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2)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32화(32/278)
32화.
현 상황에서 황제와의 독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황태자가 있었지만 모두가 멍청이, 허수아비 취급할 뿐이었고 진정한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믿는 상황이었으니까.
황제와 자주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총애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으니 황자, 황녀들이 기를 쓰고 아버지와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다.
모두가 꼬박꼬박 자신의 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황제가 기거하는 궁까지 찾아와 아침을 먹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현재 아버지와의 독대가 썩 반갑지만은 않았다.
이미 대전에서 주목을 끌 만큼 끈 데다 아버지와의 만남까지 잦아진다면 경쟁자들의 경계가 훨씬 강해질 수 있었다.
당장 내가 가지고 있는 황태자라는 직위가 주는 의미는 그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정통성. 장남이 후계자 선정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무엇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내색하지 않고 아버지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고개를 들도록.”
아버지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묘하게 귓가를 통쾌하게 찔렀다.
나는 고개를 들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제국의 절대자가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저 시선을 맞추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의 존재감은 내 가슴을 짓눌렀다.
황제라는 직위가 주는 압박감이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초강자의 주변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마나의 흐름이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흐름조차 느끼지 못했고 그저 힘겨웠다.
즉, 지금은 적어도 아버지 주위를 맴도는 마나의 흐름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느낄 정도로 실력이 올라온 셈이다.
“가까이 오거라.”
아버지의 말에 나는 의문을 느끼면서도 걸음을 옮겼다.
직사각형의 기다란 대전에서, 아버지가 계신 옥좌는 계단을 열 개도 넘게 올라가야 있었다.
계단 앞까지 가자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곁에 오거라.”
무슨 일일까?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표출된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입술에 미소가 번졌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미소는 도저히 중년의 나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매혹적이었고, 섬뜩했다.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성장한 모양이구나.”
도대체 내게서 무엇을 보았다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내가 설정한 론 칼 레오드라는 사람을 떠올리고 그의 행동 원리를 해석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 순간 섬뜩한 느낌이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피슉-!
뺨을 스치는 날카로운 칼날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 직접 볼 수밖에.”
아버지가 몸을 일으켰다.
태산과도 같은 기운이 내 몸을 덮쳤다.
저절로 정령들이 소환되었다.
실프 둘과 운디네 하나, 노움과 방금 계약을 맺은 샐러멘더까지 튀어나와 내 주위를 감쌌다.
마나 홀의 마나가 그들에게 빨려 들어갔다.
아버지가 가만히 한 발을 내디뎠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어느새 평범한 장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는데 질식할 듯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실프!”
실프 둘이 동시에 바람의 사슬을 사용하면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세상에!
나는 내 스스로 스킬을 사용하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본다면 당장 대역죄로 몰 것이다.
감히 제국의 황궁 대전에서 황제를 공격하다니!
하지만 내 공격은 정당방위라는 듯 아버지의 장검이 실프들의 몸을 갈랐다.
꺄아아악!
실프들의 비명이 귓속으로 울려퍼지며 나는 강렬한 고통을 느꼈다. 고작 한 수에 실프들이 역소환되어버렸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갑자기 사람을 불러놓고 무슨 짓인가?
분명 날 죽이려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무능한 황태자를 죽이겠다는 건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냥 당할 순 없는 노릇이라 마나 홀의 마나를 쥐어 짜냈다.
‘불의 장막.’
샐러멘더가 몸을 빙그르르 돌리자 꼬리 부근에서 화염이 크게 일어났다.
아버지의 주위에 화염이 원을 그렸다.
불의 장막은 적을 묶어 두기 위한 스킬이었다.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장검을 휘둘렀다.
“움직여라. 정령술로 검사와 싸울 때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법이다. 그리 가만히 앉아 정령을 부리는 것은 자살행위이지.”
아버지의 신형이 순간 사라졌다.
“눈으로 쫓는 게 아니라 마나의 흐름을 느껴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오른쪽에서 강렬한 살기가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바람에 몸을 맡겼다.
노움과 다시 돌아온 실프 하나가 만들어내는 바람과 대지의 흐름은 살기로부터 나를 떼어 놓았다.
최대한 거리를 벌리기 위하여 나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대전은 전투를 하기에도 충분히 넓은 공간이었다.
어느새 아버지의 말처럼, 끝없이 움직이게 되었다.
아버지의 공격을 피하면서 동시에 틈을 노렸다.
이제 나머지 실프 하나를 마저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정령계로 역소환되었지만, 충분한 마나를 공급하니 실프들도 기운을 차렸다.
바람의 사슬은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실프를 아버지 주위로 돌리면서 단 한 순간, 가장 적절한 시기에 공격할 생각이었다.
“고작 하급 정령사가 정령을 제 몸처럼 부린다…….”
아버지의 미소가 진해졌다.
* * *
정말이지 진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숨을 헉헉 몰아쉬는 나에게 아버지는 짧게 말했다.
“오늘은 이만하지.”
나는 온몸이 땀범벅에다 숨을 가누기도 힘들었는데, 아버지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옷매무새도 멀쩡했다.
당연한 결과에 놀랄 이유는 없었지만 어쩐지 화가 났다.
칼페온 제국에 오고 정령술을 익히고 시스템 창을 통하여 강해졌고, 몇 안 되는 주위 사람들에게 대단한 재능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다가 진짜 강자를 만나니 내 재능은 보잘것없다는 느낌에 분한 마음이 들었다.
‘겸손하자. 겸손.’
무려 상대가 론 칼 레오드였다.
나의 아버지이며 황제이고 내가 설정한 최종 보스가 아니던가.
어쨌든 나는 아버지를 의식조차 하지 않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다시 옥좌에 가서 앉더니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턱을 괴고 말했다.
“예상보다 정령술이 익숙하구나.”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숨을 헐떡이며 대답하는 나를 보면서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의 숲에 가서 오크 술사의 저주를 받고 왔을 때 그만 너의 직위를 거둘까 했는데 섣부른 판단이 될 뻔하였어.”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버지는 나를 후계자로 인정한 걸까?
의문은 금세 해소되었다.
“고작 그 정도로는 봄 평가 대회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오직 이 자리를 보고 살아온 네 형제들은 결코 만만치 않으니까.”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 와서 이러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람이었다. 아들이나, 딸이나 혹은 부인들마저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가족에게만 적용되는 성격이었을까. 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공작, 후작, 백작…… 공신들마저 다른 신하들과 똑같이 대했다.
비록 공에 따른 직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사람을 대할 때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능력이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대우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출신이나 배경이 어떠하든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많은 귀족들이 아버지에게 내심 맞서고 있는 건 바로 출신 성분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능력만으로 대우하는 아버지의 처우 때문이었다.
황제라는 사람이 신분제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풍기니 귀족들이 반발심을 갖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들의 귀족 작위마저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 반역이라는 참혹한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버지를 모두가 두려워하는 탓이지만.’
내가 방금 느꼈듯 아버지는 끝을 모르는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검으로 마스터에 올랐고 마법도 일가견이 있었으며 정령술로도 제국 최고의 정령사였다.
일인군단!
아버지를 지칭하는 가장 어울리는 말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제 와서 이런다라…….”
그런 아버지가 대련 형식이기는 하지만 나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실제로 나는 방금 전 아버지와의 대련을 통하여 그동안의 수련보다 더욱 많은 것들을 보고 배웠다.
“네가 관심이 없었을 뿐이지 모두와 대련은 해주었다.”
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아버지가 말하는 모두라는 뜻은 내 동생들을 가리켰다.
“최소한은 넘었다고 판단되면 어느 정도의 재능을 지녔는지는 직접 보았지.”
나름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나는 쓰게 웃었다.
“계속 정진하도록 해라. 네 능력만이 네 자리를 지켜줄 터이니.”
나는 고개를 숙였다.
더 할 말이 없는 듯한 아버지를 두고 대전에서 나가기 위하여 입을 열었다.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가 몸을 돌렸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이리엘은 훌륭한 정령사였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아버지의 입에서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바람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정령사였지.”
그것을 끝으로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대전에서 나왔다.
전투의 여파로 몰골이 추레해졌다.
기사가 내 몰골을 보고 놀란 것 같았지만 이내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궁까지 모시겠습니다.”
“아니. 혼자 돌아간다.”
나는 기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혼자 길을 나섰다.
‘어머니는 훌륭한 정령사였다…… 바람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다.’
일단 아버지가 누군가를 인정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머니는 정령술만으로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초인의 길을 걷고 있는 아버지가 무력을 인정했다는 건 상당한 의미였다.
‘어머니도 엄청 강하셨던 모양이야.’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였고 외가 핏줄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이니 딱히 더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바람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다는 말은 뭔가 숨겨진 의미가 있어 보였다.
아버지가 그냥 한 말 같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정령술서를 다시 한 번 봐야겠어.’
아직 내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도 많은 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의 정령술서 초반은 정령술에 입문하는 나를 위하여 쉽게 풀어 써 놓았다.
그 이후부터는 중급, 상급, 최상급에 맞게끔 기술해 놓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
‘소리스의 도움을 받아 볼까?’
소리스는 나보다 뛰어난 정령사이니 어머니의 정령술서를 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정령술서는 물론이거니와 마법서, 고급 검술 교본서도 보물 취급을 받는 시대였지만 나는 크게 괘념치 않았다.
내가 내 수하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는가.
적어도 내 상식에서는 훌륭한 스승이 있고 좋은 교본이 있으니 스승에게 교본을 보여주고 가르침을 청하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교본이 아무리 보물이라도 내가 알아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당장 신뢰할 수 있는 중급 정령사를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아버지가 해주실 것 같지는 않고.’
오늘의 대련 역시 아버지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 혼자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착각했을 뻔하였다.
“이런, 황태자 전하 아니십니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생각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베레곤 공작과 테드 그리고 첸이었다.
베레곤 공작과 테드는 이해가 가는 조합이었지만 첸이 끼여 있는 건 의외였다.
첸은 나보다 훨씬 테드를 의식하고 있으니까.
나는 일단 베레곤 공작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님.”
“폐하를 뵙고 오시는 길이었나 봅니다.”
내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첸이 끼어들었다.
“평가 대회 준비는 잘하고 있겠지? 목숨이 달린 일이니…….”
나는 첸의 말을 잘라냈다.
“황태자 능멸, 모욕, 암살 시도 사건에 대해 수사 중인데 아무리 동생이라도 함부로 입을 놀려야 쓰겠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