.
가장 격렬한 전투를 치렀기 때문에 피해가 가장 컸다.
조기에 전투가 끝나 버린 남부 쪽은 언데드의 경로만 망가졌는데, 서부는 서부 전역이 말이 아니었다.
요정들은 언데드와 다르게 서부 자체를 근거지로 삼으려 했으니까.
“서부에서부터 피해 복구를 시작하시죠.”
켄이 서류를 치웠다.
“이건 행정가들한테 맡기면 됩니다. 폐하께서는 큰 줄기만 결정하시는 게 옳습니다. 선대 폐하가 일을 좀 비효율적으로 하셨군요.”
“켄.”
“비효율적인 건 비효율적인 겁니다. 폐하께서 고작 책상 앞에 묶여 계실 때가 아닙니다. 물론 반드시 폐하의 재가가 필요한 일이 있지만 그건 행정가들이 검토한 뒤 올리라고 하십시오.”
켄의 말에 나도 산처럼 쌓인 서류를 힐끔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군.”
“예산의 절반 이상을 서부에 투입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서부가 많이 망가졌지.”
“그리고 전쟁 후를 생각하면 서부를 개발하는 게 맞습니다.”
“전쟁 후?”
“폐하의 정치적 기반은 어디까지나 서부 영주들로부터 나옵니다. 지금은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대 가문은 무너졌습니다.”
“화이트 가문이 있잖아.”
“그들은 이제 황실의 일원이지요.”
나는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올리비아가 이제는 황후가 되면서 화이트 가문은 엄연히 외척이었다.
다른 가문들의 주축은 어디까지나 소드 마스터와 마법사였던 가주들이었다.
가주들을 중심으로 사대 가문은 공신 가문이 되었고 칼페온 제국을 지탱하는 권력의 한 추였다.
황제파와 귀족파로 나누어졌던 제국의 권력은 이제 완전히 무너졌다.
귀족파의 거두들이 모두 죽었으니까.
하나 남았던 화이트 가문은 본래 중립에 가까운 위치였는데 황실의 일원이 되면서 더 이상 귀족파 귀족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면 분명 다시 한 번 권력에 대한 투쟁이 시작될 겁니다. 그게 바로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벌써 시작되었을 겁니다. 새로운 황제가 과연 얼마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나, 선대 황제가 갑자기 물러난 건 진정 폐하가 더 강해서일까. 궁금증을 가진 이들이 많을 것이고 시험하려는 이들이 나올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제국의 안정이란 정화의 불꽃단과 전쟁 여파를 수습하는 게 아니라 바로 폐하의 권력을 안정시키는 일이 될 겁니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미치겠군. 마왕 벨루시가 떡 하니 왕국 연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제국의 귀족이라는 인간들이 딴생각을 품고 있다는 말이지?”
“소리스를 한번 부르시죠.”
“소리스?”
“그동안 황궁에만 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스는 본래 정보 집단 출신의 정령사로 나의 오랜 수하 중 한 명이었다.
헤밀튼이 대외 정보를 수집하는 나의 충신이라면 소리스는 황궁을 중심으로 내부 인원들의 정보를 취득했다.
나는 즉시 밖에 대기하고 있는 신하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소리스를 들라고 하라.”
“소리스라면…….”
“잘 숨어 있었던 모양이군. 황태자궁 소속의 집사다. 데리고 오도록.”
“아, 네.”
신하가 나간 뒤 나는 켄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도 밖으로만 나돌다 보니까 소리스는 돌보지 못했군.”
“그는 아이가 아닙니다. 알아서 잘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매우 똑똑하죠. 아마 폐하께 필요한 정보를 준비해 두었을 겁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소리스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폐하, 소리스 들었습니다.”
“들어오도록.”
나의 말에 문이 열리고 소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전혀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마치 세월이 비켜 간 듯 오히려 더 젊어 보였다.
“폐하!”
소리스의 말에 나는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앉게. 그동안 잘 지냈나?”
“네. 폐하. 명하신 일들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전쟁 기간 동안 폐하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소리스가 내게 서류를 내밀었다.
잠시 서류를 펼쳐 보자 나는 절로 눈이 동그래졌다.
-주요 귀족들의 현황.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절로 쓰게 웃었다.
“자네나 켄이나 비슷하군.”
소리스가 밝게 웃었다.
“권력은 하나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폐하가 차지하시리라 생각했으니까요.”
“고맙군.”
나는 즉시 소리스의 보직을 이동했다.
“자네는 켄과 함께 지근거리에서 나를 보좌하도록.”
“네. 폐하.”
“보고서도 보고서이지만 일단 자네 입으로 듣고 싶은데. 지금 현재 귀족들의 상태는 어떠한가.”
소리스의 입이 열렸다.
“혼란 그 자체입니다. 지금 딱히 움직이고 있는 이들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병을 꾸준히 모으고 있습니다.”
“사병을 모은다?”
사병은 영주의 고유 권한이다.
내가 황제라고 해서 그들의 고유 권한을 박탈할 순 없었다.
나는 등을 기댔다.
“몇몇 귀족들은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위험 수준이라는 건?”
“사병의 숫자입니다. 허용된 숫자보다 더 많은 사병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방 귀족들이 중앙 귀족들한테 줄을 대려는 것도 점차 심해지고 있는 추세이고요.”
새로운 권력의 등장에 귀족들이 예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었다.
‘마왕 벨루시를 토벌하려면 내가 자리를 비워야 한다. 올리비아까지. 제임스 공작님 한 명만으로는 모든 귀족을 누를 수 없다.’
나는 고민에 잠겼다.
전쟁 피해 복구보다 황제라는 자리를 지키는데 먼저 신경을 쓰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바보들이군. 상황께서 내게 자리를 넘겨주신 이유를 모르는 모양이야.”
가장 빠르게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 * *
벨루시의 앞에 카렌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제국군이 불태운 시신이었지만 놀랍게도 시신의 상태는 멀쩡했다.
당장 눈을 뜨고 일어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흠, 이 육체를 차지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벨루시는 고민에 잠겼다.
인간의 육체에 직접 강림하면 여러 가지 이점이 많았다.
지금 이곳에 있는 형상은 분신에 불과하다.
마계에서 중간계로 본신이 직접 강림할 순 없었다.
균형의 수호자라 불리는 정령이 아니라면 세계에서 세계를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건 이 차원을 만든 창조주의 섭리.
벨루시가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 하더라도 창조주의 섭리까지 어길 순 없었다.
그나마 대사제라는 인간이 오랫동안 연구하여 분신임에도 본체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지만 그건 한계가 명확했다.
‘네 명의 인간을 상대하려면 지금도 충분하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를 차지하면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직접 강림의 여파로 이 육체가 소멸되었을 때 본체가 받는 타격이 훨씬 크다.’
본체가 받는 타격이 예상 범위를 넘어서면 다른 마왕들과 투쟁을 벌일 수 없었다.
벨루시의 고민은 하나였다.
이곳에서 소멸을 걸고 싸우는 게 더 즐거울까 아니면 이곳에서는 적당한 투쟁만 즐기고 타격받은 본체로 다른 마왕들과 투쟁을 즐기는 게 더 즐거울까.
평소였다면 당연히 마왕들과의 투쟁을 선택했으리라.
“근데 이상하게 여기가 더 재밌을 것 같다는 말이지.”
이곳에서 본체의 소멸을 걸고 인간들과 싸운다면 최고의 희열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벨루시의 고민은 깊어졌다.
‘마왕들과는 지겹게 싸웠다. 분신이 소멸하고 본체가 타격을 받는다하여 그들과의 투쟁이 즐거울까?’
마왕들과 투쟁하고 싶었다면 강림하기 이전에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냥 본체의 힘을 제약하고 싸운다고 밝혔으면 많은 마왕들이 도전했으리라.
그럼에도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본체의 힘을 제약한다 하더라도 마왕들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결과가 정해진 투쟁은 투쟁이 아니지.’
벨루시의 힘은 너무나 강대했다.
본체의 힘을 제약하더라도 다른 마왕들과의 투쟁은 시시할 정도였다.
벨루시는 결심했다.
인간 육체에 직접 강림하기로.
이내 벨루시의 몸이 흐릿해지면서 갈색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카렌의 코와 입속으로 갈색 연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카렌, 아니 벨루시가 눈을 떴다.
온몸에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지만 한 가닥 불안감도 덮쳤다.
필멸자의 한계.
불멸의 삶을 살았던 벨루시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채 100년도 살지 못하는 필멸자의 육체는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한계가 명확했다.
‘이러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겠군.’
벨루시는 네 명의 인간과 싸울 생각에 흥분했다.
“인간 육체에 강림하니 시간이 매우 모자라게 느껴지는군.”
시간의 흐름조차 느낌이 달랐다.
바로 이게 필멸자의 삶인가?
벨루시는 성을 나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직접 가서 인간들을 만날 차례였다.
성 밖으로 나온 벨루시의 귓가에 생경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스템이 동기화 중입니다.
“시스템?”
벨루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계속 흘러 들어왔다.
벨루시는 그제야 자신이 차지한 카렌에 대하여 떠올렸다.
굉장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인간이었다.
도저히 인간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마족으로 태어났다면 충분히 마왕이 될 수 있었던 인재였지만 아쉽게도 인간이었다.
-동기화에 실패하였습니다.
이내 벨루시가 어마어마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동기화에 실패하였습니다.
.
.
.
몇 차례나 같은 음성이 반복되고 벨루시는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고통이었다.
투쟁을 통해서 죽음의 위기도 겪어 보았지만 고통 자체는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강했던 벨루시에게는 완전히 처음 느껴 보는 색다른 통증이었다.
“끄아아아악!”
연이은 비명에 이어 벨루시의 머릿속에 카렌의 기억이 주입되기 시작했다.
-기존 영혼이 동기화를 시도합니다.
벨루시가 고통에 푹 쓰러졌다.
그의 몸이 들썩거렸다.
* * *
소리스에게 보고를 들은 뒤 다음 차례는 릴리안이었다.
릴리안과는 마왕 벨루시 토벌에 관한 실질적인 의견을 나누었다.
당연히 아버지와 올리비아도 함께 참석했다.
“가능할까?”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아버지였다.
릴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은 갖추었어.”
“하지만 불안하다 이건가?”
릴리안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완벽한 조건은 하나야.”
모두가 릴리안의 입에 주목했다.
마왕을 소멸시킬 완벽한 조건이 있다고?
“라인하이드 가문은 마왕이 강림했을 때 그랜드 소드 마스터 한 명, 9서클 마법사 한 명, 네 속성 정령왕을 소환할 수 있는 정령사 한 명 그리고…….”
“그리고?”
내가 말하자 릴리안이 아버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그 모든 경지에 통달한 존재 한 명. 그들은 그런 존재를 용이라 불렀지.”
아버지가 헛웃음을 머금었다.
“이봐, 릴리안.”
“아, 깜박했네. 신성력이 강한 교황도 필요하지.”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랜드 소드 마스터, 네 속성 정령왕을 소환할 수 있는 정령술, 9서클에 도달한 마법? 그게 가능하다고?”
“용이라면 가능하지. 지금 가능성이 있는 건 당신 한 명뿐이고.”
“정령왕을 소환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시대에 한 명밖에 존재할 수 없어.”
“나머지는 가능하네.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달하는 검술과 9서클 마법.”
아버지가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소드 마스터였고 더불어 7서클 마법사였다.
“다행히 시간이 조금 있어. 벨루시가 우리를…….”
릴리안이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없을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