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8)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28화(28/278)
28화.
켄의 여러 계획 중 궁으로 후퇴하는 상황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켄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나도 켄의 의견에 동의했다. 황태자궁으로 암살자들을 보낸 대담한 놈들이지만, 대낮에 대로에서 습격을 하는 건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첸은 훨씬 더 과감했다. 아니,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야 황태자에게 이런 대규모의 습격을 감행할 순 없었다.
나는 바람의 사슬을 사용하면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 분노가 실프에게 전해진 덕분일까?
몸속을 흐르는 마나가 한층 더 격렬해졌고, 실프가 만들어내는 칼날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바람은 적들 사이를 헤집었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피를 뿌렸다.
나는 다시 한 번 구역질이 치밀었다. 내가 직접 검을 들고 적의 살을 베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힘으로 적들의 팔과 다리를 베거나 혹은 목숨마저 거두고 있었다.
첫 실전이 주는 충격은 상상을 아득히 넘어섰고, 나는 시야마저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하! 정신 차리십시오!”
켄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깨어났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은 내게 현대인으로서 남아 있던 일말의 죄책감과 망설임마저 걷어가 버렸다.
‘어떻게든 암살자들과 거리를 벌려야만 한다.’
“노움!”
나는 노움을 크게 불렀다.
스킬은 개방되지 않았지만 순간 노움에게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노움, 땅을 흔들어 줄 수 있겠어?”
노움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 가운데에 다가가서 땅을 거세게 흔들어줘.”
나는 보다 정확하게 요구했고, 노움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땅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부탁만으로도 괜찮을까. 뒤늦게 불안이 스쳤지만, 노움은 염려 말라는 듯이 금세 암살자들 가운데로 땅을 뚫고 튀어나왔다.
이윽고 땅을 흔들기 시작했다.
남은 마나 중 절반 이상을 빨아들인 노움은 땅을 흔드는 것을 넘어서 길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렸다.
적들의 진형이 일시적으로 무너지고 우리는 거리를 좀 더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다.
위기 상황이 닥치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소리스, 지금 당장 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도록!”
내 말에 소리스가 일부 길드원들과 함께 흩어졌다.
켄도 내 의견에 반박하지 않고 더욱 거세게 검을 흔들었다.
노움 덕분에 확보한 거리와 시간은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바람의 호흡법을 통해 마나를 회복했고, 다시 한 번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적들이 구멍을 뛰어 넘는 순간 공중으로 치솟으며 자연스레 방어에 취약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실프가 공중에서 날카로운 칼날을 날렸다.
서걱-!
인간의 신체 중 일부가 잘리는 소리가 더 이상 역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쯤, 적들과의 거리는 다시 한 번 가까워졌다.
‘황궁까지의 거리는 족히 두 시간이 넘는다.’
그사이 모든 적들을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니, 그 전에 지금 보이는 적들이 전부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즉, 황궁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태라는 뜻이었다.
“귀족들이 곧 올 겁니다.”
켄은 뒤로 물러나면서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나의 직접적인 요청을 거부할 순 없겠지.”
무려 황태자가 대낮에 습격당한 사건이다.
설사 내가 이 자리에서 죽고 첸이 황태자 자리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저들이 내 요청을 거절할 순 없었다.
바람의 호흡법으로 잠깐씩 마나를 회복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를 때 적들의 숫자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중간 지점에서 얼마나 되돌아왔지?”
내 질문에 켄이 짧게 대답했다.
“조금밖에 후퇴하지 못했습니다. 공격이 거세서 빠르게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대응하지 않고 몸을 돌려 도망치기에는 적들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켄은 검을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전하!”
“난 괜찮다.”
이름조차 묻지 못한 그림자 걸음 길드원들 중 세 명이 죽었다.
그들은 모두 하인과 시녀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적들의 습격이 시작된 후, 실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위장 신분이 노출된 것보다도 그들이 목숨을 잃게 된 것이 훨씬 더 가슴 아팠다.
그 순간 뒤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나와 켄, 그리고 그림자 걸음 길드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기다리고 있던 귀족의 기사들이나 혹은 황궁의 병사들이 아니었다.
적들과 같은 복장과 복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족히 수십 명이 넘어 보였다.
더 이상 우리는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멈춰 섰다.
켄이 쓰게 웃었다.
“전하, 아무래도 좀 더 버티셔야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은밀하게 실프를 불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적을 향해 바람의 사슬을 시전했다.
서걱-!
자신의 동료들이 우리의 후방에서 지원을 오는 것을 보며 방심했던 남자는 그대로 목이 달아났다.
남자의 피가 내 얼굴에 그대로 튀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리고 익숙한 시스템 음성이 내 귓가를 진득하게 울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극한의 상황은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레벨 업 보상으로 인하여 마나 홀에 마나가 단숨에 가득찼다.
-하급 정령술사가 되었습니다.
-추가로 계약할 수 있는 정령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최하급을 벗어났다.
나는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태초의 맹약에 따라…….”
내 재능과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도하는 도박이다.
나는 불의 정령을 불렀다.
* * *
세상을 태울 듯한 화염이 거리에 넘실거렸다.
-호오, 소문으로만 듣던 놈이구만?
불의 최상급 정령 이프리트는 다른 최상급 정령들과는 반응 자체가 달랐다.
마나는 이미 이프리트가 소환된 순간 바닥을 쳤고, 일어서 있기조차 힘든 수준이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프리트는 내게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 주변을 살펴보았다.
-꽤 당돌한 놈인걸? 나와 계약 맺을 힘도 없는 주제에 소환만으로 위기를 벗어나 보겠다?
굳이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프리트는 정확하게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정령들은 내 의식을 공유하고 있으니 이프리트라 하더라도 다를 게 없었다.
그는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상황은 물론이거니와 내 의도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프리트가 가볍게 손을 뻗었다.
단순히 그 동작 하나였는데, 나는 기어이 쓰러지고 말았다. 마른 빨래의 물기를 짜내듯 이프리트는 단 한 방울의 마나도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화염의 지배자 재능이 추가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위대한 정령사의 길이 열렸습니다.
-보너스 스탯이 지급됩니다.
이프리트가 호오, 감탄을 터뜨렸다. 레벨이 오르면서 순식간에 마나가 가득 채워졌고, 고스란히 이프리트에게 빨려 들어갔다.
이프리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과연.”
정령의 육성을 듣는 것은 처음이라 나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내 일행들이나, 이프리트가 뿜어내는 폭발적인 화염에 물러나 있었던 적들의 눈빛도 흔들렸다.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이 정도 부탁은 들어주지.”
이프리트가 뻗은 손을 가만히 휘저었다.
고오오오오-!
불의 장막이 거리에 펼쳐졌다.
“끄아아아악!”
한 명의 비명을 시작으로 곧 적들의 비명이 크게 울려 퍼졌다.
이프리트가 내 의식에 직접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그대가 정말 태초의 맹약과 함께 내려오는 전설의 주인일지는 앞으로 계속 지켜보겠다.
그 말을 끝으로 이프리트는 사라졌다.
나는 거친 숨과 함께 여전히 넘실거리는 화염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 전하…….”
켄의 목소리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괜찮은가?”
“전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과도하게 마나를 사용해서 잠시 어지러울 뿐이니까.”
그때 멀리서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소리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전하!”
소리스의 뒤로 처음 보는 수백 명의 기사들과 수도 경비대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켄에게 말했다.
“빨리도 오는군.”
그사이 화염은 모두 사그라 들었다.
적들은 도망치지도 못했다. 일부 도망치려던 이들은 등을 보인 채 온 몸이 그슬려 죽어 있었다.
실로 끔찍한 모습이었고, 이프리트가 얼마나 강한 정령인지 느껴졌다.
수십 명의 암살자들을 고작 손짓 한 번으로 모두 녹여 버렸다.
‘최상급 정령이 펼치는 스킬의 위력은 상상조차 가지 않는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켄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궁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지?”
“네. 더 이상의 습격은 없을 것 같습니다. 생존자가 있다면 좋겠지만…… 일단 저들의 도움을 받아 시신을 수습하고 본격적으로 움직여야겠죠.”
보는 눈이 한두 개가 아니다.
백주대낮에 대로에서 벌어진 전투를 목격한 이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거기에 내가 이프리트를 소환했다는 것도 금세 알려질 확률이 높았다.
계획이 비틀어졌지만,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일단 황궁으로 돌아가지.”
수도 경비대 대장이 내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황태자 전하, 수도 경비대 대장 마쉘입니다.”
나는 마쉘에게 어떠한 감정도 없었지만, 마쉘은 다른 것 같았다.
“황태자 전하께서 행차하시는데 이토록 참담한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 제 실수입니다.”
수도 경비대 대장 마쉘의 이름을 듣자 대략적으로 그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테드의 충신.’
정확히 말하면 애트란 가문의 충신이라 할 수 있었다.
내 동생 테드의 외가 애트란 가문은 황궁의 여러 조직에게 손을 뻗었는데, 그중 수도 경비대도 포함 되었다.
일단 나는 평범하게 대답했다.
“궁으로 돌아갈 것이다.”
“소신이 모시겠습니다.”
나는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수도 경비대 병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부 귀족가의 기사들로 보이는 이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는 일행들과 함께 다시 황궁으로 걸음을 돌렸다.
“시신은 저희가…….”
나는 마쉘의 말을 잘라냈다.
“시신은 내가 따로 수습해서 조사할 예정이다.”
이프리트의 힘으로 죽인 이들은 시신에서 건질 게 없었지만, 우리 일행이 죽인 적들은 달랐다.
‘하나의 단서라도 찾으면 된다.’
마쉘은 테드의 수하. 내가 믿기 어려운 자이니 범인들의 시신도 넘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켄이 나섰다.
“따로 시신을 옮겨 조사하겠습니다.”
“네.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사건에 대해서는 수도 경비대의 목숨과 명예를 걸고 조사하겠습니다.”
미쉘의 말을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직접적인 표현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가지.”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이 자못 기대가 되었다.
아마 벌써 황궁에는 소식이 들어갔을 것이다.
제국 건설 이후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 황태자를 습격한 사건은 내가 아무리 비루한 존재였다고 해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니까.
“켄.”
“네, 전하.”
“아무래도 계획을 수정해야겠지.”
켄이 빙긋 웃었다.
“그렇습니다. 저들은 대낮에 대로 한복판에서 전하를 습격하였고, 또 전하는…… 폐하 이후 처음으로 최상급 정령을 소환하시지 않았습니까.”
상당한 여파가 예상되었고 내 행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이상하게도 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